按 : 許叔微云 :「 桂枝治中風 , 麻黃治傷寒 , 大青龍治中風見寒脈 、 傷寒見風脈 , 三者如鼎立 。」 此方氏三大綱所由來 。 而大青龍之證治 , 自此不明於世矣 。 不知仲景治表 , 只在麻 、 桂二法 , 麻黃治表實 , 桂枝治表虛 , 方治在虛實上分 , 不在風寒上分也 。 蓋風寒二證 , 俱有虛實 , 俱有淺深 , 俱有營衛 , 大法又在虛實上分淺深 , 並不在風寒上分營衛也 。 夫有汗為表虛 , 立桂枝湯治有汗之風寒 , 而更有加桂去桂 、 加芍去芍 , 及加附子 、 人參 、 厚朴 、 杏仁 、 茯苓 、 白朮 、 大黃 、 龍骨 、 牡蠣等劑 , 皆是桂枝湯之變局 。 因表虛中更有內虛內實淺深之不同 , 故加減法亦種種不一耳 。 以無汗為表實 , 而立麻黃湯治無汗之風寒 , 然表實中亦有夾寒夾暑 、 內寒內熱之不同 , 故以麻黃為主而加減者 , 若葛根湯 , 大小青龍 、 麻黃附子細辛甘草 、 麻黃杏仁甘草石膏 、 麻黃連翹赤豆等劑 , 皆麻黃湯之變局 , 因表實中亦各有內外寒熱淺深之殊也 。 葛根湯因肌肉津液不足 , 而加芍藥 、 葛根 , 大青龍因內熱煩躁而加石膏 , 小青龍以乾嘔而咳 , 而加半夏 、 細辛 、 乾薑 , 麻黃附子細辛甘草二方 , 以脈沉而加附子 , 若連翹赤豆梓皮 , 濕熱發黃而加 。 諸劑皆因表實 , 從麻黃湯加減 , 何得獨推大青龍為鼎立耶 ? 何但知有風寒 , 而不知有風熱 , 但知有中風見寒 、 傷寒見風之症 , 而不知小青龍之治風寒 、 大青龍之治風熱 、 麻杏甘膏之治溫熱 、 麻翹豆湯之治濕熱 , 表實中更有如是之別耶 ? 且前輩之鑿分風寒者 , 拘於脈耳 。 不知仲景之論脈甚活而不拘 , 如大青龍之條 , 有中風而脈浮緊 、 傷寒而脈浮緩 , 是互文見意處 。 言中風脈緩 , 然亦有脈浮緊者 ; 傷寒脈緊 , 然亦有脈浮緩者 。 蓋中風傷寒 , 各有淺深 , 或因人之強弱而異 , 地之高下而異 , 時之乖和而異 。 證既不可拘 , 脈即不可執 。 如陽明中風而脈浮緊 , 太陰傷寒而脈浮緩 , 不可謂脈緊必傷寒 , 脈緩必中風矣 。 按 《 內經 》 脈滑曰風 , 則風脈原無定象 ; 又盛而緊曰脹 , 則緊脈不專屬傷寒 ; 又緩而滑為熱中 , 則緩脈亦不專指中風矣 。 且陽明中風 , 有脈浮而緊者 , 又有脈弦浮大者 。 必欲以太陽之脈緩自汗 、 脈緊無汗 , 定分風寒 , 割裂營衛 , 他經皆有中風 , 皆不言及何耶 ? 要知脈緊固為有力 , 脈浮緩亦不是浮弱 , 即 《 內經 》 緩而滑為熱中之脈也 。 蓋仲景憑脈辨證 , 只審虛實 。 故不論中風傷寒脈之緩緊 , 但於指下有力者為實 , 脈弱無力者為虛 ; 不汗出而煩躁者為實 , 汗出多而煩躁者為虛 ; 證在太陽而煩躁者為實 , 證在少陰而煩躁者為虛 。 實者可服大青龍 , 虛者便不可服 , 此最易知也 。 凡先煩不躁而脈浮者 , 必有汗而自解 ; 煩躁而脈浮緊者 , 必無汗而不解 。 大青龍湯為風寒在表而兼熱中者設 , 不是為有表無里而設 。 故中風無汗煩躁者可用 , 傷寒而無汗煩躁者亦可用 。 蓋風寒本是一氣 , 故湯劑可以互投 。 論中有中風傷寒互稱者 , 如大青龍是也 ; 有中風傷寒兼提者 , 如小柴胡是也 。 仲景但細辨脈症而施治 , 何嘗拘拘於中風傷寒之別其名乎 ? 如既立麻黃湯治寒 , 桂枝湯治風 , 而中風見寒 、 傷寒見風者 , 曷不用桂枝麻黃合半湯 , 而更用大青龍為主治耶 ? 且既有中風惡風不惡寒 , 傷寒惡寒不惡風之說 , 曷不用大青龍之惡寒主傷寒 , 麻黃證之惡風主中風 , 桂枝證之惡風復惡寒 , 主中風見寒 、 傷寒見風耶 ? 方氏因三綱之分 , 而有風寒多少之陋見 。 喻氏又因大青龍之名 , 而為龍背龍腹龍尾之奇說 。 又謂縱橫者 , 龍之所以飛期門及大青龍之位 。 青龍之說愈工 , 而青龍之法愈湮 , 此所謂好龍而不識真龍者也 。 大青龍之點睛 , 在無汗煩躁 、 無少陰證二句 。 合觀之 , 知本方本為太陽煩躁而設 。 仲景恐人誤用青龍 ; 不特為脈弱汗出者禁 , 而吃緊尤在少陰 。 蓋少陰亦有發熱 、 惡寒 、 身疼 、 無汗而煩躁之症 , 此陰極似陽 , 寒極反見熱化也 。 誤用則厥逆筋惕肉瞤所必至 , 全在此處著眼 , 故必審其非少陰證 , 而為太陽煩躁無疑 。 太陽煩躁為陽盛 , 非大青龍不解 。 故不特脈浮緊之中風可用 , 即浮緩而不微弱之傷寒 , 亦可用也 。 不特身疼身重者可用 , 即身不疼與身重而乍有輕時者 , 亦可用也 。 蓋胃脘之陽 , 內郁胸中而煩 , 外擾四肢而躁 , 第用麻黃髮汗於外 , 不加石膏泄熱於內 , 煩躁不解 , 陽盛而死矣 。 諸家不審煩躁之理 , 以致少陰句無所著落 , 妄謂大青龍為風寒兩傷營衛而設 , 不知其為兩解表裡而設 。 請問石膏之設 , 為治風歟 ? 治寒歟 ? 營分藥歟 ? 衛分藥歟 ? 只為熱傷中氣 , 用之治內熱耳 。
살펴보건대 허숙미는 계지는 중풍을 치료하고 마황은 상한을 치료하며 대청룡은 중풍에 한맥이 보이거나 상한에 풍맥이 보이는 것을 치료하니 셋이 솥발처럼 선다고 하였다. 이것이 방씨의 세 대강이 유래한 바이며, 대청룡의 증치는 이로부터 세상에 밝게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중경이 표를 치료한 것은 다만 마황·계지 두 법에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마황은 표실을 치료하고 계지는 표허를 치료하니 처방과 치료는 허실에서 나뉘며 풍한에서 나뉘지 않는다. 풍과 한 두 증에는 모두 허실이 있고 천심이 있으며 영위가 있으니, 큰 법은 또 허실에서 천심을 나누는 데 있고 풍한에서 영위를 나누는 데 있지 않다. 땀이 있는 것을 표허로 삼아 계지탕을 세워 땀이 있는 풍한을 치료하지만, 다시 계지를 더하거나 빼고 작약을 더하거나 빼며 부자·인삼·후박·행인·복령·백출·대황·용골·모려 등을 더하는 처방이 있으니 모두 계지탕의 변형이다. 표허 가운데 다시 내허와 내실 및 천심의 차이가 있으므로 가감법도 여러 가지로 같지 않을 뿐이다. 땀이 없는 것을 표실로 삼아 마황탕을 세워 땀이 없는 풍한을 치료하지만, 표실 가운데도 한을 끼거나 서를 끼며 내한과 내열의 차이가 있으므로 마황을 위주로 가감한 갈근탕·대소청룡·마황부자세신감초·마황행인감초석고·마황연교적두 등의 처방이 모두 마황탕의 변형이다. 표실 가운데도 각각 내외와 한열 및 천심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갈근탕은 기육의 진액이 부족하므로 작약·갈근을 더하고, 대청룡은 내열로 번조하므로 석고를 더하며, 소청룡은 헛구역질하고 기침하므로 반하·세신·건강을 더하고, 마황부자세신과 마황부자감초 두 처방은 맥이 침하므로 부자를 더한다. 연교·적두·재피는 습열로 황달이 나므로 더한 것이다. 여러 처방은 모두 표실 때문에 마황탕에서 가감한 것인데 어찌 유독 대청룡을 추켜세워 솥발처럼 선다고 하겠는가? 어찌 풍한이 있는 것만 알고 풍열이 있는 것은 모르며, 중풍에 한이 보이고 상한에 풍이 보이는 증만 알고 소청룡은 풍한을 치료하고 대청룡은 풍열을 치료하며 마행감고는 온열을 치료하고 마교두탕은 습열을 치료하여 표실 가운데 다시 이러한 차이가 있음을 모르는가? 또한 선배들이 억지로 풍한을 나눈 것은 맥에 구애되었기 때문이다. 중경의 맥론은 매우 활발하고 구애되지 않았음을 모른다. 대청룡 조목에 중풍인데 맥이 부긴하고 상한인데 맥이 부완하다는 것은 서로 보완하여 뜻을 드러내는 곳이다. 중풍의 맥은 완하지만 역시 부긴한 것이 있고 상한의 맥은 긴하지만 역시 부완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중풍과 상한에는 각각 천심이 있고 혹 사람의 강약, 땅의 높고 낮음, 때의 어긋남과 조화로움에 따라 다르다. 증에 구애될 수 없으니 맥에도 집착할 수 없다. 양명중풍에 맥이 부긴하고 태음상한에 맥이 부완한 것과 같으니, 맥이 긴하면 반드시 상한이고 맥이 완하면 반드시 중풍이라고 할 수 없다. 《내경》에서 맥이 활한 것을 풍이라고 하였으니 풍맥은 본래 정해진 형상이 없으며, 또 성하고 긴한 것을 창이라고 하였으니 긴맥이 오로지 상한에만 속하지 않고, 또 완하고 활한 것을 열중이라고 하였으니 완맥 또한 오로지 중풍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또 양명중풍에는 맥이 부긴한 것도 있고 현부대한 것도 있다. 반드시 태양의 맥이 완하고 저절로 땀이 나거나 맥이 긴하고 땀이 없는 것으로 풍한을 확정하여 나누고 영위를 갈라 놓으려 한다면, 다른 경에도 모두 중풍이 있는데 모두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맥이 긴한 것은 본디 힘이 있는 것이지만 맥이 부완한 것 또한 부약이 아니며, 곧 《내경》에서 완하고 활하면 열중이라고 한 맥임을 알아야 한다. 중경은 맥에 근거하여 증을 분별할 때 다만 허실을 살폈다. 그러므로 중풍과 상한의 맥이 완한지 긴한지를 논하지 않고 다만 손가락 아래에서 힘이 있으면 실, 맥이 약하고 힘이 없으면 허로 삼았으며, 땀이 나지 않고 번조하면 실, 땀이 많이 나고 번조하면 허로 삼았고, 증이 태양에 있으면서 번조하면 실, 증이 소음에 있으면서 번조하면 허로 삼았다. 실한 자는 대청룡을 복용할 수 있으나 허한 자는 복용해서는 안 되니 이는 가장 알기 쉽다. 무릇 먼저 번증이 있으나 조급하지 않고 맥이 뜨면 반드시 땀이 나서 저절로 풀리고, 번조하면서 맥이 부긴하면 반드시 땀이 없어 풀리지 않는다. 대청룡탕은 풍한이 표에 있으면서 열중을 겸한 자를 위해 마련한 것이지 표만 있고 리는 없는 자를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풍에 땀이 없고 번조하는 자도 쓸 수 있고 상한에 땀이 없고 번조하는 자도 쓸 수 있다. 풍한은 본래 한 기이므로 탕제를 서로 바꾸어 투여할 수 있다. 논에는 중풍과 상한을 서로 바꾸어 부른 것이 있으니 대청룡이 그렇고, 중풍과 상한을 함께 든 것이 있으니 소시호가 그렇다. 중경은 다만 맥증을 자세히 분별하여 치료했을 뿐 어찌 중풍과 상한의 명칭 구별에 구구하게 매였겠는가? 이미 마황탕을 세워 한을 치료하고 계지탕을 세워 풍을 치료했다면, 중풍에 한이 보이고 상한에 풍이 보이는 자에게 왜 계지마황합반탕을 쓰지 않고 다시 대청룡을 주치로 삼았겠는가? 또한 중풍은 바람을 싫어하되 추위는 싫어하지 않고 상한은 추위를 싫어하되 바람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면, 왜 대청룡의 오한으로 상한을 주관하게 하고 마황증의 오풍으로 중풍을 주관하게 하며 계지증의 오풍과 오한으로 중풍에 한이 보이고 상한에 풍이 보이는 것을 주관하게 하지 않는가? 방씨는 삼강의 구별로 인해 풍한의 많고 적음이라는 좁은 견해를 가졌고, 유씨는 또 대청룡이라는 이름 때문에 용의 등·배·꼬리라는 기이한 설을 만들었다. 또 종횡이라는 것은 용이 기문과 대청룡의 자리로 나는 까닭이라고 하였다. 청룡의 설이 정교해질수록 청룡의 법은 더욱 가려지니, 이는 이른바 용을 좋아하면서 진짜 용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청룡의 핵심은 땀이 없고 번조한다는 것과 소음증이 없다는 두 구절에 있다. 합하여 보면 본방은 본래 태양의 번조를 위해 마련했음을 알 수 있다. 중경은 사람들이 청룡을 잘못 쓸까 염려하여 맥이 약하고 땀이 나는 자에게만 금한 것이 아니라, 긴요한 경계는 특히 소음에 있었다. 소음에도 발열·오한·신동·무한하면서 번조하는 증이 있으니, 이는 음이 극하여 양과 비슷하고 한이 극하여 도리어 열화를 보이는 것이다. 잘못 쓰면 궐역하고 근육이 떨리며 살이 꿈틀거리는 데 반드시 이르므로 온전히 이곳에 착안하여, 반드시 소음증이 아니며 태양의 번조임이 의심 없음을 살펴야 한다. 태양의 번조는 양이 성한 것이니 대청룡이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맥이 부긴한 중풍에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완하되 미약하지 않은 상한에도 쓸 수 있다. 몸이 아프고 무거운 자에게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몸이 아프지 않거나 몸이 무겁다가 잠깐 가벼울 때가 있는 자에게도 쓸 수 있다. 위완의 양이 안으로 가슴속에 울체하면 번이 되고 밖으로 팔다리를 어지럽히면 조가 되므로, 단지 마황으로 밖에 땀을 내고 석고를 더하여 안의 열을 빼지 않으면 번조가 풀리지 않아 양이 성하여 죽는다. 여러 의가들은 번조의 이치를 살피지 않아 소음 구절이 자리 잡을 곳이 없게 하고, 함부로 대청룡은 풍한이 영위를 모두 상한 경우를 위해 마련했다고 하면서 표리를 함께 풀기 위해 마련했음을 알지 못한다. 묻건대 석고를 마련한 것은 풍을 치료하기 위한 것인가, 한을 치료하기 위한 것인가? 영분의 약인가, 위분의 약인가? 다만 열이 중기를 상하였으므로 내열을 치료하는 데 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