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之補 《 傷寒 》 者百餘家 , 究其所作 , 不出二義 : 一則因論本文為之註疏 , 猶公 、 谷說 《 春秋 》 也 ; 一則引仲景之文而為立論 , 猶韓嬰說 《 詩 》 而為 《 外傳 》 也 。 然引徵者 , 固不得斷章取義之理 ; 而註疏者 , 反多以辭害義之文 。 初不知仲景先師著 《 傷寒雜病論 》 合十六卷 , 良法大備 。 此 《 靈 》、《 素 》 已具諸病之體 , 而明針法之巧妙 ; 至仲景復備諸病之用 , 而詳方藥之準繩 。 其常中之變 , 變中之常 , 靡不曲盡 。 使全書具在 , 尋其所集 , 儘可以見病知源 。 自王叔和編次 , 傷寒 、 雜病分為兩書 , 於本論削去雜病 。 然論中雜病 , 留而未去者尚多 , 是叔和有 《 傷寒論 》 之專名 , 終不失傷寒雜病合論之根蒂也 。 名不副實 , 是非混淆 , 古人精義弗彰 , 是以讀之者鮮 。 而旁門歧路 , 莫知適從 , 豈非叔和編次之謬以禍之歟 ? 世謂治傷寒 , 即能治雜病 , 豈知仲景 《 雜病論 》, 即在 《 傷寒論 》 中 。 且傷寒中又最多雜病夾雜其間 , 故傷寒與雜病合論 , 則傷寒 、 雜病之症治井然 。 今傷寒與雜病分門 , 而頭緒不清 , 必將以雜病混傷寒而妄治之矣 。 乃後人專為傷寒著書 , 自朱奉議出而傷寒之書日多 , 而傷寒之病日混 。 非其欲傷寒之混也 , 由不識何病是傷寒也 。 陶節庵出而傷寒之書更多 , 非真傷寒多也 , 即 《 金匱 》 中雜病 , 亦盡指為傷寒也 。 世錮於邪說 , 反以仲景書難讀 , 而不知仲景書皆叔和改頭換面 , 非本來面目也 。 冠脈法序例於前集 , 可汗不可汗等於後 , 引痙 、 濕 、 暍於太陽之首 , 霍亂 、 勞復等於厥陰之外 , 雜鄙見於六經之中 , 是一部王叔和之書矣 。 林億諸公校正 , 不得仲景原集 , 惑於 《 傷寒論 》 之名 , 又妄編三百九十七法 、 一百一十三方之數 , 以附會叔和所定之傷寒 。 於是欲知仲景之道 , 更不可得 。 成無己信古篤好 , 矯然特出 , 惜其生林億之後 , 欲為仲景功臣 , 無由得其真傳 。 故注仲景之書 , 而仲景之旨多不合 ; 作 《 明理論 》, 而傷寒之理反不明 。 因不得仲景傷寒 、 雜病合論之旨 , 故不能辨許叔微三方鼎立之謬 。 反集之於注 , 開疑端於後人 , 豈非為三百九十七法等說所誤乎 ? 由是方中行有 《 條辨 》 之作 , 而仲景之規矩準繩 , 更加敗壞 , 名為翻叔和之編 , 實以滅仲景之活法也 。 盧子由 《 疏抄 》, 不編林億之數目 , 不宗方氏之三綱 , 意甚有見 , 而又以六經謬配六義 , 增標本形層本氣化氣等說 。 仲景之法 , 又何堪如此撓亂哉 ? 近日作者蜂起 , 尚論愈奇 , 去理愈遠 , 條分愈新 , 古法愈亂 。 仲景六經反茅塞而莫辨 , 不深可憫耶 ? 原夫仲景之六經 , 為百病立法 , 不專為傷寒一科 。 傷寒 、 雜病 。 治無二理 , 咸歸六經之節制 。 六經各有傷寒 , 非傷寒中獨有六經也 。 治傷寒者 , 但拘傷寒 , 不究其中有雜病之理 。 治雜病者 , 以 《 傷寒論 》 為無關於雜病 , 而置之不問 。 將參贊化育之書 , 悉歸狐疑之域 。 愚甚為斯道憂之 , 於仲景書究心有年 , 愧未深悉 。 然稍見此中微理 , 敢略陳固陋 , 名曰 《 傷寒論翼 》。 不兼雜病者 , 恐人未知原文合論之旨 , 以雜病為不足觀耳 。 其當與否 , 自有能辨之者 。
세상에서 『상한』을 보완한 이가 백여 가인데, 그 지은 바를 살펴보면 두 가지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논의 본문에 따라 주석을 붙이는 것으로 공양과 곡량이 『춘추』를 풀이한 것과 같고, 하나는 중경의 글을 인용하여 논의를 세우는 것으로 한영이 『시』를 풀이하여 『외전』을 지은 것과 같다. 그러나 인용하여 증명하는 이에게는 본래 장을 끊어 뜻을 취할 도리가 없는데, 주석하는 이에게는 도리어 말로 뜻을 해치는 글이 많다. 애초에 중경 선사가 『상한잡병론』을 모두 16권으로 지어 좋은 법을 크게 갖추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영추』와 『소문』이 이미 여러 병의 체를 갖추고 침법의 교묘함을 밝혔다면, 중경에 이르러서는 다시 여러 병의 용을 갖추고 처방과 약의 준승을 자세히 하였다. 늘 그러한 가운데의 변화와 변화 가운데의 늘 그러함을 곡진하게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전서가 모두 남아 있어 그 모아 놓은 바를 찾을 수 있다면 병을 보고 근원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왕숙화가 편차한 뒤로 상한과 잡병이 두 책으로 나뉘고 본론에서 잡병을 깎아 버렸다. 그러나 논 가운데 잡병으로서 남아 있고 없어지지 않은 것이 아직 많으니, 숙화에게 『상한론』이라는 전용 이름이 있어도 끝내 상한과 잡병을 합하여 논한 근본을 잃지 않은 것이다. 이름과 실상이 맞지 않고 옳고 그름이 뒤섞여 옛사람의 정밀한 뜻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 때문에 읽는 이가 드물다. 곁문과 갈림길에서 따를 곳을 알지 못하니, 어찌 숙화가 편차한 잘못이 재앙을 끼친 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는 상한을 치료하면 곧 잡병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는데, 중경의 『잡병론』이 곧 『상한론』 안에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또 상한 가운데에는 잡병이 그 사이에 섞인 경우가 가장 많으므로 상한과 잡병을 합하여 논하면 상한과 잡병의 증치가 정연하다. 지금은 상한과 잡병을 문으로 나누어 실마리가 분명하지 않으니, 반드시 잡병을 상한과 뒤섞어 함부로 치료할 것이다. 후인들이 오로지 상한을 위하여 책을 짓다가 주봉의가 나온 뒤로 상한의 책이 날로 많아졌고 상한의 병은 날로 뒤섞였다. 상한을 뒤섞으려 한 것이 아니라 어떤 병이 상한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절암이 나오자 상한의 책이 더욱 많아졌으나 참된 상한이 많아진 것이 아니며, 곧 『금궤』 가운데의 잡병까지도 모두 상한이라 지목하였다. 세상은 그릇된 설에 고질처럼 얽매여 도리어 중경의 책이 읽기 어렵다고 하면서, 중경의 책이 모두 숙화가 머리와 얼굴을 바꾸어 본래 모습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앞의 편에 맥법과 서례를 씌우고 뒤에는 가한·불가한 등을 모으며, 태양의 첫머리에 경·습·갈을 끌어다 놓고 궐음 밖에 곽란·노복 등을 두며, 육경 가운데에 비루한 견해를 섞었으니 한 부의 왕숙화 책이 된 것이다. 임억 여러 공이 교정하면서 중경의 원집을 얻지 못하고 『상한론』이라는 이름에 미혹되어, 또 함부로 397법과 113방의 수를 엮어 숙화가 정한 상한에 억지로 맞추었다. 이에 중경의 도를 알고자 해도 더욱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성무기는 옛것을 믿고 독실히 좋아하여 우뚝 뛰어났으나, 애석하게도 임억 뒤에 태어나 중경의 공신이 되고자 해도 참된 전수를 얻을 길이 없었다. 그러므로 중경의 책에 주석을 달았으나 중경의 뜻과 맞지 않는 것이 많고, 『명리론』을 지었으나 상한의 이치는 도리어 밝지 못하였다. 중경이 상한과 잡병을 합하여 논한 뜻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허숙미가 세 처방을 솥발처럼 나란히 세운 잘못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도리어 이를 주석에 모아 후인에게 의심의 실마리를 열었으니, 어찌 397법 등의 설에 그르친 것이 아니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방중행이 『조변』을 지었는데, 중경의 규구와 준승을 더욱 무너뜨렸으니 이름으로는 숙화의 편차를 뒤집는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중경의 활법을 없앤 것이다. 노자유의 『소초』는 임억의 수목을 엮지 않고 방씨의 삼강을 따르지 않아 뜻에 매우 견식이 있었으나, 또 육경을 육의에 잘못 배합하고 표본·형층·본기·화기 등의 설을 더하였다. 중경의 법이 어찌 이러한 어지럽힘을 다시 감당하겠는가? 근래에는 저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논의가 기이할수록 이치에서 멀어지고, 조문을 나누는 것이 새로울수록 옛 법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중경의 육경은 도리어 띠풀이 막듯 막혀 분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깊이 가엾지 않은가? 본래 중경의 육경은 온갖 병을 위하여 법을 세운 것이지 오로지 상한 한 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상한과 잡병의 치료에는 두 이치가 없어 모두 육경의 절제를 따른다. 육경마다 상한이 있는 것이지 상한 가운데에만 육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한을 치료하는 이는 상한에만 얽매여 그 가운데 잡병의 이치가 있음을 탐구하지 않고, 잡병을 치료하는 이는 『상한론』이 잡병과 관계없다고 여겨 버려두고 묻지 않는다. 화육을 돕는 책을 모두 의심의 영역으로 돌려놓았다. 나는 이 도를 매우 걱정하여 중경의 책에 마음을 다한 지 여러 해이지만 깊이 알지 못함이 부끄럽다. 그러나 그 가운데의 미묘한 이치를 조금 보았으므로 감히 고루한 견해를 대략 펼쳐 『상한론익』이라 이름하였다. 잡병을 함께 이름에 넣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원문이 합하여 논한 뜻을 아직 알지 못하여 잡병은 볼 것이 없다고 여길까 염려해서일 뿐이다. 합당한지 아닌지는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이가 있을 것이다.
甲寅春慈溪柯琴序 。
갑인년 봄, 자계 가금이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