俞曲園內經辨言序

歐學東漸見西醫形跡手術上之治療醉心者幾欲棄舊謀新舍近圖遠甚至將軒岐之言逐節指摘冷嘲熱罵此其故半由於古書難讀半由於未經親驗此中得失耳有心人知之故惲氏鐵樵有群經見知錄之輯將以大發明黃帝之學說其願至宏惟其中如何精詳豐富愧予尚未購讀也近觀名醫張氏山雷致憚氏鐵樵論宋本素問井及經文異同注家得失書深佩服其考辨之精可知為醫必須博學通才平素涉獵諸書見有與醫界關切之書在於儒家著集中者曲園老人內絆素問按語四十八條亦其一焉信夫其流通百家好古敏求其亦內經之羽翼醫界之明星故持此篇商之於裘吉生光生請其即刊於三三醫書蔗不將此篇佚處於巨集中醫者讀其書更觸類引伸之將數千年之古學愈闡愈顯不且為抱殘守缺者之幸其耶此篇原名讀書余錄在其全集第一樓叢書之七今顏之曰俞曲園內經辨言非敢遽改其名稱蓋一以欽其慎思明辨之功一以便醫家顧名購閱俟另印專書廣為流通使曲園老人而在想亦所計可也 中華民國十二年癸亥夏厥盂秋乞巧日後學上虞俞□鑑泉氏謹識
유럽의 학문이 동쪽으로 전해지면서 서양 의학의 형체와 자취에 관한 치료와 수술을 보고 심취한 사람들은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꾀하며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려 한다. 심지어 헌원과 기백의 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냉소하고 심하게 꾸짖기까지 한다. 그 까닭은 절반은 옛글을 읽기 어렵기 때문이고, 절반은 그 안의 득실을 몸소 시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뜻있는 사람들은 이를 알기에 운철초는 《군경견지록》을 엮어 황제의 학설을 크게 밝히려 하였다. 그 뜻이 지극히 크지만 내용이 얼마나 정밀하고 상세하며 풍부한지는 부끄럽게도 내가 아직 사서 읽어 보지 못하였다. 근래 명의 장산뢰가 운철초에게 보내어 송본 《소문》과 경문 사이의 같고 다름 및 주석가들의 득실을 논한 편지를 보고 그 정밀한 고증과 변별에 깊이 감탄하였다. 의사가 되려면 반드시 널리 배우고 여러 방면에 통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평소 여러 책을 섭렵하다 보면 유학자의 문집에도 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글이 보이는데, 곡원 노인의 《내경소문》 안어 48조도 그 하나이다. 참으로 그는 백가에 두루 통하고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구하였으니, 이 글 또한 《내경》을 돕는 날개요 의학계의 밝은 별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가지고 구길생 선생과 의논하여 즉시 《삼삼의서》에 간행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 글을 방대한 문집 속에 묻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의사들이 이를 읽고 다시 같은 부류로 미루어 뜻을 넓힌다면 수천 년의 옛 학문이 더욱 밝혀질 것이니, 낡고 불완전한 유산을 지키는 이들에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글의 본래 이름은 「독서여록」이며 그의 전집 가운데 《제일루총서》 제7에 실려 있다. 이제 「유곡원내경변언」이라 이름 붙인 것은 감히 갑자기 명칭을 바꾸려는 뜻이 아니다. 하나는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한 그의 공을 존경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의가들이 이름만 보고도 사서 읽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별책으로 인쇄하여 널리 유통시키려 하니, 곡원 노인이 살아 계시더라도 아마 허락하셨을 것이다. 중화민국 12년 계해년, 여름이 지나 초가을 걸교일에 후학 상우의 유□, 호 감천이 삼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