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图书集成医部全录卷三百四十四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三百四十四
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권 344
傷寒門
상한문
丹溪心法 【 元?朱震亨】
단계심법 【 원?주진형 】
傷寒傷風
상한과 상풍은
凡證與傷寒相類者極多,皆雜證也,其詳出《內經》熱論。自長沙以下諸家推明,甚至千世之下,能得其粹者,東垣也。
무릇 증상이 상한과 유사한 것이 매우 많으나, 모두 잡증(雜證)이며, 그 자세한 내용은 《내경(內經)》의 열론(熱論)에 나온다. 장사(長沙, 장중경) 이하 여러 의가들이 밝혀 설명하였고, 천 년이 지난 후에 그 정수를 얻은 사람은 동원(東垣)이다.
其曰,內傷極多,外傷間而有之,此發前人之所未發。
그가 말하기를, '내상(內傷)이 매우 많고, 외상(外傷, 외감)은 드물게 있다' 하였으니, 이는前人들이 미처 밝히지 못한 것을 발명한 것이다.
後人徇俗,不能真切,雷同指爲外傷,極謬。
후세 사람들은 세속에 따라 진정으로 분별하지 못하고, 똑같이 외상(外傷)으로 지목하니, 지극히 잘못되었다.
其或可者,蓋亦因其不敢放肆,而多用和解及平和之藥散之耳。若粗率者,則必殺人。
그중에 간혹 맞는 경우가 있는 것은, 대개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화해(和解) 및 평화로운 약을 많이 써서 흩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잡하고 경솔하게 한다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
初有感冒等輕證,不可便認作傷寒妄治。
처음에 감모(感冒) 등의 가벼운 증상이 있으면, 곧바로 상한(傷寒)으로 인식하여 함부로 치료해서는 안 된다.
西北二方,極寒肅殺之地,故外感甚多;東南二方溫和之地,外傷極少。
서북 두 방향은 지극히 추워서 만물을 얼게 하는 땅이므로 외감이 매우 많고, 동남 두 방향은 온화한 땅이므로 외상이 매우 적다.
雜病亦有六經所見之證,故世俗混而難別。
잡병(雜病)에도 또한 육경(六經)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있으므로, 세속에서는 혼잡하여 분별하기 어렵다.
正治溫散,宜桂枝湯、四逆湯輩,甚者三建湯、霹靂散。
정상적인 치료법으로 온산(溫散)을 하려면 계지탕, 사역탕 같은 것을 쓰고, 심하면 삼건탕, 벽력산을 쓴다.
從治用熱藥加涼劑引之,或熱藥須俟冷飲最妙。
순치(從治)로는 열약(熱藥)에 양제(涼劑)를 더하여 인도하거나, 혹은 열약을 반드시 차게 식혀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經曰從而逆之,此之謂也。
경전에서 '순종하면서 거스른다'고 말한 것이 이를 이른다.
反攻用烏頭煎之類。
반공(反攻)에는 오두전(烏頭煎) 같은 것을 쓴다.
傷風屬肺者,多宜辛溫或辛涼之劑散之。
상풍(傷風)이 폐(肺)에 속한 경우는 대개 신온(辛溫)이나 신량(辛涼)한 약제(藥劑)로 흩어야 한다.
戴雲:新軟嗽鼻塞聲重者是也。
대원례(戴元禮)가 이르기를: 새로 기침이 나고 콧물이 멎으며 목소리가 무거운 것이 이것이다.
溯洄集 【 元?王履】
소회집 【 원나라?왕리(王履)】
仲景傷寒立法考
중경 상한 입법 고
讀仲景之書,當求其所以立法之意,苟得其所以立法之意,則知其書足以爲萬世法,而後人莫能加,莫能外矣。苟不得其所以立法之意,則疑信相雜,未免通此而礙彼也。
讀仲景之書,當求其所以立法之意,苟得其所以立法之意,則知其書足以爲萬世法,而後人莫能加,莫能外矣。苟不得其所以立法之意,則疑信相雜,未免通此而礙彼也。
嗚呼!自仲景以來,發明其書者,不可以數計,然其所以立法之意,竟未聞有表章而示人者,豈求之而不得之歟?將相循習而不求歟?抑有之而餘未之見歟?予雖不敏,僭請陳之。
嗚呼!自仲景以來,發明其書者,不可以數計,然其所以立法之意,竟未聞有表章而示人者,豈求之而不得之歟?將相循習而不求歟?抑有之而餘未之見歟?予雖不敏,僭請陳之。
夫傷於寒,有即病者焉,有不即病者焉。即病者,發於所感之時;不即病者,過時而發於春夏也。即病謂之傷寒,不即病謂之溫與暑。
夫傷於寒,有即病者焉,有不即病者焉。即病者,發於所感之時;不即病者,過時而發於春夏也。即病謂之傷寒,不即病謂之溫與暑。
夫傷寒溫暑,其類雖殊,其所受之原,則不殊也。由其原之不殊,故一以傷寒而爲稱;由其類之殊,故施治不得以相混。以所稱而混其治,宜乎貽禍後人,以歸咎於仲景之法,而委廢其大半也。
夫傷寒溫暑,其類雖殊,其所受之原,則不殊也。由其原之不殊,故一以傷寒而爲稱;由其類之殊,故施治不得以相混。以所稱而混其治,宜乎貽禍後人,以歸咎於仲景之法,而委廢其大半也。
籲!使仲景之法,果貽禍於後人,《傷寒論》不作可也;使仲景之法,果不貽禍於後人,《傷寒論》其可一日缺乎?後人乃不歸咎於己見之未至,而歸咎於立法之大賢,可謂溺井怨伯益,失火怨燧人矣。
籲!使仲景之法,果貽禍於後人,《傷寒論》不作可也;使仲景之法,果不貽禍於後人,《傷寒論》其可一日缺乎?後人乃不歸咎於己見之未至,而歸咎於立法之大賢,可謂溺井怨伯益,失火怨燧人矣。
夫仲景,法之祖也。後人雖移易無窮,終莫能越其矩度,由莫能越而觀之,則其法其方,果可委廢大半哉?雖然,立言垂訓之士,猶不免失於此,彼碌碌者,固無足誚矣。
夫仲景,法之祖也。後人雖移易無窮,終莫能越其矩度,由莫能越而觀之,則其法其方,果可委廢大半哉?雖然,立言垂訓之士,猶不免失於此,彼碌碌者,固無足誚矣。
夫惟立言垂訓之士,有形乎著述之間,其碌碌者,當趦趄猶豫之餘,得不靡然從令爭先快覩,而趨簡略之地乎?
那些著書立說、留傳教訓的人,在著作中表現出來。那些平庸之輩,在猶豫不決之際,豈能不順從命令、爭先恐後地觀看,而趨向簡略之地呢?
夫其法其方,委廢大半,而不知近日之簡,便是趨此民生之所以無藉,而仲景之心之所以不能別白矣。
那些治法與方劑,廢棄了大半,卻不知道近來的簡略,正是導致民生無所依靠,而仲景的本心無法明白顯現的原因。
嗚呼!法也,方也,仲景專爲即病之傷寒設,不兼爲不即病之溫暑設也。
唉!治法與方劑,是仲景專門為了即時發病的傷寒而設立的,不是同時為了不即時發病的溫暑而設立的。
後人能知仲景之書,本爲即病者設,不爲不即病者設,則尚恨其法散落,所存不多而莫能御。
後人若能知道仲景的書,本來是為即時發病者設立的,不是為不即時發病者設立的,那麼還會遺憾其治法散失,所存不多而不能抵禦。
夫粗工妄治之萬變,果可憚煩而或廢之乎?
那些粗淺的醫者胡亂治療的萬般變化,難道可以因為害怕麻煩而廢棄它嗎?
是知委廢大半,而不覺其非者,由乎不能得其所以立法之意故也。
這就是知道廢棄大半,卻不覺得有錯的原因,是由於不能得到他立法的本意啊。
今人雖以治傷寒法治溫暑,亦不過借用耳,非仲景立法之本意也。
現在的人雖然用治療傷寒的方法來治療溫暑,也不過是借用罷了,不是仲景立法的本意。
猶六書假借,雖移易無窮,終非造字之初意。
就像六書中的假借,雖然變化無窮,終究不是造字時的本意。
夫仲景立法,天下後世之權衡也,故可借焉,以爲他病用。
仲景的立法,是天下後世的標準,所以可以借用,用來治療其他疾病。
雖然,豈特可藉以治溫暑而已?凡雜病之治,莫不可借也。
雖然如此,豈止是可以用來治療溫暑呢?凡是雜病的治療,沒有不可以借用的。
今人因傷寒治法,可藉以治溫暑,遂謂其法通爲傷寒溫暑設。
現在的人因為傷寒的治法可以用來治療溫暑,就認為那些治法通通是為傷寒和溫暑設立的。
籲!此非識流而昧原者歟?
唉!這不是知道末流而昧於本源的人嗎?
苟不餘信,請以證之。
如果不相信我,請讓我來證明它。
夫仲景之書,三陰經寒證,居熱證什之七八。
仲景的書中,三陰經的寒證,佔了熱證的十分之七八。
彼不即病之溫暑,但一於熱耳,何由而爲寒哉?
那些不即時發病的溫暑,只是一派熱象,從何處而變為寒呢?
就三陰寒證而詳味之,然後知餘言之不妄。
詳細體會三陰經的寒證,然後知道我的話不假。
或者乃謂:三陰寒證,本是雜病,爲王叔和增入其中;又或謂:其證之寒,蓋由寒藥誤治而致。
有人說:三陰經的寒證,本來是雜病,是王叔和增加進去的;又有人說:這些證的寒,是因為用寒藥誤治導致的。
若此者皆非也。
像這些說法都是錯誤的。
夫叔和之增入者,辨脈平脈與可汗可下等諸篇而已。
王叔和增加的內容,只是辨脈、平脈以及可汗可下等篇章罷了。
其六經病篇,必非叔和所能讚辭也。
그 육경병편은 반드시 숙화가 지은 것이 아니다.
但厥陰經中,下利嘔噦諸條,卻是叔和因其有厥逆而附,遂並無厥逆而同類者,亦附之耳。
다만 궐음경 중 하리, 구궐 등의 조목은 숙화가 궐역이 있으므로 덧붙였고, 궐역이 없으면서 동류인 것도 또한 덧붙인 것이다.
至若以藥誤治而成變證,則惟太陽爲多。
약으로 잘못 치료하여 변증이 생긴 것은 오직 태양경이 많다.
縱使三陰證亦或有寒藥誤治而變寒者,然豈應如是之衆乎?
비록 삼음증에서도 혹 한약으로 잘못 치료하여 한증으로 변한 경우가 있겠지만, 어찌 이렇게 많겠는가?
夫惟後人以仲景書通爲傷寒溫暑設,遂致諸溫劑皆疑焉而不敢用。
후세 사람들이 중경의 책을 모두 상한과 온서를 위해 지은 것으로 여기어 온제들을 모두 의심하여 감히 쓰지 않게 되었다.
韓祗和雖覺桂枝湯之難用,但謂今昔之世不同,然未悟仲景書本爲即病之傷寒設也。
한지화는 계지탕을 쓰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단지 지금과 옛날의 시대가 다르다고 말했을 뿐, 중경의 책이 본래 즉병 상한을 위해 지어진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且其着《微旨》一書,又純以溫暑作傷寒立論,而即病之傷寒,反不言及,此已是捨本徇末,全不能窺仲景藩籬。
또 그의 저서 《미지》에서는 순전히 온서를 상한으로 삼아 논리를 세우고, 즉병 상한은 오히려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는 이미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아 완전히 중경의 경계를 엿볼 수 없는 것이다.
又以夏至前胷膈滿悶,嘔逆氣塞,腸鳴腹痛,身體拘急,手足逆冷等證,視爲溫暑,謂與仲景三陰寒證脈理同而證不同,遂別立溫中法以治。
또 하지 전의 흉격만민, 구역기색, 장명복통, 신체구급, 수족역랭 등의 증을 온서로 보고, 중경의 삼음한증과 맥리는 같으나 증이 다르다고 하여 별도로 온중법을 세워 치료했다.
夫仲景所敘三陰寒證,乃是冬時即病之傷寒,故有此證。
중경이 서술한 삼음한증은 겨울철의 즉병 상한이므로 이러한 증이 있다.
今欲以仲景所敘三陰寒證,求對於春夏溫暑之病,不亦惛乎?
지금 중경이 서술한 삼음한증으로 봄여름 온서의 병을 대응하려 하니, 어찌 어둡지 않겠는가?
雖然,祇和未悟仲景立法本旨,而又適當溫暑病作之際,其爲惑也,固宜。
그러나 지화가 중경이 법을 세운 본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마침 온서병이 발생하는 시기를 당했으니, 그가 혼란스러워한 것은 당연하다.
以餘觀之,其胷膈滿悶嘔逆氣塞等證,若非內傷冷物,則不止暴寒所中,或過服寒藥所變,或內外俱傷於寒之病也。
내가 보기에 그 흉격만민, 구역기색 등의 증은, 만약 내상으로 냉물에 상한 것이 아니면, 갑자기 한기에 당하거나, 지나치게 한약을 복용하여 변한 것이거나, 내외가 모두 한에 상한 병이다.
且祇和但曰:寒而當溫,然末嘗求其所以爲寒之故。
또 지화는 단지 '한이므로 마땅히 온하게 한다'고 말했을 뿐, 그 한증이 생긴 까닭을 구하지 않았다.
能求其故,則知溫暑本無寒證矣。
그 까닭을 구할 수 있으면 온서에는 본래 한증이 없음을 알 것이다.
考之仲景書雖有陰毒之名,然其所敘之證,不過面目青,身痛如被杖,咽喉痛而已,並不言陰寒極甚之證。
중경의 책을 상고하건대, 비록 음독이라는 이름이 있으나, 그 서술한 증은 단지 면목청, 신통여피장, 인후통뿐이며, 음한이 지극히 심한 증은 말하지 않았다.
況其所治之方,亦不過升麻、甘草、當歸、鱉甲而已,並不用大溫大熱之藥。
况且他所用的方药,也不过是升麻、甘草、当归、鳖甲而已,并没有使用大温大热的药物。
是知仲景所謂陰毒者非陰寒之病,乃是感天地惡毒異氣,入於陰經,故曰陰毒耳。
因此知道仲景所说的阴毒并非阴寒之病,而是感受了天地的恶毒异气,进入阴经,所以称为阴毒。
後之論者,遂以爲陰寒極甚之證,稱爲陰毒,乃引仲景所敘面目青、身病如被杖、咽喉痛數語,並而言之,卻用附子散、正陽散等藥以治。
后来的论者,就认为是阴寒极重的证候,称为阴毒,于是引用仲景所描述的面目青、身体疼痛如同被杖打、咽喉痛等几句话,一并论述,却用附子散、正阳散等药来治疗。
竊謂陰寒極甚之證,固亦可名爲陰毒,然終非仲景所以立名之本意。
我个人认为阴寒极重的证候,固然也可以称为阴毒,但终究不是仲景设立此名的本意。
觀後人所敘陰毒,與仲景所敘陰毒,自是兩般,豈可混論?
看后人所描述的阴毒,与仲景所描述的阴毒,本来是两回事,怎能混为一谈?
後人所敘陰毒,亦只是內傷冷物,或不正暴寒所中,或過服寒藥所變,或內外俱傷於寒而成耳。
后人所描述的阴毒,也只是内伤于冷物,或者被不正的暴寒所中,或者因过度服用寒药而变生,或者内外都伤于寒邪而形成的罢了。
非天地惡毒,異氣所中者也。
并非天地恶毒异气所中的疾病。
朱奉議作《活人書》,累數萬言,於仲景傷寒論多有發明,其傷寒即入陰經爲寒證者,諸家不識,而奉議識之。
朱奉议撰写《活人书》,共数万字,对仲景的《伤寒论》多有阐发,其中伤寒病邪直接进入阴经而成为寒证的,各家都不认识,而奉议能够识别。
但惜其亦不知仲景專爲即病者立法,故其書中每每以傷寒溫暑混雜議論,竟無所別。
只可惜他也不知道仲景是专门为即时而病的人立法,所以他的书中常常把伤寒与温病、暑病混杂讨论,竟然没有分别。
況又視《傷寒論》爲全書,遂將次傳陰經熱證,與即入陰經寒證,牽合爲一立說,且謂:大抵傷寒陽明證宜下,少陰證宜溫,而於所識即入陰經之見,又未免自相悖矣。
况且又把《伤寒论》视为全书,于是将依次传到阴经的热证,与直接进入阴经的寒证,牵强地合为一说,并且认为:大抵伤寒阳明证应该用下法,少阴证应该用温法,而他自己所认识的直接进入阴经的见解,又不免自相矛盾了。
夫陽明證之宜下者,固爲邪熱入胃,其少陰證果是傷寒傳經熱邪,亦可溫乎?
阳明证之所以适宜下法,固然是因为邪热入胃,但少阴证如果是伤寒传经的邪热,也可以用温法吗?
況溫病暑病之少陰,尤不可溫也。
况且温病、暑病中的少阴证,尤其不可用温法。
自奉議此說行而天下後世蒙害者不少矣。
自从奉议的这种学说流行以来,天下后世受害的人不少了。
迨夫成無己作《傷寒論注》,又作《明理論》,其表章名義,纖悉不遺,可謂善羽翼仲景者。
等到成無己撰寫《傷寒論注》,又撰寫《明理論》,他闡發彰顯名義,細微詳盡沒有遺漏,可以說是善於輔助張仲景的人。
然即入陰經之寒證,又不及朱奉議之識,況即病立法之本旨乎?宜其莫能知也。
然而對於直接進入陰經的寒證,又不如朱奉議的見識,何況是根據病證確立治法的根本旨意呢?難怪他不能了解。
惟其莫知,故於三陰諸寒證,止隨文解義而已,未嘗明其何由不爲熱而爲寒也。
正因為他不了解,所以對於三陰經的各種寒證,只是順著文字解釋意義罷了,未曾說明為什麼不成為熱證而成為寒證。
至於劉守真出,亦以溫暑作傷寒立論,而遺即病之傷寒,其所處辛涼解散之劑,固爲昧者有中風傷寒錯治之失而立,蓋亦不無桂枝、麻黃難用之惑也。
至於劉守真出現,也以溫暑作為傷寒立論,而遺漏了直接發病的傷寒,他所創制的辛涼解散的方劑,固然是為愚昧的人有中風、傷寒錯誤治療的失誤而設立,但大概也不無對桂枝、麻黃難以使用的困惑。
既惑於此,則無由悟。夫仲景立桂枝、麻黃湯之有所主,用桂枝、麻黃湯之有其時矣。
既然對此困惑,就無法領悟。仲景設立桂枝湯、麻黃湯是有其針對的病症,使用桂枝湯、麻黃湯是有其適當時機的。
故其《原病式》有曰:夏熱用麻黃、桂枝之類熱藥發表,須加寒藥,不然,則熱甚發黃或斑出矣。
所以他的《原病式》中說:夏天炎熱時用麻黃、桂枝之類的熱藥發散表邪,必須加入寒藥,否則,熱勢加重就會出現發黃或出斑。
殊不知仲景立麻黃湯、桂枝湯,本不欲用於夏熱之時也。
卻不知道仲景創立麻黃湯、桂枝湯,本來就不是想要用於夏天炎熱的時候。
苟悟夫桂枝、麻黃湯,本非治溫暑之劑,則羣疑冰釋矣。
如果領悟到桂枝湯、麻黃湯本來就不是治療溫暑的方劑,那麼眾多疑惑就像冰一樣溶解了。
何也?夫寒之初客於表也,閉腠理,鬱陽氣而爲熱,故非辛溫之藥不能開腠理,以泄其熱,此麻黃湯之所由立也。
為什麼呢?寒邪剛侵犯體表時,閉塞腠理,鬱遏陽氣而化為熱,所以非用辛溫的藥物不能打開腠理,以宣泄其熱,這就是麻黃湯創立的原因。
至於風邪傷表,雖反疏腠理而不能閉,然邪既客表,則表之正氣,受傷而不能流通,故亦發熱也,必以辛甘溫之藥發其邪,則邪去而腠理自密矣。此桂枝湯之所由立也。
至於風邪傷害體表,雖然反而使腠理疏鬆而不能閉塞,但邪氣既然侵犯體表,體表的正氣受傷而不能流通,所以也會發熱,必須用辛甘溫的藥物發散邪氣,那麼邪氣去除後腠理自然緻密了。這就是桂枝湯創立的原因。
其所以不加寒藥者,蓋由風寒在表,又當天令寒冷之時,而無所避故也。
它之所以不加入寒藥,是因為風寒在表,又正值天氣寒冷的時候,而沒有避開的理由。
後人不知仲景立法之意,故有惑於麻黃、桂枝之熱,有犯於春夏之司氣而不敢用,於是有須加寒藥之論。
후인들이 중경의 입법 뜻을 알지 못하여, 마황과 계지의 열성에 의혹을 품고, 봄여름의 주된 기운을 범할까 두려워 사용하지 못하고, 이에 한약을 더해야 한다는 논의가 생겼다.
夫欲加寒藥於麻黃、桂枝湯之中,此乃不悟其所以然,故如此耳。
대저 마황탕과 계지탕에 한약을 더하려는 것은, 그 연유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이다.
若仲景爲溫暑立方,必不如此,必別有法,但惜其遺佚不傳,致使後人有多岐之患。
만약 중경이 온열병과 서병을 위해 처방을 지었다면 반드시 이와 같지 않았을 것이며,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었을 터이나, 아쉽게도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아 후인들이 갈림길에 방황하게 되었다.
若知仲景《傷寒論》專爲即病傷寒作,則知麻黃、桂枝所以宜用之故,除傳經熱證之外,其直傷陰經,與太陽不鬱熱即傳陰經諸寒證,皆有所歸着,而不復疑爲寒藥誤下而生矣。
만약 중경의 《상한론》이 오로지 즉시 발병하는 상한을 위해 지어진 것임을 안다면, 마황과 계지를 마땅히 써야 하는 까닭을 알게 되어, 경맥을 전하는 열증을 제외하고는, 직접 음경을 상한 경우와 태양경에서 열이 울체되지 않고 바로 음경으로 전하는 모든 한증이 모두 귀착되는 바가 있어, 다시는 한약으로 잘못 공격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若乃春夏有惡風惡寒純類傷寒之證,蓋春夏暴中風寒之新病,非冬時受傷過時而發者。
만약 봄여름에 오한과 악풍이 순전히 상한과 같은 증상이 있다면, 이는 봄여름에 갑자기 풍한에 중독된 새로운 병이지, 겨울에 상하여 때를 넘겨 발병한 것이 아니다.
不然,則或是溫暑將發而復感於風寒,或因感風寒而動乎久鬱之熱,遂發爲溫暑也。
그렇지 않다면, 혹은 온열병이나 서병이 장차 발병하려는 데 다시 풍한을 감수하였거나, 풍한에 감수되어 오래 울체된 열이 동하여 마침내 온열병이나 서병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仲景曰:太陽病,發熱而渴,不惡寒者,爲溫病。
중경이 말하기를: 태양병에서 발열하고 갈증이 나며 오한이 없는 것이 온병이다.
觀此則知溫病不當惡寒而當渴,其惡寒而不渴者,非溫病矣。
이를 보면 온병은 마땅히 오한이 없고 갈증이 있어야 하며, 오한이 있고 갈증이 없는 것은 온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仲景雖不言暑病,然暑病與溫病同,但復過一時而加重於溫病耳。
중경이 비록 서병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으나, 서병은 온병과 같으며, 다만 다시 한 때를 지나면 온병보다 더 무거워질 뿐이다.
其不惡寒而渴,則無異也。
그 오한이 없고 갈증이 있는 것은 다름이 없다.
春夏雖有惡風惡寒表證,其桂枝、麻黃二湯,終難輕用,勿泥於發表不遠熱之語也。
봄여름에 비록 악풍·오한의 표증이 있더라도, 계지탕과 마황탕 두 처방은 끝내 가볍게 쓰기 어려우니, 표를 발할 때 열을 멀리하지 말라는 말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於是用辛涼解散,庶爲得宜。
이에 신량한 약으로 해산시키는 것이 아마 적절할 것이다.
苟不慎而輕用之,誠不能免夫狂躁斑黃衄血之變,而亦無功也。
진실로 삼가지 않고 가볍게 쓴다면, 참으로 광조·반점·황달·출혈의 변을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도 없을 것이다.
雖或者行桂枝、麻黃於春夏而效,乃是因其辛甘發散之力,偶中於萬一,斷不可視爲常道而守之。
비록 어떤 이가 봄여름에 계지와 마황을 써서 효과를 본 것이 있다면, 이는 그 신감발산하는 힘으로 인해 만에 하나 우연히 맞은 것일 뿐이니, 결코 상도로 여겨 지켜서는 안 된다.
今人以敗毒散、參蘇飲、通解散、百解散之類,不問四時中風傷寒一例施之,雖非至正之道,較之不慎而輕用麻黃、桂枝於春夏以致變者,則反庶幾。
如今的人們使用敗毒散、參蘇飲、通解散、百解散之類的方劑,不分四季,對中風、傷寒一概施用,雖然不是最正確的方法,但比起那些不慎而在春夏輕易使用麻黃、桂枝導致病情變化的,反倒還好一些。
然敗毒散等苦用於春夏,亦止可治暴中風之證而已。其冬時受傷過時而發之溫病暑病,則不宜用也。用則非徒無益,亦反害之矣。縱或有效,亦是偶然。
然而敗毒散等方劑如果在春夏使用,也僅能治療突然中風的證候。對於冬天受寒邪,過了時令而發作的溫病、暑病,則不應使用。用了不僅沒有益處,反而會有害。即使有時有效,也是偶然。
彼冬時傷寒,用辛涼發表而或效者,亦偶然也。凡用藥治病,其既效之後,須要明其當然與偶然,能明其當然與偶然,則精微之地,安有不至者乎?
那些冬天的傷寒病,用辛涼解表法而偶爾有效的,也是偶然。凡是用藥治病,在見效之後,必須明白這是當然之理還是偶然之效。能分辨當然與偶然,那麼精微的境地,哪裡會達不到呢?
惟其視偶然爲當然,所以循非踵弊,莫之能悟,而病者不幸矣。
正因為人們把偶然當作當然,所以沿襲錯誤,因循弊端,沒有人能醒悟,而病人就不幸了。
若夫仲景於三陰經每用溫藥,正由病之所必須,與用之有其時耳。餘有別論,茲不再具。
至於張仲景在治療三陰經病時常常使用溫藥,正是因為病證必須這樣用,而且用藥有其合適的時機。這在其他篇章另有論述,這裡不再重複。
若概以三陰寒證視爲雜病而外之,得無負於仲景濟人利物之至仁而誤後世乎?
如果一概將三陰寒證視作雜病而排斥在外,難道不是辜負了張仲景濟世利人的至仁之心,而且貽誤後世嗎?
自近代先覺不示傷寒溫暑異病之端緒,但一以寒涼爲主,而諸溫熱之劑,悉在所略,致使後之學者,視仲景書欲仗焉而不敢以終決,欲棄焉則猶以爲立法之祖而莫能外,甚則待爲具文,又甚則束之高閣,而謂其法宜於昔而不宜於今。
自從近代先賢不明確指出傷寒與溫病、暑病是不同的疾病,只是一味以寒涼藥為主,而各種溫熱的方劑,全都忽略,致使後世的學者,看待張仲景的著作,想要依賴它卻不敢完全決定,想要拋棄它卻又認為它是立法之祖而不能脫離,甚至把它視為具文,又甚至束之高閣,並說他的方法適合過去而不適合現在。
由治亂動靜之殊,治靜屬水,亂動屬火,故其溫熱之藥,不可用於今屬火之時也。噫!斯言也,其果然耶否耶?
因為治世與亂世、靜與動的區別,治世靜屬水,亂世動屬火,所以溫熱的藥物,不能用於當今屬火的時世。唉!這些話,果真如此嗎?
但能明乎仲景本爲即病者設法,則桂枝、麻黃自有所用,諸溫熱之劑皆不可略矣。
只要能明白張仲景本來是為即時發病的人立法,那麼桂枝、麻黃自然有它的用途,各種溫熱的方劑都不可忽略。
若謂仲景法不獨爲即病者設,則凡時行及寒疫、溫瘧、風溫等病,亦通以傷寒六經病諸方治之乎?
만약 중경의 법이 즉시 병든 자만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면, 모든 유행병 및 한역, 온학, 풍온 등의 병도 또한 상한 육경병의 여러 방으로 통틀어 치료할 수 있겠는가?
《傷寒例》曰:冬溫之毒,與傷寒大異,爲治不同。
<상한례>에서 말하기를: '동온의 독은 상한과 크게 달라 치료하는 바가 같지 않다.'
又曰:寒疫與溫及暑病相似,但治有殊耳。
또한 말하기를: '한역은 온병 및 서병과 비슷하나 치료만 다를 뿐이다.'
是則溫暑及時行寒疫、溫瘧、風溫等,仲景必別有治法,今不見者,亡之也。
이와 같다면 온서 및 유행 한역, 온학, 풍온 등에 대해 중경이 반드시 별도의 치료법이 있었으나,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은 없어진 것이다.
觀其所謂爲治不同,所謂溫瘧、風溫、溫毒、溫疫脈之變證方治如說,豈非亡其法乎?
그가 말한 '치료하는 바가 같지 않다'는 것과 이른바 온학, 풍온, 온독, 온역의 맥과 변증 및 방치가 말과 같다는 것을 보면, 어찌 그 법이 없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決不可以傷寒六經病諸方通治也。
결코 상한 육경병의 여러 방으로 통치해서는 안 된다.
夫《素問》謂人傷於寒則爲病熱者,言常而不言變也。
무릇 <소문>에서 '사람이 한에 상하면 병이 열이 된다'고 말한 것은 상(常)을 말한 것이지 변(變)을 말한 것이 아니다.
仲景謂或熱或寒而不一者,備常與變而無遺也。
중경이 '혹 열이 나고 혹 한이 나서 일정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상과 변을 모두 갖추어 빠짐이 없는 것이다.
仲景蓋言古人之所未言,大有功於古人者,雖欲偏廢可乎?
중경이 대체로 옛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여 옛사람에게 큰 공이 있으니, 비록 한쪽을 폐지하려 한들 가하겠는가?
叔和搜採仲景舊論之散落者以成書,功莫大矣。
숙화가 중경의 옛 논설 중 흩어져 떨어진 것을 찾아 모아 책을 이루었으니, 공이 지대하다.
但惜其既以自己之說,混於仲景所言之中,又以雜脈雜病,紛紜並載於卷首,故使玉石不分,主客相亂。
다만 애석하게도 그가 이미 자신의 설을 중경의 말 속에 섞었고, 또 잡맥과 잡병을 어지럽게 함께 권수에 실었으므로, 옥과 돌이 분간되지 않고 주와 객이 서로 혼란해졌다.
若先備仲景之言,而次附己說,明書其名,則不致惑於後人,而累仲景矣。
만약 먼저 중경의 말을 갖추고, 이어서 자신의 설을 덧붙이며 그 이름을 밝혀 썼다면, 후인에게 혼란을 주지 않아 중경을 해치지 않았을 것이다.
昔漢儒收拾殘編斷簡於秦火之餘,加以傳注,後之議者,謂其功過相等,叔和其亦未免於後人之議歟?
옛날 한나라 유생들이 진나라 불씨 이후에 남은 산편과 단간을 수습하고 전주를 더하였는데, 후세에 논하는 자들이 그 공과 허물이 같다고 말했으니, 숙화도 또한 후인의 논의를 면하지 못하겠는가?
餘嘗欲編類其書,以《傷寒例》居前,而六經病次之,相類病又次之,瘥後病又次之,診察治法、治禁治誤、病解未解等又次之。
내가 일찍이 그 책을 분류하여 편찬하고자 하여, <상한례>를 앞에 두고, 육경병을 그 다음에, 유사한 병을 또 그 다음에, 차후 병을 또 그 다음에, 진찰과 치료법, 치료의 금기와 오류, 병의 해소와 미해소 등을 또 그 다음에 두고자 하였다.
其雜脈雜病與傷寒有所關者採以附焉,其與傷寒無相關者皆刪去,如此庶幾法度純一,而玉石有分,主客不亂矣。
그 잡맥과 잡병 중 상한과 관계있는 것은 채취하여 덧붙이고, 상한과 관계없는 것은 모두 삭제하여, 이와 같이 하면 거의 법도가 순일하고 옥과 돌이 분간되며 주와 객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然有志未暇,姑敘此以俟他日。
그러나 뜻은 있으나 겨를이 없어, 우선 이것을 서술하여 다른 날을 기다린다.
傷寒溫病熱病說
상한과 온병, 열병에 대한 설명
有病因,有病名,有病形。辨其因,正其名,察其形,三者俱當,始可以言治矣。一或未明,而曰不誤於人,吾未之信也。
有病因,有病名,有病形。辨別其病因,確定其病名,觀察其病形,三者都妥當,才可以談論治療。一旦有不明確,卻說不會誤人,我不相信。
且如傷寒,此以病因而爲病名者也;溫病熱病,此以天時與病形而爲病名者也。由三者皆起於感寒,或者通以傷寒稱之。夫通稱傷寒者,原其因之同耳。至於用藥,則不可一例而施也。
比如傷寒,這是根據病因來命名的;溫病熱病,這是根據天時和病形來命名的。因為三者都源於感受寒邪,有人籠統地稱之為傷寒。籠統稱為傷寒,是追溯其病因相同罷了。至於用藥,就不能一概而論了。
何也?夫傷寒,蓋感於霜降後春分前,然不即發,鬱熱而發於春夏者也。傷寒即發於天令寒冷之時,而寒邪在表,閉其腠理,故非辛甘溫之劑,不足以散之,此仲景桂枝、麻黃等湯之所以必用也。
為什麼呢?傷寒,大概在霜降後春分前感受寒邪,當即發病,寒邪在體表,閉塞腠理,所以非辛甘溫的藥劑不足以發散它,這就是仲景必須使用桂枝湯、麻黃湯等的原因。
溫病熱病後發於天令暄熱之時,怫熱自內而達於外,鬱其腠理,無寒在表,故非辛涼或苦寒或酸苦之劑不足以解之。此仲景桂枝、麻黃等湯獨治外者之所以不可用,而後人所處雙解散、大黃湯、千金湯、防風通聖散之類,兼治內外者之所以可用也。
溫病熱病在之後天氣暄熱時發病,鬱熱從內到達於外,鬱閉腠理,體表沒有寒邪,所以非辛涼或苦寒或酸苦的藥劑不足以解除。這就是仲景桂枝湯、麻黃湯等專門治療外感的藥方不可用,而後人創製的雙解散、大黃湯、千金湯、防風通聖散之類,兼治內外之所以可用的原因。
夫即病之傷寒,有惡風惡寒之證者,風寒在表,而表氣受傷故也。後發之溫病熱病,有惡風惡寒之證者,重有風寒新中,而表氣亦受傷故也。
那些即時發病的傷寒,有惡風惡寒的症狀,是因為風寒在體表,表氣受傷的緣故。後來發作的溫病熱病,有惡風惡寒的症狀,是因為又有風寒新近侵襲,表氣也受傷的緣故。
若無新中之風寒則無惡風惡寒之證。故仲景曰:太陽病,發熱而渴,不惡寒者,爲溫病。溫病如此,則知熱病亦如此。是則不渴而惡寒者,非溫熱病矣。
如果沒有新近侵襲的風寒,就沒有惡風惡寒的症狀。所以仲景說:太陽病,發熱口渴,不惡寒的,是溫病。溫病如此,就知道熱病也是這樣。那麼,不口渴而惡寒的,就不是溫熱病了。
然或有不因新中風寒,亦見惡風惡寒之證者,蓋病人表氣本虛,熱達於表,又重傷表氣,故不禁風寒,非傷風惡風傷寒惡寒也,但衛虛則惡風,榮虛則惡寒耳。
그러나 혹 새로 풍한에 중하지 않았는데도 오한과 오풍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병자의 표기가 본래 허하여 열이 표에 이르렀고, 또 표기를 거듭 손상시켰으므로 풍한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지, 상풍이 오풍이고 상한이 오한인 것은 아니다. 다만 위기가 허하면 오풍하고, 영기가 허하면 오한할 뿐이다.
且溫病熱病,亦有先見表證而後傳裏者,蓋怫熱自內達外,熱鬱腠理,不得外泄,遂復還裏而成可攻之證,非如傷寒從表而始也。
또 온병과 열병은 표증이 먼저 나타난 후에 리로 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울열이 안에서 밖으로 이르러 열이 주리에 막혀 외부로 배출되지 못하고, 마침내 다시 안으로 돌아와 가공할 수 있는 증이 된 것이지, 상한처럼 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或者不悟此理,乃於春夏溫病熱病而求浮緊之脈,不亦疏乎?
혹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봄여름의 온병과 열병에서 부긴 맥을 찾는 것이, 소홀하지 않은가?
殊不知緊爲寒脈,有寒邪則見之,無寒邪則不見也。
진실로 긴맥은 한맥이어서 한사가 있으면 나타나고 한사가 없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其溫病熱病,或見脈緊者,乃重感不正之暴寒,與內傷過度之冷食也,豈其本然哉?
그 온병과 열병에서 혹 긴맥이 나타나는 것은 부정한 급한 한을 거듭 느끼거나, 내상으로 지나친 냉식을 먹은 것이지, 어찌 본래 그러하겠는가?
又或者不識脈形,但見弦便呼爲緊,斷爲寒而妄治。
또 혹 맥의 형태를 알지 못하여, 단지 현맥을 보면 긴맥이라 부르고 한증으로 판단하여 함부로 치료한다.
蓋脈之盛而有力者,每每兼弦,豈可錯認爲緊而斷爲寒?
대개 맥이 왕성하고 유력한 것은 매번 현맥을 겸하는데, 어찌 잘못 긴맥으로 여겨 한증으로 판단하겠는가?
夫溫病熱病之脈,多在肌肉之分而不甚浮,且右手反盛於左手者,誠由怫熱在內故也。
무릇 온병과 열병의 맥은 대개 근육 사이에 있어 아주 부하지 않고, 또 오른손이 왼손보다 도리어 왕성한 것은 진실로 울열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其或左手盛或浮者,必有重感之風寒,否則非溫病熱病,自是暴感風寒之病耳。
그 혹 왼손이 왕성하거나 부한 것은 반드시 거듭 풍한을 느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온병이나 열병이 아니라 다급히 풍한에 감촉된 병일 뿐이다.
凡溫病熱病,若無重感,表證雖間見而裏病爲多,故少有不渴者。
무릇 온병과 열병은 거듭 감촉이 없다면 표증이 간간이 나타나더라도 이병이 많으므로, 적게는 갈증이 없는 자가 없다.
斯時也,法當治裏熱爲主而解表兼之,亦有治裏而表自解者。
이때는 법으로 이열 치료를 위주로 하고 표를 풀기를 겸하며, 또 이열을 치료하면 표가 저절로 풀리는 경우도 있다.
餘每見世人治溫熱病,雖誤攻其裏,亦無大害,誤發其表,變不可言,此足以明其熱之自內達外矣。
내가 항상 세상 사람들이 온열병을 치료함에 비록 그 이틀 공격하는 것을 잘못해도 큰 해가 없으나, 그 표를 발산하는 것을 잘못하면 변증이 말할 수 없음을 본다. 이는 그 열이 안에서 밖으로 이른 것을 밝히기에 충분하다.
其間有誤攻裏而致大害者,乃春夏暴寒所中之疫證,邪純在表,未入於裏故也,不可與溫病熱病同論。
그 사이에 이틀 공격하는 것을 잘못하여 큰 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봄여름의 급한 한에 중한 역증으로 사기가 순전히 표에 있고 아직 이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니, 온병과 열병과 함께 논할 수 없다.
夫惟世以溫病熱病混稱傷寒,故每執寒字以求浮緊之脈,以用溫熱之藥,若此者因名亂實,而戕人之生,名其可不正乎?
세상 사람들이 온병과 열병을 상한과 혼동하여 부르기 때문에, 매번 한(寒) 자에 집착하여 부긴(浮緊)한 맥을 찾고 온열(溫熱)한 약을 쓴다. 이와 같은 자들은 이름으로 실체를 어지럽혀 사람의 생명을 해치니, 이름을 올바르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又方書多言四時傷寒,故以春夏之溫病熱病,與秋冬之傷寒一類視之而無所別。
또한 방서(方書)에서 사시 상한(四時傷寒)을 많이 말하기 때문에, 봄·여름의 온병·열병을 가을·겨울의 상한과 같은 부류로 보아 구별하지 않는다.
夫秋冬之傷寒,真傷寒也;春夏之傷寒,寒疫也。與溫病熱病自是兩塗,豈可同治?
가을·겨울의 상한은 진짜 상한이고, 봄·여름의 상한은 한역(寒疫)이다. 온병·열병과는 본래 다른 길이니, 어찌 함께 치료할 수 있겠는가?
籲!此弊之來,非一日矣。歷考方書,並無救弊之論,每每雷同,良可痛哉!
아! 이러한 폐단이 생긴 지 하루이틀이 아니다. 역대 방서를 살펴보아도 폐단을 구제하는 논의는 없고, 매번 똑같이 말하니 참으로 애통하다!
雖然傷寒與溫病熱病,其攻裏之法,若果是以寒除熱,固不必求異;其發表之法,斷不可不異也。
비록 상한과 온병·열병이 그 이하(攻裏)하는 법은 만일 실제로 한(寒)으로 열(熱)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굳이 다르게 할 필요가 없지만, 그 발표(發表)하는 법은 절대 다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況傷寒之直傷陰經,與太陽雖傷不及鬱熱,即傳陰經爲寒證而當溫者,又與溫病熱病大不同,其可妄治乎?
더구나 상한이 음경(陰經)을 바로 손상시키거나 태양경이 비록 손상되어도 울열(鬱熱)에 이르지 않고 곧바로 음경으로 전하여 한증(寒證)이 되어 온(溫)해야 하는 경우는 온병·열병과 크게 다르니, 어찌 함부로 치료할 수 있겠는가?
或者知一不知二,故謂仲景發表藥今不可用,而攻裏之藥乃可用。嗚呼!其可用不可用之理,果何在哉?
혹자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중경(仲景)의 발표약(發表藥)은 지금 쓸 수 없고 이하약(攻裏藥)은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아! 그 쓸 수 있고 쓸 수 없는 이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若能辨其因,正其名,察其形,治法其有不當者乎?
만약 그 원인을 분별하고 이름을 바로잡고 형상을 살핀다면, 치료법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彼時行不正之氣所作,及重感異氣而變者,則又當觀其何時何氣,參酌傷寒溫熱病之法,損益而治之,尤不可例以仲景即病傷寒藥通治也。
그 유행하는 부정한 기운으로 인한 것과 다시 다른 기운에 감염되어 변한 경우에는 또 그 어떤 시기와 어떤 기운인지를 살펴, 상한·온열병의 법을 참작하여 증감하여 치료해야 하며, 더욱이 중경(仲景)의 즉병상한(即病傷寒) 약으로 통일하여 치료해서는 안 된다.
三陰病或寒或熱辨
삼음병(三陰病)은 혹 한(寒)하거나 혹 열(熱)함을 분변한다.
嘗讀張仲景《傷寒論》,於太陰有曰:自利不渴者屬太陰,以其髒有寒故也,當溫之,宜服四逆輩。
일찍이 장중경의 《상한론》을 읽었는데, 태음병에서 이르길: 스스로 설사하면서 갈증이 없는 것은 태음에 속하니, 그 장에 한기가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온보해야 하며, 사역탕(四逆湯) 종류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於少陰有曰:少陰病得之一二日,口中和,其背惡寒者,當灸之,附子湯主之;少陰病身體痛,手足寒,骨節痛,脈沉者,附子湯主之;少陰病下利,白通湯主之;少陰病下利脈微者,與白通湯利不止,厥逆無脈乾嘔煩者,白通加豬膽汁湯主之;少陰下利清谷,裏寒外熱,手足厥逆,脈微欲絕,身反不惡寒,其人面赤色,或腹痛,或乾嘔,或咽痛,或利止脈不出者,通脈四逆湯主之;少陰病脈沉者,急溫之,宜四逆湯。
소음병에서 이르길: 소음병에 걸린 지一二일이 되었는데, 입 안이 편하고 등이 오한이 나는 경우에는 뜸을 떠야 하며, 부자탕(附子湯)이 주치이다. 소음병에 몸이 아프고, 손발이 차며, 뼈마디가 아프고, 맥이 침한 경우에는 부자탕이 주치이다. 소음병에 설사가 있을 때는 백통탕(白通湯)이 주치이다. 소음병에 설사가 있고 맥이 미약한데, 백통탕을 주어도 설사가 멈추지 않고, 사지궐냉(四肢厥冷)하며 맥이 없고, 마른기침과 번조(煩躁)가 있는 경우에는 백통가저즙탕(白通加豬膽汁湯)이 주치이다. 소음병에 설사하며 소화되지 않은 곡식이 섞여 나오고, 속은 차면서 겉은 열이 나고, 손발이 궐냉하며, 맥이 미약하여 끊어질 듯하고, 도리어 오한이 없으며, 얼굴이 붉거나, 배가 아프거나, 마른기침을 하거나, 목이 아프거나, 설사가 멈추어도 맥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통맥사역탕(通脈四逆湯)이 주치이다. 소음병에 맥이 침한 경우에는 급히 온보해야 하니, 사역탕(四逆湯)이 적합하다.
於厥陰有曰,手足厥寒,脈細欲絕者,當歸四逆湯主之;大汗若大下利而厥冷者,四逆湯主之。
궐음병에서 이르길, 손발이 차갑고 맥이 세(細)하여 끊어질 듯한 경우에는 당귀사역탕(當歸四逆湯)이 주치이다. 땀을 많이 흘리거나 심한 설사를 하면서 궐냉(厥冷)이 있는 경우에는 사역탕이 주치이다.
觀仲景此論,則傷寒三陰必有寒證,而宜用溫熱之劑也。
중경의 이 논의를 보면, 상한병의 삼음병(三陰病)에는 반드시 한증이 있으며, 온열한 약제를 사용해야 한다.
及讀劉守真之書,有曰,傷寒邪熱在表,腑病爲陽,邪熱在裏,髒病爲陰,俗妄謂有寒熱陰陽異證,誤人久矣。
그리고 유수진(劉守真)의 책을 읽었는데, 이르길, 상한병에서 사열이 표에 있으면 부병(腑病)이 양이 되고, 사열이 리에 있으면 장병(臟病)이 음이 되는데, 세속에서 잘못되어 한열과 음양의 다른 증이 있다고 말하여 사람을 오도한 지 오래되었다.
寒病有矣,非汗病之謂也。寒病止爲雜病,終莫能爲汗病。
한병(寒病)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한병(汗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병은 단지 잡병(雜病)일 뿐이며, 결코 한병(汗病)이 될 수 없다.
且造化汗液之氣者,乃陽熱之氣,非陰寒之所能也。
또한 땀을 만들어내는 기운은 바로 양열(陽熱)의 기운이며, 음한(陰寒)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雖仲景有四逆湯證,是治表熱裏和,誤以寒藥下之太早,表熱入裏,下利不止,及或表熱裏寒自利,急以四逆溫裏,利止裏和,急解其表也。
비록 중경이 사역탕 증을 말한 것은, 표열(表熱)이고 리화(裏和)한 상태에서 잘못하여 한약(寒藥)으로 너무 일찍 하법(下法)을 써서 표열이 리로 들어가 설사가 멈추지 않는 것, 또는 표열이고 리한(裏寒)하여 스스로 설사하는 것을 치료하는 것이다. 급히 사역탕으로 리를 따뜻하게 하여 설사를 멈추고 리가 조화되면, 급히 표를 풀어야 한다.
故仲景四逆湯證,復有承氣湯下之者,由是傷寒汗病,經直言熱病而不言寒也。
그러므로 중경의 사역탕 증에는 다시 승기탕(承氣湯)으로 하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상한 한병(汗病)은 경에서 열병(熱病)이라고 직접 말하고, 한병(寒病)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經言三陰證者,邪熱在髒在裏,以髒與裏爲陰,當下熱者也。
경전에서 말하는 삼음증은 사열(邪熱)이 장부와 속에 있으니, 장부와 속은 음(陰)에 속하므로, 마땅히 열[熱]을 아래로 내려야 하는 것이다.
《素問》論傷寒熱病有二篇,名曰熱竟無寒理,兼《素問》並《靈樞》諸篇運氣造化之理推之,則爲熱病,誠非寒也。
《소문》에서 상한열병에 대해 논한 글이 두 편 있는데, 제목에 '열(熱)'이라 하였으니 전혀 한(寒)의 이치가 없고, 또 《소문》과 《영추》 여러 편의 운기조화(運氣造化)의 이치로 미루어 보면 열병(熱病)이지 진실로 한(寒)이 아니다.
觀守真此論,則傷寒無問在表在裏與夫三陽三陰,皆一於爲熱而決無或寒者矣。
수진(守真, 유완소)의 이 논을 보면, 상한은 표(表)와 리(裏) 및 삼양삼음(三陽三陰)을 막론하고 모두 한결같이 열(熱)이 되며 결코 한(寒)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兩說不同,其是非之判,必有一居此者。
두 학설이 같지 않으니, 그 시비(是非)의 판단은 반드시 어느 한쪽에 있을 것이다.
由是彼此反覆究詰其義,而久不能得,雖至神疲氣耗不捨置者,自謂此是傷寒大綱領,此義不明,則千言萬語,皆未足以爲後學式。
이로부터 서로 반복하여 그 뜻을 궁구해 보았으나 오래도록 얻지 못하였고, 비록 정신이 피곤하고 기력이 소진되어도 놓지 않았으니, 스스로 이는 상한의 대강령(大綱領)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 뜻이 밝혀지지 않으면 천언만어(千言萬語)도 모두 후학의 모범이 되기에 부족하다.
況戕賊民生,何有窮極也哉?
하물며 백성의 생명을 해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意謂成無己之注必有所發明者,遂因而求之。
생각건대 성무기(成無己)의 주석에 반드시 밝힌 바가 있을 것이므로, 이에 따라 구해 보았다.
然亦止是隨文而略釋之,竟不明言何由爲熱何由爲寒之故。
그러나 또한 단지 글에 따라 대략 해석하였을 뿐, 끝내 무엇 때문에 열이 되고 무엇 때문에 한(寒)이 되는지 그 까닭을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
此非其不欲言也。蓋止知傷寒皆是傳經,故疑於六經所傳,俱爲熱證,而熱無變寒之理,遂不敢別白耳。
이는 그가 말하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만 상한은 모두 경(經)을 전한다는 것만 알았기 때문에, 육경(六經)이 전하는 바가 모두 열증(熱證)이고 열(熱)이 한(寒)으로 변하는 이치가 없다고 의심하여, 감히 분별하여 밝히지 못하였을 뿐이다.
以寒爲本髒之寒歟?安得當熱邪傳裏入深之時,反獨見寒而不見熱者?且所用溫熱藥,能不助傳經之熱邪乎?
한(寒)을 본장(本臟)의 한(寒)이라고 한다면, 어찌 열사(熱邪)가 속으로 전해져 깊이 들어갈 때 도리어 홀로 한(寒)만 보이고 열(熱)은 보이지 않겠는가? 또 사용하는 온열약(溫熱藥)이 전경(傳經)한 열사를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以寒爲外邪之寒歟?則在三陽已成熱矣,豈有傳至三陰而反爲寒哉?
한(寒)을 외사(外邪)의 한(寒)이라고 한다면, 이미 삼양(三陽)에서 열(熱)이 되었는데, 어찌 삼음(三陰)에 전해져서 도리어 한(寒)이 되겠는가?
成氏能潛心乎此,則必悟其所以然矣。
성씨(成氏)가 여기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반드시 그 연유를 깨달았을 것이다.
自仲景作《傷寒論》以來,靡或遺之而弗宗。
중경(仲景)이 《상한론》을 지은 이래로, 이를 빠뜨리거나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至於異同之論興,而漁者走淵,木者走山矣,宜乎後人不能決於似是而非之際。
이른바 동이(異同)의 논의가 일어나면서, 어부(漁夫)는 연못으로 달려가고 나무꾼은 산으로 달려가듯 하였으니, 후인들이 이(是)와 비(非)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즈음에서 결정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故或謂今世並無真傷寒病,又或以爲今人所得之病俱是內傷,又昧者至謂傷寒論中諸溫藥,悉爲傳經熱邪而用者,以三陰經屬陰故也。
因此有人說當今世上沒有真正的傷寒病,又有人認為現在人得的病都是內傷,還有愚昧者甚至說《傷寒論》中的各種溫熱藥,都是為傳經的熱邪而用,因為三陰經屬陰的緣故。
又其大謬者則曰:論中凡有寒字皆當作熱字看。
還有一個很大的謬論說:論中凡是出現‘寒’字都應當當作‘熱’字來看。
嗚呼!末流之弊,一至此乎?
唉!末流的弊端,竟然到了這種地步嗎?
於是澄心靜慮以涵泳之,一旦豁然若有所悟者。然亦未敢必其當否也。
於是靜心深思反覆體會,有一天豁然開朗好像有所領悟。然而也不敢斷定是否恰當。
姑陳之以從有道之正。
暫且陳述出來,以便請教有道之士來判斷。
夫三陽之病,其寒邪之在太陽也,寒鬱其陽,陽不暢而成熱。
三陽的病,當寒邪在太陽經時,寒氣鬱遏陽氣,陽氣不通暢而化為熱。
陽雖人身之正氣,既鬱則爲邪矣。用麻黃髮表以逐其寒,則腠理通而鬱熱泄,故汗而愈。
陽氣雖然是人體的正氣,一旦被鬱就成為邪氣。用麻黃髮散體表來驅逐寒邪,則腠理通暢而鬱熱外泄,所以出汗而痊愈。
苟或不汗不解,其熱不得外泄,則必裏入,故傳陽明傳少陽而或入腑也。
如果不出汗而不解,熱不能向外泄,就必然向內侵入,所以傳入陽明、傳入少陽,或者進入腑中。
若夫三陰之病,則或寒或熱者,何哉?
至於三陰的病,有的寒有的熱,是什麼原因呢?
蓋寒邪之傷人也,或有在太陽經鬱熱,然後以次而傳至陰經者;
大凡寒邪傷害人,有的在太陽經鬱而化熱,然後依次傳到陰經;
或有太陽不傳陽明少陽,而便傳三陰經者;
有的太陽不傳陽明少陽,而直接傳到三陰經;
或有寒邪不從陽經而始,直傷陰經者;
有的寒邪不從陽經開始,直接傷害陰經;
或有雖從太陽而始,不及鬱熱,即入少陰而獨見少陰證者;
有的雖然從太陽開始,但來不及鬱而化熱,就直接進入少陰而單獨出現少陰證;
或有始自太陽即入少陰,而太陽不能以無傷者;
有的從太陽開始就進入少陰,而太陽也不能沒有損傷;
或有直傷即入,而寒便變熱,及始寒而終熱者。
有的直接傷害就進入,而寒就變為熱,以及開始寒而最終熱。
其鬱熱傳陰與變熱,則爲熱證。
那些鬱熱傳入陰經和變為熱的,就是熱證。
其直傷陰經及從太陽即入少陰,則爲寒證。
那些直接傷害陰經以及從太陽立即進入少陰的,就是寒證。
其太陽不能無傷,則少陰脈證,而兼見太陽標病。
那些太陽不能沒有損傷的,就會出現少陰的脈證,同時兼見太陽的標病。
其始爲寒而終變熱,則先見寒證而後見熱證。
那些開始為寒而最終變為熱的,就會先出現寒證而後出現熱證。
此三陰之病,所以或寒或熱也。
這就是三陰的病,之所以有的寒有的熱的原因。
苟即三陰經篇諸條展轉玩繹以求之,理斯出矣。
如果就三陰經篇中的各條反覆玩味推求,道理就出來了。
夫其或傳經,或直傷,或即入,或先寒後熱者,何也?邪氣暴卒本無定情,而傳變不常故耳。
그것이 혹은 경을 전하고, 혹은 직접 상하고, 혹은 곧 들어가고, 혹은 먼저 한 후에 열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사기가 갑자기 발생하여 본래 정해진 상황이 없고, 전변(傳變)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故經曰:邪之中人也無有常,或中於陽,或中於陰。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사기가 사람을 공격함에 일정함이 없어, 혹은 양에 맞거나, 혹은 음에 맞는다.
夫守真者,絕類離倫之士也,豈好爲異說以駭人哉?蓋由其以溫暑爲傷寒,而仲景之方,每不與溫暑對,故略乎溫熱之劑,而例用寒涼。
무릇 진리를 지키는 자는 보통 사람과 다른 뛰어난 선비인데, 어찌 이상한 말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대저 그가 온서(溫暑)를 상한으로 여기고, 중경의 처방이 매번 온서에 맞지 않으므로, 온열(溫熱)의 약제를 생략하고 예외 없이 한량(寒涼)을 쓰기 때문이다.
由其以傷寒一斷爲熱而無寒,故謂仲景四逆湯爲寒藥誤下表熱裏和之證,及爲表熱裏寒自利之證而立,又謂溫裏止利急解其表,又謂寒病止爲雜病。
그가 상한을 한결같이 열(熱)로 단정하고 한(寒)이 없다고 여기므로, 중경의 사역탕이 한약(寒藥)을 잘못 내려 표열리화(表熱裏和)의 증과 표열리한 자리(自利)의 증을 위해 세워졌다고 말하고, 또 이리를 멈추고 급히 그 표를 풀기 위해 온리(溫裏)한다고 말하며, 또 한병(寒病)은 오직 잡병(雜病)일 뿐이라고 말한다.
嗟乎!仲景《傷寒論》專爲中而即病之傷寒作,不兼爲不即病之溫暑作,故每有三陰之寒證,而溫熱之劑之所以用也。
아! 중경의 《상한론》은 오직 감염되어 곧 병드는 상한을 위해 지어졌고, 곧 병들지 않는 온서를 겸하여 지은 것이 아니므로, 매번 삼음(三陰)의 한증(寒證)이 있고, 온열(溫熱)의 약제가 쓰이는 이유이다.
以病則寒,以時則寒,其用之也固宜。
병으로 보면 한(寒)이고, 시절로 보면 한(寒)이니, 그것을 쓰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다.
後人不知此意,是以愈求愈遠,愈說愈鑿。
후세 사람들이 이 뜻을 알지 못하므로, 더욱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고, 더욱 설명할수록 더욱 억지가 된다.
若知此意,則猶庖丁解牛,動中肯綮矣。
만약 이 뜻을 안다면, 마치 포정이 소를 해체하듯 움직임이 핵심을 찌를 것이다.
且如寒藥誤下而成裏寒者,固不爲無矣;不因寒藥誤下而自爲裏寒者,其可謂之必無乎?
또한 한약을 잘못 내려서 리한(裏寒)이 된 경우는 진실로 없다고 할 수 없지만, 한약을 잘못 내리지 않았는데 스스로 리한이 된 경우를 반드시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殊不知陰經之每見寒證者,本由寒邪不由陽經,直傷於此,與夫雖由太陽而始,不及鬱熱,即入於此而致也。
음경(陰經)에 매번 한증(寒證)이 나타나는 것은 본래 한사(寒邪)가 양경(陽經)을 거치지 않고 직접 여기에 상하거나, 비록 태양(太陽)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울열(鬱熱)에 이르지 않고 곧 여기에 들어와서 생긴 것임을 알지 못한다.
雖或有因寒藥誤下而致者,蓋亦甚少。
비록 혹 한약을 잘못 내려서 생긴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매우 드물다.
仲景所用諸溫熱之劑,何嘗每爲寒藥誤下而立?
중경이 사용한 모든 온열(溫熱)의 약제가 어찌 매번 한약을 잘못 내린 경우를 위해 세워졌겠는가?
況表熱裏寒之證,亦何嘗每有急解其表之文乎?
하물며 표열리한(表熱裏寒)의 증에도 어찌 매번 급히 그 표를 푸는 글이 있겠는가?
夫裏寒外熱之證,乃是寒邪入客於內,迫陽於外,或是虛陽之氣,自作外熱之狀耳,非真熱邪所爲也。
무릇 리한외열(裏寒外熱)의 증은 한사(寒邪)가 안에 들어와 깃들어 양(陽)을 밖으로 핍박하거나, 혹 허양(虛陽)의 기운이 스스로 외열(外熱)의 형상을 만든 것일 뿐, 진정한 열사(熱邪)가 한 것이 아니다.
觀仲景於裏寒外熱之證,但以溫藥治裏寒而不治外熱,則知其所以爲治之意矣。
仲景在裏寒外熱的證候上,只用溫藥治療裏寒而不治療外熱,就知道他治療的用意了。
若果當急解其表,豈不於裏和之後明言之乎?
如果確實應當緊急解表,難道不會在裏氣調和之後明確說明嗎?
且三陰寒病既是雜病,何故亦載於《傷寒論》以惑後人乎?
況且三陰寒病既然是雜病,為什麼也記載在《傷寒論》中來迷惑後人呢?
其厥陰病篇諸條之上,又何故每以傷寒二字冠之乎?
那厥陰病篇各條之前,又為什麼每每以“傷寒”二字開頭呢?
夫《內經》所敘三陰病一於爲熱者,言其常也;仲景所敘三陰病兼乎寒熱者,言其變也,並行而不相悖耳。
《內經》所論述的三陰病統一於熱,是說它的常態;仲景所論述的三陰病兼有寒熱,是說它的變態,兩者並行而不相矛盾罷了。
後人謂傷寒本無寒證,得非知常而不知變歟?
後人說傷寒本來沒有寒證,難道不是隻知常態而不知變態嗎?
然世之恪守《局方》,好用溫熱劑者,乃反能每全於寒證,無他,其守彼雖偏,治此則是。
然而世上拘泥於《局方》、喜用溫熱藥的人,反而常常能治癒寒證,沒有別的原因,他們堅守那套雖然偏頗,治療這些證候卻是正確的。
學者能知三陰固有寒邪所爲之證,則仲景創法之本意,可以瞭然於心目之間,而不爲他說所奪矣。
學醫的人如果知道三陰確實有寒邪導致的證候,那麼仲景創立法則的本意,就能清楚地印在心中眼中,而不被其他學說所動搖。
或曰:傷寒之病,必從陽經鬱熱而傳三陰,今子謂直傷陰經,即入陰經而爲寒證,其何據乎?
有人問:傷寒病,必定從陽經鬱熱而傳入三陰,如今您說直接傷及陰經,就進入陰經而成爲寒證,這有何依據呢?
餘曰:據夫仲景耳。
我回答:依據仲景的言論罷了。
仲景曰:病發熱惡寒者,發於陽也;無熱惡寒者,發於陰也。
仲景說:病發熱惡寒的,是發於陽;無熱惡寒的,是發於陰。
發於陽者,七日愈;發於陰者,六日愈。
發於陽的,七天痊癒;發於陰的,六天痊癒。
夫謂之無熱惡寒,則知其非陽經之鬱熱矣;謂之發於陰,則知其不從陽經傳至此矣。
稱作無熱惡寒,就知道它不是陽經的鬱熱了;稱作發於陰,就知道它不是從陽經傳到這裏了。
謂之六日愈,則知其不始太陽,而止自陰經發病之日爲始數之矣。
稱作六天痊癒,就知道它不從太陽開始,而只從陰經發病之日開始計算了。
仲景又曰:傷寒一二日至四五日而厥者,必發熱。
仲景又說:傷寒一兩天到四五天而厥冷的,必定會發熱。
傷寒病厥五日,熱亦五日,設六日當復厥,不厥者自愈。
傷寒病厥冷五天,發熱也是五天,假如第六天應當再次厥冷,如果不厥冷就自行痊癒。
傷寒厥四日,熱反三日,復厥五日,其病爲進。
傷寒厥冷四天,發熱反而三天,再次厥冷五天,這病是進展了。
夫得傷寒末爲熱即爲厥者,豈亦由傳經入深之熱邪而致此乎?
大抵得傷寒病後,未出現發熱就出現厥逆的,難道也是由傳經深入之熱邪導致的嗎?
今世人多有始得病時,便見諸寒證,而並無或熱者,此則直傷陰經,即入陰經者也。
現在世人常有剛得病時,就見到各種寒證,而完全沒有發熱的,這就屬於直中陰經,即邪氣直接侵入陰經。
苟不能究夫仲景之心,但執凡傷於寒則爲病熱之語以爲治,其不夭人天年者幾希矣。
如果不能深究張仲景的本意,只是執著於「凡是傷於寒就會化為熱病」的說法來治療,這樣不使人夭折壽命的就太少了。
陽虛陰盛陽盛陰虛論
양허음성양성음허론
《難經》曰:傷寒,陽虛陰盛,汗出而愈,下之即死;陽盛陰虛,汗出而死,下之而愈。
《難經》說:傷寒病,陽虛陰盛時,發汗就會痊愈,用瀉下法就會死亡;陽盛陰虛時,發汗就會死亡,用瀉下法就會痊愈。
嗟乎!其傷寒汗下之樞機乎?
唉!這難道不是傷寒汗法和下法的關鍵嗎?
夫邪之傷於人也,有淺深焉。
邪氣侵犯人體,有淺深之分。
淺則居表,深則入裏。
淺則在體表,深則進入體內。
居表則閉腠理,發怫熱,見惡寒惡風頭痛等證,於斯時也,惟辛溫解散而可愈;
在體表就會閉塞毛孔,產生鬱熱,出現惡寒、惡風、頭痛等症狀,此時只有用辛溫發散的方法才能痊愈;
入裏則爲燥屎,作潮熱形狂言讝語大渴等證,於斯時也,惟鹹寒攻下而可平。
進入體內就會形成燥屎,出現潮熱、狂言、譫語、大渴等症狀,此時只有用鹹寒攻下的方法才能平定。
夫寒邪外客,非陰盛而陽虛乎?
寒邪從外侵犯,難道不是陰盛陽虛嗎?
熱邪內熾,非陽盛而陰虛乎?
熱邪在內熾盛,難道不是陽盛陰虛嗎?
汗下一差,生死反掌。
汗法和下法使用差錯,生死就在反掌之間。
籲!是言也,謂之傷寒汗下樞機,其不然歟?
啊!這些話,稱作傷寒汗法和下法的關鍵,難道不是這樣嗎?
惜乎釋者旁求,厥義滋隱。
可惜註解的人旁加探求,使它的含義更加隱晦。
《外臺祕要》曰:此陰陽指身之表裏言。
《外臺祕要》說:這裡的陰陽指的是身體的表裏而言。
病者爲虛,不病者爲盛。
有病的地方為虛,無病的地方為盛。
表病裏和,是陽虛陰盛也;
表有病而裏平和,這是陽虛陰盛;
表和裏病,是陽盛陰虛也。
表和而裏有病,這是陽盛陰虛。
竊意:陰陽之在人,均則寧,偏則病。
我私下認為:陰陽在人體,平衡就安寧,偏盛就生病。
無過不及之謂均,過與不及之謂偏。
沒有太過和不及叫做平衡,太過和不及叫做偏盛。
盛則過矣,虛則不及矣,其可以盛爲和乎?
盛就是太過,虛就是不及,難道可以把盛當作平和嗎?
故《內經》雲:邪氣盛則實,精氣奪則虛。
所以《內經》說:邪氣盛就是實,精氣被奪就是虛。
且謂陽虛當汗,陰虛當下。
而且說陽虛應當發汗,陰虛應當攻下。
乃遺邪氣而反指正氣爲言,得無晦乎?
卻遺漏了邪氣而反指正氣來說,難道不晦澀嗎?
《傷寒微旨》曰:此陰陽指脈之尺寸言。
《傷寒微旨》說:這裡的陰陽指的是脈象的寸尺而言。
尺脈實大,寸脈短小,名陰盛陽虛,可汗;
尺脈實大,寸脈短小,叫做陰盛陽虛,可以發汗;
寸脈實大,尺脈短小,名陽盛陰虛,可下。
寸脈實大,尺脈短小,叫做陽盛陰虛,可以攻下。
苟汗證已具而脈未應,必待尺脈力過於寸而後行;
如果發汗的證候已具備而脈象未相應,必須等到尺脈力量超過寸脈後再施行;
下證已具而脈未應,必待寸脈力過於尺而後用。
攻下的證候已具備而脈象未相應,必須等到寸脈力量超過尺脈後再使用。
竊意越人設難,以病不以脈。
我私下認為越人(扁鵲)設立難題,是根據病證而不是根據脈象。
其所答也,何反以脈不以病乎?
他的回答,為什麼反而根據脈象而不根據病證呢?
且脈固以候病也,倘汗下之證已急,不可稍緩,待脈應而未應,欲不待則惑於心,欲待之則慮其變,二者之間,將從病歟?將從脈歟?吾不得無疑於此也。
또한 맥은 진실로 병을 살피는 것이니, 만약 땀을 내거나 설사시키는 증상이 이미 급하여 조금도 늦출 수 없고, 맥이 응하기를 기다리는데 아직 응하지 않았다면, 기다리지 않으려 하면 마음속에 망설여지고, 기다리려 하면 그 변고를 걱정하게 되니,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병을 따라야 할까요? 맥을 따라야 할까요? 나는 이 점에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或詰餘曰:仲景《傷寒論》引此,而繼以桂枝下嚥陽盛則斃,承氣入胃陰盛以亡之語。
어떤 이가 나에게 묻기를: 중경의 《상한론》에서 이것을 인용하고, 이어서 '계지탕을 목구멍으로 넘기면 양이 성하여 죽고, 승기탕이 위에 들어가면 음이 성하여 죽는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夫桂枝表藥,承氣裏藥,反則爲害,是固然矣。然麻黃湯亦表藥也,其不言之何歟?
계지탕은 표증 치료 약이고, 승기탕은 이증 치료 약이니, 반대로 쓰면 해로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마황탕도 표증 치료 약인데, 그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且子以陰盛爲寒邪,寒邪固宜用麻黃也,今反舉桂枝又何歟?
또한 그대는 음이 왕성한 것을 한사로 여기는데, 한사에는 진실로 마황을 써야 하는데, 지금 도리어 계지를 든 것은 또 무슨 까닭입니까?
餘曰:何不味仲景之言乎?其曰:凡傷寒之病,多從風寒得之。
내가 말하기를: 어찌 중경의 말을 음미하지 않는가? 그는 말하기를: '무릇 상한의 병은 대부분 풍한으로부터 얻는다.' 하였습니다.
又曰:脈浮而緊,浮則爲風,緊則爲寒。
또 말하기를: '맥이 부하면서 긴한데, 부하면 풍이 되고, 긴하면 한이 된다.' 하였습니다.
又桂枝湯條而曰:嗇嗇惡寒,淅淅惡風。
또 계지탕 조목에서 말하기를: '습습하게 오한이 나고, 석석하게 바람을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麻黃湯條而曰:惡風。
마황탕 조목에서 말하기를: '바람을 싫어한다.' 하였습니다.
夫風寒分言,則風陽而寒陰,風苟行於天地嚴凝凜冽之時,豈得謂之陽乎?是則風寒常相因耳。
풍과 한을 나누어 말하면, 풍은 양이고 한은 음이지만, 풍이 만약 천지가 엄숙하고 응결되며 매서운 때에 행해진다면, 어찌 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풍과 한이 항상 서로 인한 것입니다.
故桂枝、麻黃皆溫劑也。以溫劑爲治,足以見風寒之俱爲陰邪矣。
그러므로 계지와 마황은 모두 온성의 약제입니다. 온제로 치료하는 것으로 보아, 풍한이 모두 음사임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但傷衛則桂枝,傷榮則麻黃,榮衛雖殊,其爲表則一耳。
다만 영위를 상하면 계지를 쓰고, 영을 상하면 마황을 쓰는데, 영과 위가 비록 다르지만 그것이 표증이라는 점은 하나일 뿐입니다.
仲景此言,但以戒汗下之誤爲主,不爲榮衛設也。
중경이 이 말을 한 것은 다만 한법과 하법의 오류를 경계하는 것이 주가 되었을 뿐, 영위를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舉桂枝則麻黃在其中矣。所謂陽盛即斃者,是言表證已罷,而裏證既全,可攻而不可汗;所謂陰盛以亡者,是言裏證未形,而表證獨具,可汗而不可攻。
계지를 든 것에 마황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양이 성하면 즉시 죽는다'는 것은 표증이 이미 끝나고 이증이 이미 완전하여 공격할 수는 있지만 땀을 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음이 성하면 죽는다'는 것은 이증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표증만 홀로 갖추어져 있어 땀을 낼 수는 있지만 공격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由是觀之,則越人、仲景之本旨,庶乎暢然於其中矣。
이로써 보건대, 월인과 중경의 근본 취지가 거기에서 환히 드러날 것입니다.
三百九十七法辨
삼백구십칠법 변증
餘自童時習聞此言,以爲傷寒治法如是之詳且備也。
내가 어릴 때부터 이 말을 익히 들어, 상한(傷寒) 치료법이 이렇게 상세하고 완비되었다고 생각했다.
及考之成無己注本,則所謂三百九十七法者,茫然不知所在。
그리고 성무기(成無己)의 주석본을 고찰해 보니, 이른바 397법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於是詢諸醫流,亦不過熟誦此句而已。
이에 여러 의사들에게 물었지만, 그저 이 구절을 숙지하여 외울 뿐이었다.
欲其條分縷析以實其數,則未遇其人。
그것을 조목별로 나누어 분석하여 그 수를 채우려 했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遂乃反覆而推尋之。
마침내 반복해서 추구하고 찾았다.
以有論有方諸條數之,則不及其數;
논(論)이 있고 방(方)이 있는 여러 조문을 세어보니 그 수에 미치지 못했고,
以有論有方、有論無方諸條通數之,則過其數。
논이 있고 방이 있는 것과 논이 있고 방이 없는 여러 조문을 모두 세어보니 그 수를 넘었다.
除辨脈法平脈法,並《傷寒例》及可汗不可汗、可吐不可吐、可下不可下諸篇外,
변맥법(辨脈法)과 평맥법(平脈法), 그리고 《상한례(傷寒例)》와 가한불가한(可汗不可汗)·가토불가토(可吐不可吐)·가하불가하(可下不可下) 등의 편을 제외하고,
止以六經病篇中有論有方有論無方諸條數之,則亦不及其數。
오직 육경병(六經病) 편에서 논이 있고 방이 있는 것과 논이 있고 방이 없는 여러 조문을 세어보니, 또한 그 수에 미치지 못했다.
以六經病篇及痓溼暍、霍亂、陰陽易差後勞復病篇中,有論有方、有論無方諸條數之,則亦過其數。
육경병 편 및 경습갈(痓溼暍)·곽란(霍亂)·음양역차후노복병(陰陽易差後勞復病) 편에서 논이 있고 방이 있는 것과 논이 있고 방이 없는 여러 조문을 세어보니, 또한 그 수를 넘었다.
至以六經病、痓溼暍、霍亂、陰陽易差後勞復篇,有論有方諸條數之,則又太少矣。
육경병·경습갈·곽란·음양역차후노복편에서 논이 있고 방이 있는 여러 조문만 세어보니, 또 너무 적었다.
竟不能決。
결국 결정할 수 없었다.
欲以此句視爲後人無據之言而不從,則疑其或有所據,
이 구절을 후인(後人)의 근거 없는 말이라고 여겨 따르지 않으려 하면, 혹시 근거가 있을까 의심스럽고,
而或出仲景、叔和而勿敢廢;
혹 중경(仲景)이나 숙화(叔和)의 말에서 나왔을까 하여 감히 버리지 못하겠다.
欲尊信而必從之,則又多方求合而莫之遂。
존중하고 믿어 반드시 따르려 하면, 또 여러 방법으로 맞추려 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宋?林億等校正《傷寒論》,其序曰:今校定張仲景《傷寒論》十卷總二十篇,證外合三百九十七法。
송(宋)나라의 임억(林億) 등이 《상한론(傷寒論)》을 교정하며 그 서문에서 말하기를, '지금 교정한 장중경(張仲景)의 《상한론》 10권 총 20편은 증(證) 밖에 합계 397법이다.'라고 했다.
餘於是就其十卷二十二篇而求之,
내가 이에 그 10권 22편을 살펴 찾았는데,
其六經篇、霍亂篇、陰陽易瘥後勞復篇中,有方治諸條,以數爲計,又重載於各篇之前;
그 육경편(六經篇)·곽란편(霍亂篇)·음양역차후노복편(陰陽易瘥後勞復篇) 중에 방치(方治)가 있는 여러 조문을 수로 헤아리고, 또 각 편의 앞에 중복하여 실었고,
又謂疾病至急,倉卒難尋,復重集諸可與不可方治,分爲八篇,亦以數爲計,繼於陰陽易瘥後勞復篇之後。
또 질병이 매우 급하여 창졸간에 찾기 어려우므로, 다시 모든 가(可)와 불가(不可)의 방치를 모아 8편으로 나누고 또한 수로 헤아려, 음양역차후노복편 뒤에 계속 실었다.
其太陽上篇注曰一十六法,太陽中篇注曰六十六法,太陽下篇注曰三十九法,陽明篇注曰四十四法,少陽篇不言法,太陰篇注曰三法,少陰篇注曰二十三法,厥陰篇注曰六法,不可發汗篇注曰一法,可發汗篇注曰四十一法,發汗後篇注曰二十五法,可吐篇注曰二法,不可下篇注曰四法,可下篇注曰四十四法,汗吐下後篇注曰四十八法。
그 태양 상편의 주에는 16법, 태양 중편의 주에는 66법, 태양 하편의 주에는 39법, 양명편의 주에는 44법, 소양편은 법을 말하지 않으며, 태음편의 주에는 3법, 소음편의 주에는 23법, 궐음편의 주에는 6법, 불가발한편의 주에는 1법, 가발한편의 주에는 41법, 발한후편의 주에는 25법, 가토편의 주에는 2법, 불가하편의 주에는 4법, 가하편의 주에는 44법, 한토하후편의 주에는 48법이라고 하였다.
以其所注之數通計之,得三百八十七法。
그 주에 적힌 수를 모두 합하면 387법이 된다.
然少陽篇有小柴胡湯一法,其不言者恐脫之也。
그러나 소양편에는 소시호탕 1법이 있는데, 말하지 않은 것은 아마 빠진 것이다.
又可吐篇卻有五法,其止言二法者,恐誤也。
또 가토편에는 5법이 있는데, 다만 2법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 잘못이다.
並此脫誤四法,於三百九十七法之中,亦僅得三百九十一法耳。
이렇게 빠지고 잘못된 4법을 합쳐도 397법 가운데 겨우 391법을 얻을 뿐이다.
較之序文之說,猶欠六法。
서문의 말과 비교하면 여전히 6법이 부족하다.
乃參之《脈經》,其可汗可吐等篇外,比《傷寒論》又多可溫、可灸、可刺、可水、可火、不可刺、不可灸、不可水、不可火諸篇,欲以此補其所欠,則又甚多而不可用。
이에 《맥경》을 참고하니, 그 가한·가토 등의 편 밖에 《상한론》보다 가온·가구·가자·가수·가화·불가자·불가구·불가수·불가화 등의 여러 편이 더 있는데, 이것으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 하면 또 너무 많아 쓸 수 없다.
元?泰定間程德齋又作《傷寒鈐法》,其自序曰:若能精究是編,則知六經傳變三百九十七法,在於指掌矣。
원?태정 연간에 정덕재가 또 《상한검법》을 지었는데, 그 자서에서 말하기를: 만약 이 책을 정밀히 연구할 수 있다면 육경 전변의 397법이 손바닥에 있는 듯 알게 될 것이다.
又曰:六經二百一十一法,霍亂六法,陰陽易差後勞復六法,痓溼暍九法,不可汗二十六法,宜汗四十一法,不可吐五法,不可下五法,可汗五法,可吐五法。
또 말하기를: 육경 211법, 곽란 6법, 음양역차후노복 6법, 치습갈 9법, 불가한 26법, 의한 41법, 불가토 5법, 불가하 5법, 가한 5법, 가토 5법.
餘亦以其說通計之,卻止得三百一十八法。
나도 그 말대로 모두 합해 보았더니, 오히려 겨우 318법을 얻었다.
於三百九十七法中,尚欠七十八法。
397법 가운데 아직 78법이 부족하다.
觀其序文乃如彼,考其所計乃如此,則知其猶未能灼然以得其實數而無疑也。
보니 그 서문은 그렇고, 그가 계산한 것을 살펴보니 이와 같아, 그가 아직 확실히 실제 수를 얻어 의심이 없지 못함을 알겠다.
故下文細數中,止重敘六經、霍亂、痓溼暍、陰陽易差後勞復諸法而已。彼可汗不可汗等諸法,再不重敘也。
그러므로 아래 글의 자세한 수에서, 다만 육경, 곽란, 사습갈, 음양역차후노복의 여러 법을 거듭 서술했을 뿐이다. 저 가한불가한 등의 여러 법은 다시 거듭 서술하지 않았다.
近批點《傷寒論》者,何不考其非,乃一宗其所鈐字號,而不敢少易乎?
요즘 《상한론》을 비점한 자들은 어찌 그 잘못을 살피지 않고, 한결같이 그가 할인 글자를 따라 감히 조금도 바꾸지 않는가?
餘由是屏去其說,但即論之本文,寢食與俱,以細繹之。
내가 이에 그 설을 물리치고, 다만 논의 본문에 나아가 침식을 함께하며 자세히 연구하였다.
一旦豁然,始悟其所計之數,於理不通,而非仲景、叔和之說矣。
하루아침에 환히 깨달아, 그가 계산한 수가 이치에 통하지 않으며, 중경과 숙화의 말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다.
夫《傷寒論》,仲景之所作也,至叔和時已多散落。
무릇 《상한론》은 중경이 지은 것이나, 숙화 때에 이르러 이미 많이 흩어져 없어졌다.
雖叔和搜採成書,終不能復其舊,然則今之所傳者,非全書也明矣。
비록 숙화가 수집하여 책을 이루었으나, 끝내 그 옛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지금 전해지는 것은 완전한 책이 아님이 분명하다.
後之昧者乃不察此,必欲以全書視之,爲鈐爲括,斷之曰:某經幾證,某經幾證,以謂傷寒治法略無餘蘊矣。
뒷날의 어리석은 자들은 이를 살피지 않고, 반드시 완전한 책으로 여겨, 할자로 만들고 괄자로 만들어 결론짓기를 '모 경에 몇 증, 모 경에 몇 증'이라 하여, 상한 치료법에 조금도 남은 뜻이 없다고 말한다.
殊不知其間有論無方者甚多。
그 사이에 논만 있고 처방이 없는 것이 매우 많음을 알지 못한다.
至若前篇引《內經》所敘六經病證,除太陽少陰證爲後篇所有外,其陽明篇無目疼,少陽篇言胷脅滿而不言痛,太陰篇無嗌幹,厥陰篇無囊縮。
이르러 앞 편이 《내경》에서 인용한 육경 병증을 서술한 것에, 태양과 소음 증이 뒤 편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양명 편은 눈 아픔이 없고, 소양 편은 흉협만을 말하고 통증을 말하지 않으며, 태음 편은 목 마름이 없고, 궐음 편은 음낭 축소가 없다.
若此者,非皆本無也,必有之而脫之耳。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본래 없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있었으나 빠진 것이다.
雖然,爲鈐括者,膠柱調瑟,但知叔和之重載,而莫知其所以重載之意也。
비록 그러하나, 할자와 괄자를 만든 자들은 교주조슬하여, 다만 숙화가 거듭 실은 것만 알 뿐, 그 거듭 실은 뜻을 알지 못한다.
夫叔和既撰次於搜採之餘,復重載各篇方法,並諸可與不可方治者,非他,不過慮人惑於紛亂,故示之以簡便而已。
무릇 숙화가 이미 수집한 뒤에 편차를 지으면서, 다시 각 편의 방법과 여러 가불가한 방치를 거듭 실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사람들이 혼란에 미혹될까 염려하여 간편함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林億乃不解其意,遂不問重與不重,一概通數之以立總目。
임억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침내 거듭됨과 거듭되지 않음을 묻지 않고, 한결같이 통틀어 세어 총목을 세웠다.
何不觀重載八篇之中,其方治者止有一十五條,爲六經篇之所無,其餘一百五十三條,皆六經篇已數過者,安有一法而當兩數之理乎?
何不看看重複記載的八篇中,有方劑治療的只有十五條,是六經篇中沒有的,其餘一百五十三條都是六經篇已經數過的,哪裡有一條治法而應當重複計算的道理呢?
雖程德齋去取與林億頓異,然亦五十步笑百步耳。
雖然程德齋的取捨與林億截然不同,但也不過是五十步笑百步罷了。
其不重數發汗後並吐汗下後諸法,固爲是矣。
他不重複計算發汗後以及吐汗下後的各種治法,固然是對的。
至於宜汗四十一法,卻又俱是一法當兩數者,與林億所計,何以異哉?
至於適宜發汗的四十一條治法,卻又都是一條治法當作兩條計算,與林億所計算的,有什麼不同呢?
推原其意,似亦不見林億所計細數,止聞三百九十七法之目,遂自就論中尋而數之,欲以實其總數。
推究他的本意,似乎也沒有見到林億計算的詳細數目,只聽說了三百九十七法的條目,就自己從論文中尋找並計算,想用來充實那個總數。
然而卒不能實,故爲此含糊之說以欺後人,反又不逮林億所言也。
然而最終不能充實,所以做了這種含糊的說法來欺騙後人,反而又不如林億所說的。
竊嘗思之,縱使三百九十七法之言,不出於林億等,而出於億之前,亦不足用。
我私下曾經想過,即使三百九十七法的說法,不是出於林億等人,而是出於林億之前,也不足以採用。
此言既出,則後之聞者,必當核其是非以歸於正,而乃遵守聽從,以爲千載不易之定論。悲夫!
這話既然說出,那麼後來聽到的人,理應核查它的對錯以歸於正確,但卻遵守聽從,把它當作千年不變的定論。可悲啊!
餘今於三百九十七法內,除去重複者,與無方治者,止以有方治而不重複者計之,得二百三十八條,並以治字易法字,而曰二百三十八治,如此則庶或可通也。
我現在在三百九十七法之內,除去重複的,和沒有方劑治療的,只取有方劑治療而不重複的來計算,得到二百三十八條,並用‘治’字代替‘法’字,稱之爲二百三十八治,這樣或許可以通順了。
若以法言,則仲景一書,無非法也,豈獨有方者然後爲法哉?
如果按‘法’來說,那麼仲景的一書,沒有不是法的,難道只有有方劑的然後才能稱爲法嗎?
且如論證論脈,與夫諄諄教戒,而使人按之以爲望聞問切之準則者,其可謂之法乎?其不可謂之法乎?
比如討論證候討論脈象,以及那些諄諄教導告誡,使人依照它作爲望聞問切準則的內容,可以稱之爲法嗎?不可以稱之爲法嗎?
雖然,六經之外諸條,其二家去取不同,固不必辨。
雖然如此,六經之外的各條,他們兩家取捨不同,本來不必辯駁。
然其於六經之中,尤每有悖理而不通者,姑陳一。
然而在六經之中,尤其常常有違反道理而不通順的,姑且陳述一例。
如太陽病三日,已發汗,若吐若下若溫針仍不解者,此爲壞病,桂枝不中與也。觀其脈證,知犯何逆,隨證治之。
예를 들어 태양병이 사흘째 되어 이미 땀을 내게 하였고, 또 토하게 하거나 설사시키거나 온침을 놓아도 낫지 않는 자, 이것은 나쁜 병이니 계지탕은 적합하지 않다. 그 맥과 증을 살펴서 어떤 잘못을 범했는지 알고 증상에 따라 치료한다.
桂枝本爲解肌,若其人脈浮緊,發熱汗不出者,不可與之也。當須識此,勿令誤也。
계지탕은 본래 기육을 풀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의 맥이 부긴하고 열이 나며 땀이 나지 않는 자에게는 줄 수 없다. 마땅히 이것을 알아서 잘못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若酒客病,不可與桂枝湯,得湯則嘔,以酒客不喜甘故也。
만약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는 계지탕을 줄 수 없으며, 탕을 얻으면 구토한다. 이는 술꾼이 단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喘家作桂枝湯,加厚朴、杏子佳。
숨이 차는 사람에게 계지탕을 만들 때에는 후박과 행인을 더하는 것이 좋다.
凡服桂枝湯吐者,其後必吐膿血也。
무릇 계지탕을 복용하고 토하는 자는 그 후에 반드시 농혈을 토한다.
林億所校本則自太陽病,止勿令誤也,爲一法;自若酒客病,止杏子佳,爲一法。自凡服桂枝湯,止吐膿血也,則爲證不爲法。
임억이 교정한 판본에서는 '태양병'에서 '勿令誤也'까지를 한 법으로 하고, '若酒客病'에서 '杏子佳'까지를 한 법으로 하며, '凡服桂枝湯'에서 '吐膿血也'까지는 증상이지 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程德齋《鈐法》,則自太陽病,止隨證治之,爲一法;自桂枝本爲解肌,止必吐膿血也,爲一法。
정덕재의 『검법』에서는 '태양병'에서 '隨證治之'까지를 한 법으로 하고, '桂枝本爲解肌'에서 '必吐膿血也'까지를 한 법으로 하였다.
又林億本於病脅下素有痞,連在臍旁,痛引少腹入陰筋者,此名髒結死一條,則數爲一法;於其餘死不治者,則皆不數。
또 임억의 판본에서는 '병이 협하에 본래 결(痞)이 있어 배꼽 옆에까지 이어지고 아픔이 소복과 음근으로 이끄는 것, 이것을 장결이라 하여 죽는다'라는 한 조목을 법 하나로 세었으나, 그 외의 죽어서 치료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세지 않았다.
程德齋《鈐法》,於陽明病下血讝語者,此爲熱入血室,但頭汗出者,刺期門,隨其實而瀉之,濈然汗出愈,一條則不數;而太陽刺肝俞、肺俞、期門諸條,卻又數之而勿遺。
정덕재의 『검법』에서는 '양명병에 하혈하고 섬어하는 자, 이것은 열이 혈실로 들어간 것이며, 다만 머리에만 땀이 나는 자는 기문을 침으로 찔러서 그 실함을 따라 사하고, 땀이 나서 낫는다'는 한 조목은 세지 않았으나, 태양병에서 간수, 폐수, 기문을 침으로 찌는 여러 조목은 오히려 빠짐없이 세었다.
餘如兩條同類,一雲當汗而無方,一雲當汗而有方,則取其有方者而略其無方者。又如當取而不取,不當取而取者,蓋亦甚多,不可悉舉。
그 나머지 두 조목이 같은 종류인데 하나는 마땅히 땀을 내야 하지만 처방이 없고, 하나는 마땅히 땀을 내야 하며 처방이 있으면 처방이 있는 것을 취하고 없는 것을 생략한다. 또 마땅히 취해야 하는데 취하지 않거나 마땅히 취하지 않아야 하는데 취하는 경우도 또한 매우 많아서 다 거론할 수 없다.
若此者悖理不通,二家皆所不免。所謂楚固失矣,齊亦未爲得也。苟熟玩論之本文,以較其言,則罅漏出矣。
이와 같은 것은 이치에 어긋나고 통하지 않아, 두 집안 모두 면하지 못하였다. 이른바 초나라가 이미 잃었고 제나라도 옳은 것을 얻지 못하였다. 만약 논의 본문을 숙고하여 그 말을 비교하면 틈과 빠짐이 드러날 것이다.
四逆厥辨
사역과 궐의 변별
成無己注《傷寒論》有云:四逆者,四肢不溫也;厥者,下足冷也。
성무기가 《상한론》 주석에서 말하기를, 사역은 사지가 따뜻하지 않은 것이고, 궐은 아래(다리)와 발이 차가운 것이다.
傷寒邪在三陽,則手足必熱;傳到太陰,手足自溫;至少陰,則邪熱漸深,故四肢逆而不溫。
상한의 사기가 삼양에 있으면 반드시 손발이 뜨겁고, 태음으로 전해지면 손발이 저절로 따뜻해지며, 소음에 이르면 사열이 점차 깊어져서 사지가 차가워져서 따뜻하지 않게 된다.
及至厥陰則手足厥冷,是又甚於逆。
궐음에 이르면 손발이 궐랭(차갑게 식음)하니, 이는 또 역보다 심한 것이다.
經曰:少陰病四逆,其人或欬或悸,或小便不利,或腹中痛,或泄利下重者,四逆散主之。
경에 이르기를, 소음병 사역에 그 사람이 혹 기침하거나 가슴 두근거리거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배가 아프거나, 설사하면서 뒤가 무거운 자는 사역산이 주치한다.
方用柴胡、枳實、芍藥、甘草,四者皆寒冷之物,而專主四逆之疾,是知四逆非虛寒之證也。
방에는 시호, 지실, 작약, 감초를 쓰는데, 네 가지 모두 차고 냉한 약물이면서 오직 사역의 병을 주치하니, 이로써 사역이 허한의 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四逆與厥相近而非。
사역과 궐은 가깝지만 같지는 않다.
經曰:諸四逆厥者不可下。是四逆與厥有異也。
경에 이르기를, 모든 사역과 궐은 하법을 써서는 안 된다. 이는 사역과 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籲!斯言也,所謂彌近理而大亂真者歟?
아! 이 말은 이치에 가까울수록 진리를 크게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竊嘗考之,仲景言四逆與厥者非一,或曰四逆,或曰厥,或曰厥逆,或曰厥冷,或曰厥寒,或曰手足逆冷,或曰手足厥逆,或曰手足厥冷,或曰手足厥逆冷。
내가 살펴보건대, 중경이 사역과 궐을 말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혹은 사역이라 하고, 혹은 궐이라 하며, 혹은 궐역, 혹은 궐랭, 혹은 궐한, 혹은 수족역랭, 혹은 수족궐역, 혹은 수족궐랭, 혹은 수족궐역랭이라 하였다.
細詳其義,俱是言寒冷耳。
자세히 그 뜻을 살펴보면, 모두 차갑고 추움을 말한 것일 뿐이다.
故厥逆二字,每每互言,未嘗分逆爲不溫、厥爲冷也。
그러므로 궐역 두 글자는 자주 서로 바꾸어 말했으며, 일찍이 역을 불온으로, 궐을 냉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然四肢與手足卻有所分。
그러나 사지와 수족은 다소 구분이 있다.
其以四字加於逆字之上者,是通指手足臂脛以上言也;其以手足二字加於厥逆厥冷等之上,及無手足二字者,是獨指手足言也。
그 '四'자를 '逆'자 위에 붙인 것은 손, 발, 팔, 정강이 위를 통틀어 말한 것이고, '手足' 두 글자를 궐역, 궐랭 등 위에 붙인 것과 '手足' 두 글자가 없는 것은 손발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既曰不溫,即爲冷矣,尚何異乎?
이미 따뜻하지 않다고 말했으면 곧 차가운 것인데,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仲景所謂諸四逆厥者不可下,蓋以四逆爲四肢通冷,厥爲手足獨冷而臂與脛以上不冷耳,不謂逆厥有不溫與冷之別也。
중경이 이른바 '모든 사역궐은 하법을 쓰지 말라'는 것은 대개 사역을 사지 전체가 차가운 것, 궐을 손발만 차갑고 팔과 정강이 위는 차갑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며, 역과 궐에 불온과 냉의 구별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故又曰:厥者手足逆冷是也。
그러므로 또 이르기를, 궐이란 수족이 역랭한 것이라고 하였다.
以逆冷二字釋厥字,足見逆即厥,厥即逆也。
역랭 두 글자로 궐자를 풀이하였으니, 이로써 역이 곧 궐이고 궐이 곧 역임을 알 수 있다.
故字書曰:厥者逆也。
그러므로 자서에 이르기를, 궐은 역(거슬러 오름)이라고 하였다.
雖然,逆厥雖俱爲寒冷,而卻有陰陽之殊焉。熱極而成逆厥者,陽極似陰也;寒極而成逆厥者,獨陰無陽也。陽極似陰,固用寒藥;獨陰無陽,固用熱藥。仲景以四逆散寒藥治四逆一條,此陽極似陰之四逆也;其無四逆湯熱藥治四逆之條者,安知其非本有而失之乎?且四逆湯之名,由四肢之冷而立也。今以四逆湯治手足厥冷,豈非逆厥之不異乎?既以四逆爲四肢不溫,厥爲手足獨冷,何故不名治厥之藥爲四厥湯乎?成氏於四逆散治四逆條下,謂四逆爲熱邪所爲,及於《明理論》謂四逆非虛寒之證矣。至於少陰病死證二條下,卻謂四逆爲寒甚。若此者得不自悖其說乎?是知四逆亦猶厥之有寒有熱,固不可謂四逆專爲熱邪所作也。但四肢通冷,比之手足獨冷,則有間耳。故仲景曰:少陰病,吐利躁煩,四逆者死。又曰:少陰病,四逆惡寒而身蜷,脈不至,不煩而躁者死。又曰:少陰病,吐利手足厥冷煩躁欲死者,吳茱萸湯主之。此三條者,二爲死,一爲可治。雖通由諸證兼見而然,然死者以四逆言,可治者以厥冷言,則亦可見四逆與手足厥冷之有輕重淺深矣。夫四肢通冷其病爲重,手足獨冷其病爲輕,雖婦人小子亦能知之,成氏乃謂厥甚於逆何邪?
雖然,逆과 厥이 모두 寒冷에 속하지만, 거기에는 陰陽의 차이가 있다. 熱이 극에 달하여 생긴 逆厥은 陽極似陰이고, 寒이 극에 달하여 생긴 逆厥은 獨陰無陽이다. 陽極似陰에는 응당 寒藥을 쓰고, 獨陰無陽에는 응당 熱藥을 쓴다. 仲景이 四逆散(寒藥)으로 四逆을 치료한 조문이 있는데, 이것은 陽極似陰의 四逆이다. 四逆湯(熱藥)으로 四逆을 치료한 조문이 없는 것은, 본래 있었는데 빠진 것이 아닌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四逆湯이라는 이름은 四肢의 冷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四逆湯으로 手足厥冷을 치료하는 것이, 어찌 逆과 厥이 다르지 않다는 말인가? 이미 四逆을 四肢不溫으로, 厥을 手足獨冷으로 규정했다면, 어찌 治厥하는 약을 四厥湯이라 부르지 않는가? 成氏는 四逆散으로 四逆을 치료하는 조문 아래에서 四逆이 熱邪에 의한 것이라 하고, 《明理論》에서는 四逆이 虛寒證이 아니라 하였다. 그런데 少陰病死證 두 조문 아래에서는 四逆이 寒甚한 것이라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스스로 그 설을 어긋나게 하지 않겠는가? 이로써 四逆도 厥과 마찬가지로 寒과 熱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四逆이 오직 熱邪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다만 四肢通冷이 手足獨冷에 비하면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仲景이 말하기를, 少陰病에 吐利와 躁煩이 있고 四逆한 자는 죽는다. 또 말하기를, 少陰病에 四逆하고 惡寒하며 몸을 웅크리고 脈이 오지 않으며 煩하지 않고 躁한 자는 죽는다. 또 말하기를, 少陰病에 吐利하고 手足厥冷하며 煩躁欲死하는 자는 吳茱萸湯으로 치료한다. 이 세 조문 중 두 조문은 죽는 것이고 한 조문은 치료 가능한 것이다. 비록 모두 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난 결과이지만, 죽는 경우는 四逆이라 하고, 치료 가능한 경우는 厥冷이라 하였으니, 四逆과 手足厥冷에 경중과 깊이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四肢通冷은 그 병이 무겁고, 手足獨冷은 그 병이 가벼우니, 비록 부녀자나 어린아이도 이를 알 수 있는데, 成氏가 어찌하여 厥이 逆보다 심하다고 말하는가?
若能知四逆厥之所以異者,在於獨指手足言,與兼指臂脛以上言,則不勞創爲不溫與冷之曲說,而自然貫通矣。
만약 사역과 궐의 차이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이 오로지 손과 발만을 가리키는 것과 팔과 정강이 이상을 함께 가리키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되어, 억지로 불온과 냉의 억지 이론을 만들 필요 없이 자연히 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