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之先 , 謂出於神農 、 黃帝 。 儒者多不以為然 。 予嘗考醫之與卜 , 並見於 《 周禮 》, 曰醫師隸塚宰 , 筮人隸宗伯 , 並稱於孔子 , 曰人而無恆 , 不可以作巫醫 。 巫 、 筮字 , 蓋古通也 。 然卜之先 , 實出於羲 、 文 、 周 、 孔 , 則醫之先謂出於神農 、 黃帝 , 亦必有所從來 。 大約羲 、 文 、 周 、 孔之書存 , 故卜之道尊 ; 神農 、 黃帝之書亡 , 故醫之道卑 。 然其書雖亡 , 而緒餘之出於先秦者 , 殆亦有之 。 若今 《 本草 》、《 素問 》、《 難經 》、《 脈經 》, 此四書者 , 其察草木鳥獸金石之性 , 論陰陽風寒暑濕之宜 , 標其穴以施針𤋲 , 診其脈以究表裡 , 測諸秋毫之末 , 而活之危亡之餘 , 類非神人異士 , 不足以啟其機緘 , 而發其肯綮 。 則此四書者 , 誠有至理 , 不可謂非出於聖筆而遂少之也 。 然則醫之與卜 , 皆聖人之一事 , 必儒者乃能知之 , 其不以為然者 , 不能通其說者也 。 醫之方書 , 皆祖漢張仲景之言 , 實與前四書相出入 , 亦百世不能易者 。 自漢而後 , 代不乏賢 。 中古以來 , 予所取五人 , 曰孫思邈氏 , 其言嘗見錄於程子 ; 曰張元素氏 , 曰劉守真氏 , 曰李杲氏 , 皆見稱於魯齋許文正公 ; 曰朱震亨氏 , 實白雲許文懿公高第弟子 。 斯五人者 , 皆儒者也 。 而朱氏實淵源於張 、 劉 、 李三君子 , 尤號集其大成 。 朱氏每病世之醫者 , 專讀宋之 《 局方 》, 執一定之法 , 以應無窮之疾 , 譬之儒者 , 專誦時文 , 以幸一第 , 而於聖經賢傳 , 反不究心 。 乃作 《 局方發揮 》、《 格致餘論 》 等書 , 深有補於醫道 。 而方書所傳 , 則有 《 丹溪心法 》 若干卷 。 推脈以求病 , 因病而治藥 , 皆已設之方也 。 朱氏沒而其傳泯焉 。 近世儒者始知好之 , 稍稍行世 。 然業醫者樂檢方之易 , 而憚讀書之難 , 於 《 素 》、《 難 》 諸書 , 蓋皆不能以句 , 而於五人者之著述 , 則亦視為迂闊之論 。 其茫然不知所用力無足怪者 , 其以藥試人之疾 , 間一獲效 , 則亦如村甿牧豎 , 望正鵠而射之 , 偶爾中焉 。 或從其旁問之射法 , 瞠目相視 , 不知所對 。 彼老成者 , 日從事乎內志外體之間 , 雖或小有所失 , 而矢之所向 , 終無大遠 , 此觀射之法也 。 審醫之能 , 何以異此 ! 予宗人用光 , 世業儒而好醫 , 其讀 《 素 》、《 難 》 之書甚稔 , 最喜朱氏之說 。 嘗以 《 丹溪心法 》 有川 、 陝二本 , 妄為世醫所增附 , 深懼上有累於朱氏 , 乃為之彪分臚列 , 釐其誤而去其復 , 以還其舊 。 凡朱氏之方有別見者 , 則以類入之 。 書成 , 將刻梓以傳 , 請予序 。 予故以多病好醫而未能也 。 輒以醫卜並言於編首 , 使業醫者知其道本出於聖人 , 其書本足以比易 , 而非可以自卑 , 則日勉焉以致力乎 《 本草 》、《 素 》、《 難 》、《 脈經 》 之書 , 以及五君子之說 , 而尤以朱氏為入道之門 , 則庶幾乎上可以輔聖主拯世之心 , 下可以見儒者仁民之效 , 而醫不失職矣 。 用光名充 , 休寧漢口人 , 與予同出梁將軍忠壯公後 。
의술의 시초가 신농과 황제에게서 나왔다고 하나, 유학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일찍이 의술과 점복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주례》에 보인다. 의사는 총재에 속하고 시인은 종백에 속한다고 하였으며, 공자도 함께 일컬어 “사람이 한결같음이 없으면 무의가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무(巫)와 시(筮)는 대체로 옛날에 통용되었다. 그런데 점복의 시초가 실로 복희·문왕·주공·공자에게서 나왔으니, 의술의 시초가 신농과 황제에게서 나왔다는 말도 반드시 유래한 바가 있을 것이다. 대체로 복희·문왕·주공·공자의 책은 남아 있어 점복의 도가 높아졌고, 신농과 황제의 책은 없어져 의술의 도가 낮아졌다. 그러나 그 책은 없어졌어도 선진 시대에 나온 그 여파는 아마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본초》·《소문》·《난경》·《맥경》 네 책은 초목·조수·금석의 성질을 살피고 음양·풍한·서습에 마땅한 바를 논하며, 혈자리를 표시하여 침과 뜸을 시행하고 맥을 진찰하여 표리를 궁구한다. 지극히 미세한 데까지 헤아려 위태롭게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 내니, 신인이나 뛰어난 선비가 아니면 그 기틀을 열고 요체를 밝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네 책에는 진실로 지극한 이치가 있어, 성인의 글이 아니라 하여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의술과 점복은 모두 성인이 하던 일의 하나로, 반드시 유학자라야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는 그 설명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
의술의 방서는 모두 한나라 장중경의 말을 근본으로 삼았으니, 실로 앞의 네 책과 서로 통하며 백 대가 지나도 바꿀 수 없다. 한나라 이후로 대대로 현인이 끊이지 않았다. 중고 이후 내가 취한 다섯 사람은 손사막으로, 그 말이 일찍이 정자의 기록에 보이며, 장원소·유수진·이고는 모두 노재 허문정공에게 칭찬받았고, 주진형은 실로 백운 허문의공의 뛰어난 제자였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유학자이다. 주씨는 실로 장·유·이 세 군자에게서 학문의 연원을 이어받아, 특히 그 대성을 모았다고 일컬어진다.
주씨는 세상의 의사들이 송나라의 《국방》만 읽고 일정한 법을 고집하여 끝없는 질병에 대응하는 것을 늘 병통으로 여겼다. 이는 유학자가 과거 시험 문장인 시문만 외워 한 차례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면서 성인의 경전과 현인의 해설은 도리어 힘써 연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에 《국방발휘》·《격치여론》 등의 책을 지어 의도에 크게 보탬이 되게 하였다. 전해지는 방서로는 《단계심법》 몇 권이 있다. 맥을 추구하여 병을 찾고 병에 따라 약을 다스린 것이 모두 이미 마련된 처방이다. 주씨가 죽자 그 전승이 사라졌으나, 근래에 유학자들이 비로소 좋아할 줄 알아 조금씩 세상에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처방을 찾아보는 쉬움만 좋아하고 책 읽는 어려움은 꺼려, 《소》·《난》 등의 책은 구절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며, 다섯 사람의 저술도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로 여긴다. 그들이 막연히 어디에 힘써야 할지 모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약으로 사람의 병을 시험하여 어쩌다 효험을 얻는 것은, 시골 농부나 목동이 과녁을 바라보고 활을 쏘다가 우연히 맞히는 것과 같다. 곁에서 활쏘는 법을 물으면 눈만 크게 뜨고 서로 바라보며 대답할 줄 모른다. 노련한 이는 날마다 마음의 뜻과 몸가짐을 닦으므로, 간혹 조금 실수하더라도 화살이 향한 곳이 끝내 크게 빗나가지는 않는다. 이것이 활쏘기를 살피는 법이니, 의사의 능력을 살피는 것이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우리 종인 용광은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삼으면서 의술을 좋아하여 《소》·《난》을 매우 익숙하게 읽었고, 주씨의 학설을 가장 좋아하였다. 일찍이 《단계심법》에는 천·섬 두 판본이 있는데 세상의 의사들이 멋대로 덧붙인 것을 보고, 위로 주씨에게 누가 될까 깊이 염려하였다. 이에 뚜렷하게 나누어 조목조목 배열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중복을 없애 옛 모습을 되찾게 하였다. 주씨의 처방이 다른 곳에 보이면 종류에 따라 넣었다. 책이 완성되자 판각하여 전하려고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본래 병이 많아 의술을 좋아하였으나 능히 하지는 못하였다. 이에 책머리에 의술과 점복을 함께 말하여, 의술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그 도가 본래 성인에게서 나왔고 그 책이 본래 《역》에 견줄 만하여 스스로 낮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날마다 힘써 《본초》·《소》·《난》·《맥경》과 다섯 군자의 학설에 공력을 들이되, 특히 주씨를 도에 들어가는 문으로 삼는다면, 위로는 성스러운 군주의 세상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돕고 아래로는 유학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효험을 드러내어, 의사가 직분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용광의 이름은 충이고 휴녕 한구 사람이며, 나와 함께 양나라 장군 충장공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