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三三 和田東郭翁醫則

醫之為任 。 唯察病而已矣 。 勿視富貴 。 唯病是察 。 勿視貧賤 。 唯病是察 。 勿劇視劇病 。 必也察劇中之易矣 。 莫輕視輕病 。 必也察輕中之危矣 。 克察之於斯 。 而勿視彼 。 亦唯醫之任也 。 察病之道也 。 醫之所可用心者 。 其唯變乎 。 揣變於未變 。 而以非變待變 。 此之謂能應變 。 視彼之變 。 而我動其變 。 此之謂眩乎變 。 眩乎變者 。 不翅不能處其變 。 亦不能全其常 。 能應變者 。 既已知其變 。 故其處方也不殆矣 。
의사의 임무는 오직 병을 살피는 것뿐이다. 부귀를 보지 말고 오직 병만 살피며, 빈천을 보지 말고 오직 병만 살펴라. 위중한 병을 위중하게만 보지 말고 반드시 위중함 속의 쉬운 것을 살피며, 가벼운 병을 가볍게 보지 말고 반드시 가벼움 속의 위험을 살펴라. 여기를 잘 살피고 저것을 보지 않는 것도 오직 의사의 임무이며 병을 살피는 도이다. 의사가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오직 변화일 것이다. 변하기 전에 변화를 헤아리고 변하지 않은 상태로 변화를 기다리는 것을 변화에 잘 응한다고 한다. 저쪽의 변화를 보고 내가 그 변화에 동요하는 것을 변화에 현혹된다고 한다. 변화에 현혹되면 그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상도 온전히 하지 못한다. 변화에 잘 응하는 사람은 이미 변화를 알았으므로 처방해도 위태롭지 않다.
凡病之為情也 。 有二 。 故藥之用亦有二 。 曰剛曰柔 。 柔以當柔 。 剛以當剛 。 剛之制柔者有焉 。 柔之制剛者有焉 。 剛耶柔耶 。 二曰百 。 柔耶剛耶百而二 。 唯智者知之 。 而愚者反焉 。 易曰 。 剛柔相摩 。 我道雖小 。 亦復爾矣 。 古人之診病也 。 望色不以目 。 聽聲不以耳 。 夫唯不以耳目 。 故能察病應於大表矣 。
병의 실정에는 두 가지가 있으므로 약의 쓰임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강과 유이다. 유로 유에 대응하고 강으로 강에 대응한다. 강이 유를 제어하는 경우도 있고 유가 강을 제어하는 경우도 있다. 강인가 유인가, 둘이 백 가지가 되고 유인가 강인가, 백 가지가 둘이 된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반대로 한다. 《역》에 강유가 서로 마찰한다고 하였으니 우리의 도가 비록 작아도 역시 그러하다. 옛사람이 병을 진찰할 때에는 색을 보되 눈으로만 하지 않고 소리를 듣되 귀로만 하지 않았다. 오직 귀와 눈으로만 하지 않았으므로 병이 겉에 응하는 것을 살필 수 있었다.
古人之診病也 。 視彼不以彼 。 乃以彼為我 。 其既無彼我之分 。 是以通病之情矣 。
옛사람은 병을 진찰할 때 상대를 보되 남으로 보지 않고 곧 그를 나로 삼았다. 이미 그와 나의 구분이 없으므로 병의 실정에 통하였다.
用方簡者 。 其術日精 。 用方繁者 。 其術日粗 。 世醫動輒以簡為粗 。 以繁為精 。 哀矣哉 。
처방을 간결하게 쓰는 사람은 의술이 날로 정밀해지고 처방을 번잡하게 쓰는 사람은 의술이 날로 거칠어진다. 세상의 의사들은 걸핏하면 간결함을 거칠다고 하고 번잡함을 정밀하다고 하니 슬프다.
欲得活路者 。 必陷死地 。 欲陷死地者 。 必得活路 。
살길을 얻으려는 사람은 반드시 사지에 빠지고, 사지에 빠지려는 사람은 반드시 살길을 얻는다.
醫之臨劇病也 。 欲使彼活於我手者 。 愛我也 。 欲使彼死於我手者 。 愛彼也 。 愛我者 。 終不能盡我矣 。 愛彼者 。 誠能盡我 。 古語曰 。 不入虎穴不得虎子 。 余於醫亦云 。 (蕉窗雜話)
의사가 위중한 병에 임하여 그를 내 손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가 내 손에서 죽게 하려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면 끝내 나의 능력을 다하지 못하고 그를 사랑하면 참으로 나의 능력을 다할 수 있다. 옛말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나는 의술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초창잡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