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生者命也 。 自天作之 。 其唯自天作之 。 醫焉能死生之哉 。 故仁不能延 。 勇不能奪 。 智不能測 。 醫不能救 。 唯因疾病致死非命也 。 毒藥所能治已 。 蓋死生者 。 醫之所不與也 。 疾病者醫之所當治也 。 故曰 。 盡人事而待天命 。 苟人事之不盡 。 豈得委於命乎 。 是故術之不明 。 方之不中 。 而致死者非命矣 。 (中略)世醫動輒豫定其死生 。 彼其意謂 。 斃我手 。 則害於名矣 。 間有一二中者 。 益信其臆不爽也 。 夫察聲氣色 。 眂其死生 。 周官之所命也 。 豈不可乎 。 雖然 。 察之以臆 。 眂之以臆 。 使其生者 。 輒編之鬼籍 。 恝乎束手 。 以待其斃 。 是豈仁人之用心乎 。 故眂其死 。 猶且盡我術 。 以望其或生 。 古之道也 。 然而不生 。 然後可謂命也已矣 。 唯重其名 。 故唯眂其死 。 不能忘死生於執刀圭間 。 所以惑也 。 唯重其仁 。 故唯眂其生 。 所以世醫所謂死者 。 間有起者也 。 故曰死生者 。 醫之所不與也 。 (同上)
죽고 사는 것은 명으로 하늘이 정한다. 하늘이 정하는 것이니 의사가 어떻게 죽이거나 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짊으로 연장할 수 없고 용기로 빼앗을 수 없으며 지혜로 헤아릴 수 없고 의술로 구할 수 없다. 다만 질병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것은 명이 아니며 독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죽고 사는 것은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질병은 의사가 마땅히 치료할 바이다. 그러므로 인사를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고 한다. 인사를 다하지 않았다면 어찌 명에 맡길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의술이 밝지 못하고 처방이 맞지 않아 죽게 한 것은 명이 아니다. (중략) 세상의 의사들은 걸핏하면 생사를 미리 정한다. 그들은 자기 손에서 죽으면 명성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간혹 한둘 맞는 것이 있으면 더욱 자기 억측이 틀리지 않음을 믿는다. 목소리·기운·안색을 살펴 생사를 판단하는 것은 《주관》에서 명한 것이니 어찌 불가하겠는가? 그러나 억측으로 살피고 억측으로 판단하여 살 수 있는 사람을 곧 귀적에 올리고 무심히 손을 묶은 채 죽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 씀씀이겠는가? 그러므로 죽을 것으로 보더라도 오히려 내 의술을 다하여 혹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 옛 도이다. 그래도 살지 못한 뒤에야 명이라 할 수 있다. 오직 명성만 중히 여기므로 죽음만 살피고 약을 다루는 사이에 생사를 잊지 못하여 미혹되는 것이다. 오직 어짊을 중히 여기면 삶만 살피므로 세상 의사들이 죽는다고 한 사람 가운데 다시 살아나는 이가 있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은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위와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