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程史》:宇文忠惠紹節在樞府,餘間見焉。因及五行之理,相與縱譚,有客在坐,偶曰:黥醫王涇者,昨鞭背都市,流遠方,及平原用事,始得歸,稍敘故秩。自言元不曾受杖,嘗袒而示某以背,完瑩無疵。初不解其如何也,後見他醫,言杖皆有瘢,惟噬膚之初,敷以金箔,則瘢立消,意金木之性相制耳。忠惠笑曰:昔人有以胝足之藥售於市者,輒揭扁於門曰:供御。或笑其不根,聞於上,召而罪之,既而宥其愚。及出,乃復增四字曰:曾經宣喚。今此方無乃其比耶?子將誰售!客亦笑不敢應。時忠惠未識涇也。其二年,餘在裏下,聞忠惠不起,爲位以哭。及都人來,乃雲:涇實用蠲毒瀉足疾,以致大故。朝廷知之,再命追涇所復宮,免杖,流永興。餘因憶在京華時,傅著作行簡、姚冑丞師皋皆甘涇餌,目擊其殞。著作未啓手足,猶進一刀圭,不脫口而逝。餘一日,隨班景靈,見冑丞殿門下,雲:痰癖新愈。因相勞苦。則曰:王御醫實生我,癖去矣,痰下者數鬥。今顧疲苶,他則無恙。餘聞而私憂之,謂未必能勝,未旬果卒。嗟夫!醫之害如此哉!追思疇昔之言,爲之流涕,並志顛末,以悼其庸。
《程史》에 기록되었다. 우문충혜 소절이 추밀원에 있을 때, 내가 가끔 그를 만나러 갔다. 이에 오행의 이치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자유롭게 담론을 벌였는데, 자리 가운데 한 손님이 우연히 말했다. "자자(黥)를 받은 의사 왕경이라는 자가 어제 서울 저자거리에서 등을 맞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는데, 평원(平原)이라는 자가 집권하게 되자 비로소 돌아와 이전의 관직을 조금 회복했습니다. 스스로 말하기를 '원래 곤장을 맞은 적이 없다'고 하면서, 일찍이 옷을 벗고 저에게 등을 보여주었는데, 완전하고 매끄러워 흠집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는데, 후에 다른 의사를 만나 '곤장을 맞으면 모두 흉터가 생기지만, 피부를 상하게 하는 초기에 금박을 바르면 흉터가 곧 사라진다. 아마도 금과 나무의 성질이 서로 제압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충혜가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굳은 살 약을 시장에 팔던 사람이 있었는데, 문 앞에 '공어(供御)'라는 편지를 걸었다. 어떤 이가 그 근거 없음을 비웃었고, 그 소문이 임금에게 들려 부른 뒤 죄를 주려다가 그의 어리석음을 용서했다. 그가 나가서는 다시 네 글자를 덧붙였으니, '증경선환(曾經宣喚)'이었다. 지금 이 처방이 어찌 그와 같지 않겠는가? 네가 누구에게 팔려 하는가!" 손님도 웃으며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당시 충혜는 아직 왕경을 알지 못했다. 그 이태 후, 내가 시골에 있을 때 충혜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위령제를 지내며 울었다. 서울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왕경이 실제로 해독약과 사하약으로 발병을 치료하다가 큰 화를 입혔다. 조정이 이를 알고 다시 왕경을 쫓아 관직을 회수하고, 태형을 면하게 하고 영흥(永興)으로 유배 보냈다'고 했다. 내가 이에 서울에 있을 때를 회상하니, 저작랑 부행간과 승상 요사고가 모두 왕경의 약을 즐겨 먹었고, 그들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 저작랑은 손발을 거두기 전에 오히려 약 한 수저를 먹었는데, 입에서 내려가지도 않고 죽었다. 나는 하루에 경령궁(景靈宮)에서 반열에 참여했다가 승상이 전각 문 아래에서 '담비(痰癖)가 새로 나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서로 위로하며 말했다. '왕어의(王御醫)가 진정 나를 살렸습니다. 비장의 병은 없어졌고, 담이 내려온 것이 몇 말이나 됩니다. 지금은 다만 피곤할 뿐, 다른 것은 탈이 없습니다.' 내가 듣고 개인적으로 걱정하며, 반드시 견디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열흘이 못 되어 과연 죽었다. 아! 의사의 해가 이와 같구나! 지난날의 말을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한 처음과 끝을 기록하여 그의 평범함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