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曉嵐曰 : 乾隆癸醜間 , 京中疫 , 以景嶽法治 , 十死八九 , 以又可法治 , 亦不甚驗 , 桐城一醫以重劑石膏治馮星寔(通是)之姬人 , 呼吸將絕 , 應手輒痊 。 有一劑用至八兩 , 一人服至四斤者 , 踵其法者 , 活人無算 , 考喜用石膏 , 重過於明廖仲淳 , 本非中道 , 王懋竑(通宏字 , 意也通)白田集 , 有石膏論 , 力辯其非 , 不知何以取效如此 ? 此也五運六氣適值其年 , 未可執為通例也 。 趙藜村治袁倉山陽明經署瘧 , 以石膏西瓜 , 見效亦同 。 (郭按 : 張錫純說 , 石膏乃外感實熱證之金丹 , 我於臨床中也屢用得效 , 辨證真確 , 不必疑慮 。 )
기효람이 말하였다. 건륭 계축년 무렵 경성에 역병이 돌았는데, 경악의 방법으로 치료하면 열에 여덟아홉이 죽고 우가의 방법으로 치료해도 크게 효험이 없었다. 동성의 한 의원이 석고를 많은 양으로 써서 풍성식의 첩을 치료했는데, 호흡이 끊어지려던 사람이 곧 나았다. 식(寔)은 시(是)와 통한다. 한 첩에 8냥까지 쓰거나 한 사람이 4근까지 복용한 경우도 있었으며, 그 방법을 따른 사람들이 살린 이가 무수하였다. 석고를 즐겨 쓰고 명나라 요중순보다도 무겁게 쓴 것은 본래 중도가 아니다. 왕무굉의 《백전집》에는 「석고론」이 있어 그 잘못을 힘써 논박했는데, 어째서 이처럼 효과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굉(竑)은 굉(宏)과 통하며 뜻도 통한다. 이 또한 오운육기가 마침 그해에 해당한 것이니 보편적인 예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조려촌이 원창산의 양명경 서학을 석고와 수박으로 치료하여 효과를 본 것도 같다. 곽의 견해: 장석순은 석고가 외감 실열증의 금단이라고 하였다. 나도 임상에서 여러 차례 써서 효과를 얻었으니 변증이 정확하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