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图书集成医部全录卷五百二十(上)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五百二十(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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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王世紀》:伏義氏仰觀象於天,俯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還取諸物,於是造書契以代結繩之政,畫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所以六氣六胕,五臟五行,陰陽四時,水火升降,得以有象,百病之理,得以類推,乃嘗味百草而制九針,以拯夭枉焉。
《帝王世紀》에 이르길: 복희씨가 하늘의 형상을 우러러 보고, 땅의 법칙을 굽어 살피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이로움을 관찰하고,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여, 이에 문자를 만들어 결승의 정치를 대체하고, 팔괘를 그려 신명의 덕을 통하게 하며, 만물의 이치를 분류하였다. 그러므로 육기와 육부, 오장과 오행, 음양과 사시, 수화의 승강이 형상을 얻었고, 온갖 병의 이치를 유추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온갖 풀의 맛을 보아 구침을 만들어 일찍 죽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路史》:伏義氏察六氣,審陰陽,以賚之身,而四時水火升降,得以有象,百病之理,得以有類。於是嘗草治砭,以制民疾,而人滋信。 【 注古者以砭,後代以針。高氏之山多此砭也。】
《路史》에 이르길: 복희씨가 육기를 살피고 음양을 살펴서, 그 몸에 베풀어 사시의 수화 승강이 형상을 얻고, 백병의 이치가 유별을 얻게 하였다. 이에 풀을 맛보고 침을 다스려 민간의 질병을 다스리니, 사람들이 더욱 믿었다. 【주석: 옛날에는 돌침을 썼고, 후대에는 침을 썼다. 고씨의 산에는 이 돌침이 많다.】
《史記》三皇本紀補:神農氏以赭鞭鞭草木,始嘗百草,始有醫藥。
《사기》 삼황본기 보충: 신농씨가 붉은 채찍으로 초목을 때려서 처음으로 여러 풀을 맛보고, 여기에서 의약이 시작되었다.
《帝王世紀》:炎帝神農氏長於江水,始教天下耕種五穀而食之,以省殺生,嘗味草木,宣藥療疾,救夭傷人命,百姓日用而不知。
《제왕세기》: 염제 신농씨가 강수에서 자라서, 처음으로 천하에 오곡을 심어 먹도록 가르쳐서 살생을 줄이고, 초목의 맛을 보며 약을 펴서 병을 치료하고, 요절하거나 상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했으나 백성들은 날마다 사용하면서도 알지 못했다.
着《本草》四卷。
저서로 《본초》 4권이 있다.
《搜神記》:神農以赭鞭鞭百草,盡知其平毒寒溫之性,臭味所生,以播百穀,故號神農皇帝。
《搜神기》에 이르길: 신농이 붉은 채찍으로 온갖 풀을 때려서, 모두 그 평毒(약성)과 차고 따뜻한 성질, 냄새와 맛이 나는 바를 알고, 백곡을 심었으므로, 신농황제라 불렀다.
《外紀》:古者民有疾病,未知藥石,炎帝始味草木之滋,察其寒溫平熱之性,辨其君臣佐使之義,嘗一日而遇七十毒,神而化之,遂作方書以療民疾,而醫道自此始矣。
《外紀》에 이르길: 옛날 백성들이 질병이 있어도 약석(藥石)을 알지 못하였는데, 염제(炎帝)가 처음으로 초목의 맛을 보아 그 차고 따뜻하고 평온하고 뜨거운 성질을 살피고, 군신좌사(君臣佐使)의 뜻을 분별하여, 하루에 일흔 가지 독을 만나면서도 신묘하게 변화시켜, 마침내 처방 책을 지어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였으니, 의도(醫道)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復察水泉甘苦,令人知所避就,由是斯民居安食力,而無夭札之患,天下宜之。
또 물과 샘의 달고 쓴 맛을 살펴 사람들로 하여금 피하고 따를 바를 알게 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편안히 살며 힘써 먹고 요절하는 근심이 없게 되니, 천하가 이를 편리하게 여겼다.
《路史》:神農問於太乙小子曰:上古之人,壽過百歲,後世不究天年,而有殂落之咎,獨何氣使然耶?小子曰:天有九門,中道最良。
《路史》에 말하였다:신농이 태을소자에게 물었다:옛날 사람들은 수명이 백 세를 넘었는데, 후세에는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요절하는 허물이 있으니, 어찌하여 어떤 기운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소자가 말하였다:하늘에 아홉 문이 있는데, 그 중간 길이 가장 좋습니다.
乃稽太始,說玉冊,磨蜃鞭茇,察色腥,嘗草木而正名之。
이에 태초를 살피고, 옥책을 설명하며, 조개를 갈고 풀뿌리를 채찍질하며, 색과 냄새를 살피고, 초목을 맛보아 이름을 바로잡았습니다.
審其平毒,旌其燥寒,察其畏惡,辨其臣使,釐而正之,以養其性命而治病,一日之間而七十毒,極含氣也。
그 평이함과 독성을 살피고, 그 건조함과 차가움을 표시하며, 꺼리고 싫어하는 것을 살피고, 신하와 사자 역할을 분별하여 정리하고 바로잡아, 그 생명을 기르고 병을 치료하니, 하루 사이에 일흔 가지 독을 맛보았으니, 함기(含氣)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病正四百,藥三百六十有五,着其《本草》,過數乃亂。
병은 정확히 사백 가지이며, 약은 삼백육십오 가지라, 《본초》에 기록하였으니, 수를 넘으면 어지러워집니다.
命僦貸季理色脈,對察和齊,摩踵告,以利天下,而人得以繕其生。
주대계에게 명하여 색과 맥을 다스리고, 검사하여 조화롭게 맞추며, 발뒤꿈치를 문질러 고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니, 사람들이 그 생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注任述意雲:太原有神釜岡,有神農嘗藥鼎。又成陽山中有神農鞭藥處。一日神農原亦名藥草,山中有紫陽觀,雲帝於此辨藥。】
【주(注)에 임술의(任述意)가 말하기를:태원(太原)에 신부강(神釜岡)이 있는데, 신농이 약을 맛보던 솥이 있습니다. 또 성양산(成陽山) 속에 신농이 약을 채찍질하던 곳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신농원(神農原)을 또한 약초(藥草)라 부르며, 산 속에 자양관(紫陽觀)이 있어, 전하기를 황제가 이곳에서 약을 분별하였다고 합니다.】
《通志》三皇紀:炎帝神農嘗百藥之時,一日百死百生,其所得三百六十物,以應周天之數,後世取傳爲書,謂之《神農本草》。又作方書以療時疾。
《통지》 삼황기: 염제 신농이 백약을 맛볼 때, 하루에 백 번 죽고 백 번 살았으며, 그가 얻은 삼백육십 가지 물건은 하늘의 수를 응하였고, 후세에 취하여 전하여 책이 되었으니, 이를 《신농본초》라 한다. 또 방서를 지어 당시의 질병을 치료하였다.
《帝王世紀》:黃帝有熊氏命雷公岐伯論經脈,傍通問難八十一,爲《難經》。教制九針,着《內外術經》十八卷。
《帝王世紀》:황제 유웅씨가 뇌공과 기백에게 명하여 경맥을 논하게 하고, 곁으로 통달하여 81가지의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 《난경》을 지었다. 가르쳐서 9침을 제정하게 하고, 《내외술경》 18권을 저술하였다.
《路史》:黃帝有熊氏謂:人之生也,負陰而抱陽,食味而被色,寒暑蕩之外,喜怒攻之內,夭昏兇札,君民代有。
《노사》에 이르기를: 황제 유웅씨가 말하기를,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음을 지고 양을 안으며, 맛을 먹고 색을 입으며, 추위와 더위가 밖을 흔들고, 기쁨과 분노가 안을 공격하여, 요절하고 혼미하며 흉하고 병드는 것이 임금과 백성에게 번갈아 있다.
乃上窮下際,察五氣,立五運,洞性命,紀陰陽,極諮於岐雷而《內經》作,謹候其時,着之玉版,以藏靈蘭之室。
이에 위로는 하늘 끝까지 아래로는 땅 끝까지 다하여, 오기를 살피고 오운을 세우며, 성명을 꿰뚫고 음양을 기록하며, 기백과 뇌공에게 지극히 자문하여 《내경》을 지었으며, 그 때를 삼가 기다려 옥판에 새겨 영란의 방에 간직하였다.
演倉谷,推賊曹,命俞跗岐伯雷公察明堂,究息脈,謹候其時,則可萬全。
창곡을 펴고, 적조를 미루며, 유부·기백·뇌공에게 명하여 명당을 살피고, 식맥을 궁구하게 하여, 그 때를 삼가 기다리면 가히 만전을 기할 수 있다.
命巫彭桐君處方盄餌,湔澣刺治,而人得以盡年。
무팽과 동군에게 명하여 처방과 탕약, 목욕과 침치료를 하게 하여, 사람들이 천수를 다할 수 있게 되었다.
【 注《道基經》雲:倉谷者,名之谷仙,行之不休可長久。王莽篡位,種五梁禾於殿中,各順色置其方面,雲此黃帝谷仙之術。《靈樞》亦有說。《黃帝元辰經》雲:血忌陰陽精氣之辰,天上中節之位,亦名天之賊曹,尤忌針炙。《素問》:謹候其時,氣乃與期,能合色脈,可以萬全矣。胃瘧以下五十九刺,詳《素問》刺瘧。及黃帝中詰世紀雲,帝使岐伯嘗味百藥,主典醫藥,今經方本草之書鹹出焉。故《家語》雲:黃帝嘗味草木。】
【주: 《도기경》에 이르기를: 창곡이란 이름하여 곡선이라, 행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있다. 왕망이 찬위하여 전중에 다섯 가지 기장 벼를 심되, 각각 색에 따라 그 방위에 두었는데, 이것이 황제의 곡선술이라 하였다. 《영추》에도 설명이 있다. 《황제원진경》에 이르기를: 혈기는 음양정기의 때이니, 천상 중절의 자리로, 또한 하늘의 적조라 이름하며, 특히 침과 뜸을 꺼린다. 《소문》에 이르기를: 그 때를 삼가 기다리면 기가 기한과 맞아, 색과 맥이 합할 수 있으니, 가히 만전할 수 있다. 위학 이하 59침은 《소문》 자학에 상세하다. 및 황제중힐세기에서 이르기를, 황제가 기백에게 온갖 약의 맛을 보게 하고, 의약을 주관하게 하여, 지금의 경방과 본초의 책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그러므로 《가어》에 이르기를: 황제가 초목의 맛을 보았다고 한다.】
《通志》三皇紀:黃帝軒轅氏察五運六氣,乃着岐伯之問,是爲《內經》。或言《內經》後人所作,而本於黃帝。
《통지》 삼황기: 황제 헌원씨가 오운육기를 살펴보고, 이에 기백의 질문을 저술하였으니, 이것이 《내경》이다. 혹자는 《내경》이 후세 사람이 지은 것이지만 황제에 근원한다고 말한다.
《左傳》:襄公二十一年夏,楚子使薳子馮爲令尹,訪於申叔豫。叔豫曰:國多寵而王弱,國不可爲也。遂以疾辭。
《좌전》에 이르길: 양공 21년 여름, 초자가 위자풍을 영윤으로 삼으려 하여, 신숙예에게 묻다. 신숙예가 말하길: 나라에 총애받는 자가 많고 왕이 약하니,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에 병을 핑계로 사양하다.
方暑,闕地下冰而牀焉。重繭衣裘,鮮食而寢。
때마침 더운 여름이라, 땅을 파서 얼음을 넣고 그 위에 침상을 놓다. 여러 겹의 솜옷과 갓옷을 입고, 음식을 적게 먹고 잠을 자다.
楚子使醫視之,復曰:瘠則甚矣,而血氣未動。乃使子南爲令尹。
초자가 의사를 보내 살피게 하니, 돌아와 말하길: 수척하기는 심하나, 혈기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자남을 영윤으로 삼다.
《國語》:溫之會,晉人執衛成公,歸之於周,使醫酖之,不死,醫亦不誅。
《국어》: 온 땅에서의 회합에서, 진나라 사람이 위성공을 잡아 주나라로 보내고, 의사에게 독주를 먹여 죽이게 했으나 죽지 않았고, 의사도 처형되지 않았다.
【 注 成公恃楚而不事晉,又殺弟叔武,其臣元咺訴之晉,故文公執之。
【 주석: 성공이 초나라에 의지하고 진나라를 섬기지 않았으며, 또 동생 숙무를 죽이자, 그의 신하 원훤이 진나라에 고발했기 때문에 문공이 그를 잡았다.
鴆鳥有毒,酒而飲立死。
침조(독새)는 독이 있어서, 술에 타서 마시면 즉시 죽는다.
寧俞貨醫,使薄其酖,得不死。
영유가 의사에게 뇌물을 주어 그 독주를 약하게 만들어 죽지 않게 하였다.
不誅醫者,諱以私行毒也。】
의사를 처형하지 않은 것은, 개인이 독을 썼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이다. 】
《列子》周穆王篇;宋陽裏華子中年病忘,朝取而夕忘,夕與而朝忘,在塗則忘行,在室則忘坐,今不識先,後不識今,闔室毒之。
《열자》주목왕편: 송나라 양리 화자가 중년에 건망증에 걸려, 아침에 얻은 것을 저녁에 잊고, 저녁에 준 것을 아침에 잊으며, 길에서는 걷는 것을 잊고, 방에서는 앉는 것을 잊으며, 지금은 앞을 알지 못하고 뒤는 지금을 알지 못하여, 온 집안이 이를 괴로워했다.
謁史而卜之,弗佔;謁巫而禱之,弗禁;謁醫而攻之,弗已。
사관을 불러 점을 쳤으나 맞지 않았고, 무당을 불러 기도했으나 금하지 못했으며, 의사를 불러 치료했으나 낫지 않았다.
魯有儒生,自媒能治之。華子之妻子,以居產之半請其方。
노나라에 유생이 있어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고 자천했다. 화자의 처자는 가산의 절반으로 그 방법을 청했다.
儒生曰:此固非卦兆之所佔,非祈請之所禱,非藥石之所攻,吾試化其心,變其慮,庶幾有瘳乎?
유생이 말했다: 이는 진실로 점괘로 점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도로 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약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그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변화시켜 보니, 아마도 나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於是試露之而求衣,飢之而求食,幽之而求明。
이에 시험 삼아 그를 벌거벗겨 옷을 찾게 하고, 굶주리게 하여 음식을 찾게 하며, 어둡게 하여 빛을 찾게 했다.
儒生欣然告其子曰:疾可已也。然吾之於密傳不以告人,試屏左右,獨與居室七日。
유생이 기뻐하며 그 아들에게 말했다: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비밀 전수는 남에게 알리지 않으니, 시험 삼아 좌우를 물리고 홀로 방에 함께 칠 일을 지내겠습니다.
從之,莫知其所施爲也。而積年之疾,一朝都除。
그대로 따랐으나 아무도 그가 한 일을 알지 못했다. 오랜 세월의 병이 하루아침에 모두 제거되었다.
華子既悟,乃大怒,黜妻,罰子,操戈逐儒生。
화자가 깨어난 후에 크게 노하여 아내를 내쫓고 아들을 벌하며 창을 들고 유생을 쫓아냈다.
宋人執而問其以,華子曰:曩吾忘也,蕩蕩然不知天地之有無,今頓識既往,數十年來存亡得失,哀樂好惡,擾擾萬緒起矣。
송나라 사람이 그를 붙잡아 이유를 묻자, 화자가 말했다: 이전에 내가 잊었을 때는 아득히 천지의 유무를 알지 못했는데, 지금 갑자기 과거를 알게 되어 수십 년간의 존망과 득실, 애락과 호오가 어지럽게 만 가지 실마리가 일어났습니다.
吾恐將來之有亡得失哀樂好惡之亂,吾心如此也。須臾之忘,可復得乎?
나는 장래에 존망 득실 애락 호오의 혼란이 내 마음을 이와 같이 할까 두렵습니다. 잠시의 망각을 다시 얻을 수 있겠습니까?
子貢聞而怪之,以告孔子。孔子曰:此非汝所及乎?顧謂顏回記之。
자공이 듣고 이상히 여겨 공자에게 알렸다. 공자가 말했다: 이것은 네가 미칠 바가 아니다. 돌아서서 안회에게 일러 기록하게 했다.
《公孫》尼子:孔子有疾,哀公使醫視之。
《공손》 니자: 공자가 병이 들자, 애공이 의사를 보내 진찰하게 하였다.
醫曰:居處飲食何如?
의사가 말하기: 거처와 음식이 어떠합니까?
子曰:丘春之居葛籠,夏居密陽,秋不風,冬不煬,飲食不遺,飲酒不勤。
공자가 말하기: 나는 봄에는 갈롱(갈대 집)에 거처하고, 여름에는 밀양(빽빽한 볕)에 거처하며, 가을에는 바람을 쐬지 않고, 겨울에는 불을 쬐지 않으며, 음식은 남기지 않고, 술은 많이 마시지 않습니다.
醫曰:是良醫也。
의사가 말하기: 이는 좋은 의사입니다.
《戰國策》:衛靈公近癰疽彌子瑕,二人者,專君之勢以蔽左右。復塗偵謂君曰:昔日臣夢見君。君曰:子何夢?對曰:夢見竈君。君忿然作色曰:吾聞夢見人君者,夢見日。今子曰夢見竈君而言君也,有說則可,無說則死。對曰:日並燭天下者也,一物不能蔽也。若竈則不然,前之人煬,則後之人無從見也。今臣疑人之有煬於君者也,是以夢見竈君。君曰:善。於是因廢癰疽彌子瑕,而立司空徇。
《전국책》:위령공이 옹저와 미자하를 가까이하여, 두 사람이 임금의 권세를 독점하고 좌우를 가렸다. 부도정이 임금에게 말했다:"지난번 신이 임금을 꿈꾸었습니다." 임금이 말했다:"그대는 무슨 꿈을 꾸었는가?" 대답했다:"부뚜막 신을 꿈꾸었습니다." 임금이 노하여 안색을 변하며 말했다:"내 듣건대 사람 임금을 꿈꾸는 자는 해를 꾼다 하였다. 이제 그대는 부뚜막 신을 꾸었다 하면서 임금을 말하니, 설명이 있으면 괜찮고 설명이 없으면 죽을 것이다." 대답했다:"해는 온 천하를 다 비추는 것이므로 한 물건이 가릴 수 없습니다. 부뚜막은 그렇지 않아서, 앞사람이 불을 쬐면 뒷사람이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신은 임금에게 불을 쬐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하여, 이 때문에 부뚜막 신을 꾼 것입니다." 임금이 말했다:"좋다." 이에 곧 옹저와 미자하를 폐하고 사공 순을 세웠다.
《鶡冠子》:扁鵲兄弟三人,並善醫。
《갈관자》에 이르길: 편작과 그의 형제 세 사람이 모두 의술에 뛰어났다.
魏文侯問曰:子昆弟三人孰最善?
위문후가 묻길: 그대 형제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뛰어난가?
對曰:長兄視色,故名不出家;仲兄視毫毛,故名不出門;鵲針入血脈,投人毒藥,故名聞諸侯。
대답하길: 큰형은 병의 기색을 살피므로 이름이 집안을 나지 못하고; 둘째 형은 털끝만 한 증상을 살피므로 이름이 문밖을 나지 못하며; 저[편작]는 침으로 혈맥에 들어가고 사람에게 독한 약을 쓰므로 이름이 제후에게까지 들렸습니다.
《吳越春秋》:勾踐十五年謀伐吳,乃葬死問傷,吊有憂,賀有喜,約父兄昆弟而誓之曰:令將免者,以告於孤,令醫守之。
《오월춘추》에 이르길: 구천 15년에 오나라를 칠 계획을 세우고, 죽은 이를 장사하고 병든 이를 위문하며, 근심 있는 이를 조문하고 기쁜 일이 있는 이를 축하하며, 아비와 형과 아우들을 모아서 맹세하여 말하기를: 앞으로 아이를 낳을 자는 나에게 알리고, 의사로 하여금 그를 보호하게 하라.
《戰國策》:荊軻至秦,獻督亢之地圖,圖窮而匕首見。
《전국책》: 형가가 진나라에 이르러 독항 지방의 지도를 바쳤는데, 지도를 다 펼치자 비수가 드러났다.
因左手把秦王之袖,而右手持匕首揕之。
이에 왼손으로 진왕의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찔렀다.
未至身,秦王驚,自引而起,袖絕;拔劍,劍長操其室,時惶急,劍堅故不可立拔。
몸에 닿지 않았는데 진왕이 놀라 스스로 몸을 일으켜 소매가 찢어졌다. 칼을 빼려 하니 칼이 길어 칼집에 걸렸고, 당시 당황하고 급하여 칼이 단단히 박혀 곧바로 빼낼 수 없었다.
荊軻逐秦王,秦王環柱而走。
형가가 진왕을 쫓고, 진왕은 기둥을 돌아 달아났다.
羣臣驚愕,卒起不意,盡失其度。
신하들이 놀라고 깜짝하여 갑자기 뜻밖의 일이 일어나 모두 평소의 태도를 잃었다.
而秦法羣臣侍殿上者,不得持尺寸之兵;諸郎中執兵,皆陳於殿下,非有詔不得上。
그런데 진나라 법에 신하 중 전상에 모시는 자는 한 치의 병기도 가질 수 없었고, 낭중들이 병기를 잡은 자는 모두 전하에 늘어서서 조서가 없으면 올라올 수 없었다.
方急時,不及召下兵,以故荊軻逐秦王,而卒惶急無以擊軻,而乃以手共搏之。
급박한 때에 아래 병사들을 부를 겨를이 없어서 형가가 진왕을 쫓고, 결국 당황하고 급하여 형가를 칠 방법이 없어 손으로 함께 맞서 싸웠다.
是時侍醫夏無且,以其所奉藥囊提荊軻。
이때 시의 하무저가 받들고 있던 약주머니로 형가를 던졌다.
秦王方環柱走,卒惶急不知所爲。
진왕이 막 기둥을 돌아 달리다가 결국 당황하고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左右乃曰:王負劍!王負劍!遂拔以擊荊軻,斷其左股。
좌우 신하들이 이르길: 왕이 칼을 등에 지소서! 왕이 칼을 등에 지소서! 마침내 칼을 빼어 형가를 쳐 그의 왼쪽 넓적다리를 끊었다.
荊軻廢,乃引其匕首以提秦王,不中,中柱。
형가는 불구가 되어 그의 비수를 들어 진왕에게 던졌으나 맞지 않고 기둥에 맞았다.
秦王復擊軻,軻被八創。
진왕이 다시 형가를 쳐 형가가 여덟 군데 상처를 입었다.
軻自知事不就,倚柱而笑,箕倨以罵曰:事所以不成者,乃欲以生劫之,必得約契以報太子也。
형가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기둥에 기대어 웃으며, 다리를 벌리고 앉아 욕하며 말했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살아서 위협하여 반드시 약속을 받아 태자에게 보답하려 했기 때문이다.
左右既前,斬荊軻。
좌우 신하들이 이미 앞으로 나아가 형가를 베었다.
秦王目眩良久,已而論功賞羣臣及當坐者,各有差,而賜夏無且黃金二百鎰。
진왕이 눈이 어질어질한 지 오래 되다가, 이윽고 공을 논하여 신하들과 마땅히 죄 받을 자를 상주되 각각 차등이 있었고, 하무저에게 황금 이백 일을 하사했다.
曰:無且愛我,乃以藥囊提荊軻也。
말하길: 무저가 나를 사랑하여 약주머니로 형가를 던진 것이다.
《史記》向袓本紀:高袓擊鯨布時,爲流矢所中,行道病。病甚,呂后迎良醫。醫入見,高袓問醫,醫曰:病可治。於是高袓嫚罵之曰:吾以布衣提三尺劍取天下,此非天命乎?命乃在天,雖扁鵲何益?遂不使治疾,賜金五十斤罷之。
《史記》向袓本紀:고조가 경포를 칠 때, 날아온 화살에 맞아 길에서 병이 났다. 병이 심해져서 여후가 좋은 의사를 맞이했다. 의사가 들어와 뵙자 고조가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가 말하기를 "병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고조가 꾸짖어 말하기를 "나는 포의(평민)로 삼척검을 잡고 천하를 취했으니, 이것이 천명이 아니겠는가?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비록 편작일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침내 치료하게 하지 않고 금 오십 근을 하사하여 물렸다.
酷吏列傳:義縱者,河東人也。
酷吏列傳:義縱은 河東 사람이다.
爲少年時,嘗與張次公俱攻剽爲羣盜。
젊었을 때, 일찍이 張次公과 함께 도적질하여 무리 도둑이 되었다.
縱有姊姁,以醫幸王太后。
義縱에게 姁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의술로 王太后의 총애를 받았다.
王太后問:有子兄弟爲官者乎?
王太后가 물었다: 자식이나 형제 중에 벼슬한 사람이 있는가?
姊曰:有弟無行,不可。
누이가 대답했다: 동생이 있으나 품행이 없어서 안 됩니다.
太后乃告上,拜義姁弟縱爲中郎,補上黨郡中令。
太后가 곧 上(황제)에게 고하여, 義姁의 동생 縱을 中郎으로 임명하고 上黨郡의 令으로 보충했다.
萬石張叔列傳:郎中令周文者,名仁,其先故任城人也,以醫見,景帝爲太子時,拜爲舍人。
만석장숙열전: 낭중령 주문이라는 사람은 이름이 인이며, 그의 선조는 본래 임성 사람인데, 의술로 천거되어, 경제가 태자였을 때 사인으로 임명되었다.
《漢書》許皇后傳:霍光夫人顯,欲貴其小女,道無從。
《한서》 허황후전: 곽광의 부인 현이 그의 작은딸을 귀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明年,許皇后當娠病,女醫淳于衍者,霍氏所愛,嘗入宮侍皇后疾。
이듬해, 허황후가 임신 중 병이 났는데, 여의사 순우연은 곽씨가 사랑하여 일찍이 궁에 들어가 황후의 병을 돌본 적이 있었다.
衍夫賞爲掖庭戶衛,謂衍可過辭霍夫人行,爲我求安池監。
순우연의 남편 상이 액정의 호위가 되어, 순우연에게 곽부인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하면서 자신을 위해 안지감을 구해 달라고 말했다.
衍如言報顯。
순우연이 말대로 현에게 알렸다.
顯因生心,闢左右,字謂衍:少夫幸報我以事,我亦欲報少夫可乎?
현이 이에 마음을 먹고 좌우를 물리친 후, 순우연을 자(字)로 부르며 말했다: "소부가 다행히 나에게 일을 알려주었으니, 나도 소부에게 보답하고 싶은데 괜찮겠소?"
衍曰:夫人所言,何等不可者?
순우연이 말했다: "부인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
顯曰:將軍素愛小女成君,欲奇貴之,願以累少夫。
현이 말했다: "장군이 평소 작은딸 성군을 사랑하여 특별히 귀하게 만들고자 하니, 원하건대 소부에게 부탁하오."
衍曰:何謂邪?
순우연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顯曰:婦人免乳大故,十死一生。
현이 말했다: "부인이 해산하는 것은 큰 일이라 열에 아홉은 죽고 하나만 살아납니다."
今皇后當免身,可因投毒藥去也,成君即得爲皇后矣。
지금 황후가 해산할 때이니, 독약을 넣어 없애면 성군이 곧 황후가 될 수 있습니다.
如蒙力事成,富貴與少夫共之。
만약 힘을 빌려 일이 이루어지면, 부귀를 소부와 함께 나누겠소."
衍曰:藥雜治,當先嘗,安可?
순우연이 말했다: "약은 여러 약을 섞어 조제하는데, 반드시 먼저 맛보아야 하니,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顯曰:在少夫爲之耳。
현이 말했다: "소부가 하기 나름이오."
將軍領天下,誰敢言者!緩急相護,但恐少夫無意耳。
장군이 천하를 통솔하니, 누가 감히 말하겠소! 급할 때 서로 보호할 터이니, 다만 소부가 뜻이 없을까 두려울 따름이오."
衍良久曰:願盡力。
순우연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힘을 다하겠습니다."
即搗附子齎入長定宮。
곧 부자를 짓찧어 장정궁에 가지고 들어갔다.
皇后免身後,衍取附手併合大醫大丸,以飲皇后。
황후가 해산한 후, 순우연이 부자를 취하여 대의가 만든 큰 환약에 섞어 황후에게 먹였다.
有頃曰:我頭岑岑也,藥中得無有毒?
잠시 후 황후가 말했다: "내 머리가 어지럽구나, 약에 독이 있는 것은 아닌가?"
對曰:無有。
대답했다: "없습니다."
遂加煩懣,崩。
이내 더욱 답답해 하다가 붕어했다.
衍出,過見顯,相勞問,亦未敢重謝衍。
순우연이 나와서 현을 만나 서로 위로하며 묻고, 감히 무겁게 사례하지는 않았다.
後人有上書告諸醫侍疾無狀者,皆收系詔獄,劾不道。
후에 어떤 사람이 상서하여 의사들이 병을 돌본 것이 부당함을 고발하자, 모두 잡아다 조옥에 가두고 불도로 탄핵했다.
顯恐事急,即以狀俱語光。
현이 일이 급해질까 두려워, 곧 사실을 모두 곽광에게 말했다.
因曰:既失計爲之,無令吏急衍。
이어 말했다: "이미 잘못 생각하고 저질렀으니, 관리들이 순우연을 급히 다그치지 못하게 하시오."
光驚鄂,默然不應。
곽광이 놀라서 멍하니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其後奏上,署衍勿論。
그 후에 아뢰어, 순우연을 논죄하지 말라고 하였다.
《西京雜記》:霍光妻遺淳于衍蒲桃錦二十四匹,散花綾二十五匹。
《서경잡기》: 곽광의 아내가 순우연에게 포도금 스물네 필, 산화릉 스물다섯 필을 선물했다.
綾出鉅鹿陳寶光家。
능은 거록 진보광의 집에서 나왔다.
寶光妻傳其法,霍顯召入其第,使作之機,用一百二十鑷,六十日成一匹,匹值萬錢。
보광의 아내가 그 법을 전했는데, 곽현이 그를 집으로 불러들여 베틀을 짜게 하여, 백이십 개의 날을 사용하고 육십 일에 한 필을 완성했으며, 한 필의 값은 만 전이었다.
又與走珠一琲,綠綾百端,錢百萬,黃金百兩,爲起第宅,奴婢不可勝數。
또한 주옥 한 꿰미, 녹릉 백 필, 돈 백만, 황금 백 냥을 주고, 저택을 지어주었으며, 노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衍猶怨曰:吾爲爾成何功而報我若是哉?
연은 오히려 원망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위해 무슨 공을 세웠기에 나를 이같이 갚는가?
《鍾離意別傳》:黃讜爲會稽太守。建武十四年,吳大疾疫,署意中部尉督郵,意乃露車不冠,身循行病者門家,至賜與醫藥;諸神廟爲民禱祭,召錄醫師百人,合和草藥。恐醫小子或不良,毒藥劑賊害民命,先自吞,先後施行。其所臨護四千餘人,並得差愈。後日府君出行,災害百姓,攀車涕泣曰:府君不須出也,但得鍾督郵,民皆活也。
《鍾離意別傳》:황탕이 회계태수가 되었다. 건무 14년에 오 지역에 큰 전염병이 돌자, 종리의를 중부위독우로 임명하였다. 이에 종리의는 수레를 드러내고 관을 쓰지 않은 채로 직접 병자들의 집을 두루 돌아다니며 약을 주었고, 여러 신묘에서 백성을 위해 기도하고 제사를 지냈으며, 의사 백 명을 불러 모아 약초를 조합하였다. 의사 중에 간사한 자가 혹시라도 독한 약으로 백성의 목숨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먼저 자신이 직접 먹어보고 그 뒤에 시행하였다. 그가 돌본 사람이 4천여 명이었는데, 모두 나아서 낫게 되었다. 후일에 부군이 나들이할 때 재해를 입은 백성들이 수레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부군께서 나가실 필요 없습니다. 다만 종독우만 계시면 백성들이 모두 삽니다.'라고 하였다.
《通志》許楊傳:楊字偉君,汝南平輿人也,少好術數。
《통지》 허양전에 따르면, 허양의 자는 위군이며, 여남 평여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술수를 좋아하였다.
王莽輔政,召爲郎,稍遷酒泉都尉。
왕망이 섭정할 때, 불러 낭으로 삼았고, 점차 승진하여 주천도위가 되었다.
及莽篡位,楊乃變姓名爲巫醫,逃匿他界。
왕망이 왕위를 찬탈하자, 허양은 성명을 바꾸고 무의(무당 의사)가 되어 다른 지역으로 도망쳐 숨었다.
莽敗,方還鄉里。
왕망이 패망한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東觀漢記》:鄧訓謙恕下士無貴賤,見之如舊,朋友往來門內,視之如子,有過加鞭撲教之。
《동관한기》에 따르면: 등훈은 겸손하고 용서하며 선비들에게 낮추어 대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았고, 그들을 보면 오래된 친구처럼 대했으며, 벗들이 문 안으로 드나들면 그들을 자식처럼 보고, 잘못이 있으면 채찍으로 때리며 가르쳤다.
太醫皮巡從獵上林還,暮宿殿門下,寒疝病發。
태의 피순이 상림원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다가 저녁에 전각 문 아래에서 묵었는데, 한산병이 발작하였다.
時訓直事,聞巡聲,起往問之。
당시 등훈이 당직을 서고 있었는데, 피순의 신음 소리를 듣고 일어나 가서 그를 물었다.
巡曰:冀得火以熨背。
피순이 말하기를: 불을 얻어 등을 뜨겁게 하고 싶습니다.
訓身至大宮門爲求火不得,乃以口噓其背;復呼同輩,即共更噓,至朝遂愈。
등훈이 직접 큰 궁문까지 가서 불을 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이에 입으로 그의 등을 불었다; 다시 동료들을 불러 함께 번갈아 불게 하여, 아침이 되자 마침내 나았다.
《拾遺記》:孫和悅鄧夫人,常置膝上,於月下舞水精如意,誤傷夫人頰,血流污袴,嬌奼彌苦。和自舐其瘡,命太醫合藥。醫曰:得白獺髓、雜玉與琥珀屑,當滅此痕。即百金購致,和乃命合此膏。醫誤琥珀太多,及差而有赤點如朱,逼而視之,更益其妍。
《拾遺記》에 기록되었다: 손화가 등부인을 총애하여, 항상 무릎 위에 앉혀 놓고, 달 아래에서 수정 여의를 춤추듯 휘두르다가 실수로 부인의 뺨을 다치게 하여, 피가 흘러 옷을 더럽혔고, 부인은 더욱 아름다워 보이며 괴로워했다. 손화가 직접 그 상처를 핥아주고, 태의에게 약을 조제하게 명령했다. 의원이 말하기를: '흰 수달의 골수와 잡옥, 그리고 호박 가루를 얻으면 이 흉터를 없앨 수 있습니다.' 즉시 백금을 주어 구해 오게 하고, 손화가 이 고약을 조제하게 했다. 의원이 실수로 호박을 너무 많이 넣었는데, 나은 후에 붉은 점이 주사 같아서, 가까이서 보니 오히려 그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晉中興書》:程據爲太醫令,武帝初受魏襌,改元爲太始,而據貢雉頭裘,帝以奇伎異服,典禮所禁,焚之於殿前。
《진중흥서》에 이르길: 정거가 태의령이 되었는데, 무제가 처음 위나라의 선양을 받고 연호를 태시로 고쳤다. 정거가 치두구를 바치자, 황제가 기이한 기술과 특이한 복장은 전례에서 금지하는 것이라 하여, 전전에서 불태웠다.
據以醫術承恩,出入禁闥,因爲賈后合巴豆杏仁丸,害愍懷太子,遂就戮焉。
정거가 의술로 은총을 입어 궁중을 드나들다가, 가후를 위하여 파두와 행인을 섞은 환약을 조제하여 민회태자를 해쳤다. 이에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王通元經》:元康九年冬十二月壬戌,賈庶人殺太子。
《왕통원경》: 원강 9년 겨울 12월 임술일, 가庶人이 태자를 죽였다.
【 薛傳太子名遹,初賈后令太醫程據合巴豆丸,使黃門孫慮與太子服之而死。】
【 설전에 태자의 이름은 육이며, 처음에 가후가 태의 정거에게 파두환을 만들게 하고, 황문 손려로 하여금 태자에게 먹여 죽게 했다.】
《晉書》齊武閔王冏傳:冏字景治,獻王攸之子也。
《진서》 제무민왕 교전: 교는 자가 경치이며, 헌왕 유의 아들이다.
少稱仁惠,好賑施,有父風。
어려서부터 인자하고 은혜롭다 일컬어졌으며, 구휼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다.
初攸有疾,武帝不信,遣太醫診候,皆言無病。
처음에 유가 병이 들었을 때, 무제가 믿지 않고 태의를 보내 진찰하게 하였는데, 모두 병이 없다고 말하였다.
及攸薨,帝往臨喪,冏號踊訴父病爲醫所誣,詔即誅醫。
유가 죽자, 황제가 친히 조문하러 갔는데, 교가 통곡하며 아버지의 병이 의원에게 모함받았다고 아뢰니, 조서를 내려 즉시 의원을 죽였다.
顏含傳:含兄畿咸寧中得疾,就醫自療,遂死於醫家。
안함전(顏含傳)에 이르길, 안함의 형 안기(顔畿)가 함녕(咸寧) 연간에 병이 들어 의사를 찾아 치료받다가 마침내 의사의 집에서 죽었다.
家人迎喪,旐每繞樹而不可解,引喪者顛仆,稱畿言曰:我壽命未死,但服藥太多,傷我五臟耳。
집안사람들이 상여를 맞이하니, 상여의 깃발이 매번 나무를 감고 풀리지 않아 상여를 이끌던 사람이 넘어져서, 안기의 말을 전하길: 내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는데, 다만 약을 너무 많이 복용하여 오장(五臟)을 상하게 되었다.
今當復活,慎無葬也。父母從之,乃共發棺,果有生驗,以手刮棺,指爪盡傷,然氣息甚微,存亡不分。
지금 다시 살아날 터이니, 삼가 장사 지내지 마소서. 부모가 그 말을 따라 함께 관을 열었더니 과연 살아난 증거가 있었다. 손으로 관을 긁어서 손톱이 모두 상했으나, 숨결이 매우 약하여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飲哺將護,累月猶不能語,飲食所須,託之以夢者,十有三年,竟不起。
물을 먹이고 보호하며 여러 달이 지나도 여전히 말하지 못했고, 음식 필요한 것을 꿈으로 전달한 지 십삼 년 만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宋書》王微傳:微字景元,琅琊臨沂人也。
《송서》 왕미전: 왕미는 자가 경원이며, 낭야 임기 사람이다.
少好學,無不通覽。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여, 통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弟僧謙遇疾,微躬自處治,而僧謙服藥失度,遂卒。
아우 승겸이 병에 걸리자, 왕미가 몸소 치료하였는데, 승겸이 약을 지나치게 복용하여 마침내 죽었다.
微深自咎恨,發病不復自治。
왕미가 스스로 깊이 자책하고 원망하여, 병이 나도 다시 스스로 치료하지 않았다.
哀痛謙不能已,以書告靈曰:方欲共營林澤以送餘年,念茲有何罪戾,見此夭酷,沒於吾手,觸事痛恨。
승겸을 애통해하며 그치지 못하여, 글을 써서 영혼에 고하여 말하기: "막상 함께 숲과 못을 경영하여 여생을 보내려 하였는데, 생각하건대 이에 무슨 죄가 있어 이런 요절의 참혹함을 당하며, 내 손에 죽었는가, 일마다 통한스럽다."
吾素好醫術,不使弟子得全;又尋思不精,致有枉過。
내가 평소 의술을 좋아하면서도 아우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였고, 또 생각을 정밀하게 하지 못하여 억울한 잘못을 저질렀다.
念此一條,特復痛酷。痛酷奈何!吾罪奈何!
이 한 가지를 생각하니, 더욱 참혹하게 아프다. 참혹하게 아프고 말았으니 어떻게 할꼬! 내 죄는 어찌할꼬!"
僧謙卒後四旬而微終。
승겸이 죽은 후 사십 일 만에 왕미가 생을 마쳤다.
劉懷慎傳:上寵殷貴妃薨,葬畢,數與羣臣至殷墓號慟;又令醫術人羊志哭殷氏,志亦嗚咽。
유회신전: 상이 총애하던 은귀비가 죽어 장례를 마치고, 여러 번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은씨의 무덤에 가서 크게 슬피 울었다. 또 의술인 양지에게 은씨를 위해 울게 하니, 양지도 흐느껴 울었다.
他日有問:志卿那得此副急淚?志時新喪愛姬,答曰:我爾時自哭亡妾耳。
다른 날 어떤 이가 물었다: '양지경은 어찌하여 이처럼 급히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까?' 양지는 당시 새로이 사랑하는 첩을 잃은 터라 대답했다: '나는 그때 스스로 죽은 첩을 위해 울었을 뿐입니다.'
志滑稽善爲諧謔,上愛狎之。
양지는 익살스럽고 농담을 잘하여, 상이 가까이하며 좋아했다.
《梁書》世袓本紀:世袓諱繹,高袓第七子也。初生患眼,高袓有下意治之,遂盲一目。
《양서》 세조본기: 세조의 휘는 역이며, 고조의 일곱째 아들이다. 처음 태어나 눈병을 앓았는데, 고조가 뜻을 풀어 치료하다가 결국 한쪽 눈이 멀었다.
《魏書》西域傳:悅般國真君,九年遣使朝獻,並送幻人,稱能割人喉脈令斷,擊人頭令骨陷,皆血出,或數升,或盈鬥,以草藥內其口中,令嚼咽之,須臾血止,養瘡一月復常,又無痕瘢。
《위서》 서역전: 열반국에서 진군 9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마술사도 보냈는데, 사람의 목숨줄을 끊고 머리를 쳐서 뼈를 함몰시켜도 모두 피가 나는데, 혹은 몇 되, 혹은 한 말이 차는데, 풀약을 그 입에 넣어 씹어 삼키게 하면, 잠시 후에 피가 멈추고, 상처를 한 달 동안 길러 다시 평상시처럼 되고, 또 흉터도 없다고 하였다.
世袓疑其虛,乃取死罪囚試之,皆驗。
세조가 그 말을 의심하여, 사형수를 데려다 시험해보니, 모두 효과가 있었다.
雲:中國諸名山皆有此草。
이르길: 중국의 여러 명산에 모두 이 풀이 있다고 하였다.
乃使人受其術而厚遇之。
이에 사람을 시켜 그 술법을 배우게 하고 후하게 대접하였다.
《獨異志》:隋末,高開道被箭鏃入骨,命一醫工拔之不得。
《독이지》: 수나라 말기, 고개도가 화살촉이 뼈에 박혀, 한 의원을 불러 빼내게 하였으나 빼지 못했다.
開道問之,雲:畏王痛。開道斬之,更命一醫,雲:我能拔之。
고개도가 그에게 묻자, 말하기를: 왕의 통증을 두려워합니다. 고개도가 그를 베고, 다시 한 의원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빼낼 수 있습니다.
以一小斧子當刺下瘡際,用小棒打入骨二寸,以鉗拔之。
작은 도끼로 상처 아래를 찍고, 작은 막대기로 뼈 속 2촌을 쳐 넣은 후, 집게로 빼내었다.
開道飲啖自若。賜醫工絹三百匹,後爲其將張金樹所殺。
고개도는 먹고 마시기를 평소처럼 하였다. 의원에게 비단 300필을 하사하였고, 후에 그의 장수 장금수에게 살해되었다.
《因話錄》:韓僕射皋,病小瘡,令醫敷膏藥,藥不濡。公問之,醫雲:天寒膏硬。
《因話錄》에 따르면, 한복사 고(韓僕射皋)가 작은 종기가 나서 의사에게 고약을 붙이게 했는데, 약이 스며들지 않았다. 공이 그 이유를 묻자 의사가 말하기를 "날씨가 추워서 고약이 굳었습니다."라고 하였다.
《玉堂閒話》:長安完盛日,有一家於西市賣飲子,用尋常之藥,不過數味,亦不閒方脈,無問是何疾苦,百文售一服,千種之疾,入口而愈。
《옥당한화》:장안이 번성하던 시절, 어떤 집이 서시에서 음료를 팔았는데, 흔한 약재를 사용했으며 겨우 몇 가지뿐이었고, 또한 방맥에 능숙하지도 않았다. 어떤 질병이든 가리지 않고 백 문에 한 첩을 팔았는데, 천 가지 병이 입에 닿으면 나았다.
常於寬宅中置大鍋鑊,日夜剉研煎煮,給之不暇。
항상 넓은 집에 큰 솥을 놓고, 밤낮으로 썰고 갈아 달여서, 공급하기에 겨를이 없었다.
人無遠近,皆來取之,門市駢羅,喧闐京國,至有???夏?金守門,五七月間,未獲給付者。獲利甚富。
사람들은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모두 와서 약을 받아갔으며, 문 앞 시장이 즐비하고, 서울이 시끌벅적하였으며, 심지어 어떤 이들은 여름에 금을 지키며 오칠월 동안 공급을 받지 못하기도 하였다. 이익을 매우 많이 얻었다.
時田令孜有疾,海內醫工召遍,至於國師待詔,了無其徵。
당시 전영자가 병이 났는데, 천하의 의원을 두루 불렀고, 나라의 스승과 기다리는 조사까지 이르렀으나 전혀 징후가 없었다.
忽有親知白田曰:西市飲子,何妨試之!令孜曰:可。
갑자기 친한 지인이 전영자에게 말하기를, "서시의 음료,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전영자가 말했다. "좋다."
遂遣僕人馳乘往取之。
이에 하인을 보내 말을 타고 급히 가서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僕人得藥,鞭馬而回,將及近坊,馬蹶而復之。
하인이 약을 얻어 말을 채찍질하며 돌아오다가, 가까운 동네에 이르렀을 때 말이 넘어져 약을 쏟았다.
僕既懼其嚴,難以復取,遂詣一染坊,丐得池腳一瓶,以紿其主。
하인이 이미 그 엄격함을 두려워하여 다시 가져오기 어렵게 되자, 곧 한 염색하는 곳에 가서 연못 밑바닥의 액체 한 병을 얻어 와서 주인을 속였다.
既服之,其病立愈。
그것을 복용하자 병이 곧 나았다.
田亦只知病癒,不知藥之所來,遂償藥家甚厚,飲子之家聲轉高,此蓋福醫也。
전영자도 병이 나은 것만 알았지 약이 어디서 왔는지 몰랐고, 드디어 약 판 집에 후하게 보상했으며, 음료를 파는 집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는 복 많은 의원이다.
近年鄴都有張福醫者亦然,積貨甚廣,以此有名,爲蕃王挈歸塞外。
근년 업도에 장복 의원이라는 자도 또한 그러했는데, 재물을 매우 많이 쌓아서 이로 인해有名하였고, 번왕에게 이끌려서塞外로 갔다.
《東觀奏記》:畢諴本估客之子,連升甲乙科。
《동관주기》:필함은 본시 장사의 아들로, 연이어 갑을과에 올랐다.
杜琮爲淮南節度使,置幕中,始落鹽籍,文學優贍,遇事無滯。
두종이 회남절도사가 되어 막중에 두니, 비로소 염적을 벗었으며, 문학이 넉넉하고 일을 만나도 막힘이 없었다.
在翰林,上恩顧特異,許用爲相,深爲丞相令狐綯所忌。
한림에 있을 때, 상의 은혜가 각별히 두터워 재상으로 쓰기를 허락했으나, 승상 영호도에게 깊이 꺼림을 받았다.
自邠寧連移鳳翔、昭義、北門三鎮,皆綯緩其入相之謀也。
빈녕에서부터 잇달아 봉상, 소의, 북문 세 진으로 옮긴 것은, 모두 영호도가 그 재상이 될 계책을 늦춘 까닭이다.
諴思有以結綯,在北門求得絕色,非人世所易有,盛飾朱翠,專使獻綯。
함이 도와 결탁할 방도를 생각하여, 북문에서 절세미인을 구했는데, 인간 세상에 쉽게 있지 않은 미색으로, 붉고 푸른 치장을 성대히 하여, 전사로 하여금 도에게 바치게 했다.
綯一見之心動,謂其子曰:尤物必害人。畢太原於吾無好,今以是餌吾,將以吾家族也。一見返之。
도가 한 번 보고 마음이 동하여, 그 아들에게 이르길:"요물은 반드시 사람을 해친다. 필태원이 나에게 좋은 뜻이 없는데, 지금 이로써 나를 유인하니, 장차 우리 가족을 해치려는 것이다." 한 번 보고 돌려보냈다.
專人不敢將回,驛候諴意。諴又瀝血輸啓事於綯,綯終不納,乃命郡吏貨之。
전사가 감히 되돌려보내지 못하고 역참에서 함의 뜻을 기다렸다. 함이 또 피를 짜서 도에게 글을 올렸으나, 도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군리에게 명하여 팔게 했다.
東頭醫官李元伯,上所狎暱者,以錢七十萬致於家,乃舍之正堂,元伯夫妻,執賤役以事焉。
동두의관 이원백은 상이 가까이 하던 자로, 돈 칠십만을 주고 집에 들여 정당에 머물게 하니, 원백 부부가 천한 일을 하며 섬겼다.
踰月盡得其歡心矣,乃進於上。
한 달이 지나 그녀의 환심을 모두 얻은 뒤에, 상에게 바쳤다.
上一見惑之,寵冠六宮。
상이 한 번 보고 빠져들어, 총애가 육궁 중 으뜸이었다.
元伯燒伏火丹砂進之,以市恩澤,致上瘡疾,皆元伯之罪也。
원백이 복화단사를 구워 바쳐 은혜를 사려 하다가, 상에게 창질을 일으켰으니, 모두 원백의 죄이다.
懿宗即位,元伯與山人王嶽、道士虞紫芝俱棄市。
의종이 즉위하자, 원백이 산인 왕악, 도사 우자지와 함께 저자에서 처형되었다.
《書蕉》:唐李伯珍與醫帖雲:白金一鋌,奉備橘黃之需。
《서초》에 이르길, 당나라 이백진이 의원에게 써 보낸 편지에 말하기를, “백금 한 덩이를 드리니, 귤이 노랗게 될 때의 필요를 준비하소서.”라고 하였다.
始不曉所謂,及觀《續世說》有:枇杷黃,醫者忙;橘子黃,醫者藏。
처음에는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는데, 《속세설》을 보니 이르기를, “비파가 노랗게 되면 의원이 바쁘고, 귤이 노랗게 되면 의원이 숨는다.”라고 하였다.
乃知時使然耳。
그제야 시절이 그렇게 만든 것임을 알았다.
《國史補》:白岑曾遇異人傳發背方,其驗十全。
《국사보》에 이르길, 백잠이 일찍이 이인을 만나 발저(發背)에 대한 처방을 전해 받았는데, 그 효험이 백발백중이었다.
岑賣弄以求利,後爲淮南小將。
백잠이 이를 자랑하며 팔아 이익을 구했고, 그 후 회남의 작은 장수가 되었다.
節度高適脅取其方,然不甚效。
절도사 고적이 그 처방을 강제로 빼앗았지만, 그리 효과가 있지 않았다.
岑至九江,爲虎所食,驛吏於囊中,乃得真本,太原王升之,寫以傳佈。
백잠이 구강에 이르러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는데, 역참 관리가 그의 주머니 속에서 진본을 얻었고, 태원 왕승지가 베껴서 전파하였다.
《野航史話》:五代時,朱瑾事楊行密,嘗病疽,醫視之,色懼。
《야항사화》:오대 때, 주근이 양행밀을 섬겼는데, 일찍이 옹저(종기)를 앓았으며, 의사가 그것을 보고 두려운 빛을 띠었다.
瑾曰:但理之,我非以病死者。
주근이 말하기를: 그냥 다스리시오, 나는 병으로 죽는 자가 아니오.
及徐溫父子專政,瑾謀誅之,被殺,瘞廣陵北門。
서온 부자가 정권을 독점하자, 주근이 그들을 주살하려다가 살해되어, 광릉 북문에 묻혔다.
是時民多病瘧,取瑾墓上土,以水服之,病輒愈。
이때 백성 중 학질을 앓는 이가 많았는데, 주근의 무덤 위 흙을 취하여 물에 타 먹으면 병이 곧 나았다.
身知不以病死,死後墓土尚能已病,真快士也。
몸소 병으로 죽지 않을 것을 알았고, 죽은 후 무덤 흙이 오히려 병을 낫게 하니, 진정 시원스러운 선비로다.
《遼史》耶律庶成傳:初,契丹醫人鮮知切脈審藥,上命庶成譯方脈書行之,自是人皆通習,雖諸部族亦知醫事。
《요사》 야율서성전:처음에 거란 의사들은 맥을 짚고 약을 살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임금이 서성에게 명하여 방맥서를 번역하여 유포하게 하니, 이로부터 사람들이 모두 널리 익혀서, 여러 부족들도 의술을 알게 되었다.
《宋史》孝宗二女傳:長嘉國公主,紹興二十四年封碩人,進永嘉郡主,三十二年卒,詔以醫官李師克等屬吏,孝宗時居東宮,奏臣女幼而多疾,不宜罪醫,遂寢。
《송사》 효종 이녀전: 큰딸 가국공주는 소흥 24년에 석인에 봉해졌다가 영가군주로 진봉되었으나, 32년에 사망하였다. 조서를 내려 의관 이사크 등을 관리에게 넘기도록 하였으나, 효종이 당시 동궁에 있을 때 아뢰기를 '신의 딸이 어려서 병이 많았으니, 의원을 죄 주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여, 그 일이 중지되었다.
《澠水燕談錄》:祥符中諸王,有以患使醫有效,乞除遙郡。
《민수연담록(澠水燕談錄)》:상부(祥符) 연간에 여러 왕들이, 병이 들어 의원이 효과를 보자, 겉으로만 주는 고을[遙郡]을 제수해 달라고 청하였다.
真宗曰:醫之爲郡,非治朝美事,厚賜之可也。
진종(真宗)이 말했다: 의원이 고을을 맡는 것은 잘 다스리는 조정의 아름다운 일이 아니니, 후하게 상을 주는 것이 옳다.
仍令宰相諭此意。
그리고 재상에게 이 뜻을 알리게 하였다.
《談苑》:京師語曰:宣醫喪命,敕葬破家。
《談苑》에 이르길: 서울의 말에 이르길, 조정에서 보낸 의사는 목숨을 잃게 하고, 조정의 명으로 장례를 치르면 집안이 망한다.
蓋所遣醫官雲,某奉敕來,須奏服藥,加減次第,往往必令餌其藥,至死而後已。
대개 조정이 보낸 의관이 말하길, '내가 조서를 받들고 왔으니, 반드시 복약 상황을 아뢰고, 가감의 차례를 보고해야 한다'고 하여, 자주 반드시 그 약을 먹게 하여 죽은 뒤에야 그친다.
敕葬之家,使副洗手帨巾,每人白羅三匹,他物可知也。
조정의 명으로 장례를 치르는 집에서는 부사가 손을 씻고 수건을 받으며, 사람마다 흰 비단 세 필을 주니, 다른 물건들은 알 수 있다.
元佑中,韓康公病革,宣醫視之,進金液丹,雖暫能飲食,然公老年真氣衰,不能制客陽,竟以背薨。
원우 연간에 한강공이 병이 위독하니, 조정의 의사가 와서 진찰하고 금액단을 올렸고, 잠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나, 공은 늙어서 진기가 쇠약하여 객양을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등창으로 세상을 떠났다.
朝廷遣使問後事,病亂中誤諾敕葬,其後子侄辭焉。
조정에서 사자를 보내 뒷일을 묻자, 병이 어지러운 중에 잘못하여 조장을 허락하였고, 그 뒤에 자식과 조카들이 사양하였다.
滕元發雲:一善醫者雲,取本草白字藥,服之多驗。
등원발이 말하기를: 한 훌륭한 의사가 말하기를, 본초의 백자약(白字藥)을 취하여 복용하면 많이 효험이 있다고 한다.
蘇子容雲:黑字是後人益之。
소자용이 말하기를: 흑자(黑字)는 후인이 덧붙인 것이다.
《談圃》:徐君平,金陵人,親見荊公病革時,獨與一醫者對牀而寢,荊公矍然起,雲:適夢與王禹玉露髻不巾,同立一罈上。已而遂薨,此可怪也。
《談圃》에 이르길: 서군평은 금릉 사람으로, 직접 왕안석이 병이 위중할 때를 보았는데, 홀로 한 의사와 마주보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왕안석이 놀라 일어나 말하길: 방금 꿈에 왕우옥과 함께 머리를 풀어 상투를 드러내고 두건을 쓰지 않은 채, 같은 단 위에 서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마침내 세상을 떠났으니, 이는 괴이한 일이다.
《晝墁錄》:州東王文公寢疾,真廟屢訪醫者視之,仍不得,輒歸,如是半年。一日,王氏以訃聞,而醫者語人曰:半年廝系絆,與一服藥,且大家廝離。
《주만록》에 따르면: 주 동쪽의 왕문공이 병상에 누웠는데, 진종 황제가 여러 번 의사를 불러 진찰하게 했으나, 결국 낫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이렇게 반 년이 지났다. 하루는 왕씨가 부고를 알렸는데, 의사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반 년을 서로 붙잡고 있었는데, (결국) 약 한 첩을 주고, 이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夢溪筆談》:國子博士李餘慶知常州,強於政事,果於去惡,兇人惡吏,畏之如神。末年得疾甚困,有州醫博士多過惡,常恐爲餘慶所發,因其困,進利藥以毒之,洞泄不已,勢已危。餘慶察其奸,使人扶舁坐聽事,召醫博士杖殺之,然後歸臥,未及席而死,葬於橫山。人至今畏之,過墓者皆下。有病瘧者,取墓土著牀蓆間輒差,其敬憚之如此。
《몽계필담》:국자박사 이여경이 상주 지사가 되어 정사를 잘하고 악을 없애는 데 과감하여 흉악한 사람과 못된 관리들이 신처럼 두려워했다. 말년에 병이 들어 매우 곤란해졌는데, 주 의박사가 많은 잘못을 저질러 항상 이여경에게 발각될까 두려워하다가, 그가 곤란한 때를 틈타 설사를 유발하는 약을 먹여 독살하려 하여 심한 설사가 멈추지 않아 상태가 위험해졌다. 이여경이 그 간악함을 알아채고 사람들에게 부축받아 청사에 앉아 의박사를 불러들여 곤장으로 때려 죽인 후에야 돌아와 누웠는데, 자리에 닿기도 전에 죽어 횡산에 묻혔다.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그를 두려워하여 무덤을 지날 때면 모두 말에서 내린다. 학질에 걸린 사람이 그 무덤의 흙을 가져다 침상 사이에 두면 곧 나았으니, 그 존경과 공포심이 이와 같았다.
《避暑錄話》:蘇子瞻喜言神仙,晚得姚丹元者,奇之,直以爲李太白復作,贈詩數十篇。
《避暑錄話》에 이르길: 소자첨(蘇子瞻)이 신선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여, 말년에 요단원(姚丹元)이라는 자를 얻어 기이하게 여겨 곧 이태백(李太白)이 다시 나타난 것으로 여기고 시 수십 편을 증정하였다.
姚本京師富人王氏子,不肖,爲父所逐,事建隆觀一道士。
요(姚)는 본래 서울(京師)의 부자 왕씨(王氏)의 아들로서 불초하여 아버지에게 쫓겨나 건륭관(建隆觀)의 한 도사를 섬겼다.
天資聰慧,因取道藏遍讀,鹹能成誦,又多得其方術丹藥,大抵好大言,作詩間有放蕩奇譎語,故能成其說。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도장(道藏)을 가져다 두루 읽었고 모두 외울 수 있었으며, 또 그 방술과 단약(丹藥)을 많이 얻었다. 대체로 큰소리치기를 좋아하고 시를 지을 때 간혹 방탕하고 기이하고 궤변 같은 말을 하였으므로 그 학설을 이룰 수 있었다.
浮沉淮南,屢易姓名,子瞻初不能辨也。
회남(淮南)에서 부침하며 여러 번 성명을 바꾸었으나 자첨(子瞻)은 처음에 분별하지 못하였다.
後復其姓,名王釋。
뒤에 그의 성을 회복하여 이름을 왕석(王釋)이라 하였다.
崇寧間,餘在京師,則已用技術進爲醫官矣。
숭녕(崇寧) 연간에 내가 서울에 있을 때에 그는 이미 기술로 나아가 의관(醫官)이 되었다.
出入蔡魯公門下,醫多奇中。
채노공(蔡魯公)의 문하에 출입하며 의술이 많이 신기하게 맞았다.
餘猶及見其與魯公言從子瞻事,且雲:海上神仙宮闕,吾皆能以說致之,可使空中立見。
내가 오히려 그가 노공(魯公)과 더불어 자첨을 따랐던 일을 말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말하기를 '바다 위의 신선 궁궐은 내가 모두 말로 이르게 할 수 있어 하늘 가운데 서서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였다.
蔡公亦微信之。
채공(蔡公)도 또한 조금 믿었다.
坐事編置楚州,梁師成從求子瞻書帖,且薦其有術。
일로 인해 초주(楚州)에 유배되어 있을 때 양사성(梁師成)이 따라와 자첨의 글을 구하고 또 그가 기술이 있다고 천거하였다.
宣和末,復爲道士,名元成。
선화(宣和) 말에 다시 도사가 되어 이름을 원성(元成)이라 하였다.
力詆林靈素,爲所毒,嘔血死。
힘써 임령소(林靈素)를 비방하다가 그에게 독을 당하여 토혈하고 죽었다.
《東坡志林》:龐安常爲醫,不志於利,得法書古畫,喜輒不自勝。九江胡道士頗得其術,與餘用藥。無以酬之,爲作行草數紙而已。且告之曰:此安常故事,不可廢也。參寥子病,求醫於胡,自度無錢,且不善書晝,求餘甚急,餘戲之曰:子粲可皎徹之徒,何不下轉語作兩首詩乎?龐胡二君與吾輩遊,不日索我於枯魚之肆矣。
《동파지림》:방안상이 의사가 되어 이익에 마음을 두지 않고, 법첩과 고화를 얻으면 기뻐서 참지 못했다. 구강의 호도사가 그의 기술을 많이 얻어 나와 함께 약을 썼다. 갚을 것이 없어 행서와 초서 두어 장을 써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이는 안상의 옛 일이니 폐할 수 없다고 했다. 참료자가 병이 들어 호도사에게 의사를 구했는데, 스스로 돈이 없고 글씨도 잘 못 써서 나에게 매우 급히 구했다. 내가 그에게 농담으로 말하기를:그대는 찬가와 교철 무리이니 어찌 전어를 내려 두 편의 시를 짓지 않는가? 방胡 두 분이 우리와 어울리니 머지않아 나를 마른 물고기 가게에서 찾게 될 것이다.
《墨莊漫錄》:段承務者,醫術甚精,貴人奏以不理選受恩澤。
《묵장만록》에 이르길, 단승무라는 사람이 의술이 매우 뛰어나 귀인이 그를 조정에 추천하여 제대로 된 선발 절차 없이 은혜를 입게 하였다.
居宜興,非有勢力者不能屈致。
의흥에 살면서 세력이 있는 자가 아니면 굳이 부를 수 없었다.
翟公巽參政居常熟,欲見之,託平江守梁仲謨尚書邀之,始來。
적공손 참정이 상숙에 살면서 그를 만나보고자 평강 태수 양중모 상서에게 부탁하여 초청한 뒤에야 비로소 왔다.
乃日,平江一富人病求段醫,段曰:此病不過湯劑數服可愈,然非五百千爲酬不可。
어느 날, 평강의 한 부자가 병이 들어 단의사에게 진료를 청하자, 단의사가 말하기를 "이 병은 탕제 몇 번 복용하면 나을 수 있지만, 오백천을 보수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其家始許其半,段拂衣而去。
그 집에서 처음에는 그 절반만 허락하자, 단의사가 옷을 털고 일어나 가버렸다.
竟從其請,復以五十星爲藥資。
마침내 그 청을 따라 다시 오십 성을 약값으로 주었다.
段復求益,增至百星,始肯出藥。
단의사가 또 더 요구하여 백 성으로 늘리자 그제야 약을 내놓았다.
果如其說而差。
과연 그의 말대로 병이 나았다.
段載其所獲而歸,中途夜夢一朱衣曰:上帝以爾爲醫,而厚取賄賂,殊無濟物之心。
단의사가 얻은 것을 싣고 돌아가던 중, 길에서 밤에 한 주의(朱衣) 사람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상제께서 너를 의사로 삼았는데, 너는 뇌물을 많이 받아 백성을 구제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하였다.
命杖脊二十,敕左右牽而鞭之。
명하여 등을 스무 대 때리라 하고, 좌우를 시켜 끌어내어 채찍질하게 하였다.
既寤,猶覺脊痛,令人視之,有捶痕,歸家未幾而死。
깨어난 후에도 등이 아팠고, 사람을 시켜 보게 하니 매 맞은 자국이 있었으며,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清波雜誌》:輝嘗見父友許志康宦論太素脈,謂可卜人之休咎。
《청파잡지》:휘(輝)가 일찍이 아버지의 벗 허지강(許志康)이 관리로 있을 때 태소맥(太素脈)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의 길흉을 점칠 수 있다고 말했다.
因及治平中,京師醫僧智緣爲王荊公診脈,言當有子登科甲之喜。
이어서 치평(治平) 연간에 경사(京師)의 의승(醫僧) 지연(智緣)이 왕형공(王荊公)의 맥을 진단하며, 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할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時王禹玉在坐,深不然之。
당시 왕우옥(王禹玉)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를 깊이 옳지 않게 여겼다.
明年,雱果登第。
이듬해에 방(雱)이 과연 급제했다.
緣自矜語驗,詣公乞文以爲寵。
지연이 자신의 말이 적중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공(公)에게 나아가 글을 청하여 영광을 삼고자 하였다.
公爲書曰:妙應太師智緣診父之脈,而知其子有成名之喜,翰林王承旨疑古無此,緣曰:昔秦醫和診晉侯之脈,知其良臣將死。
공이 써 주기를:“묘응태사(妙應太師) 지연이 아버지의 맥을 진단하여 그 아들이 성공할 기쁨이 있음을 알았다. 한림(翰林) 왕승지(王承旨)가 옛날에 이런 일이 없었다고 의심하자, 지연이 말하기를 ‘옛날 진(秦)나라 의화(醫和)가 진후(晉侯)의 맥을 진단하여 그의 좋은 신하가 죽을 것을 알았다. 좋은 신하의 목숨이 오히려 진후의 맥에서 드러났으니, 아버지를 통해 아들을 아는 것이 어찌 괴이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夫良臣之命,尚於晉侯脈息見之,因父知子,又何怪乎?所書大略如此。
좋은 신하의 목숨이 오히려 진후의 맥에서 나타나는데, 아버지를 통해 아들을 아는 것이 어찌 괴이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쓰인 내용의 대략이 이와 같다.
許雲:非荊公之文,特其徒假公重名,矜衒以售其術耳。
허운(許雲) 말하기를:“형공(荊公)의 글이 아니라, 다만 그의 무리들이 공의 중대한 명성을 빌려 자랑하며 그 술법을 팔아먹은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程史》:宇文忠惠紹節在樞府,餘間見焉。因及五行之理,相與縱譚,有客在坐,偶曰:黥醫王涇者,昨鞭背都市,流遠方,及平原用事,始得歸,稍敘故秩。自言元不曾受杖,嘗袒而示某以背,完瑩無疵。初不解其如何也,後見他醫,言杖皆有瘢,惟噬膚之初,敷以金箔,則瘢立消,意金木之性相制耳。忠惠笑曰:昔人有以胝足之藥售於市者,輒揭扁於門曰:供御。或笑其不根,聞於上,召而罪之,既而宥其愚。及出,乃復增四字曰:曾經宣喚。今此方無乃其比耶?子將誰售!客亦笑不敢應。時忠惠未識涇也。其二年,餘在裏下,聞忠惠不起,爲位以哭。及都人來,乃雲:涇實用蠲毒瀉足疾,以致大故。朝廷知之,再命追涇所復宮,免杖,流永興。餘因憶在京華時,傅著作行簡、姚冑丞師皋皆甘涇餌,目擊其殞。著作未啓手足,猶進一刀圭,不脫口而逝。餘一日,隨班景靈,見冑丞殿門下,雲:痰癖新愈。因相勞苦。則曰:王御醫實生我,癖去矣,痰下者數鬥。今顧疲苶,他則無恙。餘聞而私憂之,謂未必能勝,未旬果卒。嗟夫!醫之害如此哉!追思疇昔之言,爲之流涕,並志顛末,以悼其庸。
《程史》에 기록되었다. 우문충혜 소절이 추밀원에 있을 때, 내가 가끔 그를 만나러 갔다. 이에 오행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자유롭게 담론을 벌였는데, 자리 가운데 한 손님이 우연히 말했다. "자자(黥)를 받은 의사 왕경이라는 자가 어제 서울 저자거리에서 등을 맞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는데, 평원(平原)이라는 자가 집권하게 되자 비로소 돌아와 이전의 관직을 조금 회복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원래 곤장을 맞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일찍이 옷을 벗고 저에게 등을 보여주었는데, 완전하고 매끄러워 흠집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는데, 후에 다른 의사를 만나 '곤장을 맞으면 모두 흉터가 생기지만, 피부를 상하게 하는 초기에 금박을 바르면 흉터가 곧 사라진다. 아마도 금과 나무의 성질이 서로 제압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충혜가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굳은 살 약을 시장에 팔던 사람이 있었는데, 문 앞에 '공어(供御)'라는 편지를 걸었다. 어떤 이가 그 근거 없음을 비웃었고, 그 소문이 임금에게 들려 부른 뒤 죄를 주려다가 그의 어리석음을 용서했다. 그가 나가서는 다시 네 글자를 덧붙였으니, '증경선환(曾經宣喚)'이었다. 지금 이 처방이 어찌 그와 같지 않겠는가? 네가 누구에게 팔려 하는가!" 손님도 웃으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충혜는 아직 왕경을 알지 못했다. 그 이태 후, 내가 시골에 있을 때 충혜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위령제를 지내며 울었다. 서울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왕경이 실제로 해독약과 사하약으로 발병을 치료하다가 큰 화를 입혔다. 조정이 이를 알고 다시 왕경을 쫓아 관직을 회수하고, 태형을 면하게 하고 영흥(永興)으로 유배 보냈다'고 했다. 내가 이에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하니, 저작랑 부행간과 승상 요사고가 모두 왕경의 약을 즐겨 먹었고, 그들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 저작랑은 손발을 거두기 전에 오히려 약 한 수저를 먹었는데, 입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죽었다. 나는 하루에 경령궁(景靈宮)에서 반열에 참여했다가 승상이 전각 문 아래에서 '담비(痰癖)가 새로 나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서로 위로하며 말했다. '왕어의(王御醫)가 진정 나를 살렸습니다. 비장의 병은 없어졌고, 담이 내려온 것이 몇 말이나 됩니다. 지금은 다만 피곤할 뿐, 다른 것은 탈이 없습니다.' 내가 듣고 개인적으로 걱정하며, 반드시 견디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열흘이 못 되어 과연 죽었다. 아! 의사의 해가 이와 같구나! 지난날의 말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한 처음과 끝을 기록하여 그의 평범함을 애도한다.
餘稚年入閩,過福,聞有黑虎王醫師者,富甲一郡。問之,則繼先之別名也。
내가 어린 나이에 복건에 들어가, 복주를 지나며, 칠흑 호랑이 왕 의원이라는 사람이 있어, 한 고을에서 부귀가 으뜸이라고 들었다. 물어보니, 곧 계선의 다른 이름이었다.
繼先世業醫,其大父居京師,以黑虎丹自名,因號黑虎王家。
계선의 집안은 대대로 의업을 했는데, 그의 할아버지가 서울에 살며, 흑호단으로 스스로 이름을 내어, 이로 인해 흑호 왕가라 불렸다.
及繼先,幸於高宗,積官留後,通國稱爲醫師,雖貶猶得麗於稱謂焉。
계선에 이르러, 고종의 총애를 받아, 관직을 쌓아 유후에 이르렀고, 온 나라가 의사라 칭했으며, 비록 벼슬이 깎였어도 여전히 칭호에 붙어 다녔다.
初,秦檜擅權而未張,頗賂上左右以固寵,繼先實表裏之。
처음에, 진회가 권력을 마음대로 하면서도 아직 드러내지 않았을 때, 임금의 좌우에 뇌물을 많이 주어 총애를 굳혔는데, 계선이 실제로 내외로 도왔다.
當其盛時,勢焰與檜絜,大張去爲,而下不論也。
그의 성할 때, 세력과 기세가 진회와 겨룰 만했으며, 크게 떨치며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 아래에서는 논하지 않았다.
諸大帥率相與父事王,勝在偏校,因韓蘄王以求見,首願爲養子,遂帥金陵軍,聞者爭效,不以爲怪。
여러 대장군들이 서로 왕을 아버지처럼 섬겼고, 승은 편장에 있었는데, 한기왕을 통해 만남을 청하여, 첫째로 양자가 되길 원했고, 마침내 금릉의 군대를 지휘하게 되니, 듣는 자들이 다투어 본받았지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檜欲貴其婣族,不自言,每請進繼先之黨與宮。
진회가 그의 인척을 귀하게 하려 했지만, 스스로 말하지 않고, 매번 계선의 무리와 궁중 사람들을 진급시키기를 청했다.
繼先亦乘間爲檜請,諸子至列延閣,金紫盈門,揜顧賕謝,攘市便腴,抑民子女爲妾侍,罪不可勝紀,而依憑城社,中外不敢議者三十年。
계선 또한 틈을 타서 진회를 위해 청하여, 여러 아들이 연각에 나란히 앉고, 금자(고관)가 문에 가득했으며, 남의 물건을 가로채고 뇌물을 받고, 시장의 좋은 땅을 약탈하고, 백성의 자녀를 억압하여 첩과 시녀로 삼았으니, 죄를 다 기록할 수 없었으나, 성사(임금)에 의지하여, 안팎에서 감히 논하는 자가 30년 동안 없었다.
紹興辛巳六月,蜀人杜莘老爲南臺,擬擊之而未發。
소흥 신사년 6월, 촉 사람 두신로가 남대(어사)가 되어, 그를 탄핵하려 했으나 아직 실행하지 않았다.
會邊釁,繼先首輦重寶爲南遁計,都城爲之騷然。
마침 국경에 변란이 일어나자, 계선이 먼저 수레에 중보물을 싣고 남쪽으로 도망갈 계획을 세워, 도성이 이로 인해 소란스러워졌다.
上聞之,不樂。
임금이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劉武忠錡帥京口,請以先發制人之策,決用兵。
유무충(유기)이 경구(진강)를 지키며, 선제공격으로 적을 제압하는 계책으로, 결단하여 군사를 쓰기를 청했다.
上意猶隱忍不決,亶欲以兵應。
임금의 뜻은 오히려 참고 결단하지 못했으며, 진실로 병사로 대응하려 했다.
繼先素怯,猶幸和議之堅以竊安,因間言於上曰:邊鄙本無事,蓋新進用主兵官,好作弗靖,欲邀功耳。
계선은 본래 겁이 많아, 오히려 화의가 굳어져서 편안히 지내기를 바라며, 틈을 타서 임금에게 말했다: '변방은 본래 일이 없습니다. 새로 등용된 병사를 주관하는 관리들이 시끄럽게 굴어서 공을 세우려는 것일 뿐입니다.'
各斬一二人,和可復固。
각각 한두 사람을 참수하면, 화의를 다시 굳게 할 수 있습니다.'
上不答,徐謂侍貂曰:是欲我斬劉錡耶?
임금이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시종에게 말했다: '이는 나로 하여금 유기를 베려는 것이다?'
於是素軋其下而不得逞者,頗浸潤及之矣。
이에 평소에 그 아래에 눌려 있으면서 뜻을 펴지 못한 자들이, 점차 그를 헐뜯는 말이 미치게 되었다.
金亮索我大臣,廷遣徐嚞、張掄往聘。
금나라 완안량이 우리 대신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서철과 장륜을 보내어 사신으로 가게 했다.
亮以非指,使諫議大夫韓汝嘉至盱眙止之,更令遣所索。
완안량이 지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간의대부 한여가를 화이로 보내어 그들을 막고, 다시 요구한 사람을 보내라고 명령했다.
奏至,上適在劉婕妤閣,當饋輟食,婕妤怪之,問諸侍貂而得其由,進說寬譬,頗與繼先之言符。
奏章送達時,皇上正在劉婕妤的宮中,正在用餐而停下不吃,婕妤感到奇怪,詢問身邊的宦官得知原因,於是進言寬慰勸解,所說的話與王繼先的話頗為吻合。
上大驚,問曰:汝安得此?婕妤不能隱,具以所聞對,遂益怒。
皇上非常驚訝,問道:你從哪裡得到這些話?婕妤無法隱瞞,詳細地把聽到的告訴了皇上,皇上於是更加憤怒。
丁未,詔婕妤歸別第。
丁未日,下詔讓婕妤回到別宅居住。
莘老遂上疏列其十罪。
莘老於是上疏列出王繼先的十條罪狀。
初進讀,玉色猶怫然。
起初進呈誦讀時,皇上的臉色仍然不悅。
莘老扣榻曰:臣以執法事陛下,不能去一醫,死不敢退。
莘老拍著坐榻說:臣子以執掌法紀的身份侍奉陛下,如果不能除掉一個醫官,即使死也不敢退下。
猶未許。
皇上仍然沒有准許。
因密言外議,謂繼先以左道幸,恐謗議叢起,臣且不忍聽。
於是秘密地說起外面的議論,說王繼先以邪門歪道得到寵幸,恐怕誹謗議論會四起,臣子甚至不忍聽聞。
上始變色首肯。
皇上這才變了臉色點頭同意。
罷朝,使宣旨曰:朕以顯仁餌汝藥,故假爾寵。今言者如此,當不復有面目見朕。期三日有施行,其自圖之!
退朝後,派人宣旨說:朕因為顯仁太后服用你的藥,所以暫且給你寵信。如今進諫的人如此說,你應當沒有臉面再見朕。限你三天內有所行動,你自己考慮吧!
辛亥,遂詔繼先居於福,子孫勒停,都城田宅皆沒官,奴婢之強,鬻者從便。
辛亥日,於是下詔命王繼先居住在福州,子孫勒令停職,都城的田地房宅全部沒收歸官,強壯的奴婢聽憑出賣。
令下,中外大悅。
命令下達後,朝廷內外都非常高興。
繼先以先事聞詔,多藏遠徙,故雖籍不害其富也。
王繼先因為事先聽聞詔令,將大量財物藏匿並遷移到遠處,所以即使被抄家也不損害他的富有。
迄今其故居,華棟雕甍,猶號巨室。
直到現在他的故居,華麗的樑柱雕刻的屋脊,仍然號稱大宅。
一傳而子弟蕩析,至不能家。
傳了一代之後子孫敗落離散,以至於無法維持家業。
或者謂其致不以道,宜於厚亡。
有人說他的財富得來不合道義,理應會大量喪失。
趙性之作《中興遺史》,載繼先始末極詳,參以所聞而着其事。
趙性之撰寫《中興遺史》,記載王繼先的始末非常詳細,參考所聽聞的內容而記述其事。
《癸辛雜識》:王醫師有二:王繼先,高宗朝國醫,後以德壽宮進藥罔效,安置福州。王涇亦繼先同時,相先後應奉,後以德壽疾,進涼藥大漸,杖脊鯨海上,後得歸。所謂御診王承宣者是也。
《계신잡지》: 왕의사가 두 명 있다. 왕계선은 고종 때 궁중 의사였는데, 나중에 덕수궁에 약을 올렸으나 효험이 없어 복주에 유배되었다. 왕경도 계선과 같은 시기에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응봉하였는데, 나중에 덕수가 병들자 냉약을 올려 병세가 위독해졌고, 장형을 맞고 바다에 유배되었다가 후에 돌아왔다. 이른바 어진 왕승선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金史》程輝傳:輝拜參知政事,性喜雜學,尤好論醫。從河間劉守真說,率用涼藥。神童嘗添壽者方數歲,輝召之,因書醫非細事四字。添壽塗細字,改書作相。輝頗慚。人亦以此爲中其病雲。
《금사》 정휘전에 이르기를, 정휘가 참지정사에 임명되었는데, 성품이 잡학을 좋아하고 특히 의학을 논하기를 좋아했다. 하간 유수진의 학설을 따라 주로 냉약을 사용했다. 신동 증첨수라는 자가 나이 겨우 몇 살이었는데, 정휘가 그를 불러서 '의(醫)는 작은 일이 아니다'라는 네 글자를 썼다. 첨수가 '세(細)' 자를 지우고 '상(相)' 자로 고쳐 썼다. 정휘가 매우 부끄러워했다. 사람들이 또한 이것으로 그의 병통을 맞혔다고 이른다.
《剪勝野聞》:徐魏國公達病疽疾篤,帝數往視之。大集醫徒,治療且久,病少差。帝忽賜膳,魏公對使者流涕而食之,密令醫人逃去。未幾告薨,亟報帝。帝蓬跣擔紙錢,道哭至第,命收斬醫徒。夫人大哭,出拜帝,帝慰之曰:嫂勿爲後慮,有朕存焉。因爲周其後事而去。
《剪勝野聞》:서위국공 서달이 종기 병이 위독해져서 황제가 여러 번 가서 보았다. 의사들을 많이 모아 치료한 지 오래되었으나 병이 조금 차도가 있었다. 황제가 갑자기 음식을 하사하니, 위국공이 사자를 대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먹고, 은밀히 의사들을 도망가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알리며 급히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황제가 머리를 풀고 맨발로 종이돈을 지고 길에서 울며 집에 이르러, 의사들을 붙잡아 베라고 명하였다. 부인이 크게 울며 나와 황제에게 절하니, 황제가 위로하며 말하였다: "형수님은 뒷일을 걱정하지 마소서, 내가 있나이다." 이에 그 뒷일을 두루 챙기고 떠났다.
《金臺紀聞》:金華戴原禮,國初名醫。常被召至南京,見一醫家,迎求溢戶,酬應不閒,原禮意必深於術者,因注目焉。按方發劑,皆無他異,退而怪之,日往觀焉。
《금대기문》:금화의 대원례는 나라 초기의 명의였다. 일찍이 남경으로 불려 가서, 한 의원을 보았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문에 가득하고 응대가 떠들썩했다. 원례는 반드시 의술에 깊은 사람이라고 여겨 그를 주목했다. 처방에 따라 약을 내주는데 모두 별다른 점이 없었다. 물러나서 이를 이상히 여겨 날마다 가서 관찰했다.
偶一人求藥者,既去,追而告之曰:臨煎時,下錫一塊。麾之去。原禮始大異之。念無以錫人煎劑法,叩之,答曰:是古方耳。原禮求得其書,乃餳字耳。原禮急爲正之。
우연히 한 사람이 약을 구하여 갔는데, 뒤쫓아가서 말하기를 '달일 때 쇳조각 한 개를 넣으라' 하고 손을 저어 보냈다. 원례가 비로소 크게 이상히 여겼다. 생각하기에 쇠를 넣어 약을 달이는 법이 없으므로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옛 방이오.'라고 했다. 원례가 그 책을 구하여 보니 '餳(엿)' 자였다. 원례가 급히 이를 바로잡아 주었다.
嗚呼!不辨餳錫而醫者,世胡可以弗謹哉?
아! '餳(엿)'과 '錫(쇠)'을 분별하지 못하고 의술을 행하는 자는, 세상에서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長安客話》:太醫院例,於端陽日差官至南海子捕蝦蟆擠酥以合藥,制紫金錠。某張大其事,備鼓吹旗旛,喧闐以往。有嘲以詩曰:抖擻威風出鳳城,喧喧鼓吹擁霓旌。入林披莽如虓虎,捉得蝦蟆剜眼睛。
《장안객화》에 이르길: 태의원의 관례에 따라 단오날 관리를 보내 남해자에서 두꺼비를 잡아 그 즙을 짜서 약을 배합하고, 자금정을 만든다. 어떤 이가 그 일을 떠벌려 북과 깃발, 기치를 갖추고 시끄럽게 떠들며 갔다. 어떤 시가 이를 조롱하였다: 위풍을 떨며 봉성을 나가니, 시끄러운 북소리에 무지개 깃발 둘러섰네. 숲에 들어가 풀을 헤치니 범과 같이 사나워라, 두꺼비 잡아 눈알을 도려내네.
民間婦有精通方脈者,由各衙門選取,以至司禮監御醫。
민간 부인 중에 방맥(方脈)에 정통한 자가 있으면, 각 아문(衙門)에서 선발하여 사례감(司禮監) 어의(御醫)에 이르게 한다.
會選中者,著名籍以侍詔,婦女多榮之,名曰醫婆。
회선(會選)에 합격한 자는 명적(名籍)에 올려 시조(侍詔)를 하게 하니, 부녀자들이 영예롭게 여겨 이름하여 의파(醫婆)라 한다.
《塵餘》:有名醫將入蜀,見負薪者,猛汗於河中浴。
《진여》에 이르길, 유명한 의사가 촉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땔나무를 지고 가는 사람이 강에서 땀을 많이 흘리며 목욕하는 것을 보았다.
醫曰:此人必死,隨而救之。
의사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니, 따라가서 구해야겠다 하였다.
其人入店中,取大蒜細切,熱面澆之,食之,汗出如雨。
그 사람이 가게에 들어가 마늘을 가늘게 썰어 뜨거운 국수에 부어 먹으니, 땀이 비처럼 흘렀다.
醫曰:貧下人且知藥,況富貴乎?遂不入蜀。
의사가 말하기를,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이렇게 약을 아는데, 하물며 부귀한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하고는 끝내 촉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霏雪錄》:木鱉不可服。
《비설록》에 이르기를: 목별은 복용해서는 안 된다.
蘇門一人生二子,皆切愛之,恣其食啖,遂成痞疾。
소문(蘇門)에 한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지극히 사랑하여 먹고 싶은 대로 먹게 하자, 마침내 체증[痞疾]이 생겼다.
其父得一方,以木鱉煮豬肉食之。
그 아버지가 한 처방을 얻어, 목별로 돼지고기를 삶아 먹게 하였다.
其次者當夜死,明日長者死。
그 작은아이가 당일에 죽고, 다음 날 큰아이가 죽었다.
愚人不謹,輕信妄爲,至殺其二子,悲哉!
어리석은 사람이 삼가지 않고, 경솔히 믿어 망령되이 행하여, 마침내 그 두 아들을 죽였으니, 슬프도다!
友人馬君文誠得方書一帙,亦載此方,故爲注其事於左以爲戒。
벗인 마군문성(馬君文誠)이 방서(方書) 한 질을 얻었는데, 또한 이 처방이 실려 있어, 그러므로 그 일을 왼쪽에 기록하여 경계로 삼는다.
此仁之一端也。
이것이 어짐(仁)의 한 단서이다.
一童子頭有瘍,遇人以藥敷之,童子頭癢不可忍,爬搔見血,至以頭觸柱,至夕竟死。
한 아이가 머리에 종기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약을 발라주었다. 아이가 머리가 가려워 참을 수 없어 긁어서 피가 났고, 심지어 머리를 기둥에 부딪혔으며, 저녁이 되어 결국 죽었다.
蓋其藥有砒,見血即害人矣。
대개 그 약에 비상이 들어 있었는데, 피를 만나면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吾聞之文誠雲。
내가 문성에게서 들었다.
《澗泉日記》:李生者,居餘干門外,善貨殖,日賣養脾丸於市,嘗揭巨榜於前曰:不使丁香木香合,則天誅地滅。
《간천일기》:이생이라는 자가 여건문 밖에 살았는데, 장사에 능하여 날마다 시장에서 양비환을 팔았다. 일찍이 큰 간판을 앞에 내걸기를 '정향과 목향을 넣지 않고 조합하면 하늘과 땅이 벌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家畜二婢,以事炮製。
집에 두 명의 종을 두어 포제(약재 가공)를 맡겼다.
李一旦飲醉,而溺死於河,其家弗知也,但惟連日弗歸,遣親信四方尋求,略無蹤跡。
이생이 어느 날 술에 취해 강에 빠져 죽었는데, 그 집에서는 알지 못하고 다만 며칠째 돌아오지 않으므로 친신을 보내 사방으로 찾게 하였으나 자취가 전혀 없었다.
洎官驗視,或有報其家者,亟前詣之,已腐敗,僅能辨認,欲求免洗滌,已不及矣。
관청에서 검시할 때에 혹 그 집에 알린 자가 있어 급히 가서 보니 이미 썩어서 겨우 알아볼 정도였고, 씻어내기를 면하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遂藁葬於藂冢間,立木牌於墳,雲:賈藥李郎中之墓。
마침내 풀무덤 사이에 초빈으로 묻고, 무덤에 나무패를 세워 이르기를 '약 파는 이낭중의 묘'라고 하였다.
或有題於牌後曰:賣藥李郎中,昂藏辨不窮。一朝天賜報,溺死運河東。
혹 패 뒤에 쓰기를 '약 파는 이낭중, 당당하여 변론이 끝이 없더니, 하루아침에 하늘이 내린 보응으로, 운하 동쪽에서 익사했네.'라고 하였다.
未幾,家計蕭然,其妻遣去二婢,尋棄所居,攜二子以事人。
얼마 안 되어 집안 형편이 쓸쓸해져, 그 아내가 두 종을 내보내고 곧 거처를 버리고 두 자식을 데리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다.
或有問於妻曰:爾夫修合不苟,天當佑之,何返報之酷耶?
혹 아내에게 묻기를 '그대의 남편은 약을 조제함에 신중하였으니 하늘이 마땅히 도울 터인데, 어찌 도리어 보응이 가혹한가?'라고 하였다.
他日,後夫醉之以酒,扣之,妻雲:向所遣去二婢,先夫專委之修合,一名曰木香,一名曰丁香,其實不用二藥也。故受斯報雲。
다른 날, 후남편이 그를 술에 취하게 하여 묻자, 아내가 말하기를 '예전에 내보낸 두 종은 선남편이 전적으로 조제를 맡겼는데, 하나는 목향이라 이름하고 하나는 정향이라 이름하였으나, 실제로는 두 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보응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