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在京師 。 一再驩西依誠齋先生 。 先生時齡九十三 。 善啖健步 。 精神益壯 。 余問其壽繇 。 先生曰 。 歲四十餘失偶 。 人勸後妻 。 自謂既有儲嗣 。 所冀惟壽 。 終峻拒之 。 矜居至今 。 或此事見益也 。 歸鄉之後 。 按此索高壽之人 。 遽得數輩 。 詢之 。 言如出一口 。 足以驗先生焉 。 又按宋劉安世自遷謫後 。 懼遺父母之憂 。 遂舉意絕色欲 。 自言自是未嘗有一日之疾 。 三十年來 。 血氣意思如當時 。 終日接士友 。 劇譚雖夜不寢 。 精神如故 。 夫養生之道 。 又有個節色欲一事 。 正爾明較 。 (同上)
내가 도성에 있을 때 서의성재 선생을 한두 번 만나 기쁘게 교유하였다. 선생은 당시 아흔셋이었는데 잘 먹고 걸음이 건실하며 정신이 더욱 왕성하였다. 내가 장수한 까닭을 묻자 선생은 마흔이 넘어서 배우자를 잃었을 때 사람들이 재혼을 권하였으나 이미 후사가 있고 바라는 것은 오직 장수뿐이라 생각하여 끝내 단호히 거절하고 지금까지 홀로 지냈으니 혹 이 일에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 이를 근거로 장수한 사람을 찾아 곧 몇 사람을 얻어 물었더니 한 입에서 나온 듯 같은 말을 하였으므로 선생의 말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였다. 또 살펴보면 송나라 유안세는 유배된 뒤 부모에게 근심을 끼칠까 두려워 마침내 뜻을 일으켜 색욕을 끊었다. 스스로 그 뒤 하루도 병든 적이 없었고 삼십 년 동안 혈기와 생각이 당시와 같으며 온종일 선비와 벗을 접하여 밤새 잠들지 않고 열띤 이야기를 해도 정신이 예전 같다고 하였다. 양생의 도에는 색욕을 절제하는 한 가지 일도 있으니 참으로 이처럼 분명하다. (위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