此方 , 乃唐會昌間 , 有一頭陀 , 結草菴於宜春之鐘村 , 貌甚古 , 年百四五十歲 。 買數畝墾畲種粟以自給 。 村氓有彭叟者 , 常常往來其廬 , 顏情甚捻 , 或助之耕 。 一日 , 彭之子 , 升木伐條 , 誤墜於地 , 折頸挫肱 , 呻吟不絕 。 彭訴於道人 , 道人請視之 , 命買數品藥 , 親制以餌 。 俄而痛定 , 數日已如平時 。 始知道人能醫 , 求者益眾 。 道人亦厭之 。 乃取方授彭 , 使自制以應求者 , 且誓之以無苟取 , 毋輕售 , 毋傳非人 。 由是言治損者宗彭氏 。 彭叟之初識道人三十許 , 今老矣 , 然風采無異前時 。 問其姓名 , 曰藺道者 。 問其氏 , 曰長安人也 。 始道人閉門不通人事 , 人亦少至 , 惟一鄧先生 , 每春晴秋爽 , 攜稚過之 , 必載酒餚從焉 。 道人懸一椰瓢壁間 , 鄧至則取瓢更酌 , 彭或遇之亦酌 。 二人皆談笑竟晷 。 醉則高歌 , 其詞曰 : 經世學 , 經世學成無用著 ; 山中樂 , 山中樂土堪耕鑿 ; 癭瓢有酒同君酌 , 醉臥草廬誰喚覺 ; 松陰忽聽雙鳴鶴 , 起來日出穿林薄 。 彭踳樸不知所言為何 , 惟熟聽其歌 , 亦得其腔 。 每歸對人歌之 , 人亦不省 。 居久 , 鄧先生不至 , 彭問道人 , 道人云已仙去 , 彭卒不悟 。 後江西觀察使行部至袁州 , 聞彭所歌 , 異之 , 詰其詞 , 得道人姓氏 , 遂遣人同彭叟至其廬邀之 。 至則行矣 , 惟瓢存焉 。 廉大以為恨 , 謂彭傳其治損諸方 , 因易其村曰鞏 , 道人有書數篇 , 所授者特其最後一卷云 。
이 처방은 당나라 회창 연간에 전해졌다. 어떤 두타가 의춘의 종촌에 초막을 지었는데 모습이 매우 예스럽고 나이는 백사오십 세였다. 밭 몇 묘를 사서 개간하고 조를 심어 스스로 먹고살았다. 마을 사람 팽옹이 늘 그 집에 드나들며 매우 친밀하게 지냈고, 때로 밭 가는 일을 도왔다. 하루는 팽옹의 아들이 나무에 올라 가지를 베다가 잘못하여 땅에 떨어져 목이 꺾이고 팔이 상하여 신음이 그치지 않았다. 팽옹이 도인에게 사정을 말하자 도인이 살펴보겠다고 하고 몇 가지 약을 사 오게 하여 직접 만들어 먹였다. 잠시 뒤 통증이 가라앉고 며칠 만에 평소와 같아졌다. 이때부터 도인이 의술을 아는 줄 알아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고 도인도 이를 싫어하게 되었다. 이에 처방을 팽옹에게 주어 스스로 만들어 찾는 사람에게 응하게 하면서, 함부로 대가를 취하지 말고 가벼이 팔지 말며 전할 만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하지 말라고 맹세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손상 치료를 말하는 사람들은 팽씨를 종주로 삼았다. 팽옹이 처음 도인을 알았을 때는 서른쯤이었는데 이제 늙었으나 도인의 풍채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성명을 묻자 인도자라 하였고 내력을 묻자 장안 사람이라 하였다. 처음에 도인은 문을 닫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았으며 찾아오는 사람도 적었다. 오직 등선생 한 사람이 봄날이 맑고 가을 기운이 상쾌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고 반드시 술과 음식을 실어 왔다. 도인은 벽에 야자 표주박 하나를 걸어 두었는데 등이 오면 표주박을 가져다 번갈아 술을 따랐고, 팽옹이 마침 있으면 그에게도 따랐다. 두 사람은 종일 이야기하고 웃었다. 취하면 크게 노래하였으니 그 노랫말은 이러하였다. “세상을 다스리는 학문, 배워 이루어도 쓸 곳이 없구나. 산속의 즐거움, 산속의 좋은 땅은 갈고 우물 파기 알맞구나. 혹 같은 표주박에 술이 있어 그대와 함께 마시고, 초막에 취해 누우니 누가 깨우랴. 소나무 그늘에서 문득 두 학의 울음 듣고 일어나니 해가 떠 숲과 덤불을 비추네.” 팽옹은 순박하여 그 말뜻은 몰랐으나 노래를 익히 듣고 곡조도 익혔다. 돌아갈 때마다 사람들에게 불러 주었지만 사람들도 알지 못하였다. 오래 지나 등선생이 오지 않자 팽옹이 도인에게 물었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떠났다고 하였으나 팽옹은 끝내 깨닫지 못했다. 뒤에 강서 관찰사가 순행하다 원주에 이르러 팽옹의 노래를 듣고 기이하게 여겨 그 노랫말을 물었다. 도인의 성씨를 알고 사람을 보내 팽옹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초청하게 하였다. 도착하니 이미 떠나고 표주박만 남아 있었다. 관찰사는 크게 안타까워하며 팽옹에게 손상을 치료하는 여러 처방을 전하게 하고 그 마을 이름을 공으로 바꾸었다. 도인에게는 글 여러 편이 있었으나 전해 준 것은 그 마지막 한 권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