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醫之道大矣!自神農、黃帝、岐伯、雷公而下,無非聖哲開其源,賢知導其流,故能拯黎元之疾苦,贊天地之生育。世道既降,士大夫以此爲技藝,不屑爲之,而畀之凡流。是以至精至微之理,而出於至卑至賤之思,其不能起人之疾,反以夭其命者多矣。此范文正公所以自謂:不爲良相,則爲良醫。伊川先生有云治病而委之庸醫,比之不慈不孝。自昔卓然名家者,如和緩、扁鵲、淳于意、張仲景、孫真人等,其論醫也,莫不以保養爲先,藥石爲輔。至於察形診脈,必致辯於毫芒疑似之末。而深痛夫世之醫者,苟簡虛憍,顧乃以醫之伐病,如將之伐敵,當用背水陣以決勝。是徒見夫華佗之說,時出其間,致於剖臆續筋之法,乃別術所得,非《神農本草》經方條理藥性常道爾。今惟仲景一書,爲衆方之袓,學者當取法雲。
의학의 도는 크다! 신농, 황제, 기백, 뇌공 이래로 모두 성철이 그 원천을 열고, 현지가 그 흐름을 인도하였기에, 백성의 질고를 구제하고 천지의 생육을 도울 수 있었다. 세도가 이미 쇠퇴하여 사대부들이 이것을 기예로 여겨 감히 하지 않고, 범류에게 맡겼다. 이로 말미암아 지극히 정미하고 지극히 미세한 이치가 지극히 비천하고 지극히 천한 생각에서 나오게 되어, 능히 사람의 병을 낫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목숨을 단축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범문정공이 스스로 이른 바 '어진 재상이 되지 못하면, 좋은 의원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천 선생이 이르기를 '병을 치료하면서 평범한 의원에게 맡기는 것은, 어질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함에 비유된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탁월하게 이름난 의원들, 예를 들어 화완, 편작, 순우의, 장중경, 손진인 등이 의학을 논함에 있어 모두 양생을 먼저 하고, 약석을 보조로 삼았다. 형체를 살피고 맥을 진단함에 있어 반드시 털끝만한 의심스러운 점까지 변별하였다. 그리고 세상의 의원들이 구차하고 간략하며, 허망하고 교만한 것을 깊이 통탄하여, 도리어 의학이 병을 공격함을 장수가 적을 공격함과 같아, 배수진을 써서 결승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는 단지 화타의 학설이 때때로 그 사이에 나와, 배를 가르고 힘줄을 잇는 방법이 별개의 술법에서 얻어진 것이지, 《신농본초》의 경방과 약성을 조리하는 상도가 아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 오직 장중경의 한 책이 모든 처방의 시조이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취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