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按 : 由少陰而厥陰 , 其極而不變化者 , 則誠如山田正珍所云 , 厥陰為至深至極之候 , 其文雖缺 , 以意推之 : 四肢厥逆 , 煩躁吐利 , 脈微欲絕等等 , 固不竢言 , 當較少陰證為更急焉 , 然如篇中所載吳茱萸湯條 , 四逆湯條 , 通脈四逆湯條 , 均為少陰篇所固有之證 , 淺田所謂 「 治法與少陰極地者無異 」 是也 , 然則何必於少陰之外另立厥陰一門哉 ? 知其所重不獨在此 , 而另注目於陰變陽 , 寒化熱之證 , 此證則厥陰所獨 。 如 《 素問 · 熱論 》, 六日厥陰之後漸有來復之機者 , 則物極必變之理 , 而厥陰篇中熱厥互見諸條所淵源者也 。 又按 : 先熱者後必厥 , 先厥者後必熱 , 熱五日 , 厥亦五日 , 若厥日少 , 熱日多 , 為欲愈 。 則熱不退純從熱化 , 或咽痛 , 或便膿血 , 必居其一 , 此餘熱蘊留之所致也 。 若熱日少 , 厥日多 , 則於病為進 , 為陽氣衰少而有偏 , 或少陰虛寒厥逆之證之傾向矣 , 故吾謂厥陰之厥 , 倘不熱而從寒化 , 則是少陰 , 倘熱盛而從熱化 , 則有向愈之機 , 轉向少陽之機會 , 原文所謂 「 厥而發熱 , 下利必自止 」, 正是陽回勝陰之表示也 。 山田但知至深至極一面 , 而不知另一面實有陰盡陽生之機 , 故謂厥陰之要文已止 , 淺田宗伯則知之而未能暢其旨 , 所論如乾薑黃連黃芩人參湯之於吐下 , 是化熱未離虛寒者也 , 白頭翁湯之於下利渴欲飲水 , 則已專於熱者也 , 二條尚是厥陰正證 , 至如小柴胡湯條 , 是嘔吐之比較證 , 梔子豉湯條是煩躁之比較證 , 小承氣湯是下利之比較證 , 白虎之熱厥條 , 瓜蒂之寒實厥條 , 茯苓甘草之心下有水悸厥條 , 均是因厥一條引為較比者 , 種種均與厥陰無關 , 不過以其證相近 , 列於一處 , 以資辨別耳 。 此或後人所排者 , 非一定原次也 , 乃淺田均以為寒化熱之治法及旁證 , 豈非大誤耶 ? 吾固謂其雖知而未能暢其旨也 。
문설의 견해: 소음에서 궐음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산전정진의 말처럼 궐음이 가장 깊고 극한 증후다. 그 글은 빠졌지만 뜻으로 미루면 사지궐역·번조·토리·맥미욕절 등은 말할 필요 없이 소음증보다 더욱 급할 것이다. 그러나 편중에 실린 오수유탕·사역탕·통맥사역탕 조문은 모두 소음편에 본래 있는 증이니, 천전이 “치료법이 소음의 극한 경우와 다르지 않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소음 밖에 따로 궐음 한 문을 세울 필요가 있겠는가? 중점을 두는 것이 이것만이 아니라 음이 양으로, 한이 열로 변하는 증에 따로 주목함을 알 수 있는데, 이 증은 궐음만의 것이다. 《소문·열론》에서 엿새째 궐음 이후 점차 회복할 기미가 생기는 것은 사물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변하는 이치이며, 궐음편에 열과 궐이 번갈아 나타나는 여러 조문의 연원이다. 또 살펴보면 먼저 열이 나면 뒤에 반드시 궐하고, 먼저 궐하면 뒤에 반드시 열이 난다. 열이 닷새면 궐도 닷새인데 궐하는 날이 적고 열나는 날이 많으면 나으려는 것이다. 열이 물러가지 않고 오로지 열로 변화하면 인통이나 농혈변 가운데 반드시 하나가 생기니 여열이 쌓여 머문 탓이다. 열나는 날이 적고 궐하는 날이 많으면 병이 나아가는 것으로, 양기가 쇠약해져 치우치거나 소음의 허한·궐역증으로 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궐음의 궐이 열나지 않고 한으로 변화하면 소음이며, 열이 성하여 열로 변화하면 나을 기미와 소양으로 전환할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원문의 “궐하다가 열이 나면 설사가 반드시 저절로 멎는다.”는 바로 양이 회복하여 음을 이겼다는 표시다. 산전은 가장 깊고 극한 한 면만 알고, 다른 면에는 실제로 음이 다하고 양이 생기는 기미가 있음을 몰랐으므로 궐음의 요긴한 글이 이미 그쳤다고 하였다. 천전종백은 알았으나 뜻을 충분히 밝히지 못하였다. 그가 논한 건강황련황금인삼탕의 구토·설사는 열로 변했어도 허한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백두옹탕의 설사와 갈증으로 물을 마시려 함은 이미 오로지 열에 속한 것이다. 이 두 조문은 그래도 궐음의 정증이다. 소시호탕 조문은 구토의 비교증, 치자시탕은 번조의 비교증, 소승기탕은 설사의 비교증이다. 백호탕의 열궐 조문, 과체산의 한실궐 조문, 복령감초탕의 심하에 물이 있어 두근거리며 궐하는 조문은 모두 궐 한 가지 때문에 끌어와 비교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궐음과 무관하고 다만 증이 비슷하여 한곳에 나열해 분별에 보탰을 뿐이다. 혹 후인이 배열한 것이어서 반드시 본래 순서인 것도 아닌데, 천전은 모두 한이 열로 변한 치료법과 방증으로 여겼으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가 알기는 했어도 뜻을 충분히 밝히지는 못했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