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神農遍嘗百藥 , 以辨五苦六辛之味 , 逮伊尹而湯液之劑備 。 黃帝欲創九針 , 以治三陰三陽之疾 , 得岐伯而砭艾之法精 。 雖大聖人有意於拯民之瘼 , 必待賢明博通之臣 , 或為之先 , 或為之後 , 然後聖人之所為 , 得行於永久也 。 醫家之務 , 經是二聖二賢而能事畢矣 。 後之留意於方術者 , 苟知藥而不知灸 , 未足以盡治療之體 : 知灸而不知針 , 未足以極表裡之變 , 如能兼是聖賢之縕者 , 其名醫之良乎 !
옛날 신농은 온갖 약을 두루 맛보아 다섯 쓴맛과 여섯 매운맛을 구별하였으며 이윤에 이르러 탕액의 약제가 갖추어졌다. 황제는 구침을 창안하여 삼음·삼양의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였으며 기백을 얻어 폄석과 뜸의 법이 정밀해졌다. 큰 성인이 백성의 병고를 구하려는 뜻을 지녔더라도 반드시 어질고 밝으며 널리 통달한 신하가 앞서거나 뒤따르기를 기다린 뒤에야 성인이 행한 것이 영구히 시행될 수 있다. 의가의 일은 이 두 성인과 두 현인을 거쳐 능히 할 일을 다하였다. 뒤에 방술에 뜻을 둔 사람이 약을 알면서 뜸을 모르면 치료의 전체를 다하기 부족하고, 뜸을 알면서 침을 모르면 표리의 변화를 다하기 부족하다. 이 성현들의 깊은 뜻을 겸할 수 있다면 명의 가운데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有唐真人孫思邈者 , 乃其人也 。 以上智之材 , 抱康時之志 , 當太宗治平之際 , 思所以佐迺後庇民之事 , 以謂上醫之道 , 真聖人之政而王官之一守也 。 而乃祖述農 、 黃之旨 , 發明岐 、 摯之學 , 經掇扁鵲之 《 難 》, 方採倉公之 《 禁 》, 前仲景 《 黃素 》, 元化 《 綠袟 》, 葛仙翁之 《 必效 》, 胡居士之 《 經驗 》, 張苗之 《 藥對 》, 叔和之 《 脈法 》, 皇甫謐之 《 三部 》, 陶隱居之 《 百一 》。 自余郭玉 、 範汪 、 僧坦 、 阮炳 , 上極文字之初 , 下訖有隋之世 , 或經或方 , 無不採摭 。 集諸家之所秘要 , 去眾說之所未至 。 成書一部 , 總三十卷 , 目錄一通 。 臟腑之論 , 針艾之法 , 脈證之辨 , 食治之宜 。 始婦人而次嬰孺 ; 先腳氣而後中風 、 傷寒 、 癰疽 、 消渴 、 水腫 ; 七竅之痾 、 五石之毒 、 備急之方 、 養性之術 , 總篇二百三十二門 , 合方論五千三百首 , 莫不十全可驗 , 四種兼包 。 厚德過於千金 , 遺法傳於百代 。 使二聖二賢之美 , 不墜於地 , 而世之人得以階近而至遠 , 上識於三皇之奧者 , 孫真人善述之功也 。
당나라의 진인 손사막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지극히 지혜로운 재주로 시대를 편안하게 할 뜻을 품고 태종이 다스려 평안한 때를 맞아, 임금을 도와 백성을 감싸는 일을 생각하였다. 상의의 도는 참으로 성인의 정치이며 왕관이 맡은 일의 하나라고 여겼다. 이에 신농·황제의 뜻을 이어 서술하고 기백·지의 학문을 밝혀, 경에서는 편작의 『난경』을 가려 모으고 처방에서는 창공의 『금』을 채택하였다. 앞선 중경의 『황소』, 원화의 『녹질』, 갈선옹의 『필효』, 호거사의 『경험』, 장묘의 『약대』, 숙화의 『맥법』, 황보밀의 『삼부』, 도은거의 『백일』을 모았다. 그 밖의 곽옥·범왕·승탄·완병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문자가 생긴 처음을 다하고 아래로는 수나라 시대까지, 경이든 방이든 채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러 집안이 비장한 요점을 모으고 여러 설의 미진한 점을 제거하여 책 한 부를 이루었으니 모두 30권이고 목록 한 통이다. 장부의 논의, 침과 뜸의 법, 맥증의 분별, 식치의 마땅함을 담았다. 부인에서 시작하여 영유아를 다음에 두고, 각기를 앞세우고 중풍·상한·옹저·소갈·수종을 뒤에 두었다. 칠규의 병, 오석의 독, 비급의 처방, 양성의 술법까지 모두 232문이며 처방과 논의는 합하여 5,300수이다. 십전하여 검증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네 종류를 함께 포괄한다. 두터운 덕은 천금을 넘고 남긴 법은 백대에 전해진다. 두 성인과 두 현인의 아름다움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세상 사람이 가까운 데서 계단을 밟아 먼 데에 이르며 위로 삼황의 깊은 뜻을 알게 한 것은 손진인이 잘 이어 서술한 공이다.
然以俗尚險怪 , 我道純正 , 不述剖腹易心之異 ; 世務徑省 , 我書浩博 , 不可道聽塗說而知 , 是以學寡其人 , 寢以紛靡 ; 賢不繼世 , 簡編斷缺 ; 不知者以異端見黜 , 好之者以闕疑輟功 。 恭惟我朝以好生為德 , 以廣愛為仁 , 乃詔儒臣 , 正是墜學 。 臣等術謝多通 , 職專典校 , 於是請內府之秘書 , 探 《 道藏 》 之別錄 , 公私眾本 , 搜訪幾遍 , 得以正其訛謬 , 補其遺佚 。 文之重複者削之 , 事之不倫者緝之 , 編次類聚 , 朞月功至 。 綱領雖有所立 , 文義猶或疑阻 。 是用端本以正末 , 如 :《 素問 》、《 九墟 》、《 靈樞 》、《 甲乙 》、《 太素 》、《 巢源 》、 諸家 《 本草 》、 前古脈書 、《 金匱玉函 》、《 肘後備急 》、 謝士秦 《 刪繁方 》、 劉涓子 《 鬼遺論 》 之類 , 事關所出 , 無不研核 。 尚有所闕 , 而又溯流以討源 , 如 :《 五鑑經 》、《 千金翼 》、《 崔氏纂要 》、《 延年秘錄 》,《 正元廣利 》、《 外臺秘要 》、《 兵部手集 》、 夢得 《 傳信 》 之類 。 凡所派別 , 無不考理 , 互相質正 , 反覆稽參 ; 然後遺文疑義 , 煥然悉明 。 書雖是舊 , 用之惟新 , 可以濟函靈 , 裨乃聖好生之治 ; 可以傳不朽 , 副主上廣愛之心 ; 非徒為太平之文致 , 寔可佐皇極之錫福 。 校讎既成 , 繕寫伊始 , 恭以上進 , 庶備親覽 。
그러나 세속은 기이하고 괴이한 것을 숭상하는데 우리의 도는 순정하여 배를 가르고 심장을 바꾸는 기이함을 서술하지 않는다. 세상은 간단한 것을 추구하지만 우리의 책은 넓고 방대하여 길에서 주워들은 말로 알 수 없으므로 배우는 사람이 적고 점점 어지럽게 흩어졌다. 현인이 세대마다 이어지지 않아 책장이 끊어지고 빠졌으며, 모르는 사람은 이단으로 물리치고 좋아하는 사람은 의심나는 결락 때문에 공부를 그쳤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조정은 생명을 좋아함을 덕으로 삼고 널리 사랑함을 인으로 삼아 유신에게 명하여 이 쇠한 학문을 바로잡게 하였다. 신들은 술법이 두루 통달함에 미치지 못하나 맡은 직분이 전교이므로 내고의 비서를 청하고 『도장』의 별록을 찾아 공사 여러 판본을 거의 두루 수소문하였다. 이로써 잘못을 바로잡고 빠진 것을 보충하였으며, 글이 중복된 것은 덜고 일이 순서에 맞지 않는 것은 엮어 종류별로 편차하니 일 년 만에 공을 이루었다. 강령은 세웠으나 문장의 뜻에 여전히 의심과 막힘이 있었다. 이에 근본을 바로잡아 말단을 정리하고자 『소문』·『구허』·『영추』·『갑을』·『태소』·『소원』과 여러 집안의 『본초』, 옛 맥서, 『금궤옥함』·『주후비급』, 사사진의 『산번방』, 유연자의 『귀유론』 등을 관련 출처마다 연구하고 검토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여전히 빠진 것이 있어 다시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찾았으니 『오감경』·『천금익』·『최씨찬요』·『연년비록』·『정원광리』·『외대비요』·『병부수집』과 몽득의 『전신』 등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모두 상고하고 따져 서로 질정하며 거듭 비교하였다. 그런 뒤에야 남은 글과 의심스러운 뜻이 환히 모두 밝혀졌다. 책은 비록 옛것이지만 쓰임은 새로워 생명 있는 이들을 구제하고 성상의 생명을 좋아하는 정치를 도울 수 있으며, 불후하게 전하여 주상의 널리 사랑하는 마음에 부응할 수 있다. 태평의 문채를 이루는 데 그치지 않고 실로 황극이 복을 내리는 일을 도울 수 있다. 교감을 이미 마치고 정서하기 시작하여 삼가 올리오니 친람에 갖추어지기를 바란다.
太子右贊善大夫臣高保衡
태자우찬선대부 신 고보형
尚書都官員外郎臣孫奇
상서도관원외랑 신 손기
尚書司封郎中充秘閣校理臣林億等謹上 。
상서사봉낭중으로 비각교리를 맡은 신 임억 등이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