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機之切於人身者,水火而已矣。水流溼,火就燥。水柔弱,火猛烈。水泛溢於表裏,火遊行於三焦。拯溺救焚,可無具以應之乎?經謂二陽結謂之消,三陰結謂之水,手足陽明熱結而病消渴。火之爲害,已論之矣。而三陰者,手足太陰脾肺二髒也。胃爲水穀之海,水病莫不本之於胃經,乃以之屬脾肺者,何耶?使足太陰脾足以轉輸水精於上,手太陰肺足以通調水道於下,海不揚波矣。惟脾肺二髒之氣結而不行,後乃胃中之水日蓄,浸灌表裏,無所不到也,是則脾肺之權可不伸耶?然其權尤重於腎。腎者胃之關也,腎司開闔。腎氣從陽則開,陽太盛則關門大開,水直下而爲消;腎氣從陰則闔,陰太盛則關門常闔,水不通而爲腫。經又以腎本肺標,相輸俱受爲言,然則水病以脾肺腎爲三綱矣。於中節目,尤難辨晰。《金匱》分五水之名及五臟表裏主病,徹底言之。後世漫不加察,其治水輒宗霸術,不能行所無事,可謂智乎?五水者,風水、皮水、正水、石水、黃汗也。風水,其脈自浮,外證骨節疼痛,惡風,渾是傷風本證,從表治之宜矣。皮水,其脈亦浮,外證胕腫,按之沒指,不惡風,其腹如鼓不渴,當發其汗。證不同而治同,其理安在?
병기(病機)가 인체에 절실한 것은 수화(水火)뿐이다.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붙는다. 물은 부드럽고 약하며, 불은 맹렬하다. 물은 표리(表裏)에 넘쳐흐르고, 불은 삼초(三焦)를 유행한다. 빠지는 사람을 구하고 불타는 것을 구하는 데, 어찌 갖추어 대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經)에서 이르길 두 양경(陽經)이 결하면 소(消)라 하고, 세 음경(陰經)이 결하면 수(水)라 하며, 수족양명(手足陽明)에 열이 결하여 소갈(消渴)을 앓는다고 하였다. 불의 해로움은 이미 논하였다. 그리고 세 음경이란 수족태음(手足太陰) 비(脾)와 폐(肺) 두 장(臟)이다. 위(胃)는 수곡(水穀)의 바다이니, 수병(水病)은 위경(胃經)에 근본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그것을 비폐(脾肺)에 속한 것은 어째서인가? 족태음비(足太陰脾)가 위로 수정(水精)을 전수(轉輸)하기에 충분하고, 수태음폐(手太陰肺)가 아래로 수도를 통조(通調)하기에 충분하다면, 바다(위)는 물결이 일지 않을 것이다. 오직 비폐 두 장의 기(氣)가 결하여 행하지 못하면, 뒤에 위중의 물이 날로 쌓여 표리에 침관(浸灌)하여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이렇다면 비폐의 권한을 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권한이 더욱 신(腎)에게 무겁다. 신은 위의 관문(關門)이니, 신은 개합(開闔)을 주관한다. 신기(腎氣)가 양(陽)을 따르면 열리고, 양이 너무 성하면 관문이 크게 열려 물이 곧장 내려가서 소(消)가 되고, 신기가 음(陰)을 따르면 닫히고, 음이 너무 성하면 관문이 항상 닫혀 물이 통하지 않아서 종(腫)이 된다. 경에서 또 신(腎)을 본(本), 폐(肺)를 표(標)라 하여 서로 수(輸)하여 함께 받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수병(水病)은 비폐신(脾肺腎)을 세 강령(三綱)으로 삼는다. 그 가운데 절목(節目)은 더욱 분별하기 어렵다. 《금궤(金匱)》에서 오수(五水)의 이름과 오장(五臟)의 표리(表裏) 주병(主病)을 나누어 철저히 말하였다. 후세에서 함부로 살피지 않고, 그 물을 다스림에 항상 패술(霸術)을 따를 뿐, 무사(無事)를 행할 수 없으니, 가히 지혜롭다 할 수 있겠는가? 오수(五水)는 풍수(風水), 피수(皮水), 정수(正水), 석수(石水), 황한(黃汗)이다. 풍수(風水)는 그 맥(脈)이 스스로 부(浮)하고, 외증(外證)은 골절(骨節)이 동통(疼痛)하고 오풍(惡風)하니, 전혀 상풍(傷風)의 본증(本證)이라, 표(表)에서 다스림이 마땅하다. 피수(皮水)는 그 맥(脈) 또한 부(浮)하고, 외증은 부종(胕腫)하며 누르면 손가락이 빠지고, 오풍(惡風)하지 않으며, 그 배가 북처럼 부르고 갈증이 없으니, 마땅히 그 땀을 내야 한다. 증(證)이 다르고 치료가 같은데, 그 이치는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