脈者 。 四診中之末 。 而其言不竢贅也 。 漢唐以來 。 方書取其一 。 舍其三 。 而一又未明 。 訛承掩藏 。 不肯勇革 。 是以本邦醫人 。 亦皆移於浮辭 。 可深嘆哉 。 凡四診之於病機也 。 彼此參伍 。 不可欠一 。 吾門於四診上 。 非惟加之按腹候背手足看法 。 且以鼻嗅知病人臭惡之氣 。 此可謂詳補古今未言及之缺典者矣 。 於是乎邪之淺深久近 。 證之輕重緩急 。 斷然無復可疑者也 。 夫脈元是血氣活潑充灌之勢 。 內非各開三口沸騰而出 。 則一藏一府 。 一陰一陽之患 。 更無顯於兩手掌後之理 。 而況有運氣支於分配 。 假託之可言者乎 。 何也 。 有一病人 。 於茲暗坐室中 。 穴壁出手 。 嘿然不謂形色性情 。 試使歷幾醫人 。 切其脈道 。 而預以辨識何病何證者 。 則予未之或聞也 。 意其持脈 。 即驗輕重生死之一事 。 而絕無某病見某脈之定規也 。 略可知矣 。 先以中指探掌後高骨上為關 。 得其關位 。 然後齊下鹽禁二指 。 若人臂長 。 則疏排其指 。 臂短則密排其指 。 輕手得之曰舉 。 重手得之曰按 。 不重不輕委曲求之曰尋 。 所謂三指停穩者 。 自然之行也 。 二指不足 。 四指有餘 。 仍執其中焉耳 。 古不稱關 。 總寓尺寸 。 故素問似以中附為關位 。 關之前 。 去魚際為一寸 。 而鹽指之所下 。 因名曰寸 。 關之後去尺澤為一尺 。 而禁指之所下 。 因名曰尺 。 原其關名肇於八十一難 。 此以三指揣按之次 。 猶兩州畫首之設一門也 。 又秦越人雖無明文 。 而不主喉傍跗上 。 獨取兩手掌後者 。 其見卓矣 。 蓋病脈之來 。 多不單至 。 然全屬大小浮沉遲數六脈 。 而不大不小不浮不沉不遲不數 。 調勻和緩 。 意思欣欣 。 難以名狀者 。 謂之平脈 。 故緊弦細伏促結等脈 。 今之病者 。 雖多有之 。 亦無不自六脈而推焉 。 其他華人 。 妄立脈名圖形韻語 。 以便記誦 。 而鹵莽滅裂 。 實不能自知者也 。 就其分呼 。 愈添蛇足 。 皆使後人以啟好異之心矣 。 方書論脈 。 非但七表八里九道之謬名 。 而如素問之鼓搏喘橫 。 張機之惵卑榮章綱損縱橫逆順 。 及奇經太素天和真藏關格妊娠 。 五運六絕七獨等脈 。 皆是無用餖飣 。 不堪其煩也 。 畢竟脈者 。 惟察數與不數耳 。 脈數俗呼謂之脈進 。 即病進也 。 殆可以一言蔽矣 。 不問男女老幼 。 不別外感內傷 。 若指下脈數 。 或兼見沉細 。 則輕者必重 。 重者必危 。 危者必死 。 甚可畏焉 。 又有脈傍行者謂之反關 。 或有一手反關者 。 或有兩手反關者 。 或有反關得病 。 則順行復原位者 。 至於其六脈之見則一也 。 此得之於有生之初 。 而不可必為病脈矣 。 大概有證脈相符者 。 有脈證相左者 。 或元氣頓虛之證 。 其初脈病也多 。 或元氣漸虛之證 。 其初脈病也少 。 故後世舍三取一之人 。 如夫脈之不始病者 。 飄然自外 。 而遂致篤證矣 。 嗚呼 。 學者朝研夕考 。 翻悟前迷 。 則可免乎連代沿習之歧蹊也 。
맥은 사진 가운데 마지막이니 그 말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 한·당 이래 방서는 하나를 취하고 셋을 버렸는데 그 하나도 아직 밝히지 못한 채 오류를 이어 가리고 감추며 용감히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본방 의가도 모두 뜬말에 옮겨 가니 깊이 탄식할 만하다. 사진으로 병기를 살피는 것은 서로 참고하고 비교하여 하나도 빠뜨릴 수 없다. 우리 문하에서는 사진 위에 배를 누르고 등·손·발을 살피는 법만 더한 것이 아니라 코로 환자의 악취를 맡아 안다. 이는 고금에 언급하지 않은 빠진 법을 상세히 보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사기의 천심과 오래됨·최근, 증의 경중과 완급을 분명히 알아 의심할 것이 없어진다. 맥은 본래 혈기가 활발히 가득 부어지는 기세이다. 안에서 각각 세 구멍을 열어 끓어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한 장·한 부·한 음·한 양의 근심이 양 손바닥 뒤에 드러날 이치가 없다. 하물며 운기를 지간에 배분하여 가탁해 말할 것이 있겠는가? 어째서인가? 환자 하나가 어두운 방에 앉아 벽에 구멍을 내 손을 내밀고 형색과 성정을 말하지 않은 채 여러 의사에게 맥을 짚어 무슨 병과 증인지 미리 분별하게 한다면, 나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맥을 잡는 것은 경중과 생사를 증험하는 한 가지 일이며 무슨 병에 무슨 맥이 나타난다는 고정 규칙은 전혀 없음을 대략 알 수 있다. 먼저 중지로 손바닥 뒤 솟은 뼈 위를 찾아 관으로 삼고 관위를 얻은 뒤 염지와 금지를 함께 내린다. 팔이 길면 손가락을 성글게 놓고 짧으면 촘촘히 놓는다. 가볍게 얻는 것을 거, 무겁게 얻는 것을 안,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자세히 찾는 것을 심이라 한다. 세 손가락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두 손가락은 부족하고 네 손가락은 남으므로 중간을 취할 뿐이다. 옛날에는 관을 일컫지 않고 모두 촌척에 붙였으므로 《소문》은 중부를 관위로 삼은 듯하다. 관 앞에서 어제까지가 1치이고 염지가 놓이는 곳이므로 촌이라 하며, 관 뒤에서 척택까지가 1자이고 금지가 놓이는 곳이므로 척이라 한다. 관이라는 이름은 《팔십일난》에서 시작하였으니 세 손가락으로 짚는 차례에 두 주의 경계에 문 하나를 둔 것과 같다. 진월인에게 명확한 글은 없지만 목 옆과 발등을 주로 하지 않고 양 손바닥 뒤만 취한 견해는 탁월하다. 병맥은 대개 하나만 오지 않지만 모두 대·소·부·침·지·삭 여섯 맥에 속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으며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고르며 조화롭고 완만하고 생기가 좋아 이름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것을 평맥이라 한다. 그러므로 긴·현·세·복·촉·결 등의 맥이 지금 환자에게 많아도 모두 여섯 맥에서 미루지 않는 것이 없다. 그 밖에 중국인이 함부로 맥명을 세우고 그림과 운문으로 암송하기 쉽게 한 것은 거칠고 엉성하여 실제로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름을 나누어 부를수록 뱀의 발을 더하여 후인에게 기이함을 좋아하는 마음만 열게 한다. 방서에서 맥을 논하는 것은 칠표·팔리·구도라는 잘못된 이름뿐 아니라, 《소문》의 고·박·천·횡, 장기의 접·비·영·장·강·손·종·횡·역·순과 기경·태소·천화·진장·관격·임신·오운·육절·칠독 등의 맥도 모두 쓸모없이 늘어놓은 것으로 그 번거로움을 견디기 어렵다. 결국 맥은 삭한지 아닌지만 살필 뿐이다. 삭맥을 속칭 맥진이라 하는데 곧 병이 진행하는 것이니 거의 한마디로 포괄할 수 있다. 남녀노소와 외감내상을 막론하고 손가락 아래 맥이 삭하거나 침세를 겸하면 가벼운 것은 반드시 무거워지고 무거운 것은 반드시 위태로워지며 위태로운 것은 반드시 죽으니 매우 두렵다. 맥이 옆으로 가는 것을 반관이라 하며 한 손이나 두 손이 반관인 것도 있고 반관인 이가 병들면 순행하여 원위치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여섯 맥이 나타남은 같다. 이는 태어날 때 얻은 것이므로 반드시 병맥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대개 증과 맥이 맞는 것도 있고 서로 어긋나는 것도 있다. 원기가 갑자기 허해지는 증은 처음부터 병맥이 많은 경우가 있고, 원기가 점차 허해지는 증은 처음에 병맥이 적은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후세에 셋을 버리고 하나만 취한 사람은 처음 맥이 병들지 않은 경우를 자기 일 밖으로 가볍게 넘겨 마침내 위독한 증에 이르게 한다. 아아! 배우는 이가 아침저녁으로 연구하고 상고하여 지난 미혹을 돌이켜 깨달으면 여러 대에 걸쳐 답습한 갈림길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