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生有命 。 聖人之言 。 不可誣焉 。 命者天之令也 。 自天作之 。 故謂之命 。 疾病者 。 醫之所治也 。 醫之所治 。 則人事也 。 人事與天命 。 判然不可混焉 。 醫欲司死生 。 以天命為私有也 。 不亦傲乎 。 醫斷既言之頗較著 。 而世人猶或惑焉 。 以不知治疾之要也 。 夫醫之於死生 。 猶將之於勝敗也 。 死生勝敗共在天 。 非人之所司也 。 唯盡其術而已 。 唯精其謀而已 。 源廷尉逆櫓之諍 。 韓淮陰背水之陣 。 能堪頃暫之苦辛 。 則能享永久之榮枯 。 所謂瞑眩而疾瘳者邪 。 故將之良否者 。 忘於勝敗 。 醫之良否者 。 忘於死生 。 得之於法 。 成之於習 。 功用既就 。 心不謂之亂 。 坦然安於命 。 謂之得道之真也 。 所以盡人事而待天命也 。 (續醫斷)
죽고 사는 데 명이 있다는 것은 성인의 말로 왜곡할 수 없다. 명은 하늘의 명령으로 하늘이 정하므로 명이라 한다. 질병은 의사가 치료하는 것이며 의사가 치료하는 것은 인사이다. 인사와 천명은 분명히 구별되어 섞을 수 없다. 의사가 생사를 맡으려 하는 것은 천명을 사유물로 삼는 것이니 오만하지 않은가? 《의단》에서 이미 매우 분명히 말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혹 미혹되니 병을 치료하는 요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생사는 장수에게 승패와 같다. 생사와 승패는 모두 하늘에 있어 사람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니 오직 의술을 다하고 계책을 정밀하게 할 뿐이다. 원정위의 거꾸로 노 젓는 일에 대한 논쟁과 한회음의 배수진은 잠깐의 고통을 견딜 수 있으면 영구한 영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명현한 뒤 병이 낫는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장수의 좋고 나쁨은 승패를 잊는 데 달려 있고 의사의 좋고 나쁨은 생사를 잊는 데 달려 있다. 법에서 얻고 익힘으로 이루어 공용이 완성되면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고 태연히 명에 편안하니 이것을 도의 참됨을 얻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사를 다하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이다. (《속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