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原機啟微 》 一書 , 敕山老人所著也 。 敕山吳人 , 生勝國時 , 卒於洪武初 , 少受書碧山湯公 , 得其疏通知遠之旨 , 好積墳素 , 多至五千卷 , 為重屋棲之 。 恣其探討 , 以才博聞 , 或勸之仕 , 則曰富貴有命 , 不可強也 。 時元季崩剝 , 意不欲仕亂世 , 故謾應云 , 晚置別墅於敕山 , 逍遙物外 , 自稱敕山老人 , 人亦隨稱之 。 敕山嘗讀 《 黃帝內經 》, 慨然嘆曰 : 窮而在下 , 可以濟人利物者 , 其惟醫乎 。 乃益發古今方書 , 研究而會通之 。 不數年 , 盡能工其術 。 其治人 , 無問貴賤男女 , 內外大小 , 凡所治咸效 , 專以慈仁為意 , 未嘗邀報謝 , 故施惠博而道益尊 。 浙河之西 , 其聲鍧然震也 。 是書載治眼一科 , 書凡二卷 。 上卷論病疾之原 , 下卷論方劑之宜 , 以及君臣佐使 、 從逆反正之義 。 其說甚明 , 使人可按疾而治 。 治罔不奇效者 , 敕山之用心如此 , 可謂仁矣 。 他所著方書 , 並行於世 , 不特專是科也 。 今之為醫者 , 大抵守師說 , 如傷寒 、 內傷 、 帶下 、 小兒 , 各專門自高 , 殊不能相通 , 此豈可與論玄命之奧哉 。 治眼絕無古傳方 , 雖張仲景 、 李明之諸公 , 論醫之詳 , 庶幾神妙 , 而於是猶略略也 。 後之學者無所師 , 故目疾為最難治 。 夫醫者 , 意也 , 非其心明乎天人之際 , 察乎古今之變 , 卓然有所見焉 , 烏可以易言哉 。 是書析理精明 , 法制具備 , 文詞爾雅 , 成一家言 , 殆有超乎方術之外者 , 雖達之為政可也 。 敕山之學 , 其能以涯涘窺乎 。 予舊藏寫本 , 顧多訛謬 , 不敢輕以試人 。 南京太醫院院判薛公新甫見之曰 : 此書予求之久矣 , 今幸見之先生所 , 請梓焉以廣其傳 , 仍撰次己所見聞為一卷附於後 。 薛公亦吳人 , 以醫顯 , 生平著述甚富 , 藏之尚方 , 副在家集 , 能行其學者也 。 此書之傳絕 , 且百餘年 , 至新甫而復行 , 後之人日蒙利焉 , 新甫可謂同敕山之用心矣 。 敕山姓倪氏 , 名維德 , 其行事具宋太史墓銘 , 予但序是書之始末云 。
『원기계미』라는 책은 칙산노인이 지은 것이다. 칙산은 오 땅 사람으로, 전 왕조 때 태어나 홍무 초년에 세상을 떠났다. 젊어서 벽산 탕공에게 글을 배워 소통하고 멀리 아는 뜻을 얻었다. 옛 서적을 모으기 좋아하여 많게는 5천 권에 이르렀으며, 이층집을 지어 보관하였다. 마음껏 탐구하여 재주와 견문을 넓혔다. 누군가 벼슬하기를 권하면 “부귀에는 명이 있으니 억지로 구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당시 원나라 말기로 나라가 무너져 가고 있어 어지러운 세상에서 벼슬할 뜻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둘러대어 대답한 것이다. 만년에 칙산에 별장을 마련하여 세상 밖에서 소요하며 스스로 칙산노인이라 불렀고, 사람들도 따라서 그렇게 불렀다.
칙산이 일찍이 『황제내경』을 읽고 개연히 탄식하기를 “궁하여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을 구제하고 만물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술뿐이겠구나.”라고 하였다. 이에 고금의 방서를 더욱 펼쳐 연구하고 회통하였다. 몇 해 지나지 않아 그 의술에 모두 능숙해졌다. 사람을 치료할 때 귀천과 남녀, 내외와 대소를 가리지 않아 치료하는 것마다 모두 효과가 있었으며, 오직 자애와 인을 뜻으로 삼아 보답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은혜를 널리 베풀수록 그 도가 더욱 존중되었고, 절하 서쪽에 그 명성이 우렁차게 떨쳤다.
이 책에는 눈을 치료하는 한 과를 실었으며 모두 두 권이다. 상권에서는 질병의 근원을 논하고, 하권에서는 방제의 마땅함을 논하며, 군신좌사와 종역반정의 뜻에까지 미쳤다. 설명이 매우 분명하여 사람들이 병을 살펴 치료할 수 있게 하였고, 치료하면 기이한 효과가 없는 경우가 없었다. 칙산이 마음을 쓴 것이 이와 같으니 인하다고 할 만하다. 그가 지은 다른 방서도 모두 세상에 행해지고 있으니 특별히 이 과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의술을 하는 자들은 대개 스승의 설만 지켜 상한·내상·대하·소아와 같은 분야에서 각자 전문을 내세워 스스로 높이면서 전혀 서로 통하지 못하니, 어찌 이들과 생명의 깊은 오묘함을 논할 수 있겠는가. 눈을 치료하는 데에는 옛날부터 전해 온 처방이 전혀 없다. 비록 장중경과 이명지 같은 여러 공이 의술을 상세히 논하여 거의 신묘한 경지에 이르렀어도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소략하였다. 뒤의 배우는 자들이 본받을 데가 없으므로 눈병이 가장 치료하기 어렵다. 의란 뜻이다. 마음으로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밝고 고금의 변화를 살펴 우뚝하게 깨달은 바가 있지 않다면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이치를 정밀하고 명료하게 분석하고 법제가 갖추어져 있으며 문사가 고상하여 일가의 말을 이루었으니, 거의 방술의 밖으로 뛰어넘은 바가 있다. 비록 이것을 확장하여 정치를 하더라도 가능할 것이다. 칙산의 학문을 어찌 그 끝을 헤아려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에 필사본을 소장하였으나 잘못된 곳이 많아 감히 가볍게 사람에게 시험하지 못하였다. 남경 태의원 원판 설공 신보가 이를 보고 “이 책은 제가 구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제 다행히 선생께서 소장하신 것을 보았으니, 청컨대 판각하여 널리 전하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어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순서대로 엮어 한 권으로 만들어 뒤에 붙였다.
설공도 오 땅 사람으로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평생 저술이 매우 많아 상방에 소장하고 부본은 집안 문집에 두었으니, 자신의 학문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의 전승이 끊어진 지 거의 백여 년이 되었는데 신보에 이르러 다시 행해져 후세 사람들이 날마다 이로움을 입게 되었으니, 신보는 칙산과 마음 씀씀이가 같다고 할 만하다. 칙산은 성이 예씨이고 이름은 유덕이며, 행적은 송태사의 묘명에 갖추어져 있다. 나는 다만 이 책의 시말을 서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