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於乙卯冬 , 載硯歸籍 , 嘗輯 《 歸硯錄 》 以見志 。 友人時招余遊滬 , 輒為事阻 , 未得果行 。 庚申秋 , 渟溪被難 , 後諸相知招遊甬 、 越 、 武林 。 余謂 : 必爭之地 , 完善之區 , 繁富之鄉 , 我能往 , 寇亦能往 , 何必多此跋涉耶 ? 悉卻之 , 意欲乘桴海上 , 法聖人之居九夷 , 而季傑 、 性癡 、 若蕖相繼病危 。 蓋季傑神氣素怯 , 驚嚇感邪 , 病未解而正氣散漫 , 不能自持 , 余以攘外安內治之 。 性癡善憂多郁 , 氣機澀 , 伏邪遂得依山傍險而負固不解 , 余但舒其鬱結 , 消其憂懣 , 徐為疏瀹 , 邪亦潛消 。 若渠弱而好俠 , 嫉官兵之無用 , 憤寇氛之日張 , 怒木直升 , 發沖眥裂 , 柔金失降 , 胃閉津枯 , 一息懨懨 , 舌尖焦硬 , 飲難下咽 , 聞藥即嘔 , 肌消音微 , 涎流腥赤 , 自知不起 , 無藥可投 。 余以毫無氣味 、 性極平淡之西洋參 、 枇杷葉 、 石斛 、 蘆根 、 竹茹 、 鮮稻頭煎而頻灌 , 始漸轉機 , 迨二病痊可 , 又為次女嫁事所羈 。 既而彤彤徂暑 , 畏於登程 , 且挈眷以行 , 談何容易 , 孑身而往 , 誰託事孥 ? 展轉思維 , 殊無善策 。 承呂君慎庵招遊濮院 , 遂乘舟前往 , 寄廡於董君枯匏家 , 閉戶忍飢 , 草 《 飲食譜 》、《 雞鳴錄 》 二書 , 以擄憂悃 。 甫脫稿 , 而渟溪復遭焚掠 , 季傑挈眷徒於窮鄉 , 山妻攜四女來濮 。 嗣杭垣復陷 , 洲城亦潰 , 天崩地裂 , 無路可行 , 急將三 、 四二女 , 擇攸遣嫁 。 而四女所歸姚氏 , 世居嘉興之僻鄉 , 慎庵已挈眷避此 , 故為我謀此退步也 。 四月十三日 , 賊過梅涇 , 闔鎮皆逃 , 余遂送山妻及五 、 六二女於姚氏 , 而陳君半樵適以信來 , 招遊滬瀆 。 有桐廬王文介者 , 病危於屠甸 , 神昏遺矢 , 醫皆卻走 。 宗侄紹武飛函丐余往視 , 乃溫邪誤表也 , 幸體堅邪有下行之路 , 與大劑涼解而瘥 。 紹武亦慫恿遊滬 , 因於二十四日 , 托妻孥於姚 、 呂諸君而行 , 五月初三日抵滬 。 此地曾遭兵燹 , 不但滄海漸變桑田 , 中原宛如外國 。 二十年來 , 開闢日甚 , 商舶鱗集 , 而江浙之倖免於難者 , 率避於此 。 帆檣林立 , 踵接肩摩 , 彈丸小邑 , 居然成一大都會矣 。 余以性情疏懶 , 相識者多 , 既無泛應之才 , 又恐不知者疑為有求而來也 。 故不謁一客 , 暫寓東門外周君採山 「 德泰紙號 」 內 , 以半樵 、 紹武皆在此佐會計 。 而周氏昆仲 , 向以青眼視我 , 雖市廛紛沓 , 藉省旅資 , 惟採山四令弟履慶 , 去年患病 , 盼余甚切 , 至彌留時 , 猶道余不置口 , 余為酷熱 , 不能行 , 不料其英一病而不起也 , 神交數載 , 竟無一面之緣 , 清夜捫心 , 徒呼負負 。 居數日 , 乞診者紛紛 , 聊記一二 , 用質宗工 , 題曰 「 醫影 」, 而序其 「 乘桴 」 之由如下 。
나는 을묘년 겨울 벼루를 싣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찍이 『귀연록(歸硯錄)』을 엮어 뜻을 나타냈다. 벗들이 때때로 나를 상해로 놀러 오라고 불렀으나, 번번이 일이 가로막아 끝내 가지 못하였다. 경신년 가을 정계(渟溪)가 난리를 겪자, 뒤이어 여러 지인들이 영(甬)·월(越)·무림(武林)으로 오라고 청하였다. 나는 “반드시 쟁탈할 땅이며 온전하고 좋은 지역이고 번성하고 부유한 고장이니, 내가 갈 수 있다면 도적도 갈 수 있다. 어찌 이렇게 노고를 더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여 모두 사양하였다. 바다에 뗏목을 띄워 성인이 구이(九夷)에 살고자 한 뜻을 본받으려 하였는데, 계걸(季傑)·성치(性癡)·약거(若蕖)가 차례로 위독해졌다. 계걸은 신기가 본래 약하고 겁이 많아 놀란 뒤 사기에 감촉되었다. 병이 풀리기도 전에 정기가 흩어져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므로, 나는 밖의 사기를 물리치고 안을 안정시키는 법으로 치료하였다. 성치는 근심이 많고 잘 울체되어 기기가 껄끄러워졌으며, 잠복한 사기가 산과 험한 지세를 의지하듯 굳게 버티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다만 그 울결을 펴고 근심과 번민을 없애며 서서히 소통시켜 주었더니 사기도 은밀히 사라졌다. 약거[원문: 若渠]는 몸이 약하면서도 의협을 좋아하여 관군의 무능을 미워하고 도적의 기세가 날로 커짐에 분개하였다. 노한 목기가 곧장 치솟아 머리털이 곤두서고 눈꼬리가 찢어질 듯하였으며, 유약한 금은 내려가지 못하였다. 위가 닫히고 진액이 말라 한 줄기 숨만 힘없이 이어지고, 혀끝은 타서 단단해졌으며, 마실 것도 목으로 넘기기 어렵고 약 냄새만 맡아도 토하였다. 살은 빠지고 목소리는 희미하며, 침은 비리고 붉게 흘렀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줄 알았고 투여할 약도 없었다. 나는 냄새와 맛이 전혀 없고 성질이 아주 평담한 서양삼·비파엽·석곡·노근·죽여·신선한 벼의 윗부분[鮮稻頭]을 달여 자주 먹였더니 비로소 점차 전환점이 생겼다. 두 병이 나을 즈음에는 또 둘째 딸을 시집보내는 일에 매였다. 뒤이어 붉게 달아오르는 여름 더위가 닥쳐 길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가족을 데리고 가는 일이 어찌 쉽겠으며, 혼자 간다면 집안일과 자식들을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이리저리 생각하여도 좋은 계책이 없었다. 여신암(呂慎庵) 군이 복원(濮院)으로 오라고 초대한 덕분에 배를 타고 가서 동고포(董枯匏) 군의 집채에 몸을 의탁하였다. 문을 닫고 굶주림을 참으며 『음식보(飲食譜)』와 『계명록(雞鳴錄)』 두 책을 초고하여 근심과 괴로움을 풀었다. 막 탈고하였는데 정계가 다시 방화와 약탈을 당하였다. 계걸은 가족을 데리고 외진 시골로 옮겼고, 아내는 네 딸을 데리고 복원으로 왔다. 이어 항주성이 다시 함락되고 주성(洲城)도 무너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 듯 갈 길이 없었다. 급히 셋째와 넷째 두 딸의 배필을 골라 시집보냈다. 넷째 딸이 시집간 요씨 집안은 대대로 가흥의 외딴 시골에 살았으며, 신암은 이미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피난해 있었으므로 나를 위해 이 물러설 길을 마련해 준 것이다. 4월 13일 도적이 매경(梅涇)을 지나자 온 고을이 모두 달아났다. 나는 아내와 다섯째·여섯째 두 딸을 요씨 집으로 보냈는데, 마침 진반초(陳半樵) 군에게서 편지가 와 호독(滬瀆)으로 오라고 청하였다. 동려(桐廬)의 왕문개(王文介)라는 사람이 도전(屠甸)에서 위독하여 정신이 혼미하고 대변을 지렸으며, 의원들은 모두 물러나 달아났다. 종질 소무(紹武)가 급히 편지를 보내 나에게 와서 살펴 달라고 청하였다. 가 보니 온사를 잘못 발산시킨 것이었다. 다행히 몸이 튼튼하고 사기가 아래로 나갈 길이 있었으므로, 서늘하게 풀어 주는 약을 대량으로 써서 나았다. 소무도 상해로 가기를 권하여 24일 아내와 자식들을 요씨와 여씨 등에게 맡기고 길을 떠나, 5월 초3일 상해에 도착하였다. 이곳도 일찍이 전쟁의 재난을 겪었는데, 창해가 차츰 뽕밭이 된 것뿐 아니라 중국 땅이 마치 외국 같았다. 20년 동안 개척이 날로 심해져 상선이 비늘처럼 모였고, 강소와 절강에서 다행히 난을 면한 이들이 대개 이곳으로 피하였다. 돛대가 숲처럼 서고 발꿈치와 어깨가 부딪칠 만큼 사람이 많아, 탄환만 한 작은 고을이 어엿한 대도회가 되었다. 나는 성품이 소탈하고 게으른 데다 아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사람을 두루 응대할 재주도 없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무엇을 구하러 왔다고 의심할까 염려되어 아무도 찾아뵙지 않았다. 잠시 동문 밖 주채산(周採山) 군의 ‘덕태지호(德泰紙號)’ 안에 묵었는데, 반초와 소무가 모두 그곳에서 회계를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씨 형제는 전부터 나를 호의로 대하였으므로, 비록 시장이 복잡하고 시끄러워도 여비를 덜 수 있었다. 다만 채산의 넷째 아우 이경(履慶)이 지난해 병들었을 때 나를 몹시 기다렸고, 임종할 때에도 입에서 내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나는 혹독한 더위 때문에 가지 못하였으며, 그 영특한 사람이 한 번 병들어 다시 일어나지 못할 줄은 몰랐다. 여러 해 마음으로 사귀고도 끝내 한 번 만날 인연조차 없었으니, 맑은 밤 가슴에 손을 얹고 그저 ‘저버렸구나, 저버렸구나’ 하고 탄식할 뿐이다. 며칠 지내자 진찰을 청하는 이들이 잇달았다. 이에 한두 사례를 적어 높은 의학의 대가들에게 질정하고자 ‘의영(醫影)’이라 제목 붙이고, ‘승부(乘桴)’의 연유를 이처럼 서문으로 쓴다.
同治元年夏五月海昌睡鄉散人題於申江寓次
동치(同治) 원년 여름 5월, 해창(海昌)의 수향산인(睡鄉散人)이 신강(申江)의 객사에서 쓰다.
陳君春泉之令愛 , 甫三齡 。 患寒熱脹瀉 , 醫治多日 , 頸軟肢搐 , 涕淚全無 。 以為延成慢驚 , 試以溫補 , 神識漸至不清 。 又疑邪氣逆傳 , 灌以犀角等藥 , 病日劇 , 遂束手 。 速余勘之 , 乃飲食不節 , 脾胃不調耳 。 春泉始悟前因失恃無乳 , 常啖龍眼 、 棗脯等物以滋補也 。 余以雞內金 、 五穀蟲 、 鱉甲 、 川樸 、 黃連 、 竹茹 、 冬瓜皮 、 防風 、 米仁 、 蘆根等為方 , 一劑知 , 數劑愈 。
진춘천(陳春泉) 군의 따님은 겨우 세 살이었다. 오한과 발열, 배가 불러 오르는 증상과 설사를 앓아 여러 날 치료받았으나, 목이 가누어지지 않고 팔다리가 경련하며 콧물과 눈물이 전혀 없었다. 오래되어 만경이 되었다고 여겨 시험 삼아 온보하자 의식이 점차 흐려졌다. 또 사기가 거슬러 전한 것으로 의심하여 서각 등의 약을 먹였으나 병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손을 놓았다. 급히 나를 불러 살펴보게 하였는데, 다만 음식이 절도 없고 비위가 조화롭지 못한 것뿐이었다. 춘천은 그제야 어머니를 잃어 젖이 없었기 때문에 용안과 대추 말린 것 등을 늘 먹여 보양하였던 것이 원인임을 깨달았다. 나는 계내금·오곡충·별갑·천후박·황련·죽여·동과피·방풍·의이인·노근 등으로 처방하였다. 한 첩에 효과를 알았고 몇 첩에 나았다.
童少塘之子 , 五歲 。 患瀉 , 身熱 , 醫與溫中健脾藥 , 熱壯無溺 , 苔黑齒焦 , 口渴無眠 , 漸至嘔吐 。 余用芩 、 連 、 茹 、 滑 、 銀花 、 石斛 、 綠豆衣 、 冬瓜皮 、 蘆根等味 , 數劑霍然 。
동소당(童少塘)의 아들은 다섯 살이었다. 설사하고 몸에 열이 나자 의원이 중초를 따뜻하게 하고 비를 튼튼하게 하는 약을 주었다. 열이 심해지고 소변이 없으며 설태가 검고 이가 타듯 마르며, 입이 마르고 잠들지 못하다가 점차 구토에 이르렀다. 나는 황금·황련·죽여·활석·금은화·석곡·녹두의·동과피·노근 등을 썼으며, 몇 첩 만에 시원하게 나았다.
沈寅甫令正 , 患少腹聚氣 , 痛無定所 , 甚至渾身筋骨痠痛 , 寒熱如瘧 。 醫謂外感 , 治之日劇 , 眠食皆廢 。 余按脈微數而弦 , 重取極細 , 乃八脈大虧之證 。 經予一貫煎加減 , 投之旬余而瘳 。
심인보(沈寅甫)의 부인은 아랫배에 기가 뭉쳐 아픈 곳이 일정하지 않았고, 심하면 온몸의 근골이 시큰거리며 학질처럼 오한과 발열이 났다. 의원은 외감이라 하였으나 치료할수록 날로 심해져 잠과 음식을 모두 폐하였다. 내가 맥을 짚으니 약간 삭하면서 현하고, 깊이 누르면 몹시 세하였다. 이는 팔맥이 크게 허손된 증이었다. 내가 일관전을 가감하여 준 뒤 열흘 남짓 복용하고 나았다.
倪笠坪患感旬余 , 屢醫不效 , 邀余往勘 , 乃濕溫證也 , 投藥十劑而痊 。 乃弟筱坪亦病此 , 服藥數劑 , 已有小效 , 更醫用柴葛三帖 , 勢漸劇 。 復請視 , 囑曰 : 此名重暍 , 氣液二傷矣 。 授輕養清化法 , 甫得轉機 。 又易醫 , 驟進生地 、 龜板等味 , 而痰濕膩絡 , 呃汗陡作 , 乃浼王小鐵孝廉邀診 , 已不能措手矣 。 嗣有黃上水孝廉來申 , 患濕溫 , 醫與柴葛二帖 , 足冷麵紅 , 胸痞多汗 。 延診授清化法二帖 , 足溫面赤退矣 , 惟胸悶未得全舒 , 疑為有疹不達 , 更醫迎合 , 二進辛透 , 遂痰塞欲厥而亡 。
예립평(倪笠坪)이 외감에 걸린 지 열흘 남짓 되어 여러 번 치료받아도 효과가 없자 나를 불러 살펴보게 하였는데, 습온증이었다. 약 열 첩을 주어 나았다. 그의 아우 소평(筱坪)도 같은 병을 앓아 약 몇 첩을 먹고 이미 조금 효과가 있었으나, 의원을 바꾸어 시호·갈근 계열의 약 세 첩을 쓰자 형세가 점차 심해졌다. 다시 살펴 달라고 하기에 “이는 중갈(重暍)이라 하며, 기와 진액이 함께 상한 것이다”라고 일렀다. 가볍게 자양하고 맑혀 변화시키는 법을 주어 막 호전되려 하였는데, 다시 의원을 바꾸어 갑자기 생지황·귀판 등을 먹였다. 그러자 담습이 경락에 끈끈하게 붙고 딸꾹질과 땀이 갑자기 생겼다. 이에 왕소철(王小鐵) 효렴에게 부탁하여 나를 부르게 하였으나 이미 손쓸 수 없었다. 뒤에 황상수(黃上水) 효렴이 상해로 와서 습온을 앓았다. 의원이 시호·갈근 계열의 약 두 첩을 주자 발은 차고 얼굴은 붉으며, 가슴이 막히고 땀이 많았다. 진찰을 청하여 청화법으로 두 첩을 주었더니 발이 따뜻해지고 얼굴의 붉은빛도 물러났다. 다만 가슴 답답함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 발진이 나오지 못한 것으로 의심하자 다른 의원이 그 생각에 맞추어 두 차례 매운 약으로 투발시켰다. 마침내 담이 막혀 쓰러질 듯하다가 죽었다.
錢儀華體弱患感 , 醫治多日 , 目瞪神呆 , 不眠不食 , 不便不言 , 肢痙流涎 , 牙關咬緊 , 危象畢呈矣 。 余察脈弦長而滑 , 不甚鼓指 , 苔色黃膩 , 良由醫者不辨病之在氣在血 。 初起則升透 , 繼因譫語 , 即用生地等血分之品 , 以滋塞其邪 , 遂成負固不解之勢 , 雖便秘多日 , 而邪尚在上 , 不可下也 。 授小陷胸加茹 、 薤 、 菖 、 樸 、 芩 、 翹 、 竹瀝為方 , 數服便行而愈 。 嗣有倪某 , 亦因誤治如前 , 而咳逆葉沫 , 間或帶血 , 予小陷胸合葦莖 , 去米仁 , 加王不留行 、 蒲公英 、 雪羹 , 數帖 , 下其燥矢 , 咳逆平而愈 。
전의화(錢儀華)는 몸이 약한데 외감에 걸려 여러 날 치료받았다. 눈은 멍하니 뜨고 정신이 둔해지며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였다. 대변도 보지 못하고 말도 하지 않으며, 팔다리가 경직되고 침이 흐르고 이를 악물어 위태로운 징후가 모두 나타났다. 내가 맥을 살피니 현하고 길며 활하되 손가락을 세게 두드리지는 않았고, 설태는 누렇고 기름졌다. 이는 실로 의원이 병이 기분에 있는지 혈분에 있는지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위로 올려 투발시키고, 뒤에는 헛소리를 한다고 곧 생지황 같은 혈분의 약으로 사기를 자윤하여 막아 놓았으므로, 굳게 버티어 풀리지 않는 형세가 되었다. 여러 날 변비였지만 사기는 아직 위에 있었으므로 하법을 써서는 안 되었다. 소함흉탕에 죽여·해백·창포·후박·황금·연교·죽력을 더한 처방을 주었더니 몇 번 복용한 뒤 대변이 통하고 나았다. 뒤에 예씨(倪氏) 아무개도 앞과 같은 오치 때문에 기침이 치밀고 거품을 토하며[원문: 葉沫] 때로 피도 섞여 나왔다. 소함흉탕과 위경탕을 합하되 의이인을 빼고 왕불류행·포공영·설갱을 더하여 몇 첩 주었더니 마른 대변이 내려가고 해역이 가라앉아 나았다.
丁曉山室 , 久患頭痛 , 臥榻不起 , 耳鳴睛赤 , 食減無眠 , 頻年培補 , 證日以加 。 乃兄黃純安請往視之 , 脈弦滑而數 , 口苦苔黃 , 乃風自火出 , 搏液成痰 , 溫補誤投 , 遂成錮疾也 。 予芩 、 連 、 膽 、 柏 、 茹 、 夏 、 羚 、 菊 、 梔 、 蒺 、 地丁 、 石斛 、 決明 、 海䖳等 , 十餘劑 , 勢大減 , 苔退加餐 。 加入二至 、 生地 、 大冬以滋水 , 漸安眠食 , 而能起坐矣 。
정효산(丁曉山)의 부인은 오랫동안 두통을 앓아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고, 귀가 울리고 눈이 붉으며 음식이 줄고 잠을 자지 못하였다. 여러 해 보하는 치료를 받았으나 증세는 날로 더하였다. 그의 오라버니 황순안(黃純安)이 진찰을 청하였다. 맥은 현활하면서 삭하고 입이 쓰며 설태가 누렜다. 화에서 풍이 나오고 진액이 부딪쳐 담이 되었는데 온보하는 약을 잘못 투여하여 고질이 된 것이다. 나는 황금·황련·용담·황백·죽여·반하·영양각·국화·치자·질려·지정·석곡·결명·해자(海䖳) 등을 주었다. 열몇 첩에 형세가 크게 줄고 설태가 물러나며 식사가 늘었다. 이지(二至)·생지황·대동(大冬)을 더하여 수를 자양하니 점차 편안히 자고 먹으며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洞庭吳某 , 患四肢痠痛 , 形瘦便艱 , 口渴不飢 , 睛紅溺赤 , 醫投滋養 , 即形脘悶 , 稍進辛通 , 煩渴益甚 。 就余診脈 , 弦滑而軟 , 是木熱流脂 , 肝陽爍液也 。 以元參 、 白薇 、 王不留行 、 地丁 、 蔞仁 、 鮮斛 、 昆布 、 紫菀 、 知母 、 竹瀝 , 服旬余而痊 。
동정(洞庭)의 오씨 아무개는 팔다리가 시큰거리고 몸이 마르며 대변 보기 어렵고, 입은 마르나 배고프지 않으며 눈은 붉고 소변도 붉었다. 의원이 자양하는 약을 주면 곧 명치가 답답해지고, 매운 약으로 조금 소통시키면 번갈이 더욱 심해졌다. 내게 와서 맥을 진찰받으니 현활하면서 연하였다. 이는 목의 열로 지방이 흘러내리고 간양이 진액을 태우는 것이었다. 현삼·백미·왕불류행·지정·과루인·신선한 석곡·곤포·자완·지모·죽력을 써서 열흘 남짓 복용한 뒤 나았다.
錢塘吳菊譚茂才令弟竹溪 , 在德泰權賬事 , 始患泄瀉 。 余知其蘊濕內盛 , 邪尋出路也 , 囑其節食忌口 。 渠持體堅 , 飲啖如故 。 已而身熱頭重 , 脘悶不飢 , 與清宣法 , 病即解 , 遂啖飯碗半 。 余謂 : 必復也 。 次日果不能食 , 熱壯麵紅 , 口渴苔黃 , 溺色帶黑 , 是邪得食助 , 悉從火化 , 所謂谷入於陰 , 長氣於陽也 。 遂予大劑清化 , 加枳 、 桔數劑漸瘥 。 而呃忒連朝 , 人皆危之 。 余謂 : 無恐也 , 府氣未通 , 上焦更有痰阻氣機耳 。 但用輕清展化 , 果痰吐便行以愈 。
전당(錢塘)의 오국담(吳菊譚) 모재의 아우 죽계(竹溪)는 덕태에서 임시로 장부 일을 맡고 있었는데, 처음에 설사를 앓았다. 나는 속에 쌓인 습이 성하여 사기가 나갈 길을 찾는 것임을 알고, 음식을 절제하고 가리라고 일렀다. 그는 몸이 튼튼함을 믿고 예전처럼 먹고 마셨다. 이윽고 몸에 열이 나고 머리가 무거우며 명치가 답답하고 배고프지 않았다. 맑히고 펼치는 법을 주자 병이 곧 풀렸는데, 그만 밥 한 사발 반을 먹었다. 나는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과연 먹지 못하고 열이 심해지며 얼굴이 붉고 입이 마르며 설태가 누렇고, 소변에 검은빛이 돌았다. 사기가 음식의 도움을 얻어 모두 화로 변한 것이니, 이른바 ‘곡식이 음으로 들어가 양에서 기를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량의 청화약에 지(枳)와 길경을 더하여 몇 첩 주자 점차 나았다. 그러나 여러 날 아침마다 딸꾹질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모두 위태롭게 여겼다. 나는 “두려워할 것 없다. 육부의 기가 아직 통하지 않았고 상초에 담이 남아 기기를 막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가볍고 맑게 펴서 변화시키는 법만 썼더니 과연 담을 토하고 대변이 통하여 나았다.
補擬清化方 : 淡豆豉 、 焦山梔皮 、 杏仁 、 桔梗 、 枳實 、 花粉 、 佩蘭葉 、 連翹 、 通草 、 瓜蔞 、 焦山楂 、 炒萊菔子 。
보충하여 마련한 청화 처방: 담두시, 눋게 볶은 산치자 껍질, 행인, 길경, 지실, 천화분, 패란엽, 연교, 통초, 과루, 초산사, 볶은 내복자.
補擬輕清展化方 : 旋覆花 、 紫菀 、 白前 、 橘皮 、 竹茹 、 柿蒂 、 黃鬱金 、 川貝 、 蔞皮 、 枳殼 、 鮮枇杷葉 。
보충하여 마련한 경청전화 처방: 선복화, 자완, 백전, 귤피, 죽여, 시체, 황울금, 천패모, 과루피, 지각, 신선한 비파엽.
周君採山令妹 , 年二十三歲 , 體豐而患腿痠胸悶 , 上身壯熱多汗 , 頭痛畏風 , 腰下無汗 , 二腿不溫 , 苔色膩黃 , 渴須熱飲 , 脈來滑數 , 徹夜無眠 , 或疑其虛 。 余謂 : 痰阻氣鬱 , 吸受溫邪 , 兼挾濕滯 , 格拒不通 , 法當開降 , 既不可補 , 亦忌溫升 。 予芩 、 連 、 茹 、 夏 、 紫菀 、 蔞仁 、 蛤粉 、 滑石 、 川樸 、 蘆根等藥 , 數劑 , 渾身發斑 , 又數劑 , 冷痰始吐 。 再加石膏 , 痰由大便而下 , 垢苔始退 , 二足漸溫 。 適汛至 , 去芩 、 連 、 蔞仁 , 加枇杷葉 , 又三劑熱退 , 脈和 , 胸中舒暢 , 知飢能寐 , 授潛陽鎮補而痊 。
주채산 군의 누이는 스물세 살로 몸이 풍만하였다. 다리가 시큰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며, 상반신에 심한 열이 나고 땀이 많았다. 두통이 있고 바람을 싫어하며, 허리 아래에는 땀이 없고 두 다리는 따뜻하지 않았다. 설태는 기름지고 누르며 갈증에는 뜨거운 물을 찾았고, 맥은 활삭하며 밤새 잠들지 못하였다. 어떤 이는 허증으로 의심하였다. 나는 “담이 막고 기가 울체된 데다 온사를 받아들이고 습체까지 겸하여 서로 막혀 통하지 않는 것이니, 열어 내려야 한다. 보해서도 안 되고 따뜻하게 올리는 것도 꺼린다”라고 하였다. 황금·황련·죽여·반하·자완·과루인·합분·활석·천후박·노근 등을 몇 첩 주자 온몸에 반점이 나타났고, 다시 몇 첩에 찬 담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석고를 더하자 담이 대변으로 내려가 비로소 더러운 설태가 물러나고 두 발이 점차 따뜻해졌다. 마침 월경이 시작되어 황금·황련·과루인을 빼고 비파엽을 더하였다. 다시 세 첩을 주자 열이 물러나고 맥이 고르며, 가슴이 시원하고 배고픔을 알아 잠도 잘 수 있었다. 양을 가라앉히고 눌러 보하는 법을 주어 나았다.
肆安陳半樵 , 年三十五歲 。 患身熱 , 便瀉 , 口乾 , 仍強起任事 , 察其脈虛大而弦 , 是憂勞過甚 , 元氣大虧之證 , 幸而能食 , 亟與參 、 耆 、 苓 、 草 、 防 、 芍 、 木瓜 、 陳皮 、 石斛 , 旬日霍然 , 即旋里省親 , 逾月來申 , 患暑濕類瘧 , 予清化藥四帖而愈 , 但覺疲憊 , 仍以參 、 耆 、 柏 、 草等 , 培其本元 。
사안(肆安)의 진반초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몸에 열이 나고 설사하며 입이 말랐지만 여전히 억지로 일어나 일을 맡았다. 맥을 살피니 허대하면서 현하였다. 근심과 노고가 지나쳐 원기가 크게 허손된 증이었으며, 다행히 음식은 먹을 수 있었다. 급히 인삼·황기·복령·감초·방풍·작약·목과·진피·석곡을 주자 열흘 만에 시원하게 나았다. 곧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뵙고 한 달이 지나 상해로 왔는데, 학질과 비슷한 서습을 앓았다. 청화약 네 첩을 주어 나았지만 피곤함만 느꼈으므로, 다시 인삼·황기·황백·감초 등으로 그 근본의 원기를 길렀다.
仁和周鶴庭室 , 年逾四旬 , 陰虛有素 , 而多產育 , 竄難來申 。 懷胎五月 , 暑熱外侵 , 飢不能餐 , 飲亦欲噎 , 身熱時作 , 胎沖欲墜 , 苦渴苔黃 , 肢面時麻 , 便溏不暢 , 齦癰溺清 , 形削麵黧 , 標實中虛 。 以西洋參 、 銀花各三錢 , 連翹 、 西瓜翠衣各四錢 , 蒲公英 、 鮮斛各八錢 , 桑葉二錢 , 蘇梗 、 竹茹各錢半 , 絲瓜絡 、 白薇 、 石菖蒲各一錢 , 服三帖 , 得汗熱退 , 癰潰胎安 , 能食溺通而愈 。
인화(仁和)의 주학정(周鶴庭)의 부인은 마흔이 넘었고, 평소 음허한 데다 출산이 많았으며 난리를 피해 상해로 도망해 왔다. 임신 다섯 달에 서열이 밖에서 침범하여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마실 때에도 막히려 하였다. 때때로 몸에 열이 나고 태기가 치받아 떨어질 듯하였으며, 괴로운 갈증과 누런 설태가 있었다. 팔다리와 얼굴이 때때로 저리고, 대변이 묽으면서 시원하지 않으며, 잇몸에는 옹이 있고 소변은 맑았다. 몸이 마르고 얼굴빛이 검으니, 겉의 병은 실하고 중초는 허한 것이었다. 서양삼·금은화 각 3돈, 연교·서과취의 각 4돈, 포공영·신선한 석곡 각 8돈, 상엽 2돈, 소경·죽여 각 1돈 반, 사과락·백미·석창포 각 1돈을 썼다. 세 첩을 복용하자 땀이 나고 열이 물러났으며, 옹이 터지고 태가 안정되어 먹을 수 있고 소변이 통해 나았다.
姚歐亭夫人 , 年五十九歲 。 素傷謀慮 , 首如戴帽 , 杳不知飢 , 夜來非酒不眠 , 苔色一塊白滯 , 時或腹痛 , 手心如烙 , 脈左弦數 , 右軟滑 。 乃木熱流脂 , 痰阻氣機 , 胃受肝乘 , 有升無降也 。 予連 、 夏 、 茹 、 苓 、 蛤殼 、 延胡 、 楝等 , 雪羹二帖 , 便瀉稍帶血塊 , 而腹痛減 , 首帽除 , 苔亦鬆泛 , 納食略增 , 惟晨起苦渴 , 改授參 、 蛤殼 、 橘 、 半 、 苓 、 茹 、 苡 、 斛 、 絲瓜絡 、 海藻 , 囑其常服 , 以通胃舒肝 、 滌痰清絡為善後法 , 服旬日右脈起矣 。
요구정(姚歐亭)의 부인은 쉰아홉 살이었다. 평소 생각과 염려로 상하여 머리에 모자를 쓴 듯하였고 전혀 배고픔을 몰랐으며, 밤에는 술 없이는 잠들지 못하였다. 설태는 한 덩어리로 희게 달라붙어 있고 때때로 배가 아팠으며 손바닥은 지지는 듯하였다. 왼쪽 맥은 현삭하고 오른쪽은 연활하였다. 이는 목의 열로 지방이 흘러내리고 담이 기기를 막으며, 위가 간의 침범을 받아 오름만 있고 내림이 없는 것이었다. 황련·반하·죽여·복령·합각·연호색·련(楝) 등과 설갱을 두 첩 주었다. 설사에 핏덩이가 조금 섞여 나왔고 복통이 줄었으며, 머리에 모자를 쓴 듯한 느낌이 없어지고 설태도 느슨하게 떠오르며 식사가 조금 늘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면 심한 갈증이 있어 인삼·합각·귤피·반하·복령·죽여·의이인·석곡·사과락·해조로 바꾸어 주었다. 늘 복용하도록 일러 위를 통하게 하고 간을 펴며 담을 씻고 경락을 맑히는 것을 뒷수습의 법으로 삼았다. 열흘 복용하자 오른쪽 맥이 살아났다.
歐亭二令愛 , 年二十八歲 。 幼年患四肢不舒 , 誤服靈砂等藥 , 遂成錮疾 。 今晡熱嗽痰 , 苔白而渴 , 齦腫而痛 , 頰癢便溏 , 是伏熱生風 , 兼挾暑感 。 予石膏 、 滑石 、 羚羊 、 桑葉 、 橘 、 半 、 茹 、 斛 、 功勞 、 絲瓜絡 、 西瓜翠等 , 不旬皆愈 。
구정의 둘째 딸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어릴 때 팔다리가 불편한 병을 앓으면서 영사 등의 약을 잘못 먹어 마침내 고질이 되었다. 지금은 오후에 열이 나고 담을 동반한 기침을 하며, 설태는 희고 갈증이 있었다. 잇몸은 붓고 아프며 뺨은 가렵고 대변은 묽었다. 잠복한 열이 풍을 낳은 데다 서감까지 겸한 것이었다. 석고·활석·영양각·상엽·귤피·반하·죽여·석곡·공로(功勞)·사과락·서과취의 등을 주어 열흘이 못 되어 모두 나았다.
歐亭令孫 , 年十九 。 患膽怯善驚 , 精滑不固 , 鼻赤形瘦 , 舌絳口乾 。 以元參 、 丹參 、 生地 、 天冬 、 竹茹 、 連 、 柏 、 生草 、 砂仁 、 蓮子心 、 歸身等 , 數帖而安 。
구정의 손자는 열아홉 살이었다. 겁이 많고 잘 놀라며 정이 새어 굳게 지키지 못하고, 코가 붉고 몸이 마르며 혀가 짙붉고 입이 말랐다. 현삼·단삼·생지황·천문동·죽여·황련·황백·생감초·사인·연자심·당귀신 등을 써서 몇 첩에 편안해졌다.
姚嶅庵比部 , 年五十八歲 , 患痰喘自汗 , 便溏不暢 , 或以為下元大衰 , 議用大劑附 、 桂 , 予診脈滑而長 , 乃上焦痰火為患 , 以杏 、 樸 、 滑 、 菀 、 射干 、 竹茹 、 蛤殼 、 鵝管石 、 蘆根等而愈 。
요오암(姚嶅庵) 비부(比部)는 쉰여덟 살이었다. 담천과 자한을 앓고 대변이 묽으면서 시원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하원이 크게 쇠한 것으로 여겨 부자와 육계 계열 약을 대량으로 쓰자고 하였다. 내가 진맥하니 활하면서 길어, 상초의 담화가 병을 일으킨 것이었다. 행인·후박·활석·자완·사간·죽여·합각·아관석·노근 등으로 치료하여 나았다.
堂按 : 方內有鵝管石一味 , 是上焦雖有痰火 , 下原亦衰矣 。
당(堂)의 주: 처방 안에 아관석이라는 약재가 있으니, 상초에 담화가 있어도 하원 역시 쇠하였던 것이다.
嶅庵令寵 , 患痰嗽巔疼 , 口乾脅躍 , 不飢而渴 , 時或吐酸 , 舌赤脈弦 。 以一貫煎增損 , 投匕即安 。 一貫煎 : 沙參 、 麥冬 、 地黃 、 杞子 、 歸身 、 川楝子 , 口苦燥者加川連 。
오암의 첩은 담이 있는 기침과 정수리 통증을 앓고, 입이 마르며 옆구리가 뛰고 배고프지는 않으나 갈증이 있었다. 때때로 신물을 토하고 혀는 붉으며 맥은 현하였다. 일관전을 가감하여 주자 약을 먹자마자 편안해졌다. 일관전: 사삼, 맥문동, 지황, 구기자, 당귀신, 천련자. 입이 쓰고 마르면 천황련을 더한다.
此方魏玉橫所撰治脅痛胃痛 , 吞酸吐酸 。 嘉善顧應如茂才 , 年逾六旬 , 每日吸洋菸五錢 , 久患痰嗽 , 口乾耳鳴 , 頭響 , 小溲梗澀 , 大便艱難 , 多藥罕效 , 予一貫煎而愈 。
이 처방은 위옥횡(魏玉橫)이 만든 것으로, 협통·위통과 신물이 올라와 삼키거나 토하는 것을 치료한다. 가선(嘉善)의 고응여(顧應如) 모재는 예순이 넘었고 날마다 아편[洋菸] 5돈을 피웠다. 오랫동안 담이 있는 기침을 앓았으며 입이 마르고 귀가 울리며 머리에서도 소리가 나고, 소변이 막혀 시원하지 않으며 대변 보기 어려웠다. 여러 약을 써도 효과가 드물었는데 일관전을 주어 나았다.
姚晉軒令媳 , 體素弱 , 邇來時患氣墜 , 墜後上升 , 杳不知飢 , 腿涼麵赤 , 口熱如火 , 左脅如疼 , 心下如盤 , 屢服滋養人乳 , 病日以劇 。 余勘其脈 , 弦細以滑 , 乃肝熱而停飲也 , 柔膩惡可投乎 ? 予紫菀 、 白前 、 茹 、 半 、 旋 、 菖 、 絲瓜絡 、 蛤粉 、 雪羹 、 川連 、 蘇葉 , 旬日而安 。
요진헌(姚晉軒)의 며느리는 몸이 본래 약하였다. 근래에 때때로 기가 아래로 처졌다가 다시 올라오는 병이 있었고, 전혀 배고픔을 모르며 다리는 차고 얼굴은 붉었다. 입은 불처럼 뜨겁고 왼쪽 옆구리는 아픈 듯하며 명치 아래에는 쟁반 같은 것이 있었다. 자양하는 약과 사람 젖을 거듭 복용하였으나 병은 날로 심해졌다. 내가 맥을 살피니 현세하면서 활하여, 간에 열이 있고 음이 정체된 것이었다. 부드럽고 끈끈한 약을 어찌 투여할 수 있겠는가? 자완·백전·죽여·반하·선복화·창포·사과락·합분·설갱·천황련·소엽을 주어 열흘 만에 편안해졌다.
姚歐亭七令愛 , 自庚申患痢後 , 便瀉不已 , 時或腹脹 , 形瘦 , 少餐 , 苔白不渴 , 投以補脾之藥 , 脹甚發熱 , 脈急而弦 , 改予參 、 樸 、 橘 、 半 、 冬瓜皮 、 白薇 、 楝 、 芍 、 茹 、 苡等而愈 。
요구정의 일곱째 딸은 경신년에 이질을 앓은 뒤부터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때때로 배가 불러 오르고 몸이 마르며 적게 먹고, 설태가 희면서 갈증이 없었다. 비를 보하는 약을 주자 배가 더 심하게 불러 오르고 열이 나며 맥이 급하면서 현하였다. 인삼·후박·귤피·반하·동과피·백미·련(楝)·작약·죽여·의이인 등으로 바꾸어 주어 나았다.
歐亭天資穎異 , 天文地理 , 詩畫琴書 , 無不精妙 , 而又深究醫理 , 且賦體素堅 。 自云道光間在河間患感 , 因便秘汗多 , 脈浮勢欲脫 , 誤服人參 , 神漸昏憒 , 幸遇董某 , 用生脈散 , 生薑搗爛 , 遍塗其身 , 灌以大黃六兩 , 芒硝三錢 , 連下十餘次 , 始得生機 , 從此不敢言醫 。 噫 ! 其聰明不如歐亭者 , 亦何必強談醫耶 ? (歐亭云 : 蟑螂花擦頭面瘡皰 、 面刺 , 應手即消 , 煎湯洗瘡疥 、 腳氣 , 有奇效 。 )
구정은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 천문과 지리, 시와 그림, 거문고와 글씨에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의학의 이치도 깊이 연구하였으며 몸도 본래 튼튼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도광 연간에 하간(河間)에서 외감에 걸렸는데, 변비가 있고 땀이 많으며 맥이 뜨고 탈증에 빠질 듯하였다. 인삼을 잘못 먹어 정신이 점차 혼미해졌다. 다행히 동씨 아무개를 만나 생맥산을 쓰고, 생강을 짓이겨 온몸에 바른 다음 대황 6냥과 망초 3돈을 먹였다. 잇달아 열몇 번 설사한 뒤에야 살 길이 생겼으며, 이때부터 감히 의학을 말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아! 총명함이 구정만 못한 사람도 어찌 억지로 의학을 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구정이 말하였다. “장랑화(蟑螂花)로 머리와 얼굴의 창포와 면자를 문지르면 손을 대는 대로 사라진다. 달인 물로 창개와 각기를 씻으면 기이한 효과가 있다.”)
周採山素善飲 , 久患心下堅硬如柈 , 納穀甚少 , 常時便暢則氣機較舒 , 今忽大瀉不飢 , 汗多形瘦 , 勘脈微而滑 。 予參 、 朮 、 橘 、 半 、 苡 、 樸 、 茹 、 連 、 桂 、 苓十味以補氣滌痰 , 通陽化濕 , 投匕即效 , 數服而瘳 。 即此加減 , 俾其常服 。
주채산은 평소 술을 잘 마셨고, 오랫동안 명치 아래가 쟁반처럼 단단하며 식사량이 매우 적었다. 평소에는 대변이 잘 통하면 기기가 비교적 편안하였는데, 지금은 갑자기 심한 설사를 하며 배고픔을 모르고 땀이 많으며 몸이 말랐다. 맥을 살피니 미하면서 활하였다. 인삼·출·귤피·반하·의이인·후박·죽여·황련·계(桂)·복령 열 약재로 기를 보하고 담을 씻으며 양을 통하게 하고 습을 변화시켰다. 약을 먹자마자 효과가 났고 몇 번 복용하여 나았다. 이 처방을 가감하여 늘 복용하게 하였다.
周採山令弟啟東 , 體豐善啖 , 喜於作勞 , 陡患脘痛當心 , 隨左右臥而較甚 , 身熱自汗 , 肢冷便溏 , 苔色黃膩 , 溺短而渴 , 脈至右寸關模糊不應 , 是痰濕熱夾食為患也 , 以枳 、 橘 、 半 、 滑 、 樸 、 茹 、 連 、 菔子 、 蘆根為劑 , 三帖即止 。
주채산의 아우 계동(啟東)은 몸이 풍만하고 잘 먹으며 노동하기를 좋아하였다. 갑자기 명치에서 가슴을 향하는 통증이 생겼는데,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누우면 더욱 심해졌다. 몸에 열이 나고 저절로 땀이 흐르며 팔다리가 차고 대변은 묽었다. 설태는 누렇고 기름지며 소변은 적고 갈증이 있었고, 오른쪽 촌·관의 맥이 흐릿하여 뚜렷이 응하지 않았다. 이는 담습열에 식체가 끼어 병을 일으킨 것이었다. 지(枳)·귤피·반하·활석·후박·죽여·황련·내복자·노근으로 처방하여 세 첩에 그쳤다.
湖州趙君敬泉 , 邀看周君嵐仙證 , 年二十九歲 。 平昔好義 , 家遭離亂 , 猶孳孳為善 , 惟曰不足以致心煩慮亂 , 若無把握 , 惟恐顛墜 , 神不自持 , 脈來細數 , 食少事繁 , 是真陰素虧 , 心陽過擾也 。 予一貫煎加牡蠣 、 坎版 、 石英 , 合甘麥大棗 、 生歸身 , 服之甚安 。
호주(湖州)의 조경천(趙敬泉) 군이 주남선(周嵐仙) 군의 병을 보아 달라고 청하였다. 스물아홉 살로 평소 의로움을 좋아하였고, 집안이 난리를 겪었는데도 부지런히 선을 행하였다. 다만 늘 부족하다고 여겨 마음이 번거롭고 생각이 어지러우며, 붙잡을 것이 없는 듯하고 넘어질까 두려워 정신을 스스로 지탱하지 못하였다. 맥은 세삭하고 적게 먹으면서 일이 많았다. 이는 진음이 본래 허손된 데다 심양이 지나치게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일관전에 모려·감판(坎版)·석영을 더하고 감맥대조탕 및 생당귀신을 합하여 주었더니, 복용하고 매우 편안해졌다.
秀水某 , 春間病幾危 , 余為治愈 , 既而余避難來申 , 病者亦於秋間徒滬 。 將交秋分 , 復招診視 , 尚不能起榻 , 而胸滿腹大 , 溺清便艱 , 氣塞火升 , 咽頰作響 , 食後出語 , 氣即上衝 , 腿軟腰疼 , 目干少寐 。 腹中時痛 , 泄氣稍舒 , 欲噫不宣 , 苔色滿布 , 此但知其久病元虛 , 率投守補 , 窒其升降之機 , 而不調其情志也 。 以北沙參 、 絲瓜絡 、 枇杷葉 、 蒲公英 、 留行子 、 竹茹 、 蛤粉 、 菖蒲 、 蔞仁 、 半夏 、 蘇葉 、 黃連為劑 , 服之漸效 。
수수(秀水)의 아무개가 봄에 병으로 거의 위태로워졌으나 내가 치료하여 낫게 하였다. 뒤에 내가 난리를 피해 상해로 왔고, 환자도 가을에 상해로 옮겼다. 추분 무렵 다시 진찰을 청하였는데, 여전히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가슴이 그득하며 배가 컸다. 소변은 맑고 대변은 보기 어려우며, 기가 막히고 화가 올라 목구멍과 뺨에서 소리가 났다. 식후에 말을 하면 기가 곧 위로 치밀었다. 다리는 약하고 허리가 아프며 눈이 마르고 잠이 적었다. 배가 때때로 아프다가 방귀를 뀌면 조금 편해졌으며, 트림하려 해도 나오지 않고 설태가 가득 덮여 있었다. 이는 다만 오랜 병으로 원기가 허한 것만 알아 대체로 보하면서 지키는 약을 투여하여 승강의 기틀을 막고, 감정을 조절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사삼·사과락·비파엽·포공영·왕불류행자·죽여·합분·창포·과루인·반하·소엽·황련으로 처방하니 복용하면서 점차 효과가 났다.
若蕖稚息 , 途次遇盜受驚 , 汛行發熱 , 勉強支持 , 迨余知之 , 即予菖 、 茹 、 翹 、 枳 、 薇 、 菀 、 芩 、 蔞 、 梔 、 蘆 , 以開鬱豁痰 , 宣氣清熱 , 火雖下行 , 而足溫然 , 舌絳神瞀 , 讝語撮空 , 自言魂不在身 , 脈甚滑數 , 是痰熱膠結 , 營津受爍 , 竟不更衣 , 急需濡導 , 改用元參 、 海䖳 、 辰冬 、 菖蒲 、 蔞仁 、 鮮斛 、 鮮生地 、 竹瀝 、 梨 , 服六帖 , 而大便行 , 熱退舌潤 , 神清 , 渴喜熱飲 , 韌痰頻吐 , 杳不思食 , 小溲艱澀 , 且易嘔惡 , 以橘 、 半 、 菖 、 茹 、 薇 、 菀 、 枇杷葉而飲食漸進 。 又逾旬 , 大解復行 , 痰嗽 , 肢汗出 , 悲傷欲哭 , 得噫始舒 , 以一貫煎加菖蒲 、 旋覆 , 去歸身 , 服之愈 。
약거(若蕖)의 어린 자식은 여행 도중 도적을 만나 놀랐고, 월경이 시작되면서 열이 났으나 억지로 버티었다. 내가 이를 알자 곧 창포·죽여·연교·지(枳)·백미·자완·황금·과루·치자·노근을 주어 울체를 열고 담을 없애며 기를 펼치고 열을 맑혔다. 화가 비록 아래로 내려갔으나 발은 따뜻하고, 혀는 짙붉으며 정신이 흐려 헛소리를 하고 허공을 움켜쥐었다. 스스로 혼이 몸에 없다고 말하였으며, 맥은 몹시 활삭하였다. 담열이 끈끈하게 맺혀 영분의 진액이 타는 것으로, 끝내 대변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급히 적셔서 이끌어 내려야 했다. 현삼·해자(海䖳)·진동(辰冬)·창포·과루인·신선한 석곡·신선한 생지황·죽력·배로 바꾸어 여섯 첩을 복용하자 대변이 통하였다. 열이 물러나고 혀가 윤택해지며 정신도 맑아졌으나, 갈증에는 뜨거운 물을 좋아하고 질긴 담을 자주 토하며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소변도 어렵고 시원하지 않으며 구역질이 쉽게 났다. 귤피·반하·창포·죽여·백미·자완·비파엽으로 점차 음식을 먹게 되었다. 다시 열흘이 지나 대변이 또 통하였으나, 담이 있는 기침과 팔다리의 땀이 있고 슬퍼하며 울고 싶어 하다가 트림해야 비로소 편해졌다. 일관전에 창포와 선복화를 더하고 당귀신을 뺀 것을 복용하여 나았다.
錢君少谷 , 滯下久延 , 所下腸垢似魚腦 , 少腹尚堅硬不舒 , 小溲短澀 , 腰痛 , 舌無液 , 脈弦數而梗 , 是陰液為肝熱所迫而不守 , 陽氣為肝鬱所滯而不通 。 予白頭翁合封髓丹 , 服數帖 , 腹柔痢減 , 脈和能食 , 改三奇散合封髓而愈 。
전소곡(錢少谷) 군은 체하가 오래 이어져, 배출되는 장의 찌꺼기가 생선의 뇌와 같았다. 아랫배는 여전히 단단하고 불편하며 소변은 적고 시원하지 않고, 허리가 아프고 혀에는 진액이 없으며 맥은 현삭하면서 막혀 있었다. 음액이 간열에 핍박되어 지켜지지 못하고, 양기가 간의 울체에 막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백두옹(白頭翁)에 봉수단을 합하여 몇 첩 복용하자 배가 부드러워지고 이질이 줄며 맥이 고르고 먹을 수 있었다. 삼기산과 봉수단을 합한 것으로 바꾸어 나았다.
南潯朱浦香 , 年五十六歲 , 忽患呃忒暮熱 , 陳某進滋降藥 , 勢益甚 。 陸定圃囑余診 , 脈甚弦滑且數 , 胸次痞悶 。 乃痰阻樞機也 , 與橘 、 枳 、 芩 、 連 、 茹 、 射 、 兜 、 菀 、 枇杷葉等藥 。 渠嫌芩 、 連苦寒 , 刪去不用 , 加入柴胡四分 , 服後呃雖減 , 而肝風動 , 大汗遍身 , 指震氣促 , 少腹躍躍而動 , 亟以蛤殼 、 旋覆 、 白前以降之 , 得暢解數次而愈 。
남심(南潯)의 주포향(朱浦香)은 쉰여섯 살로, 갑자기 딸꾹질과 저녁 무렵의 발열을 앓았다. 진씨 아무개가 자양하고 내려 주는 약을 먹였으나 형세가 더욱 심해졌다. 육정포(陸定圃)가 나에게 진찰을 부탁하였다. 맥은 매우 현활하면서 삭하고 가슴이 막혀 답답하였으니, 담이 기의 출입과 전환을 막은 것이었다. 귤피·지(枳)·황금·황련·죽여·사간·마두령·자완·비파엽 등의 약을 주었다. 그는 황금과 황련이 쓰고 차다고 싫어하여 빼고 쓰지 않은 채 시호 4푼을 더하였다. 복용 뒤 딸꾹질은 줄었으나 간풍이 움직여 온몸에 큰 땀이 나고 손가락이 떨리며 숨이 가쁘고, 아랫배가 연달아 뛰었다. 급히 합각·선복화·백전으로 내려 주었더니 몇 차례 시원하게 대변을 보고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