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西之學 , 苦思力索 , 不極其元不止 , 每一藝出 , 令人駴絕 。 獨中國醫經 , 以陰陽五行之理 , 合之人身 , 確乎不易 。 而西醫偏不之信 , 遺氣化而究形質 , 夫大撓作甲子 , 於何始 , 於何終 , 近乎妄矣 。 而正月幾日得辛 , 則農家亦知其不爽也 。 任吾剖視 , 莫雞豚若 , 而其化飲食之火何在 , 未有能指者也 。 以此理語西醫 , 西醫未必強辯 。 況西人之智慧 , 何遜華人 ? 居中土 , 治中學 , 後必有通中醫 。 而元之又元 , 上啟黃帝九籥者 , 吾華人當有以贊之 , 不當先自貶以誤之 。 嗟乎 。 醫學至今日 , 誠無解於西人之垢矣 , 針法之真傳已失 , 即 《 素問 》《 靈樞 》《 本草經 》《 傷寒論 》《 金匱要略 》 等於四書五經 , 而讀之者牛毛 , 解之者麟角 。 其有著述行世 , 而或文辭朗鬯 , 中多紕繆 , 或稗敗剽竊 , 復為大言 。 以此斯人 , 人不能辨 , 更有偏於溫熱 , 偏於寒涼 , 後人奉之為師承者 , 此醫學所以日敝 , 而疵癘夭札之無術以救也 。 大抵論病可以辭飾 , 而方解不能虛構 , 方解之切究其所以然 , 無毫髮疏舛者 , 方書中不多見 。 國朝大醫 , 無過葉天士 、 徐洄溪 、 尤在涇三家 。 而葉注 《 本事方 》, 多羼以入某經某經無當之言 ; 徐輯 《 傷寒類方 》《 蘭臺軌範 》, 有碎錦而無全璧 ; 尤注 《 傷寒論 》《 金匱要略 》, 於方解多簡而渾 。 余欲補前人之關 , 撰為一書 , 而以衰齡事冗 , 因循不果 , 會孫倩程生仲來 , 問醫業於余 , 恆以為請 。 余曰 : 奢願恐不可償矣 。 雖然 , 聞一知幾 , 視人之悟若何耳 , 多言何為 。 爰舉六氣感證 , 與古方之切合者 , 竭數月之功 , 輯為要義一編以授之 。 且曰 : 區區此數 , 不足為檢方治病之用 , 毋示外人 , 供覆瓿也 。 生曰 : 集中注拙似者百餘十條 , 悉注家屐齒所未經 , 發余蘊 , 訂躗言 , 不特津逮來者 , 抑且有功前哲 , 即西醫見之 , 亦必謂中國格致之別有機悟也 , 蓋付之剞氏以公同好乎 。 余曰 : 諾哉 。
서양의 학문은 고심하여 힘써 탐구하고 그 근원에 이르지 않고서는 그치지 않으므로, 기술 하나가 나올 때마다 사람을 몹시 놀라게 한다. 다만 중국의 의경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사람의 몸에 합하였으니 확고하여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서양 의사는 유독 이를 믿지 않고 기화를 버려둔 채 형질만 연구한다. 대요가 갑자를 만든 것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 허망함에 가까운 듯하지만, 정월 며칠에 신일을 만나는지는 농가도 어긋나지 않음을 안다. 우리가 마음대로 해부하여 볼 수 있는 것으로 닭과 돼지만 한 것이 없는데, 그 음식물을 변화시키는 불이 어디에 있는지는 지목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다. 이 이치를 서양 의사에게 말하면 서양 의사도 반드시 억지로 논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서양인의 지혜가 어찌 중국인보다 못하겠는가? 중국 땅에 살며 중국 학문을 연구하면, 뒤에는 반드시 중국 의학에 통달하고 그 근원을 거듭 궁구하여 위로 황제의 아홉 자물쇠를 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 중국인은 마땅히 이를 도와야지, 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그들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아아! 의학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참으로 서양인의 비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침법의 참된 전승은 이미 없어졌다. 곧 《소문》·《영추》·《본초경》·《상한론》·《금궤요략》은 사서오경과 같건만, 읽는 사람은 소털처럼 많고 이해하는 사람은 기린의 뿔처럼 드물다. 저술을 세상에 내놓은 이들 가운데에는 문장이 명쾌하되 오류가 많은 이도 있고, 비루하고 그릇된 것을 표절하면서 다시 큰소리를 치는 이도 있다. 이처럼 된 사람을 남들이 분별하지 못하며, 더구나 온열에 치우치거나 한량에 치우친 이를 후인들이 스승의 전승으로 받든다. 이것이 의학이 날로 쇠폐하여 질병과 요절을 구할 방법이 없어진 까닭이다. 대체로 병을 논하는 것은 말로 꾸밀 수 있지만 처방의 해설은 허구로 지어낼 수 없다. 처방의 해설이 그 까닭을 절실하게 궁구하여 조금도 소홀하거나 어긋남이 없는 경우는 방서 가운데 많지 않다. 우리 왕조의 큰 의사는 엽천사·서회계·우재경 세 사람보다 나은 이가 없다. 그러나 엽씨가 주석한 《본사방》에는 어느 경에 들어간다는 부당한 말이 많이 섞였고, 서씨가 엮은 《상한류방》·《난대궤범》에는 조각난 비단은 있으나 온전한 옥은 없으며, 우씨가 주석한 《상한론》·《금궤요략》은 처방 해설이 대개 간략하고 모호하다.
나는 앞사람의 빠뜨린 부분(關)을 보충하여 책 한 권을 짓고자 하였으나 늙은 나이에 일이 번거로워 미루기만 하고 이루지 못하였다. 마침 손녀사위 정중래가 나에게 의업을 물으며 늘 이를 청하였다. 나는 “분에 넘치는 바람은 아마 이루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하나를 듣고 얼마를 아는지는 사람의 깨달음이 어떠한가에 달렸을 뿐이니, 말을 많이 해서 무엇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육기에 감촉된 증과 고방이 절실하게 들어맞는 것을 들고, 몇 달의 힘을 다하여 《요의》 한 편으로 엮어 주었다. 또 “보잘것없는 이 몇 가지는 처방을 찾아 병을 치료하는 데 쓰기에는 부족하다. 밖의 사람에게 보여 항아리 뚜껑으로 쓰이게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정생이 말하였다. “책 속에서 ‘졸사(拙似)’라고 주를 단 백수십 조는 모두 주석가들의 나막신 자국이 미치지 못한 곳입니다. 남은 뜻을 드러내고 거짓말을 바로잡았으니, 뒤에 오는 이들을 인도할 뿐 아니라 앞선 현철에게도 공이 있습니다. 서양 의사가 보더라도 반드시 중국의 격치에 별다른 깨달음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판각하는 이에게 맡겨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나눔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좋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