傷寒醫訣串解者 。 長樂陳修園先生晚年所編集也 。 惜六篇之中尚缺其一 。 以其未成書 。 故不及付梓 。 其門徒猶子陳道著 。 有盧扁風 。 閩之名醫也 。 既能學先生之學 。 又能承先生之志 。 日嘗手披而秘藏之 。 復體會其遺意而敬續一篇以補其缺 。 合成六篇 。 而篇帙遂成 。 茲修園古矣 。 其猶子道著亦古矣 。 閩中林子壽萱 。 專心衛世 。 於舊書肆中 。 檢得修園先生註解葛可久十藥神書一卷 。 購而珍存之 。 並恐此二種沒而不彰 。 因細加讎校 。 韻而錄之 。 欲與兩先生傳名 。 兼以傳世 。 值余奉命巡撫全閩 。 因舊疾復起 。 探知林子精於療治 。 常勞診視 。 論及閩中名醫 。 林子以陳修園陳道著兩先生對 。 敬以修園先生所著南雅堂十一種醫書見示 。 且餘本善病人也 。 又耳熟是書久矣 。 適林子復以傷寒醫訣串解手錄一通乞序於余 。 余不敏 。 每兢兢官守 。 尚恐才不足以經世 。 何暇論及衛世 。 然串解實補傷寒淺注所未備 。 不可以無傳 。 若再附以十藥神書註解合而刻之 。 庶可以作岐黃家秘本矣 。 今之術岐黃者 。 果能默會精審 。 互相參校 。 其裨益良不淺也 。 姑就林子所述其緣起 。 為之弁數語於簡端云爾 。
『상한의결관해』는 장락의 진수원 선생이 만년에 편집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섯 편 가운데 아직 한 편이 빠져 있어 책을 완성하지 못하였으므로 미처 판각하지 못하였다. 그 문도이자 조카인 진도저는 노편(盧扁)의 풍모가 있는 민 지방의 명의였다. 선생의 학문을 배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선생의 뜻도 이을 수 있어, 날마다 손수 펼쳐 보고 소중히 간직하였다. 다시 선생의 남긴 뜻을 체득하여 삼가 한 편을 이어 지어 빠진 곳을 보충하니, 합하여 여섯 편이 되어 책의 편제가 마침내 갖추어졌다.
이제 수원은 옛사람이 되었고 그 조카 도저 또한 옛사람이 되었다. 민 지방의 임수훤은 세상 사람을 보전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여, 헌 책방에서 수원 선생이 주해한 갈가구의 『십약신서』 한 권을 찾아 사서 귀하게 보관하였다. 또한 이 두 책이 묻혀 드러나지 못할까 염려하여 세밀하게 교감하고 운을 맞추어 기록하여, 두 선생의 이름을 전하고 아울러 후세에 전하고자 하였다.
내가 명을 받아 민 지방 전체의 순무가 되었을 때 마침 옛 병이 다시 일어났다. 임군이 치료에 정통하다고 알아내어 늘 수고롭게 진찰을 부탁하였다. 민 지방의 명의를 논할 때 임군은 진수원과 진도저 두 선생이라고 대답하고, 수원 선생이 지은 『남아당』의 의서 열한 종을 공경히 보여주었다. 나 역시 본래 병을 잘 앓는 사람이며, 이 책의 이름을 귀에 익도록 들은 지도 오래되었다. 마침 임군이 다시 『상한의결관해』를 손으로 베낀 한 질을 가지고 와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불민하여 늘 삼가 관직의 책임을 지키면서도 재주가 세상을 다스리기에 부족할까 염려하니, 어느 겨를에 세상 사람을 보전하는 일까지 논하겠는가? 그러나 『관해』는 실로 『상한천주』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을 보충하므로 전해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다시 『십약신서주해』를 붙여 합하여 판각한다면 기황가의 비본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기황의 의술을 행하는 사람이 과연 말없이 뜻을 깨닫고 정밀히 살펴 서로 참고하고 대조할 수 있다면 그 보탬이 참으로 얕지 않을 것이다. 우선 임군이 말한 그 연유에 따라 책머리에 몇 마디를 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