《 三消 》 之論 , 劉河間之所作也 。 因麻徵君寓汴梁 , 暇日訪先生後裔 , 或舉教醫學者 , 即其人矣 。 徵君規詣其家 , 求先生平昔所著遺害 。 乃出 《 三消論 》、《 氣宜 》、《 病機 》 三書 , 未傳於世者 , 文多不全 。 止取 《 三消論 》, 於卷首增寫六位 、 藏象二圖 , 其餘未遑潤色 , 即付友人穆子昭 。
《삼소》의 논은 유하간이 지은 것이다. 마징군이 변경에 머물 때 한가한 날 선생의 후예를 찾았더니 누군가 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일러 주었다. 징군이 그 집으로 가서 선생이 평소 지은 유서를 구하자 세상에 전하지 않은 《삼소론》·《기의》·《병기》 세 책을 내놓았는데 글이 온전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삼소론》만 취하여 책머리에 육위·장상 두 그림을 더 그렸고 나머지는 윤색할 겨를 없이 벗 목자소에게 주었다.
子昭 , 乃河間門人穆大黃之後也 。 時覓官於京師 , 方且告困 。 徵君欲因是而惠之 , 由是余從子昭授得一本 。 後置兵火 , 遂失其傳 。
자소는 하간의 문인 목대황의 후예이다. 당시 서울에서 벼슬을 구하며 곤궁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징군은 이를 통해 그를 돕고자 하였고 나는 자소에게서 한 부를 받았다. 뒤에 전란을 만나 마침내 그 전본을 잃었다.
偶於鄉人霍司承君祥處 , 復見其文 , 然傳寫甚誤 , 但依仿而錄之 , 以付後之學者 , 詳為刊正云 。
우연히 동향인 곽사승 군상에게서 다시 그 글을 보았으나 전사 과정의 오류가 매우 많았다. 다만 이를 따라 베껴 후학에게 주어 자세히 교정하도록 한다.
時甲辰年冬至日錦溪野老書
갑진년 동짓날 금계야로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