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熊氏作而醫學肇興含生育物疵癘不作周秦而降和華倉扁之雄各傳其術以奏神奇漢張機氏審經脈和藥石集經方之大成舉世尊為醫中至聖懿哉傷寒論一書亙萬古莫能忒矣顧以年代貿遷章次陵雜潛心搜討多所難通唐孫真人後迄無解者
유웅씨가 일어나자 의학이 처음 흥성하여 생명을 지닌 것을 기르고 만물을 길러 질병과 역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주·진 이후에는 의화·화타·창공·편작 같은 뛰어난 이들이 각기 그 의술을 전하여 신묘한 효과를 거두었다. 한나라 장기 씨는 경맥을 살피고 약석을 조화하여 경방을 집대성하였으므로 온 세상이 의가 가운데 지성으로 존숭하였다. 훌륭하도다! 《상한론》 한 책은 만고에 걸쳐 어긋남이 없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며 편장 순서가 뒤섞였으므로 마음을 기울여 탐구하여도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았고, 당나라 손진인 이후에도 풀이한 이가 없었다.
國朝醫學昌明得昌邑黃元御氏以天挺才智著傷寒懸解以闡之於經絡臟腑陰陽順逆綜貫條理剖析靡遺亦既燦若日星矣然而原文覙列箋註閎富非攻醫力學之士仍苦猝難辨晰涇邑包司馬誠良於醫以需次鄂中來謁叩以黃氏學言之甚悉並質其所為傷寒審證表均依黃氏編第者一冊請付剞披閱一過證狀畢呈如掌如貌不失銖寸厥功鉅哉豈惟克章黃氏絕業其有裨於民生日用之需至切也(瀚章)忝膺畺寄冀蘇蒸黎之凋瘵而躋之仁壽舉凡所為鞏邦本利元元者致治之術與良醫治疾將無同因序是表輒惓惓於懷而未能忘也
우리 왕조에 의학이 창명해지자 창읍의 황원어 씨가 하늘에서 받은 재주와 지혜로 《상한현해》를 지어 이를 밝혔다. 경락과 장부, 음양의 순역을 조리 있게 관통하여 빠짐없이 분석하였으니 이미 해와 별처럼 찬란하였다. 그러나 원문이 죽 늘어서 있고 주석이 방대하여 의학을 전공하며 힘써 배우는 선비가 아니면 여전히 갑자기 분별하기 어려웠다. 경읍의 사마 포성은 의술에 뛰어난데 호북에서 임용 차례를 기다리던 중 찾아왔다. 황씨의 학설을 묻자 매우 자세히 말하였고, 자신이 지은 《상한심증표》 한 책을 함께 보여 주었는데 모두 황씨의 편차를 따른 것으로 판각에 부쳐 달라고 청하였다. 한 차례 읽어 보니 증상이 모두 드러나 손바닥을 보거나 모습을 마주하는 듯하여 조금도 잃은 것이 없었다. 그 공이 크도다! 어찌 황씨의 뛰어난 학업을 드러내는 데 그치겠는가? 백성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바에 매우 절실하게 보탬이 된다. 나 한장은 외람되게 지방을 맡은 직책을 받아 쇠약해진 백성을 소생시켜 어질고 장수하는 세상으로 이끌기를 바란다. 나라의 근본을 굳히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모든 일에서 다스리는 방법은 좋은 의원이 질병을 치료하는 일과 같지 않겠는가? 이에 이 표에 서문을 쓰면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생각하여 잊을 수 없다.
同治九年歲在庚午冬十有二月朔督楚使者合肥李瀚章序
동치 9년 경오년 겨울 12월 초하루, 초 지방을 감독하는 사자 합비의 이한장이 서문을 쓰다.
傷寒論一書晉時已無善本王叔和搜輯成之唐孫思邈著千金方尚未得見傷寒論晚乃見之故千金方中傷寒門方論缺略後乃作千金翼方補之宋林億等所校仍王叔和編次之舊成無己作注亦未能將本文編正篇次既亂注故未明嗣後注家雖多襲訛承錯異說紛起無可執中迨我
《상한론》은 진나라 때 이미 좋은 판본이 없어 왕숙화가 모아 이루었다. 당나라 손사막은 《천금방》을 지을 때 아직 《상한론》을 보지 못하였고 만년에야 보았다. 그러므로 《천금방》의 상한문은 처방과 논설이 빠지고 소략하여 나중에 《천금익방》을 지어 보충하였다. 송나라 임억 등이 교감한 것도 여전히 왕숙화가 편차한 옛 모습을 따랐고, 성무기가 주석을 지었으나 본문을 바로잡아 편집하지 못하였다. 편차가 이미 어지러웠으므로 주석도 명확하지 못하였다. 그 뒤 주석가가 많았으나 그릇됨과 잘못을 이어받아 다른 학설이 어지럽게 일어나 적절한 기준을 잡을 수 없었다. 우리
聖朝醫學昌明山左昌邑黃氏坤載應運而生苦心孤詣作傷寒懸解一書於原文一百十三方分別六經剖析貫串一一釐正註明本病經病腑病臟病壞病及傳腑傳臟入陽入陰綱舉目張各歸各門於是傷寒一書條理井然文義昭著是黃氏有功於仲景實非淺鮮即謂仲景原書復出無不可也予少遊山左隨張宛鄰先生學醫先生令校讎黃氏諸書而於傷寒一書尤為致力惟其文奧義精最難記誦因作傷寒審症表一卷鉤元提要時時溫習以備遺忘同志者見而好之謂可為傷寒之一助慫恿付梓閱者匡其不逮而惠教之幸甚繕成聊記數語以敘緣起云
성조에 이르러 의학이 창명해지자 산동 창읍의 황씨 곤재가 시대의 운수에 응하여 태어났다. 고심하여 홀로 깊이 나아가 《상한현해》를 지었는데, 원문의 113방을 육경에 따라 나누고 분석하여 꿰뚫어 하나하나 바로잡았다. 본병·경병·부병·장병·괴병과 부로 전함·장으로 전함·양으로 들어감·음으로 들어감을 분명히 주석하여, 큰 줄기를 들면 세목이 펼쳐지고 각기 해당 문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상한론》의 조리가 정연하고 글의 뜻이 환해졌으니 황씨가 중경에게 세운 공은 실로 얕고 적지 않다. 중경의 원래 책이 다시 나타났다고 해도 안 될 것이 없다. 나는 젊어서 산동에 유학하며 장완린 선생을 따라 의학을 배웠다. 선생은 황씨의 여러 책을 교감하게 하였는데 특히 《상한론》에 힘을 기울이게 하였다. 다만 글이 깊고 뜻이 정밀하여 외우기가 가장 어려웠으므로 《상한심증표》 한 권을 지어 근원을 추리고 요점을 들어 때때로 익히며 잊는 데 대비하였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보고 좋아하며 상한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하고 간행을 권하였다. 읽는 이들이 미치지 못한 부분을 바로잡고 가르침을 베풀어 준다면 매우 다행이겠다. 정서하여 완성한 뒤 몇 마디를 적어 연유를 서술한다.
同治九年七月望日涇縣包誠書於鄂省寓中
동치 9년 7월 보름, 경현의 포성이 호북성의 객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