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說
여러 설을 모음
燥為六氣之一 ,《 內經 》 言燥淫之病之治 , 不一而足 。 自非燥不為病 , 乃生氣通天論 , 與陰陽應象論 , 兩言秋傷於濕而不及燥 。 喻氏謂有脫誤 , 當是長夏傷於濕 , 秋傷於燥 。 按 : 肺家熱燥之證 , 核諸逆秋氣則太陰不收 , 肺氣焦滿 , 肺病者喘嗽逆氣 , 肺熱葉焦則生痿躄之文 , 則上逆而嗽 , 發為痿厥 , 及冬生咳嗽 , 謂之秋傷於燥 , 未為不合 。 且土王四季 , 經言脾主長夏 , 斷乎不易 。 王太僕因不明地理應六節氣候之義 , 誤以三之氣為少陽 , 四之氣為太陰 。 實乃三之氣太陰 , 四之氣少陽 。 高士宗正之 , ( 《 素問直解 》。 )與六氣主歲主時 , 三陰三陽之次 , 及脾主長夏 , 無不符合 , 自當從高 。 夫脾主長夏 , 而云足太陰陽明主治 , 是濕土王時 , 已伏燥氣 , 而少陽相火 , 又即繼之 。 此易所以言土燥萬物 。 秋燥二字 , 所以從火 , 安得猶傷於濕 。 殆長夏傷於濕 , 秋傷於燥 , 本句名連屬 , 後世佚去一句 , 而誤燥為濕 , 未可知耳 。 拙擬
조는 육기 가운데 하나이다. 《내경》이 조가 지나친 병과 치료를 말한 것은 한두 가지로 그치지 않으니 본래 조가 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생기통천론〉과 〈음양응상론〉은 두 번 모두 가을에 습에 상한다고 하면서 조에는 미치지 않았다. 유씨는 탈오가 있으니 마땅히 ‘장하에 습에 상하고 가을에 조에 상한다’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폐가의 열조증을 살펴보면, ‘추기를 거스르면 태음이 거두지 못하여 폐기가 타고 그득하다’, ‘폐병에는 숨이 차고 기침하며 기가 거스른다’, ‘폐가 열하여 엽이 타면 위벽이 생긴다’는 문장에 비추어 볼 때, 위로 거슬러 기침하고 위궐이 발생하며 겨울에 해수가 생기는 것을 ‘가을에 조에 상한다’고 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토는 사계절에 왕성하지만 경에서 비가 장하를 주관한다고 한 것은 확고하여 바뀌지 않는다. 왕태복은 지리가 여섯 절기의 기후에 응하는 뜻을 밝히지 못하여 잘못 삼지기를 소양, 사지기를 태음이라 하였다. 실제로는 삼지기가 태음이고 사지기가 소양이다. 고사종이 이를 바로잡았는데(《소문직해》), 육기가 해와 때를 주관하는 것, 삼음삼양의 순서 및 비가 장하를 주관하는 것과 모두 들어맞으므로 본래 고씨를 따라야 한다. 비가 장하를 주관하면서 족태음·양명이 주치를 맡는다고 하였으니, 습토가 왕성한 때에 이미 조기가 잠복하고 소양상화가 곧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역》에서 토가 만물을 말린다고 한 까닭이며, 추·조 두 글자가 화를 따르는 까닭이다. 어찌 여전히 습에 상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장하에 습에 상하고 가을에 조에 상한다’는 본래 구절의 이름이 이어져 있었는데, 후세에 한 구절을 빠뜨리고 조를 습으로 잘못 썼을지도 알 수 없을 뿐이다. 나의 견해.
由前之說 , 陽明介相火寒水之間 。 秋分以前 , 自毗於熱 , 秋分以後 , 自毗於寒 。 毗於熱 , 則有伏氣之病 , 火剋金也 。 毗於寒 , 則有勝氣之病 , 金剋木也 。 熱燥者陽 , 故感而即發 , 寒燥者陰 , 故久而積堅 。 熱燥之治 , 古無其方 , 喻氏制清燥救肺湯 , 實大開後人智慧 。 寒燥如脅痛㿗疝之類 ,《 巢氏病源 》 以下諸書 , 皆不以為燥 , 而獨責之寒 。 此在 《 內經 》, 亦若為分別部居者 。 清者溫之 , 治寒燥也 , 燥者潤之 , 治熱燥也 。 不然 , 清與燥一也 , 而治則分之 , 寧無故哉 。 拙擬
앞의 설명에 따르면 양명은 상화와 한수 사이에 있다. 추분 이전에는 본래 열에 가깝고 추분 이후에는 본래 한에 가깝다. 열에 가까우면 복기의 병이 있으니 화가 금을 극하는 것이고, 한에 가까우면 승기의 병이 있으니 금이 목을 극하는 것이다. 열조는 양이므로 감촉하면 곧 발하고 한조는 음이므로 오래되어 단단히 쌓인다. 열조의 치료에는 옛 처방이 없었는데 유씨가 청조구폐탕을 만들어 실로 후인의 지혜를 크게 열었다. 한조로 협통·퇴산 같은 것은 《소씨병원》 이하 여러 책에서 모두 조로 여기지 않고 한만 탓하였다. 이것은 《내경》에서도 각각 나누어 배치한 듯하다. ‘청한 것은 덥힌다’는 한조를 치료하는 것이며, ‘조한 것은 적신다’는 열조를 치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과 조는 하나인데 치료를 나누었으니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나의 견해.
熱燥寒燥 , 隨乎時令之寒熱 , 言其常耳 。 若時應熱而反寒 , 時應寒而反熱 , 則變熱燥為寒燥 , 變寒燥為熱燥 , 固有之矣 。 在乎臨證詳審 , 又不得以時拘也 。 拙擬
열조와 한조가 시령의 한열을 따른다는 것은 그 보통을 말했을 뿐이다. 계절상 더워야 하는데 도리어 춥고 추워야 하는데 도리어 더우면 열조가 한조로 변하고 한조가 열조로 변하는 일은 본래 있다. 임증할 때 자세히 살피는 데 달렸으니 또한 계절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견해.
《 內經 》 之言六氣勝復 , 看似瞭然 , 而以勝復合之於病 , 則解悟轉難 。 故挽近醫家言勝復之病 , 多涉影響 。 夫所謂勝者 , 我勝彼而彼受制也 。 復者 , 彼受制而鬱怒思復也 。 當我之勝 , 彼尚未復 , 迨彼之復 , 我已先勝 。 所以陽明司歲 , 或陽明司時 , 而有肝病 , 則為燥金勝氣 。 若肺金自善 , 則不值少陰少陽司歲司時 , 未嘗受制 , 烏得有復 。 肺病而有復氣 , 必當在肺金受制之後 。 清燥救肺湯 , 則其治為感燥即病 。 又陽明之復 , 治以辛溫 , 清燥救肺湯 , 則其中無溫藥 , 此其不可誣者也 。 然則謂喻氏遵經乎悖經乎 ? 邪氣反勝 , 王注不能淫勝於他氣 , 反為不勝之氣 , 為邪以勝之 。 蓋司歲司時之本氣 , 應勝而不能以勝 , 則發不司時之他氣 , 反以不應勝而勝之 。 邪氣者 , 不應勝而勝之謂也 。 不言病者 , 他章詳之也 。 下文治以辛寒 , 佐以苦甘 , 正喻氏之所本 , 參之氣交變論 , 歲金不及 , 亦復無異 。 但彼言五運 , 此言六氣 , 五運之正化為太過無復 , 不及為對化有復 。 復則子為母復 , 六氣無勝則無復 , 有勝必有復 , 復則受制而怒復 , 皆不容不辨耳 。 拙擬
《내경》에서 육기의 승복을 말한 것은 보기에 분명한 듯하지만 승복을 병에 맞추면 이해하기가 도리어 어렵다. 그러므로 근래 의가가 말한 승복의 병에는 대개 그림자와 메아리 같은 말이 섞인다. 이른바 승은 내가 상대를 이겨 상대가 제어받는 것이며, 복은 상대가 제어받아 울분하여 되갚으려는 것이다. 내가 이길 때 상대는 아직 되갚지 않았고, 상대가 되갚을 때에는 내가 이미 먼저 이겼다. 그러므로 양명이 해를 맡거나 때를 맡는데 간병이 있으면 조금의 승기이다. 폐금이 스스로 좋다면 소음·소양이 해와 때를 맡은 경우가 아니어서 제어받은 적이 없으니 어찌 복이 있겠는가? 폐병에 복기가 있다면 반드시 폐금이 제어받은 뒤여야 한다. 그런데 청조구폐탕이 치료하는 것은 조에 감촉되자 곧 병든 것이다. 또 양명의 복은 신온으로 치료하는데 청조구폐탕에는 온약이 없으니,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씨가 경을 따랐다고 해야 하는가, 어겼다고 해야 하는가? ‘사기가 도리어 이긴다’는 데 왕씨의 주는 ‘다른 기를 지나치게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이기지 못하는 기가 사가 되어 이를 이긴다’라고 하였다. 해와 때를 맡은 본기는 이겨야 하는데 이기지 못하고, 때를 맡지 않은 다른 기가 일어나 도리어 이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기는 것이다. 사기란 이기지 말아야 하는데 이기는 것을 말한다. 병을 말하지 않은 것은 다른 장에 자세하기 때문이다. 아래 글의 ‘신한으로 치료하고 고감으로 보좌한다’는 것은 바로 유씨가 근거한 것이다. 〈기교변론〉의 세금불급과 참조해도 다르지 않다. 다만 저것은 오운을 말하고 이것은 육기를 말한다. 오운의 정화는 태과로서 복이 없고, 불급은 대화로서 복이 있다. 복은 자식이 어미를 위해 되갚는 것이다. 육기는 승이 없으면 복이 없고 승이 있으면 반드시 복이 있으며, 복은 제어받아 노하여 되갚는 것이니 모두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견해.
熱氣大來 , 火之勝也 。 金燥受邪 , 肺病生焉 。 此其熱燥雖有輕重之分 , 而肺必先傷 , 則同燥氣初感無遽及胃與大腸者 。 拙擬
열기가 크게 오는 것은 화가 이기는 것이다. 금조가 사를 받으면 폐병이 생긴다. 이 열조에는 경중의 구분이 있지만 반드시 폐가 먼저 상하는 것은 같다. 조기에 처음 감촉되어 곧바로 위와 대장에 미치는 경우는 없다. 나의 견해.
沈目南 、 吳鞠通 、 陸九芝三家 , 皆好訾議喻氏 , 而已實憒憒 。 沈 、 吳但知燥為次寒 , 而不知燥亦有熱 , 知燥有勝氣復氣 , 而不知燥有邪氣反勝之病 。 沈以諸氣憤郁 , 諸疾喘嘔 , 盡屬內傷 。 吳不知復氣之非感而即發 , 並復有二義 , 又以杏蘇散桂枝湯治風寒之方 , 改名之曰治燥 , 皆堪一噱 。 陸則泥於病機十九條之不言燥 , 遂謂燥必由他病轉屬 , 將經言燥淫之病 , 一概抹煞 , 又不知燥氣之不先傷陽明 , 可謂憒憒之甚者矣 。 拙擬
심목남·오국통·육구지 세 사람은 모두 유씨를 헐뜯어 논하기 좋아하지만, 실로 어리둥절하다(而已實憒憒). 심씨와 오씨는 조가 다음가는 한이라는 것만 알았고 조에도 열이 있음을 몰랐으며, 조에 승기·복기가 있음은 알았으나 사기가 도리어 이기는 조병은 몰랐다. 심씨는 여러 기의 분울과 여러 질병의 천구를 모두 내상에 속시켰다. 오씨는 복기가 감촉되자 곧 발하는 것이 아님을 몰랐고 복에 두 뜻이 있음도 몰랐다. 또 풍한을 치료하는 행소산·계지탕 처방을 조를 치료한다고 이름을 바꾸었으니 모두 한바탕 웃을 만하다. 육씨는 병기십구조가 조를 말하지 않았다는 데 매여 조는 반드시 다른 병에서 전속된 것이라고 하였다. 경에서 말한 조가 지나친 병을 모조리 지워 버렸고, 또 조기가 먼저 양명을 상하지 않는다는 것도 몰랐으니, 어리둥절함이 심하다고 할 만하다. 나의 견해.
喻氏方固至妙 , 而於燥有寒熱之分 , 似不甚究 。 燥為火氣之餘 , 原自夏來 , 乃謂秋不遽燥 。 如其說 , 必天降繁霜 , 地凝白滷而始燥矣 。 正當有寒燥之病 , 伺以制方則治熱燥 。 於是欲圓其說 , 而引脈要之言 , 並以十月之溫 , 為金位之下 , 火氣承之 。 不知金亢既有火制 , 何待又治金病 , 新秋而得數脈 , 豈非即熱燥之根源 ? 其方治諸氣憤郁 , 諸痿喘嘔 , 憤郁者 , 肺家怒復之情 。 痿喘者 , 肺家被克所致 , 皆極合經旨 。 惟嘔究屬胃病 , 雖於胃熱之嘔 , 非不可治 , 而改屬上為屬肺 , 其如嘔之非肺病何 , 凡此皆喻氏之微疵 , 不能為諱者也 。 拙擬
유씨의 처방은 참으로 지극히 묘하지만 조에 한열의 구분이 있다는 점은 그리 깊이 궁구하지 않은 듯하다. 조는 화기의 나머지여서 본래 여름에서 오는데도 가을이 갑자기 조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 말대로라면 반드시 하늘에서 서리가 많이 내리고 땅에 흰 소금기가 엉긴 뒤에야 비로소 조한 것이다. 바로 한조의 병이 있어야 할 때인데 이를 기다려 만든 처방은 열조를 치료한다. 이에 그 말을 원만히 하려고 〈맥요〉의 말을 인용하고, 시월의 따뜻함을 금의 자리 아래 화기가 받드는 것으로 여겼다. 금이 항성하여 이미 화가 제어한다면 왜 또 금병을 치료해야 하는지 몰랐다. 초가을에 삭맥을 얻는 것이 곧 열조의 근원이 아니겠는가? 그 처방은 여러 기의 분울과 여러 위·천·구를 치료한다. 분울은 폐가가 노하여 되갚는 정황이고 위·천은 폐가가 극을 받아 생기는 것이므로 모두 경의 뜻에 지극히 맞는다. 다만 구는 결국 위병이다. 위열의 구를 치료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속한다’를 ‘폐에 속한다’로 바꾸어도 구가 폐병이 아니라는 점은 어찌하겠는가? 이런 것은 모두 유씨의 작은 흠이므로 숨길 수 없다. 나의 견해.
寒燥既當求之於寒矣 。 熱燥而熱重 , 如可用承氣湯 、 白虎湯者 , 亦不以燥證名 。 惟不至於寒而亦非大熱 , 隨感而發者 , 始為燥病 , 始宜施以喻氏之方 。 然則所治實輕病耳 。 醫家多贊之何也 ? 曰 : 正以輕病而古多忽之 。 有關秋燥之一氣 , 喻氏發之 , 其翼經覺後之功大矣 。 拙擬
한조는 이미 한에서 구해야 한다. 열조라도 열이 무거워 승기탕·백호탕을 쓸 만한 경우는 역시 조증이라 이름하지 않는다. 오직 한에 이르지 않고 큰 열도 아니면서 감촉됨에 따라 발하는 것만이 비로소 조병이며 유씨의 처방을 써야 한다. 그렇다면 치료하는 것은 실로 가벼운 병일 뿐인데 의가들이 많이 칭찬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하자면 바로 가벼운 병이어서 옛사람들이 많이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다. 추조라는 한 기에 관계되는데 유씨가 이를 드러냈으니 경을 돕고 후인을 깨우친 공이 크다. 나의 견해.
勝氣之燥病 , 見於肝者 , 當治其肝 。 或清肺以除燥本 , 邪氣反勝之燥病 , 則但病救肺 , 不必旁涉 。
승기의 조병이 간에 나타나면 그 간을 치료해야 한다. 혹 폐를 맑혀 조의 근본을 없애기도 한다. 사기가 도리어 이기는 조병은 다만 병들어 폐를 구할 뿐(但病救肺), 곁으로 미칠 필요가 없다.
燥之為病 , 如皮膚皴揭 , 精血枯涸 , 痿痹消渴之類 , 不勝枚舉 , 多由內傷所致 , 應歸別論 。
조가 병이 되는 것으로 피부가 갈라져 들뜨고 정혈이 말라 고갈되며 위비·소갈하는 등의 종류는 낱낱이 들 수 없이 많다. 대부분 내상에서 생기므로 별도의 논의에 속해야 한다.
方解
처방 풀이
清燥救肺湯 治諸氣憤郁 , 諸痿喘嘔 。
청조구폐탕. 여러 기의 분울과 여러 위·천·구를 치료한다.
桑葉(經霜者 , 得金氣而柔潤不凋 , 取之為君 , 去枝 , 醒淨葉 , 三錢) 石膏(煅 , 稟清肅之氣 , 極清肺熱 , 二錢五分) 甘草(和胃生金 , 一錢) 人參(生胃之津 , 養肝之氣 , 七分) 胡麻仁(炒研 , 一錢) 真阿膠(八分) 麥門冬(去心 , 一錢二分) 杏仁(泡 , 去尖皮 , 炒黃 , 七分) 枇杷葉(一片 , 刷去毛密塗 , 炙黃)
상엽 3돈(서리를 맞은 것은 금기를 얻어 부드럽고 윤택하여 시들지 않으므로 취하여 군약으로 삼는다. 가지를 버리고 성정엽(醒淨葉)을 쓴다), 석고 2돈 5푼(단한다. 청숙의 기를 받아 폐열을 지극히 맑힌다), 감초 1돈(위를 조화시켜 금을 생한다), 인삼 7푼(위의 진을 생기게 하고 간의 기를 기른다), 호마인 1돈(볶아 간다), 진아교 8푼, 맥문동 1돈 2푼(심을 버린다), 행인 7푼(물에 담가 끝과 껍질을 버리고 누렇게 볶는다), 비파엽 1장(털을 솔로 벗기고 빽빽이 바르며(密塗) 누렇게 굽는다).
水一碗 , 煎六分 , 頻頻二三次滾熱服 。 痰多加貝母 、 栝蔞 , 血枯加生地黃 , 熱甚加犀角 、 羚羊角 , 或加牛黃 。
물 1사발에 6분 분량이 되게 달여 자주 나누어 두세 번 뜨겁게 복용한다. 담이 많으면 패모·괄루를 더하고, 혈이 마르면 생지황을 더하며, 열이 심하면 서각·영양각을 더하거나 우황을 더한다.
喻氏云 : 諸氣膹郁之屬於肺者 , 屬於肺之燥也 。 而古今治氣鬱之方 , 用辛香引氣 , 絕無一方治肺之燥者 。 諸痿喘嘔之屬於上者 , 亦屬於肺之燥也 。 而古今治法 , 以痿嘔屬陽明 , 以喘屬肺 , 是則嘔與痿 , 屬之中下 , 而惟喘屬之上矣 。 所以千百方中 , 亦無一方及於肺之燥也 。 即喘之屬於肺者 , 非表即下 , 非行氣即瀉氣 , 間有一二用潤劑者 , 又不得其肯綮 。 總之 ,《 內經 》 脫誤秋傷於燥一氣 , 指長夏之濕為秋之燥 , 後人不能更端其說 。 置此一氣於不理 , 即或明知理燥 , 而用藥夾雜 , 茫無定法 。 今擬此方 , 命名清燥救肺湯 , 以胃氣為主 , 土為金之母也 。 天門冬雖能保肺 , 而味苦氣滯 , 恐反傷胃阻痰 , 故不用 。 知母能滋腎水 , 清肺金 , 亦以苦而不用 , 至如苦寒降火正治之藥 , 尤在所忌 。 蓋肺金自至於燥 , 所存陰氣 , 不過一線 , 償更以苦寒下其氣 , 傷其胃 , 其人尚有生理乎 。 誠仿此增損 , 以救肺燥變生諸證 , 如沃焦救焚 , 不厭其頻 , 庶克有濟耳 。
유씨는 말하였다. ‘여러 기의 분울이 폐에 속하는 것은 폐의 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금에 기울을 치료하는 처방은 신향으로 기를 이끌 뿐 폐의 조를 치료하는 것은 한 처방도 없다. 여러 위·천·구가 위에 속하는 것도 폐의 조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금의 치료법은 위·구를 양명에 속시키고 천을 폐에 속시키니, 그렇다면 구와 위는 중하에 속하고 오직 천만 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백 처방 가운데 역시 폐의 조에 미친 것은 하나도 없다. 천이 폐에 속하는 경우조차 발표 아니면 하법이고 행기 아니면 사기이다. 간혹 한두 가지 윤제를 쓴 것도 다시 그 핵심을 얻지 못하였다. 요컨대 《내경》에 가을에 조에 상한다는 한 기가 탈오되어 장하의 습을 가을의 조로 지목하였는데, 후인들이 그 설명의 실마리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 한 기를 돌보지 않았다. 혹 조를 다스려야 함을 분명히 알아도 약을 뒤섞어 써서 아득히 정해진 법이 없었다. 이제 이 처방을 마련하여 청조구폐탕이라 이름하고 위기를 위주로 삼았으니 토는 금의 어미이기 때문이다. 천문동은 폐를 보호할 수 있지만 맛이 쓰고 기가 체하므로 도리어 위를 상하고 담을 막을까 염려하여 쓰지 않는다. 지모는 신수를 자양하고 폐금을 맑힐 수 있지만 역시 쓴맛 때문에 쓰지 않는다. 고한으로 화를 내리는 정치의 약은 더욱 꺼리는 것이다. 폐금이 조한 데 이르면 남은 음기는 한 가닥에 지나지 않는데, 다시 고한으로 그 기를 내리고 위를 상한다면(償更), 그 사람에게 아직 살아갈 이치가 있겠는가? 참으로 이를 본떠 가감하여 폐조가 변화시킨 여러 증을 구하되, 탄 것을 적시고 불붙은 것을 구하듯 자주 함을 싫어하지 않아야 거의 구제할 수 있다.’
此治肺家熱燥之憤郁與喘與咳 , 最為中肯 。 痿則肺痿之熱者可治 , 肺冷之痿則否 。 嘔雖非肺病 , 而以治熱嘔亦得 。 喻氏欲補病機之關 , 而不改其文 。 故即以此兩言為方柄 , 切勿認諸為統詞 , 而誤施於他證 。 愚增之以咳者 , 病機不言咳 , 而經固有之 。 且正合此方也 。 拙擬
이는 폐가의 열조로 인한 분울·천·해를 치료하는 데 가장 정곡을 찌른다. 위라면 폐위 중 열한 것은 치료할 수 있지만 폐랭의 위는 그렇지 않다. 구는 폐병은 아니지만 열구를 치료하는 데 써도 된다. 유씨는 병기의 관(關)을 보충하려 하면서 그 문장은 고치지 않았으므로 이 두 말을 처방의 방병(方柄)으로 삼았다. ‘제(諸)’를 통괄하는 말로 여겨 다른 증에 잘못 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해를 더한 것은 병기에서는 해를 말하지 않았지만 경에는 본래 있으며, 또 바로 이 처방과 맞기 때문이다. 나의 견해.
土為金母 , 肺主降 , 降即入胃 。 故肺熱者胃亦熱 , 桑葉 、 石膏 、 枇杷葉 , 能清肺胃之熱而解之於上 。 燥必傷陰 , 人參 、 胡麻 、 麥冬 、 阿膠 , 益陰而潤液 。 佐以杏仁通肺絡 , 甘草和胃氣 , 清燥之源善燥之後 。 而鬱者達 , 逆者順 , 枯者滋矣 。 拙擬
토는 금의 어미이고 폐는 하강을 주관하니 하강하면 곧 위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폐가 열하면 위도 열하다. 상엽·석고·비파엽은 폐위의 열을 맑히고 위에서 풀 수 있다. 조는 반드시 음을 상하므로 인삼·호마·맥문동·아교로 음을 더하고 액을 윤택하게 한다. 행인으로 폐락을 통하게 하고 감초로 위기를 조화시켜 보좌하면, 조의 근원을 맑히고 조의 뒤를 잘 수습하여 울한 것은 통달하고 역한 것은 순해지며 마른 것은 자윤된다. 나의 견해.
加減桑菊飲 治秋燥令行 , 餘熱轉盛 , 喘逆咳嗽 , 口乾微渴 。
가감상국음. 추조가 때를 주관하고 남은 열이 더욱 성하여 천역·해수하고 입이 마르며 조금 갈증나는 것을 치료한다.
杏仁(錢半 , 去皮尖 , 研) 霜桑葉(錢半) 薄荷葉(四分) 連翹(一錢) 黃菊花(錢半) 生甘草(五分) 生石膏(二錢) 焦山梔(一錢) 甜水梨肉(三錢)
행인 1돈 반(껍질과 끝을 버리고 간다), 서리 맞은 상엽 1돈 반, 박하엽 4푼, 연교 1돈, 황국화 1돈 반, 생감초 5푼, 생석고 2돈, 초산치 1돈, 단 수리의 과육 3돈.
水二杯 , 煮取一杯 , 日二服 。
물 2잔에 달여 1잔을 취하고 하루 두 번 복용한다.
此吳鞠通仿喻氏之方 , 以辛涼輕劑 , 治外感秋燥之喘咳 。 秋燥輕病 , 何煩複出 。 惟喻氏選用仲景復脈湯中五物 , 泄邪而即重補其陰 , 意在急救 。 此則但取清燥 , 燥除而肺自和 , 蓋其病尤輕也 。 拙擬
이는 오국통이 유씨의 처방을 본떠 신량한 경제로 외감 추조의 천해를 치료한 것이다. 추조는 가벼운 병인데 어찌 번거롭게 거듭 내놓았는가? 유씨는 중경 복맥탕 가운데 다섯 약을 골라 써서 사를 내보내면서 곧 음을 보하는 것을 중히 하였으니 뜻이 급히 구하는 데 있다. 이것은 다만 조를 맑히는 것을 취하여 조가 없어지면 폐가 저절로 조화되게 하였으니 병이 더욱 가볍기 때문이다. 나의 견해.
原方用杏桑荷翹 , 理肺家之淺邪極合 。 至苦梗 , 則氣已上逆 , 不宜再提 , 咳嗽亦忌 。 葦根止渴 , 是啟水精上滋 , 此證不必乞援於水 , 二味於泄邪潤液 , 均無所取 , 愚故刪之 。 而加以石膏 、 梨肉 、 山梔 , 石膏解飢而尤除胃熱 。 梨肉協菊花 、 甘草 , 清而帶補 , 亦略有麥冬阿膠之益 。 山梔 , 則搜餘邪而驅之於下也 。 拙擬
원방이 행인·상엽·박하·연교로 폐가의 얕은 사를 다스리는 것은 지극히 맞다. 고경에 이르면 기가 이미 위로 거슬렀으므로 다시 끌어올려서는 안 되고 해수에도 꺼린다. 위근이 갈증을 멎게 하는 것은 수정이 위로 자윤하도록 여는 것인데, 이 증은 수에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 두 약은 사를 내보내고 액을 윤택하게 하는 데 모두 취할 바가 없으므로 내가 뺐다. 대신 석고·배 과육·산치자를 더하였다. 석고는 굶주림을 풀고(解飢) 특히 위열을 제거한다. 배 과육은 국화·감초와 협력하여 맑히면서 보하기도 하므로 맥문동·아교의 이익도 조금 있다. 산치자는 남은 사를 찾아 아래로 몰아낸다. 나의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