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驅邪扶正 , 保命全真 , 拯夭閼於長年 , 濟疲癃於仁壽者 , 非資於醫則不能致之矣 。 醫之道肇自軒 、 岐 , 論 《 難 》、《 靈 》、《 素 》 出焉 ; 降而和 、 緩 、 扁 、 倉 , 咸神其術 ; 至漢張仲景作 《 傷寒卒病論 》, 始制方劑 , 大濟丞民 ; 晉王叔和撰次其書 , 復集 《 脈經 》, 全生之術 , 於斯備矣 。 他如華氏剖腹 , 王氏針妖 , 與夫奇才異士 , 間有一節一法取衒於時者亦多 , 非百代可行之活法也 。 嗟夫 ! 去古愈遠 , 正道湮微 , 寥寥千載之下 , 孰能繼往開來而垂法於無窮者 ? 宋金間 , 上谷張元素 、 河間劉守真 , 俱以穎特之資 , 深達閫奧 , 高出前古 。 元素之學 , 東垣李杲深得之 , 明內傷之旨 , 大鳴於時 。 王海藏 、 羅謙甫又受業於東垣 , 羅太無 、 亦私淑諸賢者也 。 明哲迭興 , 肩摩踵接 , 著為方論 , 究極精微 , 猶水火谷粟之在天下 , 不可一日無 。 遵而用之 , 困蘇廢起 , 斯民何其幸歟 ! 泰定中 , 丹溪朱先生起江東 , 先生 , 許文懿公高第 , 諱震亨 , 字彥修 , 婺之烏傷人 , 為元鉅儒 。 因母病脾 , 刻志於醫曰 : 醫者 , 儒家格物致知一事 , 養親不可缺 , 遂遍遊江湖 , 尋師無所遇 , 還杭 , 拜羅太無 , 乃得劉 、 張 、 李之學以歸 , 窮研 《 素問 》 之旨 , 洞參運氣之機 , 闢 《 局方 》 之非宜 , 悟戴人之攻擊 , 別陰陽於疑似 , 辨標本於隱微 , 審察血氣實虛 , 探究真邪強弱 , 一循活法 , 無泥專方 。 誠醫道之宗工 , 性命之主宰 , 而集先賢之大成者也 。 其徒趙以德 、 劉叔淵 、 戴元禮氏 , 咸能翼其道 , 遺書傳播有年 。 景泰中 , 楊楚玉集其心法 , 刊於陝右 。 成化初 , 王季瓛附方重梓於西蜀 , 志欲廣布海內 , 使家傳人誦 , 不罹夭枉 。 其用心仁矣 ! 而楊之集 , 篇目或有重出 , 而亦有遺 , 附以他論 , 使玉石不分 。 王因之附添諸方 , 多失本旨 。 充 , 江左一愚 , 夙志於此 , 每閱是書 , 實切病焉 , 輒不自揆妄意 , 竊取平治會萃經驗等方 。 及 《 玉機微義 》、《 衛生寶鑑 》、《 濟生拔萃 》、 東垣 、 河間諸書校之 , 究尾會首 , 因證求方 , 積日既久 , 復得今中書烏傷王允達先生以丹溪曾孫朱賢家藏的本寄示 , 合而參考 , 其或文理乖訛 , 意不相貫者 , 詳求原論以正其誤 ; 篇目錯綜 , 前後重疊者 , 芟去繁冗以存其要 ; 此有遺而彼有載者 , 採之以廣其法 ; 論既詳而方未備者 , 增之以便檢閱 。 一言去取 , 無敢妄有損益 , 庶幾丹溪之書 , 猶涇渭合流 , 清濁自別 ; 烏鷺同棲 , 皂白攸分 , 學者免惑於他岐 , 疾疢得歸於正治 , 未知其然否乎 ? 極知僭逾 , 無所逃罪 , 同志之士 , 倘矜其愚 , 正其訛舛而賜教之 , 則充之至願也 。 於是乎書 。
사기를 몰아내고 정기를 도우며 생명을 보전하고 참됨을 온전히 하여, 일찍 죽을 이를 구해 장수하게 하고 병약한 이를 구제하여 어질고 오래 사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은 의술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의술의 도는 헌원과 기백에서 비롯되어 《난》·《영》·《소》의 논의가 나왔고, 내려와 의화·의완·편작·창공이 모두 그 의술에 신묘하였다. 한나라 장중경에 이르러 《상한졸병론》을 지어 비로소 방제를 마련하고 많은 백성을 구제하였다. 진나라 왕숙화가 그 책을 편찬하고 다시 《맥경》을 모으니 생명을 온전히 하는 기술이 여기에 갖추어졌다. 그 밖에 화씨의 배를 가르는 일, 왕씨의 요사를 침으로 다스리는 일과 기이한 재주를 가진 선비가 때때로 한 가지 기술과 방법으로 당시에 과시한 일도 많으나, 백 대에 걸쳐 행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법은 아니다. 아, 옛날과 멀어질수록 바른 도가 희미하게 사라지니, 아득한 천 년 뒤에 누가 지난날을 잇고 앞날을 열어 무궁토록 법을 드리울 수 있겠는가? 송·금 사이에 상곡의 장원소와 하간의 유수진이 모두 뛰어난 자질로 의술의 깊은 경지에 통달하여 옛사람보다 높이 나아갔다. 동원의 이고는 원소의 학문을 깊이 터득하여 내상의 뜻을 밝히고 당시 이름을 크게 떨쳤다. 왕해장과 나겸보는 또 동원에게 수업하였고, 나태무 역시 여러 현인을 사숙한 이였다. 명철한 이들이 잇달아 일어나 어깨와 발꿈치가 이어지듯 하였고, 처방과 이론을 저술하여 정미함을 끝까지 궁구하였다. 이는 세상에 물과 불과 곡식이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을 따라 쓰면 곤궁한 이가 소생하고 폐인이 일어나니, 백성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태정 연간에 단계 주선생이 강동에서 일어났다. 선생은 허문의공의 뛰어난 제자로, 이름은 진형이고 자는 언수이며 무주의 오상 사람으로 원나라의 큰 유학자였다. 어머니의 비병 때문에 의술에 뜻을 굳히며 “의술은 유가의 격물치지 가운데 한 가지 일이니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강호를 두루 다니며 스승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고 항주에 돌아와 나태무에게 절하여 배우고서, 유·장·이의 학문을 얻어 돌아왔다. 《소문》의 뜻을 깊이 연구하고 운기의 기틀을 환히 참구하며, 《국방》의 합당하지 않은 점을 물리치고 대인의 공격법을 깨달았다. 의심스러운 데서 음양을 나누고 미세한 데서 표본을 분별하며, 혈기의 허실을 자세히 살피고 진기와 사기의 강약을 탐구하여, 오로지 활법을 따르되 특정 처방에 얽매이지 않았다. 진실로 의도의 종장이며 생명의 주재자로서 선현의 대성을 모은 이이다. 그 제자 조이덕·유숙연·대원례가 모두 그 도를 도왔고, 유서가 전파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경태 연간에 양초옥이 그의 심법을 모아 섬우에서 간행하였다. 성화 초에는 왕계환이 처방을 덧붙여 서촉에서 다시 판각하였으니, 온 나라에 널리 펴 집집마다 전하고 사람마다 외워 요절하거나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 마음 씀은 어질었다. 그러나 양씨의 편집에는 편목이 중복되거나 빠진 것이 있었고 다른 논의를 덧붙여 옥과 돌을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왕씨는 이를 바탕으로 여러 처방을 덧붙였으나 본래 뜻을 잃은 것이 많았다. 충은 강좌의 어리석은 사람으로 일찍부터 여기에 뜻을 두어, 이 책을 볼 때마다 실로 깊이 병통으로 여겼다. 이에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된 뜻으로 평치·회췌·경험 등의 처방과 《옥기미의》·《위생보감》·《제생발췌》 및 동원·하간의 여러 책을 가져와 대조하였다. 끝을 궁구하고 처음을 모으며 증후에 따라 처방을 구하여 날이 오래 쌓였다. 다시 지금의 중서인 오상 왕윤달 선생이 단계의 증손 주현 집에 간직된 확실한 판본을 보내 보여 주어 함께 참고하였다. 문리가 어긋나고 뜻이 이어지지 않는 곳은 원래 논의를 자세히 찾아 잘못을 바로잡았다. 편목이 뒤섞이고 앞뒤가 중복된 곳은 번잡한 것을 베어 내고 요점을 남겼다. 여기에는 빠지고 다른 곳에는 실린 것은 취하여 그 법을 넓혔고, 논의는 자세하나 처방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보태어 찾아보기에 편하게 하였다. 한마디를 버리고 취하는 데에도 감히 함부로 덜고 보태지 않았다. 단계의 책이 경수와 위수가 합쳐져도 맑고 흐림이 저절로 구별되고, 까마귀와 해오라기가 함께 살아도 검고 흼이 나뉘듯 하여, 배우는 이가 다른 길에 미혹되지 않고 병자가 바른 치료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랐으나 과연 그런지 알 수 없다. 분수를 넘었음을 잘 알아 죄를 피할 길이 없으니, 뜻을 함께하는 선비가 혹 나의 어리석음을 가엾게 여겨 오류를 바로잡고 가르쳐 준다면 충의 지극한 소원이다. 이에 쓴다.
成化十七年歲次辛丑仲冬休寧後學復春居士程充謹識
성화 17년 신축년 중동에 휴녕의 후학 복춘거사 정충이 삼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