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補齋不謝方小引

疾病二字 , 世每連稱 。 然今人之所謂病 , 於古但稱為疾 。 必其疾之加甚始謂之病 。 病可通言疾 , 疾不可遽言病也 。 子之所慎者疾 , 疾者未至於病 。 及子路請禱 , 又欲使門人為臣 , 則日子疾病 。《 左傳 》 於魏顆輔氏之役 , 述其父武子疾 , 既而曰疾病 。 又陳文子召無宇於萊 , 亦曰無宇之母疾病 。 此皆以病字別為一句 。 病之為言困也 , 謂疾至此困甚也 。 故 《 內經 · 四氣調神論 》 曰 : 聖人不治已病治未病 。 病已成而後藥之 , 譬猶渴而掘井 , 鬥而鑄兵 , 不亦晚乎 ? 經蓋謂人於已疾之後未病之先即當早為之藥 。 乃後人以疾為病 , 認作服藥於未疾時 , 反謂藥以治病 。 未病何以藥為 ? 不知經言未病正言已疾 。 疾而不治 , 日以加甚 。《 儀禮 · 既夕記 》: 疾病 , 外內皆埽 。 鄭注 : 疾甚曰病 。 鄭於 「 喪大記 」 首句義同 , 並足取以證 。《 說文 》: 疾 , 病也 。 病 , 疾加也 。 兩義再證以 《 周禮 》: 疾醫 。 賈疏引 《 漢書 · 藝文志 》: 有病不治 , 恆得中醫 。 則謂藥不中病 , 不如勿藥 , 非謂既病而可弗藥也 。 匯而觀之 , 可見病甚而藥 , 藥已無及 。 未至於病即宜藥之 , 此則 《 內經 》 未病之旨 , 豈謂投藥於無疾之人哉 ? 夫病必使之去 , 不可使之留 。《 內經 》 最惡留病 , 故曰 : 百病之始生也 , 必先於皮毛 。 留而不去 , 傳入於府 , 廩於腸胃 。 又曰 : 風寒客於人 , 病入舍於肺 。 弗治 , 病即傳而行之肝 。 弗治 , 肝傳之脾 , 脾傳之腎 , 腎傳之心 。 滿十日法當死 。 故又謂 : 善治者治皮毛 , 其次治肌膚 , 治筋骨 , 治六腑 , 治五臟 。 治五臟者 , 半死半生也 。 然則如經所云 , 邪之新客 , 未有定處 , 推之則前 , 引之則止 。 時顧可留其病而弗使去乎 ? 醫以能治大病為上 , 醫正以不使病大為能 。 人之言曰 : 不使病大則病家並不信 。《 內經 》 十日以後事即此十日內不速去之病為之 , 故病愈而不謝 , 病愈之速而更不謝 , 曲突徙薪者必無恩澤也 。 雖然病而不愈必大 , 惟其愈之能速 , 而凡後此傳變皆消弭於無形 , 所以有此人不及知而己獨知之之妙 。 餘隻問其病之愈不愈 , 遑計人之知不知哉 。 今錄諸方存之 , 即名之曰 《 不謝方 》 云 。
질(疾)과 병(病) 두 글자를 세상에서는 늘 이어서 말한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병이라 하는 것을 옛날에는 다만 질이라 하였다. 반드시 그 질이 더욱 심해진 뒤에야 병이라 하였다. 병을 통틀어 질이라 할 수는 있지만, 질을 곧바로 병이라 할 수는 없다. “공자께서 신중하게 대하신 것은 질이었다”고 하였으니, 질은 아직 병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자로가 기도하기를 청하고 또 문인들을 가신으로 삼으려 했을 때에는 “공자께서 질이 심해져 병이 드셨다[子疾病]”고 하였다. 『좌전』에서 위과(魏顆)의 보씨(輔氏) 전투를 말하며 그의 아버지 무자(武子)가 질을 앓았다고 서술한 뒤, 이어서 “질이 심해져 병이 들었다[疾病]”고 하였다. 또 진문자(陳文子)가 무우(無宇)를 내(萊)로 부를 때에도 “무우의 어머니가 질이 심해져 병이 들었다”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병 자를 별도의 구절로 삼은 것이다. 병은 곤궁하다는 말로, 질이 이 지경에 이르러 괴로움이 심해졌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내경』의 「사기조신론」에서는 “성인은 이미 병든 것을 치료하지 않고 아직 병들지 않은 것을 치료한다. 병이 이미 이루어진 뒤에 약을 쓰는 것은 목이 마른 뒤 우물을 파고 싸움이 난 뒤 무기를 만드는 것과 같으니, 또한 늦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경전은 사람이 이미 질을 앓은 뒤, 아직 병에 이르기 전에 일찍 약을 써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질을 병으로 여기고, 질이 생기기도 전에 약을 복용하라는 뜻으로 오해한 뒤, 도리어 “약은 병을 치료하는 것인데 아직 병들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약을 쓰겠는가?”라고 하였다. 경전의 ‘아직 병들지 않았다’는 말이 바로 이미 질을 앓고 있음을 말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질이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날로 더욱 심해진다. 『의례』 「기석기」에는 “질이 심해져 병이 들면 바깥과 안을 모두 쓸어 청소한다”고 하였으며, 정씨의 주석에는 “질이 심한 것을 병이라 한다”고 하였다. 정씨가 「상대기」의 첫 구절에 단 주석도 뜻이 같으므로, 함께 취하여 증거로 삼을 만하다. 『설문』에는 “질은 병이다”, “병은 질이 더해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두 뜻은 다시 『주례』의 ‘질의(疾醫)’로도 증명된다. 가씨의 소에서 『한서』 「예문지」의 “병이 있어도 치료하지 않으면 늘 중간 정도 의원의 치료를 받는 셈이다”라는 말을 인용한 것은, 약이 병에 맞지 않으면 약을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지, 이미 병들었는데도 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를 모아 보면 병이 심해진 뒤 약을 쓰면 약이 이미 미치지 못하며, 병에 이르기 전에 곧 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경』의 ‘미병’의 뜻이니, 어찌 질이 없는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라는 뜻이겠는가? 병은 반드시 없애야 하며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내경』은 병이 머무는 것을 가장 싫어하므로 “온갖 병이 처음 생길 때에는 반드시 먼저 피부와 털에 있다. 머물러 떠나지 않으면 부(府)로 전해 들어가 장위에 쌓인다”고 하였다. 또 “풍한이 사람에게 침입하면 병이 들어가 폐에 머문다.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전하여 간으로 간다. 치료하지 않으면 간에서 비로, 비에서 신으로, 신에서 심으로 전한다. 열흘이 차면 법상 죽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또 “잘 치료하는 이는 피부와 털에서 치료하고, 그다음은 살갗에서, 근골에서, 육부에서, 오장에서 치료한다. 오장에서 치료하면 반은 죽고 반은 산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경전에서 말한 것처럼 사기가 막 들어와 아직 정해진 자리가 없어서, 밀면 앞으로 가고 이끌면 멎는 때에, 어찌 그 병을 머물러 있게 하여 없애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큰 병을 치료할 줄 아는 의원을 으뜸으로 여기지만, 의원의 참된 능력은 병을 커지지 않게 하는 데 있다. 사람들은 “병을 커지지 않게 하면 환자 집에서는 도리어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경』에서 말한 열흘 뒤의 일은 바로 그 열흘 안에 빨리 없애지 않은 병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이 나아도 사례하지 않고, 빨리 나으면 더욱 사례하지 않으니, 굴뚝을 굽히고 땔나무를 옮겨 화재를 막은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입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기는 해도 병이 낫지 않으면 반드시 커진다. 빨리 낫게 할 수 있기에 그 뒤에 일어날 모든 전변을 형체도 나타나기 전에 없애는 것이며, 그래서 남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자기만 아는 묘함이 있다. 나는 다만 그 병이 나았는지 낫지 않았는지를 물을 뿐이니, 남이 알아주는지 알아주지 않는지를 따질 겨를이 있겠는가? 이제 여러 처방을 기록해 두고, 곧 『불사방(不謝方)』이라 이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