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溫一證 , 眾說紛歧 , 莫衷一是 。《 傷寒論 》 若發汗已 , 身灼熱者 , 名曰風溫一條 , 注家或與上條發熱而渴 , 不惡寒者為溫病連講 , 或本條自為講 , 竊謂玩若發汗已四字語氣 , 自是從上文說下 , 否則無根 , 即千金萎蕤湯 , 為此條補治法 。 其先若非伏氣發溫 , 亦必不如是用藥 , 當以此條與上條連講為是 , 此一說也 。《 傷寒序例 》, 謂陽脈浮滑 , 陰脈濡弱者 , 更遇於風 , 變為風溫 。 尤在涇以前風未絕 , 後風繼之 , 以陽遇陽 , 相得益熾釋之 。 與仲景之言異此二說也 。 陶節庵輩 , 以素傷於風 , 復傷於熱 , 風熱相搏 , 即為風溫 。 此三說也 , 近人以冬溫春溫 , 吸受風溫 , 先犯手太陰者為風溫 , 此四說也 。 竊嘗綜而論之 。 第一說 , 是誤汗後病變之名 , 未可遂據為風溫之本病 。 第二說 , 何謂更遇 , 並未指明 , 尤氏之釋 , 亦頗齟齬不安 , 若云誤汗後更遇於風 , 則仲景又何嘗有此文 , 故序例可置不議 。 第三說 , 風熱相搏極是 , 而必謂先傷後傷 , 學者若不知活看 , 難免刻舟求劍之弊 。 第四說 , 以吸受溫風為風溫 , 風與溫不分先後 , 雖似稍戾於古 , 然治法實無二致 , 此葉天士 、 陳平伯輩論風溫皆是 , 可取以為則也 。 拙擬
풍온 한 증은 여러 설이 어지럽게 갈려 어느 것이 옳은지 정하지 못하였다. 《상한론》의 ‘발한한 뒤 몸이 타는 듯 뜨거우면 풍온이라 한다’는 한 조문을 주석가들은 혹 윗조문의 ‘발열하고 갈증나며 오한하지 않으면 온병이다’와 연결하여 풀이하고, 혹 이 조문 자체만 풀이한다. 내가 생각건대 ‘약발한이(若發汗已)’ 네 글자의 어기를 살피면 본래 윗글을 이어 내려온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근거가 없다. 곧 《천금》의 위유탕도 이 조문을 위하여 치료법을 보충한 것이다. 처음에 복기가 발하여 온병이 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이런 약을 쓰지 않았을 것이므로, 이 조문을 윗조문과 이어 풀이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첫째 설이다. 《상한서례》는 양맥이 부활하고 음맥이 유약한 사람이 다시 풍을 만나면 변하여 풍온이 된다고 하였다. 우재경은 앞의 풍이 끊어지기 전에 뒤의 풍이 이어져 양이 양을 만나 서로 어울려 더욱 치성해진다고 풀이하였으니 중경의 말과 다르다. 이것이 둘째 설이다. 도절암 등은 평소 풍에 상하였다가 다시 열에 상하여 풍열이 서로 부딪치면 곧 풍온이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셋째 설이다. 근래 사람들은 겨울이나 봄의 온난함에 풍온을 들이마셔 먼저 수태음을 범하는 것을 풍온이라 한다. 이것이 넷째 설이다.
내가 일찍이 이를 종합하여 논하였다. 첫째 설은 잘못 발한한 뒤 병이 변한 이름이므로 곧바로 풍온의 본병이라고 근거 삼을 수 없다. 둘째 설의 ‘다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지적하지 않았으며, 우씨의 풀이도 꽤 어긋나 편안하지 않다. 잘못 발한한 뒤 다시 풍을 만났다는 것이라면 중경에게 언제 그런 문장이 있었는가? 그러므로 서례는 제쳐 두고 논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설의 풍열이 서로 부딪친다는 것은 매우 옳지만 반드시 먼저 상하고 나중에 상한다고 하니, 배우는 이가 활발하게 볼 줄 모르면 각주구검의 폐단을 면하기 어렵다. 넷째 설은 온풍을 들이마신 것을 풍온이라 하여 풍과 온의 선후를 나누지 않는다. 옛것과 조금 어긋나는 듯하지만 치료법은 실제로 다르지 않으니, 엽천사·진평백 등의 풍온론이 모두 이것이며 취하여 법칙으로 삼을 수 있다. 나의 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