熱稍去表 , 而不專裏 , 邪屯巡表裏之間 , 邪氣不借物而結 , 但與正氣更互分爭 , 留於胸脅而上薰 , 為少陽病 , 唯小柴胡一方正為的對 , 故以往來寒熱 , 胸脅苦滿 , 默默不欲食 , 心煩喜嘔為本 , 以口苦 , 咽乾 , 目眩為標 , 其來路必經太陽 , (為柴胡加桂枝湯 , 柴胡乾薑湯之法所出也)其去路多歸陽明(大柴胡 , 柴胡加芒硝湯之法所由出也) , 其服柴胡已渴者 , 為屬陽明 , 無大熱而煩躁者 , 為陷陰位也 。
열이 조금 표를 떠났으나 전적으로 리에 있지는 않고 사가 표리 사이를 배회하며, 사기가 다른 물질에 의지하여 맺히지는 않고 다만 정기와 번갈아 다투며 흉협에 머물러 위로 훈증하면 소양병이다. 오직 소시호탕 한 처방이 정확히 대응한다. 그러므로 왕래한열·흉협고만·말없이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음·심번과 잦은 구역을 근본으로 하고, 입이 씀·목이 마름·어지러움을 표지로 한다. 들어오는 길은 반드시 태양을 거치니 시호가계지탕·시호건강탕의 방법이 여기서 나온다. 나가는 길은 대개 양명으로 돌아가니 대시호탕·시호가망초탕의 방법이 여기서 나온다. 시호를 복용한 뒤 갈증이 생기면 양명에 속하고, 큰 열이 없으면서 번조하면 음의 병위로 빠져든 것이다.
劉茝(郭按 : 茝音chai , 古書上說的一種香草,即 「 白芷 」, 山茝,槁本也 。 ―― 《 廣雅 》 )庭曰 : 吳又可主疫邪自口鼻入 , 蓋膜原實少陽之部 , 而達原三消有地方之宜 , 或驗於今 。 然審其主證 , 猶不能出大小柴胡之例也 , 想當其時 , 邪勢最厲 , 遽犯半表裏 , 遂立此說耳 。 董氏 《 南塘感證 》 引傷寒心法稱 , 見今世甚少太陽證 , 其書適與吳氏時世相近 , 可以證矣 。 世有墨守吳氏法 , 忌用麻桂 , 視柴胡為餘熱治法 , 故附識於茲 。
유채정이 말하였다. 곽의 견해: 채(茝)는 중국음이 chai이며 옛 책에서 말한 향초의 일종, 곧 백지다. “산채는 고본이다.”라고 《광아》에 하였다. 오우가는 역사가 입과 코로 들어온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막원은 실로 소양의 부위이며, 달원과 삼소는 지역에 맞는 바가 있어 지금도 효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증을 살펴보면 여전히 대·소시호의 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사의 기세가 매우 사나워 갑자기 반표반리를 침범했으므로 이런 설을 세웠으리라 생각한다. 동씨의 《남당감증》은 《상한심법》을 인용하여 지금 세상에는 태양증이 매우 드물다고 했는데, 그 책은 마침 오씨의 시대와 가까우므로 증거가 될 수 있다. 세상에는 오씨의 방법만 고수하여 마황·계지를 꺼리고 시호를 여열의 치료법으로 보는 사람이 있으므로 여기에 덧붙여 기록한다.
雪按 : 小柴治餘熱甚隹 , 大柴則不爾 , 人未辨別耳 。 大柴實少陽主方也 ,《 蘇沈良方 》 小柴胡加減條曰 : 元佑二年 , 時行 , 無長幼皆咳 , 服此(去參 , 大棗 , 生薑 , 加五味子 , 乾薑者)皆愈 , 當時上壅痰實 , 只依本方 , 食後臥時服 , 甚妙 。 赤白痢尤效 , 痢藥中無如此妙者 , 蓋痢多因伏署 , 此藥極解署毒也 。 (雪按 : 治咳治痢有效可信 , 記以備對證之用 , 唯謂此藥極解署毒 , 恐未必然耳 。 )
문설의 견해: 소시호는 여열 치료에 매우 좋으나 대시호는 그렇지 않은데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할 뿐이다. 대시호는 실로 소양의 주방이다. 《소침양방》의 소시호 가감 조문에 원우 2년 유행병 때 어른과 아이 모두 기침했는데, 이것에서 인삼·대조·생강을 빼고 오미자·건강을 더하여 복용하니 모두 나았다고 하였다. 당시 담이 실하여 위로 막혔을 때에는 본방 그대로 식후와 잘 때 복용하니 매우 묘하였다고 한다. 적백리에는 더욱 효과가 있어 이질약 중 이만큼 묘한 것이 없으며, 이질은 대개 복서에서 생기고 이 약이 서독을 매우 잘 푼다고 하였다. 문설의 견해: 기침과 이질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믿을 만하므로 기록하여 증에 맞게 쓸 준비를 해 둔다. 다만 이 약이 서독을 매우 잘 푼다는 말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郭按 : 評語正確 。 回憶七十年代 , 我在風西村時 , 當時正搞合作醫療 , 那年痢疾盛行 , 因痢疾多有腹痛證狀 , 我偶用痛瀉要方治一人得效 , 當時我表哥也當赤腳醫生 , 他把方抄去後 , 從亮兵大隊衛生所中 , 一次便照方拿了幾十付藥 , 村中凡得痢疾而願服中藥者 , 便給予一二付煎服 , 幾無不愈者 , 視為神方 。 當時我們二人都是初學醫 , 只是想當然的用方就是了 , 並不會辨證 , 在後來的行醫中 , 我也屢用之 , 但有效有不效 , 何以那年的痢疾如此有效 , 後來卻不能盡效呢 ? 這裏有辨證準確與否的問題 , 有致病細菌菌株對此方藥敏感與否的問題 , (當然 , 前人也許還認識不到這些)所以不能一概而論 。
곽의 견해: 평어가 정확하다. 1970년대 내가 풍서촌에 있을 때를 돌아보면 당시 합작의료가 한창 시행되고 있었다. 그해 이질이 유행했는데 이질에는 복통 증상이 흔하여 우연히 통사요방으로 한 사람을 치료해 효과를 얻었다. 당시 내 사촌 형도 적각의사였는데, 처방을 베껴 간 뒤 양병대대 위생소에서 그 처방대로 한 번에 수십 첩을 받아 왔다. 마을에서 이질에 걸려 중약을 먹으려는 사람에게 한두 첩씩 달여 먹게 하니 거의 낫지 않는 이가 없어 신방으로 여겼다. 당시 우리 둘은 모두 의학을 처음 배우는 처지여서 그저 생각대로 처방을 썼을 뿐 변증할 줄 몰랐다. 이후 진료하면서도 여러 번 썼으나 효과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었다. 어째서 그해 이질에는 그렇게 효과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모두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변증의 정확성 문제와 병을 일으킨 세균 균주가 이 처방약에 민감한지의 문제가 있다. 물론 옛사람은 이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