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之來也 , 即以極而成災 ; 則氣之乘也 , 必以復而得平 。 物極則反 , 理之自然也 。 大抵寒暑燥濕風火之氣 , 木火土金水之形 , 亢極則所以害其物 , 承乘則所以制其極 。 然則極而成災 , 復而得平 , 氣運之妙 , 灼然而明矣 。 此亢則害承乃制之意 , 原夫天地陰陽之機 , 寒極生熱 , 熱極生寒 , 鬼神不測 , 有以斡旋宰制於其間也 。 故木極而似金 , 火極而似水 , 土極而似木 , 金極而似火 , 水極而似土 。 蓋氣之亢極 , 所以承之者反勝於已也 。 夫惟承其亢而制其害者 , 造化之功可得而成者也 。 今夫相火之下 , 水氣承而火無其變 ; 水位之下 , 土氣承而水氣無其災 ; 土位之下 , 木承而土順 ; 風位之下 , 金乘而風平 。 火熱承其燥金 , 自然金家之疾 ; 陰精承其君火 , 自然火家之候 。 所謂亢而為害承而乃制者 , 如斯而已 。 且嘗考之 《 六元正紀大論 》 云 : 少陽所至 , 為火生 , 終為蒸溽(火化以生 , 則火生也 , 陽在上 , 故終為蒸溽) , 是水化以承相火之意 ; 太陽所至 , 為寒雪冰雹 、 白埃 , 是土化以承寒水之意也(霜雪冰雹水也 , 白埃下承土也) 。 以至太陰所至 , 為雷霆驟注 、 烈風(雷霆驟注土也 , 烈風下承之木氣也) ; 厥陰所至 , 為風生 , 終為肅(風化以生 , 則風生也 , 肅 , 靜也) ; 申明所至 , 為散落 、 溫(散落金也 , 溫若乘之火氣也) ; 少陰所至 , 為熱生 , 中為寒(熱化以生 , 則熱生也 , 陰精承上 , 故中為火也) 。 豈非亢為害則承乃制者歟 ? 昔者黃帝與岐伯 , 上窮天紀 , 下極地理 , 遠取諸物 , 近取諸身 , 更相問難以作 《 內經 》。 至於 《 六微旨大論 》, 有極於六氣相承之言 , 以為制則生化 , 外別盛衰 , 害則敗亂 , 生化大病 , 諸以所勝之氣來於下者 , 皆折其標盛也 。 不然曷以水發而雹雪 , 土發而驟飄 , 木發而毀折 , 金髮而清明 , 火發而曛昧 , 此皆鬱極乃發以承所亢之意也 。 嗚呼 ! 通天地人曰儒 , 醫家者流 , 豈止治疾而已 ! 當思其不明天地之理 , 不足以為醫工之語 。
기가 올 때에는 극도에 이르면 재해를 이루고, 기가 올라타 작용할 때에는 반드시 보복을 통해 평형을 얻는다.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되돌아가는 것은 이치의 자연스러움이다. 대체로 한·서·조·습·풍·화의 기와 목·화·토·금·수의 형은 항성하여 극도에 이르면 사물을 해치고, 이어받거나 올라타는 작용은 그 극단을 제어한다. 그러므로 극도에 이르러 재해를 이루고 되갚아 평형을 얻는 운기의 묘함은 밝게 드러난다. 이것이 ‘항성하면 해가 되고 이어받으면 제어한다’는 뜻이다.
천지 음양의 기틀을 근원에서 보면 추위가 극하면 열이 생기고 열이 극하면 추위가 생기며, 헤아릴 수 없는 귀신의 작용이 그 사이에서 돌리고 주재한다. 그러므로 목이 극하면 금과 같고, 화가 극하면 수와 같으며, 토가 극하면 목과 같고, 금이 극하면 화와 같으며, 수가 극하면 토와 같다. 기가 항성하여 극도에 이르면 그것을 이어받는 것이 도리어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그 항성을 이어받아 해를 제어함으로써 조화의 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 상화 아래에는 수기가 이어받아 화가 변란을 일으키지 않고, 수위 아래에는 토기가 이어받아 수기가 재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토위 아래에는 목이 이어받아 토가 순하고, 풍위 아래에는 금이 올라타 풍이 평온해진다. 화열이 조금을 이어받으면 자연히 금의 질환이 되고, 음정이 군화를 이어받으면 자연히 화의 증후가 된다. 항성하여 해가 되면 이어받아 제어한다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다.
또 《육원정기대론》을 살펴보면 “소양이 이르면 화가 생기고 끝내 찌고 눅눅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화의 변화로 생기면 화가 생기는 것이며 양이 위에 있으므로 끝내 찌고 눅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의 변화가 상화를 이어받는 뜻이다. “태양이 이르면 추위·눈·얼음·우박·흰 먼지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토의 변화가 한수를 이어받는 뜻이다. 서리·눈·얼음·우박은 수이고, 흰 먼지는 아래에서 이어받는 토이다. 또 “태음이 이르면 천둥과 벼락·갑자기 쏟아지는 비·맹렬한 바람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천둥과 벼락 및 갑작스러운 비는 토이고 맹렬한 바람은 아래에서 이어받는 목기이다. “궐음이 이르면 바람이 생기고 끝내 숙정해진다.”라고 하였으니, 풍의 변화로 생기면 바람이 생기는 것이고 숙은 고요함이다. “신명(申明)이 이르면 흩어져 떨어지고 따뜻해진다.”라고 하였으니, 흩어져 떨어지는 것은 금이고 따뜻함은 올라타는 화기와 같은 것이다. “소음이 이르면 열이 생기고 가운데는 추워진다.”라고 하였으니, 열의 변화로 생기면 열이 생기는 것이고 음정이 위를 이어받으므로 가운데는 화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 항성하여 해가 되면 이어받아 제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 황제와 기백은 위로 하늘의 법도를 궁구하고 아래로 땅의 이치를 끝까지 살피며,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여 서로 묻고 논박하며 《내경》을 지었다. 《육미지대론》에는 육기가 서로 이어받는 말의 극치가 있어, 제어하면 생성하고 변화하여 밖으로 성쇠가 구별되며, 해치면 무너지고 어지러워져 생성과 변화에 큰 병이 생긴다고 하였다. 아래에서 제어하는 기로 작용하는 것은 모두 표의 항성을 꺾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수가 발하면 우박과 눈이 오고, 토가 발하면 갑자기 회오리가 불며, 목이 발하면 부러지고 꺾이며, 금이 발하면 맑고 밝아지고, 화가 발하면 어둡고 흐려지겠는가? 이는 모두 울체가 극도에 이르러 발하여 항성한 것을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아, 천·지·인을 통달한 이를 유자라 하니, 의가의 무리가 어찌 병을 다스리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천지의 이치를 밝히지 못하면 의공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