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경》에서는 ‘습온의 맥은 양이 유하면서 약하고 음이 소하면서 급하다’라고 하였다. 《활인서》에서는 ‘그 사람의 두 정강이가 역랭하고 배가 그득하며 가슴에 땀이 많고 머리와 눈이 괴롭게 아프며 망언한다. 맥은 양이 유하면서 약하고 음이 소하면서 급하다. 치료는 태음에 있으며 발한해서는 안 된다. 땀이 나면 반드시 말하지 못하고 귀먹으며 통증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몸이 푸르며 얼굴빛이 변하니 중갈이라 한다. 이처럼 되어 죽은 것은 의사가 죽인 것일 뿐이다. 백호가창출탕으로 주치한다’라고 하였다. 왕우태는 ‘무릇 음병의 궐랭은 두 팔도 모두 차다. 정강이는 차되 팔은 차지 않으면 아래의 궐이 위로 올라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니, 양미한궐로 논하여 치료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장석완은 ‘서는 기를 상하므로 양맥이 유약하고, 습은 혈을 상하므로 음맥이 소급하다’라고 하였다. 이 여러 설을 보면 습온의 증이 분명해진다.
왕맹영은 습열이 곧 습온이라 하였고, 장석완은 습열·습온을 둘로 나누었으나 그 까닭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건대 습열·습온은 본래 구별이 없을 수 없다. 습온이란 습과 열이 나란히 있는 것으로 대개 내울에서 말미암는다. 습온이란 서습이 서로 부딪친 것으로 대개 외감에서 말미암는다. 내울은 느리고 외감은 갑작스럽다. 그러나 처음 발생할 때에는 그러하지만 변화하기에 이르면 왕왕 서로 나타나므로, 맹영의 말도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의 견해.
濕熱病 , 屬陽明太陰居多 。 中氣實則病在陽明 , 中氣虛則病在太陰 , 而大便之溏硬即因之 。
습열병은 양명·태음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중기가 실하면 병이 양명에 있고 중기가 허하면 병이 태음에 있으며, 대변이 무르거나 단단한 것도 이에 따른다.
중경이 논한 습과 풍습은 모두 한에 붙은 증에 속한다. 그러므로 발열하고 몸빛이 그을린 황색 같아도 인진호탕으로 주치하지 않았다. 인진호탕으로 습열의 발황을 치료하는 것과 결코 섞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명확한 증거다. 왕맹영은 중경의 습온편을 새로 만들어 중경의 습·풍습 논설을 넣으면서 처방은 싣지 않았으니, 중경이 잘못 치료했다는 말인가? 역시 습·풍습과 습온이 크게 같지 않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나의 견해.
나겸보는 중경의 여러 사심탕 처방을 취하여 습열을 치료하는 것이 가장 마땅하다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 증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평소 담습이 많고 다시 서사에 적중되어 마침내 흉만·기역하였으며 형세가 지극히 험악하였다. 생강사심탕에서 건강을 빼고 생강즙·죽력을 더하여 썼더니 즉시 기이한 효험을 보았다. 참으로 겸보는 중경의 처방을 잘 쓴 것이다. 나의 견해.
서습이 서로 부딪쳐 병이 되면 양은 위로 호위하고 음은 아래로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배가 그득해지고 머리가 아프며 정강이가 차다. 정신을 흐리면 망언하고 기육으로 새면 땀이 많다. 지모·석고의 고신한으로 서를 맑히고, 창출의 신온하고 웅렬한 성질로 습을 말리며, 감초·갱미의 감평으로 중초를 보한다. 약은 다섯 가지뿐이나 효험이 북채에 북이 응하듯 하니 참으로 습온을 치료하는 첫째 신방이다. 나의 견해.
茵陳蒿湯 治瘀熱在裡 , 頭汗出 , 身無汗 , 腹滿 , 小便不利 , 渴欲飲水 。
인진호탕. 어열이 이에 있어 머리에 땀이 나고 몸에는 땀이 없으며, 배가 그득하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며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려는 것을 치료한다.
위의 세 가지를 물 1말에 먼저 인진을 달여 6되가 줄면 두 약을 넣고 달여 3되를 취한다. 찌꺼기를 버리고 따뜻하게 세 번 나누어 복용한다. 소변이 잘 나오게 되며 소변은 조각즙 같은 모양으로 빛깔이 아주 붉다. 하룻밤 지나 배가 줄어드니 병이 소변을 따라 나간 것이다.
《상한론》에서 양황을 치료하는 데 인진호탕을 쓴 것은 습열발황의 증과 다르지 않다. 세 약은 모두 열을 내보내고 습을 제거하는 것인데, 인진은 맑은 향기가 사방에 퍼져 특히 울증의 기를 풀기에 충분하므로 군약으로 삼는다. 대황은 힘이 맹렬하므로 치자와 함께 적게 쓰고 나중에 달여야 습열이 오로지 소변으로 나간다. 나의 견해.
生薑瀉心湯 證見前說 。
생강사심탕. 증은 앞의 설명에 보인다.
生薑(四兩) 甘草(炙) 人參 黃芩(各三兩) 半夏(半斤) 黃連 乾薑(各一兩) 大棗(十二枚)
생강 4냥, 감초(굽는다), 인삼, 황금 각 3냥, 반하 반 근, 황련, 건강 각 1냥, 대조 12개.
上八味 , 以水一斗 , 煮取六升 , 去滓再煎 , 取三升 , 溫服一升 , 日三服 。
위의 여덟 가지를 물 1말에 달여 6되를 취하고 찌꺼기를 버린 뒤 다시 달여 3되를 취한다. 따뜻하게 1되씩 하루 세 번 복용한다.
여러 사심탕 가운데 생강사심 한 법이 앞의 설명에 가장 잘 맞는다. 담습이 청양을 가려 안에서 이미 차츰 열로 변화하는데 밖의 서가 다시 부추겨 얽혀 해를 끼치니 형세가 어찌 극심하지 않겠는가? 생강·반하의 신산이 아니면 음예를 물리치기에 부족하고, 황금·황련의 고강이 아니면 비역을 몰아내기에 부족하다. 건강은 성질이 뜨겁고 수렴을 주로 하며 생강처럼 가로로 흩는 힘이 없으므로 온서에 마땅하지 않다. 인삼 한 가지에 이르면 표실과 심번에는 모두 꺼리지만 발열하면서 갈증나는 데에는 꺼리지 않고, 발한·구토·하법 뒤의 심비에도 꺼리지 않는다. 하리에는 꺼리되 하리에 구역질을 겸하면 꺼리지 않고 소양의 구역질에도 꺼리지 않는다. 모든 소양증은 화해해야 하는데, 인삼은 음중지양의 약으로 음양을 조화시키는 능력을 갖추어 소양증에 가장 잘 맞는다. 그러므로 생강사심탕은 하리하고 구역질하지 않더라도 협하의 수기를 겸하므로 인삼을 빼지 않는다. 감초사심탕은 심번하므로 뺀다. 그 밖에 증에 마땅하지 않은데도 쓴 경우는 반드시 그 가운데 음양이 조화롭지 못한 까닭이 있다. 또 사심탕에서 생강을 맨 앞에 둔 것은 마른 트림에 음식 냄새가 나는 것을 중히 여긴 것이며, 감초를 맨 앞에 둔 것은 위 속이 허함을 중히 여긴 것이고, 반하를 맨 앞에 둔 것은 구역질과 비를 중히 여긴 것이다. 앞사람들의 인삼과 세 사심탕에 관한 논설은 전혀 절실하고 타당하지 않아 중경 책의 미묘한 뜻이 수천백 년 동안 먼지에 묻혔다. 우선 여기에 붙여 드러낸다.
이 처방의 묘함은 온전히 인중황 한 가지에 있다. 더럽고 악취 나는 물건으로 더럽고 악취 나는 독을 푼다. 삼황은 열을 맑히고 창출·방풍은 습을 몰아내어 또한 병인에 꼭 맞는다. 여기에 향부자로 울체를 펴고 길경으로 폐를 열며 신국으로 표에 통달시켜 약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한다. 다시 인삼이 정기를 이끌어 이를 부리므로 혼란을 다스려 바른 곳으로 돌린다. 탕제로 넘기는 것은 병은 급한데 환은 완만하여 형세가 맞지 않을까 염려해서다. 그러나 청열해독탕 한 처방에만 고정되어 매이면 병에 마땅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따로 방제를 만들어 바꿀 수 있다. 나의 견해.
활석·인진은 열을 씻어 내고 습을 제거하는 요약이므로 하나는 군약, 하나는 신약으로 쓴다. 황금·황련·목통·사간·연교·박하로 보좌하면 가로로 풀고 곧바로 내보내어 각각 그 작용을 발휘한다. 창포는 구규를 잘 통하게 하고 곽향은 더러움을 물리치며 백두구는 정체를 소통시킨다. 이 세 가지는 열에 대해서는 종치이고 습에 대해서는 정치이니 처방의 뛰어난 묘함이 여기에 있다. 이는 엽천사가 습열역려를 치료한 방제로 당시 사람을 살린 공이 매우 컸으니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