欲知其內者 , 當以觀乎外 ; 診於外者 , 斯以知其內 。 蓋有諸內者形諸外 。 苟不以相參而斷其病邪之逆順 , 不可得也 。 為工者深燭厥理 , 故望其五色 , 以青黃赤白黑 , 以合於五臟之脈 , 窮其應與不應 ; 切其五脈 , 急大緩澀沉 , 以合其五臟之色 , 順與不順 。 誠能察其精微之色 , 診其微妙之脈 , 內外相參而治之 , 則萬舉萬全之功 , 可坐而致矣 ;《 素問 》 曰 : 能合色脈 , 可以萬全 。 其意如此 。 原夫道之一氣 , 判而為陰陽 , 散而為五行 , 而人之所稟皆備焉 。 夫五脈者 , 天之真 , 行血氣 , 通陰陽 , 以榮於身 ; 五色者 , 氣之華 , 應五行 , 合四時 , 以彰於面 。 惟其察色按脈而不偏廢 , 然後察病之機 , 斷之以寒熱 , 歸之以臟腑 , 隨證而療之 , 而獲全濟之效者 , 本於能合色脈而已 。 假令肝色如翠羽之青 , 其脈微弦而急 , 所以為生 ; 若浮澀而短 , 色見如草滋者 , 豈能生乎 ? 心色如雞冠之赤 , 其脈當浮大而散 , 所以為順 ; 若沉濡而滑 , 色見如衃血者 , 豈能順乎 ? 脾色如蟹腹之黃 , 其脈當中緩而大 , 所以為從 ; 若微弦而急 , 色見如枳實者 , 豈能從乎 ? 肺色如豕膏之白 , 其脈當浮澀而短 , 所以為吉 ; 若浮大而散 , 色見如枯骨者 , 豈能吉乎 ? 以至腎色見如烏羽之黑 , 其脈沉濡而滑 , 所以為生 ; 或脈來緩而大 , 色見如炲者死 。 死生之理 , 夫惟診視相參 。 既以如此 , 則藥證相對 , 厥疾弗瘳者 , 未之有也 。 抑嘗論之 , 容色所見 , 左右上下 , 各有其部 ; 脈息所動 , 寸關尺中 , 皆有其位 。 左頰者肝之部 , 以合左手關位 , 肝膽之分 , 應於風木為初之氣 ; 顏為心之部 , 以合於左手寸口 , 心與小腸之分 , 應於君火為二之氣 ; 鼻為脾之部 , 合於右手關脈 , 脾胃之分 , 應於濕土為四之氣 ; 右頰肺之部 , 合於右手寸口 , 肺與大腸之分 , 應於燥金為五之氣 ; 頤為腎之部 , 以合於左手尺中 , 腎與膀胱之分 , 應於寒水為終之氣 。 至於相火為三之氣 , 應於右手 , 命門三焦之分也 。 若夫陰陽五行 , 相生相勝之理 , 當以合之於色脈而推之也 。 是故 《 脈要精微論 》 曰 : 色合五行 , 脈合陰陽 。《 十三難 》 曰 : 色之與脈 , 當參相應 。 然而治病萬全之功 , 苟非合於色脈者 , 莫之能也 。《 五臟生成篇 》 云 : 心之合脈也 , 其榮色也 。 夫脈之大小滑澀沉浮 , 可以指別 , 五色微診 , 可以目察 , 繼之以能合色脈 , 可以萬全 。 謂夫赤脈之至也喘而堅 , 白脈之至也喘而浮 , 青脈之至也長而左右彈 , 黃脈之至也大而虛 , 黑脈之至也上堅而大 。 此先言五色 , 次言五脈 , 欲後之學者望而切之以相合也 。 厥後扁鵲明乎此 , 述之曰 : 望而知之謂之神 , 切脈而知之謂之巧 , 深得 《 內經 》 之理也 。 下迨後世 , 有立方者 , 目之曰神巧萬全 , 厥有旨哉 。
안을 알고자 하면 밖을 관찰해야 하고, 밖을 진찰함으로써 안을 알 수 있다.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므로, 서로 참고하지 않으면 병사의 역순을 판단할 수 없다. 의공은 그 이치를 깊이 밝혀, 오색을 바라보고 청·황·적·백·흑을 오장의 맥과 맞추어 응하는지 아닌지를 궁구한다. 또 오맥을 짚어 급·대·완·삽·침을 오장의 색과 맞추어 순한지 아닌지를 살핀다. 진실로 정미한 색을 살피고 미묘한 맥을 진찰하여 안팎을 서로 참고해 다스리면, 만 번 행하여 만 번 온전히 하는 공을 앉아서도 이룰 수 있다. 《소문》에서 “색과 맥을 합할 수 있으면 만전을 기할 수 있다.”라고 한 뜻이 이와 같다.
도의 한 기가 나뉘어 음양이 되고 흩어져 오행이 되었는데, 사람이 품부받은 것에는 모두 갖추어져 있다. 오맥은 하늘의 참됨으로서 혈기를 운행하고 음양을 통하게 하여 몸을 영화롭게 한다. 오색은 기의 꽃으로서 오행에 응하고 사계절에 합하여 얼굴에 드러난다. 색을 살피고 맥을 짚는 일을 어느 한쪽도 버리지 않은 뒤에야 병의 기틀을 살펴 한열을 판단하고 장부에 귀속시키며 증에 따라 치료하여 온전히 구제하는 효험을 얻는다. 이는 색과 맥을 합할 수 있음에 근본을 둘 뿐이다.
가령 간의 색이 물총새 깃처럼 푸르고 맥이 약간 현하면서 급하면 사는 것이지만, 부·삽하면서 짧고 색이 풀즙과 같다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심의 색이 닭 볏처럼 붉고 맥이 부·대하면서 흩어지면 순한 것이지만, 침·유하면서 활하고 색이 엉긴 피와 같다면 어찌 순하겠는가? 비의 색이 게 배처럼 누렇고 맥이 가운데서 완하면서 크면 따르는 것이지만, 약간 현하면서 급하고 색이 지실과 같다면 어찌 따르겠는가? 폐의 색이 돼지기름처럼 희고 맥이 부·삽하면서 짧으면 길한 것이지만, 부·대하면서 흩어지고 색이 마른 뼈와 같다면 어찌 길하겠는가? 신의 색이 까마귀 깃처럼 검고 맥이 침·유하면서 활하면 사는 것이지만, 맥이 완하면서 크고 색이 그을음과 같으면 죽는다. 생사의 이치는 오직 맥을 진찰하는 것과 바라보는 것을 서로 참고하는 데 있다. 이미 이와 같으면 약과 증이 서로 맞으니, 병이 낫지 않는 경우는 없다.
또 논하자면 얼굴빛이 드러나는 좌우와 위아래에는 각각 부위가 있고, 맥의 움직임에도 촌·관·척 각각 자리가 있다. 왼쪽 뺨은 간의 부위로 왼손 관위의 간담에 합하고, 풍목에 응하여 초지기가 된다. 이마는 심의 부위로 왼손 촌구의 심·소장에 합하고, 군화에 응하여 이지기가 된다. 코는 비의 부위로 오른손 관맥의 비위에 합하고, 습토에 응하여 사지기가 된다. 오른쪽 뺨은 폐의 부위로 오른손 촌구의 폐·대장에 합하고, 조금에 응하여 오지기가 된다. 턱은 신의 부위로 왼손 척중의 신·방광에 합하고, 한수에 응하여 종지기가 된다. 상화는 삼지기로서 오른손 명문·삼초의 부위에 응한다. 음양오행이 서로 낳고 이기는 이치는 색과 맥에 맞추어 추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맥요정미론》에서는 “색은 오행에 합하고 맥은 음양에 합한다.”라고 하였고, 《십삼난》에서는 “색과 맥은 마땅히 서로 참고하여 응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병을 다스려 만전을 기하는 공은 색과 맥을 합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룰 수 없다. 《오장생성편》에는 “심이 합하는 것은 맥이고 영화는 색이다.”라고 하였다. 맥의 대·소·활·삽·침·부는 손가락으로 구별하고 오색의 미묘함은 눈으로 살필 수 있다고 한 뒤, 색과 맥을 합할 수 있으면 만전을 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붉은 맥이 오는 것은 급하고 단단하며, 흰 맥은 급하고 뜨며, 푸른 맥은 길고 좌우로 튕기고, 누런 맥은 크고 허하며, 검은 맥은 위쪽이 단단하고 크다는 것이다. 이는 먼저 오색을 말하고 다음에 오맥을 말하여 후학이 바라보고 짚어서 서로 맞추게 하려는 것이다. 뒤에 편작이 이를 밝혀 “바라보아 아는 것을 신이라 하고, 맥을 짚어 아는 것을 교라 한다.”라고 서술하였으니 《내경》의 이치를 깊이 얻었다. 후세에는 처방을 세우고 이름을 신교만전이라 한 이도 있었으니 깊은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