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图书集成医部全录卷五百十一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五百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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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 명류 열전
明
밝다
戴思恭
대사공
按《明外史》本傳:戴思恭,字原禮,浦江人,以字行,受學於義烏朱震亨。
《明外史》本傳記載:戴思恭,字原禮,浦江人,以字行世,師從義烏的朱震亨學醫。
震亨師金華許謙,以上接朱子之傳;又學醫於宋內侍錢塘羅知悌,知悌得之荊山浮屠,浮屠則河間劉守真門人也。
朱震亨師從金華的許謙,以承接朱子的學統;又向宋朝內侍錢塘羅知悌學醫,羅知悌從荊山浮屠那裡得傳,浮屠則是河間劉守真的門人。
震亨醫學大行,時稱爲丹溪先生。一見思恭,愛其才敏,盡以醫術傳之,思恭遂以醫鳴。
朱震亨的醫學大為盛行,當時人稱他為丹溪先生。他一見到戴思恭,喜愛他的才思敏捷,將醫術全部傳授給他,思恭於是因醫術聞名。
洪武時徵爲御醫,有所療治,立效,太袓愛重之。
洪武年間被徵召為御醫,凡有治療,立刻見效,太祖喜愛並看重他。
燕王患瘕,韓奭治不效,太袓遣思恭往治。問所用藥,良是。思恭念何以不效,乃問王何嗜?曰:嗜莊芹。思恭曰:得之矣。投一劑,夜暴下,視之,乃細蝗也。
燕王患瘕病,韓奭治療無效,太祖派思恭前往治療。詢問所用藥物,都很對證。思恭心想為何無效,於是問燕王嗜好吃什麼?回答說:愛吃莊芹。思恭說:找到原因了。投下一劑藥,夜間劇烈腹瀉,查看排泄物,原來是細小的蝗蟲。
晉王末疾,思恭療之,愈已再發,即卒。太袓怒,逮治王府諸醫,思恭從容進曰:臣嘗奉命視王疾,啓王曰:疾今即愈,但毒在膏肓,即復作,不可療也,今果然矣。諸醫由是免死。
晉王患末疾,思恭治療,痊癒後又復發,隨即去世。太祖大怒,逮捕治罪王府的各位醫官,思恭從容進言說:臣曾奉命診視王疾,稟告王說:疾病現今即將痊癒,但毒在膏肓,如果復發,不可救治,如今果然如此。諸位醫官因此免於死罪。
一妃嗜燒酒致腹痛,治之而瘥。思恭曰:十年必復發,發則難救。後果驗。
一位妃子嗜飲燒酒導致腹痛,治療後痊癒。思恭說:十年後必定復發,復發則難以救治。後來果然應驗。
思恭時已老,風雨輒免朝。太袓得疾,少間出御右順門,召諸醫侍疾,無狀者悉付獄,獨慰思恭曰:汝仁義人也,事無預汝,毋恐!已而駕崩。
思恭當時已年老,風雨天氣就免其上朝。太祖患病,稍有好轉時來到右順門,召集眾醫官侍奉疾病,表現不好的全部投入監獄,唯獨安慰思恭說:你是仁義之人,此事與你無關,不要恐懼!不久太祖駕崩。
太孫嗣位,罪諸醫,獨擢思恭太醫院使。
太孫繼位,治罪諸醫官,唯獨提升思恭為太醫院使。
遼簡王聞太袓語,大書仁義二字賜之。肅莊王、慶靖王鹹爲贊味以賜。
遼簡王聽說太祖的話,大書「仁義」二字賜給他。肅莊王、慶靖王都為他作讚美的詩文賜給他。
永樂初,以年老乞骸骨,奏四上,乃許。三年夏,遣使者徵入,免其拜,特召乃進見。
永樂初年,因年老請求退休,奏疏四次上呈,才獲准許。永樂三年夏天,派遣使者徵召入朝,免去其跪拜之禮,特別召見才進見。
其冬復告歸,遣官護送,賚金幣,踰月而卒,年八十三歲,遣行人致祭。
그해 겨울에 다시 사직하고 돌아가기를 청하니, 관리를 보내 호송하게 하고 금과 비단을 하사하였으며, 한 달이 지나서 죽으니 나이가 여든셋이었고, 행인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所著有《證治要訣》、《證治類元》、《類證用藥》總若干卷,皆隱括丹溪之書爲之。
지은 책에 《증치요결》, 《증치유원》, 《류증용약》 모두 여러 권이 있는데, 모두 단계의 책을 요약하여 만든 것이다.
又訂正丹溪《金匱鉤元》三卷,間附以己意,人謂無愧其師雲。
또 단계의 《금궤구원》 세 권을 교정하고 간간이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는데, 사람들은 그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였다.
按《宋濂集》:醫之爲道至矣,故周官有疾醫視萬民四時之病,春之痟首,夏之癢疥,秋之瘧寒,冬之欬嗽上氣,皆分而治之,驗其狀而制其祿,甚爲不輕也。
《宋濂集》에 따르면: 의술이라는 도는 지극하므로, 주나라 관제에 질의(疾醫)가 있어 백성들의 사계절 병을 보았는데, 봄의 소두(痟首), 여름의 양개(癢疥), 가을의 학한(瘧寒), 겨울의 해수상기(欬嗽上氣)를 모두 나누어 치료하고, 그 증상을 살펴 녹봉을 정하였으니, 매우 가볍지 않았다.
後世官寖失職,故於其術,每擇之不精。
후세에 관직이 점차 직분을 잃었으므로, 그 기술에 있어 매번 정밀하게 선택하지 못하였다.
有人於此,能合於古者之道,豈不猶空谷足音之可喜者乎?如吾同縣戴原禮氏是已。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옛사람의 도에 부합한다면, 어찌 빈 골짜기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는 것처럼 기쁘지 않겠는가? 우리 동현의 대원례(戴原禮) 씨가 그러하다.
原禮生儒家,習聞詩禮之訓,惓惓有志於澤物,乃徒步至烏陽,從朱先生彥修學醫。
원례는 유가에서 태어나 시와 예의 가르침을 익히 들었으며, 간절히 사물을 이롭게 할 뜻을 품고, 걸어서 오양(烏陽)에 이르러 주선생 언수(彥修)를 따라 의술을 배웠다.
先生見其穎悟倍常,傾心授之。原禮自是識日廣,學日篤,出而治疾,往往多奇驗。
선생이 그의 영리함이 보통보다 뛰어남을 보고 진심으로 가르쳤다. 원례는 이때부터 식견이 날로 넓어지고 학문이 날로 독실해져, 나가서 병을 치료하면 왕왕 기이한 효험이 많았다.
予請得而詳道之。
내가 청하여 자세히 말해 보겠다.
原禮從叔仲章,六月患大熱,面赤口譫語,身發紅斑,他醫投以大承氣湯而熱愈極。
원례의 종숙(從叔) 중장(仲章)이 6월에 큰 열을 앓아 얼굴이 붉고 입으로 헛소리를 하며 몸에 붉은 반점이 났는데, 다른 의사가 대승기탕(大承氣湯)을 투여하니 열이 더욱 심해졌다.
原禮脈之,曰:左右手皆浮虛無力,非真熱也。張子和雲:當解表而勿攻裏。此證似之,法當汗。
원례가 맥을 짚고 말하기를: 좌우 손이 모두 부허(浮虛)하고 무력하니, 진열(真熱)이 아니다. 장자화(張子和)가 이르길: 표(表)를 풀어야 하고 리(裏)를 공격하지 말라. 이 증상이 그것과 비슷하니, 법으로 땀을 내야 한다.
遂月附子、乾薑、人蔘、白朮爲劑,烹液冷飲之,大汗而愈。
그리하여 부자(附子), 건강(乾薑), 인삼(人蔘), 백출(白朮)을 약으로 하여 달인 액을 차게 마시게 하니, 큰 땀을 내고 나았다.
諸暨方氏子婦,瘧後多汗,呼媵人易衣不至,怒形於色,遂昏厥若死狀,灌以蘇合香丸而蘇。
제계(諸暨)의 방씨(方氏) 집 며느리가 학질 후에 땀이 많아, 시종을 불러 옷을 갈아입히려 했으나 오지 않자, 노여움이 얼굴에 드러나고 이내 혼절하여 죽은 듯하였는데, 소합향환(蘇合香丸)을 부어 넣어 깨어났다.
自後聞人步之重,雞犬之聲,輒厥逆如初。原禮曰:脈虛甚,重取則散,是謂汗多亡陽,正合經意。
그 후로 사람의 무거운 발소리나 닭과 개의 소리를 들으면 곧 처음처럼 궐역(厥逆)하였다. 원례가 말하기를: 맥이 매우 허하고, 중취(重取)하면 산(散)하니, 이는 땀이 많아 양(陽)을 잃은 것이라 하며, 바로 경문(經文)의 뜻에 부합한다.
以黃芪、人蔘日補之,其驚漸減,至浹旬而安。
황기(黃芪)와 인삼(人蔘)으로 날마다 보하니, 그 놀람이 점차 줄어들어 열흘이 되자 편안해졌다.
松江朱仲文,長夏畏寒,身常挾重纊,食飲必熱如火方下嚥,微溫則嘔,他醫授以胡椒煮伏雌之法,日啖雞者三,病癒亟。
송강(松江)의 주중문(朱仲文)이 장하(長夏)에 추위를 두려워하여 몸에 항상 두꺼운 솜을 끼고, 음식은 반드시 불처럼 뜨거워야 넘어가고 약간 미지근하면 토하였는데, 다른 의사가 호초(胡椒)로 암탉을 삶는 법을 가르쳐 날마다 닭을 세 마리씩 먹게 하니 병이 더욱 심해졌다.
原禮曰:脈數而大,且不弱。劉守真雲火極似水,此之謂矣。椒發陰經之火,雞能助痰,只以益其病爾。
원례가 말하기를: 맥이 삭(數)하고 대(大)하며 또한 약하지 않다. 유수진(劉守真)이 이르길 화극(火極)은 수(水)를 닮는다 하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후추는 음경(陰經)의 불을 일으키고 닭은 담(痰)을 도우니, 다만 그 병을 더하게 할 뿐이다.
以大承氣湯下之,晝夜行二十餘,頓減纊之半;復以黃連導痰湯益竹瀝飲之,竟瘳。
대승기탕(大承氣湯)으로 설사시키니, 밤낮으로 스무 번 넘게 나가고, 갑자기 솜의 반을 줄였다. 다시 황련도담탕(黃連導痰湯)에 죽력(竹瀝)을 더하여 마시게 하니, 마침내 나았다.
姑蘇朱子明之婦,病長號數十聲,暫止復如前,人以爲厲所憑,莫能療。
고소(姑蘇)의 주자명(朱子明)의 아내가 병으로 길게 울부짖기를 수십 번 하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전과 같아서, 사람들이 귀신이 들렸다고 여겨 치료하지 못하였다.
原禮曰:此鬱病也。痰閉於上,火鬱於下,故長號則氣少舒。經雲火鬱則發之是已。
원례가 말하기를: 이것은 울병(鬱病)이다. 담(痰)이 위에서 막히고 화(火)가 아래에서 울결되었으므로, 길게 울부짖으면 기(氣)가 조금 풀린다. 경에 이르길 화가 울하면 발산시킨다 하니, 이것이 바로 그렇다.
遂用重劑湧之,吐痰如膠者無算,乃復初。
그리하여 중한 약으로 토하게 하니, 아교 같은 담을 무수히 토하고, 이내 처음처럼 회복되었다.
樂原忠妻亦蘇人,因免乳後病驚,身翩翩然如升浮雲之上,舉目則室廬旋運,持身弗定,他醫飲以補虛治驚皆不驗。
악원충(樂原忠)의 아내 또한 소주 사람인데, 산후(産後)에 놀람 병이 들어 몸이 펄펄 떠서 구름 위에 오른 듯하고, 눈을 뜨면 집과 방이 빙빙 돌며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다른 의사들이 보허(補虛)와 치경(治驚) 약을 먹였으나 모두 효험이 없었다.
原禮曰:左脈雖芤且濇,神色不動,是因驚致心包絡積污血耳,法宜下之。
원례가 말하기를: 왼 맥이 비록 규(芤)하고 삽(濇)하며, 신색(神色)은 움직이지 않으니, 이는 놀람으로 인해 심포락(心包絡)에 더러운 피가 쌓인 것일 뿐이다. 법으로 내려야 한다.
下積血如漆者一斗,即愈。
옻 같은 쌓인 피 한 말을 설사시키고, 곧 나았다.
留守衛吏陸仲容之內子病熱,妄見神鬼,手足瞤動,他醫用黃連清心湯不中。
유수위리(留守衛吏) 육중용(陸仲容)의 아내가 열병으로 신(神)과 귀(鬼)를 헛되이 보고, 손발이 떨리는데, 다른 의사가 황련청심탕(黃連清心湯)을 사용하였으나 맞지 않았다.
原禮視之曰:形瘦而色不澤,乃虛熱耳。法當以李杲甘溫除大熱之法爲治,即經所謂損者溫之者也。
원례가 보고 말하기를: 몸이 야위고 얼굴빛이 윤택하지 않으니, 허열(虛熱)일 뿐이다. 법으로 마땅히 이고(李杲)의 감온(甘溫)으로 대열(大熱)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해야 하니, 이는 경에 이른바 손한 자를 온하게 한다는 것이다.
服參、芪而安。
인삼과 황기를 복용하고 편안해졌다.
他若此者甚衆。予備聞賢士大夫恆言之,今不能悉數也。
그 밖에 이와 같은 일이 매우 많다. 내가 현사대부(賢士大夫)들이 항상 말하는 것을 두루 들었으나, 지금 다 셀 수는 없다.
嗚呼!有人於此,可不謂之合於古道者乎?
아! 여기 어떤 사람이 있으니, 옛 도에 부합한다고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夫醫之爲道,本於《素問》、《內經》。
무릇 의술이라는 도는 《소문(素問)》과 《내경(內經)》에 근본한다.
其學一壞於開元,再壞於大觀,習俗相仍,絕不知究甚微指,惟執一定之方,類刻舟而求劍者,人訾之,則曰:我之用此,不翅足矣,又何事《內經》爲?
그 학문이 한 번은 개원(開元) 때 무너지고, 다시 대관(大觀) 때 무너져, 습속이 그대로 이어져 아주 미묘한 지적을 연구할 줄 모르고, 오직 일정한 처방만 고집하여 마치 새긴 배에서 칼을 찾는 것과 같아, 사람들이 비난하면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씀이, 부족함이 없는데, 또 무엇 때문에 《내경》을 공부하는가? 하였다.
宋之錢仲陽獨得其祕,於遺經而擴充之;金之張、劉、李諸家,又從而衍繹之,於是《內經》之學大明。
송(宋)의 전중양(錢仲陽)이 홀로 그 비밀을 얻어 남은 경전을 확충하였고, 금(金)의 장(張), 유(劉), 이(李) 여러 학자들이 또 이어서 펼쳐 풀이하였으니, 이에 《내경》의 학문이 크게 밝아졌다.
劉之學,朱先生得之最深,大江以南,醫之道本於《內經》,實自先生髮之。
유(劉)의 학문을 주선생(朱先生)이 가장 깊게 얻었고, 대강(大江) 이남에서 의술의 도가 《내경》에 근본한 것은 실로 선생으로부터 발현되었다.
原禮乃其高弟,其用心也篤,故造理爲特精。
원례는 그의 높은 제자로서, 그 마음 씀이 독실하므로 이치에 도달함이 특별히 정밀하였다.
其傳授有要,故察證無不中,亦可謂賢也已矣。
그 전수가 요령이 있으므로 증상을 살핌에 맞지 않음이 없었으니, 또한 현명하다 이를 만하다.
近來京師縉紳家,無不敬愛之,服其劑者,沉痾豁然如洗。
근래에 서울의 사대부 집에서 그를敬愛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 약을 복용한 자는 깊은 병이 활연히 씻긴 듯하였다.
或欲薦爲醫官,辭不就,遂賦詩以餞其東還,且請餘爲序。
혹자는 의관(醫官)으로 천거하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아, 드디어 시를 지어 동쪽으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고, 또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昔者司馬遷作倉公傳,載其應詔所對,自齊御史成至公乘項處,凡二十有三,書治病之狀甚具。
옛날 사마천(司馬遷)이 창공(倉公)의 전기를 지어, 그 조서(詔書)에 응하여 대답한 것을 실었는데, 제(齊)의 어사(御史) 성(成)으로부터 공승(公乘) 항처(項處)에 이르기까지 모두 23명이며, 병을 치료한 상황을 매우 상세히 기록하였다.
予仿此義,稍陳原禮療疾奇中者系之首簡,並告周官疾醫四時治證之概,世之知言君子必有所擇焉。
내가 이 뜻을 본받아, 원례가 병을 치료하여 기이하게 맞힌 것을 간략히 진술하여 책머리에 붙이고, 아울러 주관(周官)의 질의(疾醫)가 사시(四時)의 병증을 치료한 개요를告하니, 세상의 말을 아는 군자는 반드시 선택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原禮之從父能軒翁,予之同志友也,幸以予言質之。
원례의 종부(從父) 능헌옹(能軒翁)은 나의 동지 벗이니, 다행히 내 말로써 질정하라.
按《震澤紀聞》:戴元禮,浙之金華人,爲醫得丹溪之傳,洪武中官太醫院。
《震澤紀聞》에 따르면: 戴元禮는 浙江省 金華 사람으로, 의원이 되어 丹溪의 傳授를 얻었으며, 洪武 연간에 太醫院에 벼슬하였다.
尚書嚴震直病,上語元禮,曰:好。治之不愈且抵罪。
尚書 嚴震直이 병이 들자, 上(황제)이 元禮에게 이르며 말하기를: '좋다. 치료하여 낫지 않으면 죄를 받을 것이다.'
應手而愈。
손을 대자 곧 나았다.
按《金臺紀聞》:金華戴元禮,國初名醫。常被召至南京,見一醫家迎求溢戶,酬應不閒,元禮意必深於術者,因注目焉。按方發劑,皆無他異,退而怪之,日往觀焉。偶一人求藥者,既去,追而告之曰:臨煎時,下錫一塊。麾之去。元禮始大異之。念無以錫入煎劑法,叩之,答曰:是古方耳。元禮求得其書,乃餳字耳。元禮急爲正之。嗚乎!不辨餳錫而醫者,世胡可以弗謹哉?
《금대기문》에 따르면: 금화의 대원례는 나라 초기의 명의였다. 일찍이 남경으로 불려갔는데, 한 의원을 보니 환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응대가 끊이지 않았다. 원례는 필시 의술에 깊은 사람이라고 여겨 주목하였다. 처방에 따라 약을 내리는데 모두 다른 특별함이 없었다. 물러나서 이상히 여겨 날마다 가서 관찰하였다. 우연히 한 사람이 약을 구해 간 뒤, 쫓아가서 말하기를 '약을 달일 때 납덩이 하나를 넣으라' 하고 손짓하며 보냈다. 원례가 비로소 크게 이상히 여겼다. 납을 달이는 약에 넣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여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는 옛 처방이다' 하였다. 원례가 그 책을 구하여 보니, '餳' 자였다. 원례가 급히 바로잡아 주었다. 아! '餳'과 '錫'을 분별하지 못하는 의원을, 세상에서 어찌 신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按《金華府志》:戴思恭受業丹溪,丹溪一見奇之,悉語以濂洛授受之懿,及醫藥諸家要旨,遂以醫道鳴於時。
《金華府志》에 의하면, 대사공이 단계의 제자가 되었는데, 단계가 그를 보자마자 기이하게 여겨, 염락(濂洛) 학파의 전수받은 아름다움과 의약의 여러 학파 요점을 모두 가르쳐주었고, 마침내 의술로 당시에 명성을 떨쳤다.
洪武中徵入朝,將屬以太醫院事,原禮以老病辭,授除迪功郎,職御醫。
홍무(洪武) 연간에 조정에 불려들어져 태의원(太醫院)의 일을 맡기려 하였으나, 원례(원례)가 늙고 병들었다고 사양하여, 적공랑(迪功郎) 벼슬을 제수받고 어의(御醫)의 직책을 맡았다.
永樂初超升太醫院使,既就職,以耄不任事,屢請乞骸骨,許之。
영락(永樂) 초에 초승(超升)하여 태의원사(太醫院使)가 되었으나, 취임한 후 늙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한다며 여러 차례 사직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瀕行,諭原禮曰:朕復召汝,汝其來也。既歸家,甫旬餘,以疾卒。
떠나기에 임하여 원례에게 이르기를: 짐이 다시 너를 부르리니, 너는 마땅히 오라. 집에 돌아간 지 겨우 열흘이 남짓 지나서 병으로 죽었다.
諭祭於家,制文褒獎備至。
집에 조제(弔祭)를 내리고, 조서(詔書)를 지어 포상과 칭찬이 지극히 갖추어졌다.
王仲光
왕중광
按《蘇談》:今吳中醫稱天下,蓋有自矣。
《蘇談》에 따르면: 지금 오중의 의술이 천하에 이름난 것은 그 연유가 있다.
初金華戴原禮學於朱彥修,既盡其術,來吳爲木客。
처음에 금화의 대원례가 주언수에게 배워 그 기술을 다 익힌 뒤, 오 땅에 와서 목객이 되었다.
吳人以病謁者,每制一方,率銀五兩。
오 땅 사람이 병으로 찾아오면, 방문 하나를 지어 줄 때마다 은 5냥을 받았다.
王仲光爲儒,未知醫也,慕而謁焉,因諮學醫之道。
왕중광은 유생이었으나 의술을 알지 못하였는데, 흠모하여 찾아가서 의술을 배우는 도리를 물었다.
原禮曰:熟讀《素問》耳。
원례가 말하기: 《素問》을 숙독할 뿐이다.
仲光歸而習之三年,原禮復來見仲光,談論大駭,以爲不如,恐壞其技,於是登堂拜母以定交。
중광이 돌아가 3년을 익히고, 원례가 다시 와서 중광을 만나 논의를 듣고 크게 놀라,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고 여겨 그 기술이 손상될까 두려워, 곧 당에 올라 어머니에게 절하며 사귐을 정하였다.
時仲光雖得紙上語,未能用藥。
그때 중광이 비록 글 속의 말은 얻었으나 약을 쓸 줄은 몰랐다.
原禮有《彥修醫案》十卷,祕不肯授仲光。
원례가 《언수의안》 10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비밀로 하여 중광에게 주지 않았다.
仲光私窺之,知其藏處,俟其出也,徑取之歸。
중광이 몰래 엿보아 그 보관 장소를 알고, 그가 나간 틈을 타서 곧장 가져와 돌아왔다.
原禮還而失醫案,悔甚,嘆曰:惜哉!吾不能終爲此惠也。
원례가 돌아와 의안을 잃어버리고 매우 후회하며 탄식하기: 애석하구나! 내가 끝까지 이 은혜를 베풀지 못하였도다.
於是仲光之醫名吳下,吳下之醫由是盛矣。
이로 인해 중광의 의술이 오 아래에서 이름났고, 오 아래의 의술이 이로부터 성하게 되었다.
王潮
왕조
按《旌德縣誌》:王潮,德文長子,性敏明醫,能文善書。
《旌德縣誌》에 따르면: 王潮는 德文의 맏아들로, 성품이 민첩하고 의술에 밝았으며, 글을 잘 짓고 글씨를 잘 썼다.
縣以明醫舉,永樂九年,授訓科之職。
현에서 뛰어난 의사로 천거하여, 永樂 9년에 訓科의 직책을 받았다.
施存善
시존선
按《無錫縣誌》:施存善,字昌宗。
《무석현지》에 따르면: 시존선은 자가 창종이다.
永樂初詔徵除韓王府良醫副。
영락 초에 조서를 내려 한왕부의 양의부로 임명하였다.
宣宗檄召拜御醫,賜詩,宴文華殿,以子安累進奉政大夫。
선종이 격문을 보내 불러 어의로 삼고 시를 하사하고 문화전에서 연회를 베풀었으며, 아들 안으로 인해 여러 번 봉정대부로 승진하였다.
安字符濟,歷官太醫院使,卒賜祭,歸葬錫山。
안은 자가 원제이며, 태의원사를 역임하고 죽자 제사를 하사하고 석산에 돌아와 장사지냈다.
父子歷仕七朝,數蒙褒寵,當世榮之。
부자는 일곱 조정을 두루 섬기며 여러 번 포상과 총애를 받아 당시에 영화롭게 여겨졌다.
韓凝 【 韓衝】
한응 【 한충】
按《吳縣誌》:韓凝,字復陽,宋魏國忠獻王琦後,其先安陽人,徙居吳之樂橋,與弟衝俱精於醫。
《吳縣誌》에 따르면: 한응(韓凝)은 자가 복양(復陽)이며, 송나라 위국충헌왕(魏國忠獻王) 한기(韓琦)의 후손이다. 그의 선조는 안양(安陽) 사람이었는데, 오(吳)의 낙교(樂橋)로 이주하여 살았다. 아우 한충(韓衝)과 함께 모두 의술에 정통했다.
張士誠入吳,收引士類,凝隱不仕,號吳中盧扁。
장사성(張士誠)이 오(吳)에 들어와 선비들을 불러 모았으나, 한응은 은둔하며 벼슬하지 않아, ‘오중노편(吳中盧扁)’이라 불렸다.
凝子二,奕、夷。奕爲隱士。
한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혁(韓奕)과 한이(韓夷)이다. 한혁은 은사(隱士)였다.
夷少失母,凝命奕育爲後,因名貽孫,字子翼,洪武閒爲府醫學正科。
한이가 어머니를 일찍 여의자, 한응이 한혁에게 명하여 양자로 삼게 하였다. 이에 이름을 이손(貽孫)이라 하고 자를 자익(子翼)이라 하였으며, 홍무(洪武) 연간에 부의학정과(府醫學正科)가 되었다.
衝子奭,字公茂,稟學於奕,永樂初爲燕藩良醫正,從成袓靖難,擢院判。
한충의 아들 한석(韓奭)은 자가 공무(公茂)이며, 한혁에게 배움을 청하였다. 영락(永樂) 초에 연번(燕藩)의 양의정(良醫正)이 되었고, 성조(成祖)를 따라 정난(靖難)에 참여하여 올려져 원판(院判)이 되었다.
劉觀
유관
按《蘇州府志》:劉觀,字士賓,長洲人,世以醫顯。
《소주부지》에 따르면, 유관(劉觀)은 자가 사빈(士賓)이며 장주(長洲) 사람인데, 대대로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父毅爲燕府良醫,後坐事謫戍沒。
아버지 유의(劉毅)는 연왕부(燕王府)의 양의(良醫)였는데, 후에 일에 연좌되어 귀양 가서 변방을 지키다가 죽었다.
永樂初,追念邸臣,召觀還,擢御醫,賜居第。
영락(永樂) 초에, 연왕부 신하를 추념하여 유관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어의(御醫)로 발탁하고 집을 하사하였다.
凡中外貴戚近臣有疾,多命往治。
무릇 안팎의 귀척(貴戚)과 가까운 신하가 병이 나면, 명하여 가서 치료하게 하였다.
升院判,掌院事,扈從北征,歸卒。
승진하여 태의원 판관(院判)이 되고 원일(院事)을 맡았으며, 북정(北征)에 호종(扈從)하였다가 돌아와서 죽었다.
子溥自有傳。孫倫,成化中爲御醫。
아들 유보(劉溥)는 따로 전(傳)이 있다. 손자 유륜(劉倫)은 성화(成化) 연간에 어의가 되었다.
徐孟容妻陸氏
서맹용의 아내 육씨
按《無錫縣誌》:陸氏,醫士徐孟容妻,善醫,名聞於朝。永樂間,中宮遣內待至錫,召入宮,既老遣歸,賜賚甚厚,仍復其家。
《무석현지》에 의하면: 육씨는 의사 서맹용의 아내로, 의술이 뛰어나 명성이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영락 연간에 황후가 내시를 무석으로 보내 그녀를 궁중으로 불러들였고, 나이가 들어 돌려보낼 때 후한 상을 내렸으며, 그 집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安鳳
안봉(安鳳, 편안할 안, 봉새 봉)이라는 뜻으로, 안정된 봉황을 의미한다.
按《新泰縣誌》:安鳳精外內科,永樂中掌惠民局,賴以全活者甚衆。
《新泰縣誌》에 따르면: 안봉이 외과와 내과에 정통하여, 영락 연간에 혜민국을 관장하였으며, 그를 의지하여 온전히 살아난 자가 매우 많았다.
嚴景
엄경
按《上元縣誌》:嚴景,字克企。其先姑蘇人,袓道通,以醫業起家,徙居金陵。
《상원현지》에 따르면: 엄경은 자가 극기이다. 그의 선조는 고소 사람이며, 할아버지 도통은 의술로 가업을 일으켜 금릉으로 옮겨 살았다.
景幼好學,通《易》,尤精於家學。
엄경은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여 《주역》에 통달했고, 집안 학문에 더욱 정통했다.
永樂中,詔太醫院送名醫子弟讀書備用,命趙友同吳敏德教之。
영락 연간에 조칙으로 태의원에서 명의의 자제들을 보내어 글을 읽히고 비용을 준비하게 하였으며, 조우동과 오민덕에게 그들을 가르치도록 명했다.
景方弱冠,在選中,益探閫奧,其師趙友、吳敏德嘗曰:是子不羣,他日必以醫名。
엄경이 겨우 스무 살에 선발되어 더욱 깊은 이치를 탐구했는데, 그의 스승 조우동과 오민덕이 일찍이 말하기를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니, 훗날 반드시 의술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라고 했다.
後果名噪都下,求治療者無虛日。
후에 과연 도성에서 이름이 떨쳐져 치료를 청하는 자가 날이 없었다.
子弟來從學者,無間遠近。
자제로서 와서 배우는 자는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았다.
景氣岸甚高,動必以禮,而勇於行義,尤善吟詠。
엄경의 기품이 매우 높아 움직임에 반드시 예를 따랐으며, 의를 행하는 데 용감하고, 특히 시 짓기를 잘했다.
學士周敘結詩社於金陵,景與焉。
학사 주서가 금릉에서 시사를 결성하자 엄경이 참여했다.
倪文僖亦稱其行誼志節,有古逸之風。
예문희 또한 그의 행실과 지조가 고인(古人)의 풍모가 있다고 칭찬했다.
嚴樂善
엄악선
按《嘉興府志》:嚴樂善,業醫有名。永樂癸巳,理藥星湖市南,突有一男子造其室,出金飾一器,跪而進之曰:先生請受而後敢言。因附耳語,未竟,樂善擲金大詬,且脅之曰:我今且不發汝隱,汝若更求他醫殺,汝同氣,我必訟汝於官。踰年,男子感悟來謝。
《嘉興府志》에 따르면, 엄락선(嚴樂善)은 의술로 이름이 났다. 영락 계사년(永樂癸巳)에 성호(星湖) 시장 남쪽에서 약을 조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그의 집에 찾아와 금 장식 그릇 하나를 꺼내어 무릎 꿇고 바치며 말하기를 “선생님, 받으신 후에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귀에 대고 속삭였는데, 끝나기 전에 낙선이 금을 던지며 크게 꾸짖고 또 협박하여 말하기를 “내가 지금 네 은밀한 일을 발설하지는 않겠지만, 네가 만약 다른 의사를 구하여 너의 동기를 죽이게 한다면 반드시 관청에 고발하겠다.”라고 하였다. 이듬해에 그 남자가 깨달아 감사하러 왔다.
是夜,燈花光彩倍常,發蓮花一朵,有人形類菩薩,趺坐蓮中,長二寸許,鄰里競觀如堵,旦始滅。太史王震澤爲作《燈花記》。
그날 밤, 등화(燈花)의 광채가 평소보다 배가 되었고, 연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사람 형상이 보살과 같아 연꽃 속에 가부좌하고 앉았으며, 길이가 2치(寸) 남짓되었다. 이웃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담장처럼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꺼졌다. 태사(太史) 왕진택(王震澤)이 이를 위해 《등화기(燈花記)》를 지었다.
樂善能運氣凝神,及子午按摩法,年七十五卒。殮後五日,鄰人有遇之於西湖者。
낙선은 운기응신(運氣凝神)과 자오안마법(子午按摩法)을 능히 하였으며, 나이 75세에 죽었다. 염(殮)한 지 5일 후에 이웃 사람 중에 그를 서호(西湖)에서 만난 자가 있었다.
其後有引芳、世美,皆精醫。
그 후에 인방(引芳)과 세미(世美)가 있었는데, 모두 의술에 정밀하였다.
王彥昭
왕언소
按《武進縣誌》:王彥昭,字文仲。父思明,以薦侍文皇於潛邸。時彥昭猶未冠,嘗被召,應對如老成人,上奇之。命從金華戴元禮學醫,得其禁方脈書,以精慎稱。每制上所用藥必與焉。上欲驗其精良,凡藩府舊臣病疾,必遣診視。
《武進縣誌》에 따르면: 왕언소(王彦昭)는 자가 문중(文仲)이다. 아버지 사명(思明)은 천거되어 문황(文皇)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시중들었다. 당시 언소가 아직 관례(冠禮)를 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소환되어 응대하기를 나이 든 사람처럼 하니 임금이 기이하게 여겼다. 명하여 금화(金華)의 대원례(戴元禮)를 따라 의학을 배우게 하니, 그의 금방(禁方)과 맥서(脈書)를 얻어 정밀하고 신중함으로 일컬어졌다. 매번 임금이 쓰는 약을 조제할 때 반드시 참여하였다. 임금이 그의 정밀하고 좋음을 시험하려고, 무릇 번부(藩府)의 옛 신하가 병이 들면 반드시 보내어 진찰하게 하였다.
時太子少師姚廣孝病頭風,他醫莫療,飲彥昭藥輒愈。或問之,曰:病得之當風而坐,清其頭目可也。
당시 태자소사(太子少師) 요광효(姚廣孝)가 두풍(頭風)에 걸려 다른 의사들은 치료하지 못했는데, 언소의 약을 마시고는 곧 나았다. 누군가가 묻자, 말하기를: "병은 바람을 맞고 앉아서 생긴 것이니, 머리와 눈을 맑게 하면 된다." 하였다.
陳都督病傷寒,表未解,法當汗,彥昭汗之愈。
진도독(陳都督)이 상한(傷寒)에 걸려 표(表)가 아직 풀리지 않아 법(法) 상 땀을 내야 하는데, 언소가 땀을 내어 낫게 하였다.
王郎中弟亦患傷寒,脈沉而實。彥昭曰:法當下。他醫汗之而死。
왕낭중(王郎中)의 동생도 상한(傷寒)을 앓았는데, 맥이 침(沈)하면서 실(實)하였다. 언소가 말하기를: "법 상 하(下)해야 한다." 하였는데, 다른 의사가 땀을 내어 죽고 말았다.
張主事之子得癇病,治之莫愈。彥昭切其脈沉、手足冷,曰:陰癇也。作湯投之愈。
장주사(張主事)의 아들이 간병(癇病)에 걸려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언소가 그 맥을 짚어보니 침(沈)하고 손발이 차가워, 말하기를: "음간(陰癇)이다." 하고 탕(湯)을 지어 먹여 낫게 하였다.
劉僉憲自湘湖來,有疾,彥昭診之,私語其兄:病在死法中,不出月矣。治療莫愈,果如其言。
유첨헌(劉僉憲)이 상호(湘湖)에서 와서 병이 있었는데, 언소가 진찰하고는 그 형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병이 사법(死法) 중에 있어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치료하였으나 낫지 않아,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嘗從太監朱興尚寶朱珍分領銅符,司城門啓閉,間從上出入軍中,克着功績。事定欲官之,辭以母老,乞終養歸。
일찍이 태감(太監) 주흥(朱興)과 상보(尚寶) 주진(朱珍)을 따라 나누어 동부(銅符)를 맡아 성문의 열고 닫음을 주관하였고, 사이에 임금을 따라 군중에 출입하여 공적을 세웠다. 일이 평정된 후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어머니가 늙었다고 사양하고 종신토록 봉양하기를 청하여 돌아갔다.
王哲
왕철
按《太平府志》:王哲,永樂間以良醫副進修職郎,多禁方。
《太平府志》에 따르면, 왕철은 영락 연간에 양의부로서 수직랑으로 승진하였으며, 많은 금방을 가지고 있었다.
李肅
이숙
按《松江府志》:李肅,號杏林。
《송강부지》에 따르면, 이숙은 호가 행림이다.
大父晉卿,元江浙西湖書院山長。
조부 이진경은 원나라 강저 서호 서원의 산장이었다.
十歲喪父,初習岐黃,從金華趙雲居遊。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처음으로 의학을 배워 금화의 조운거를 따라 유학하였다.
趙爲朱丹溪門人,及李肅遊松江,遂佔籍焉,醫名日振。
조운거는 주단계의 문인인데, 이숙이 송강에 와서 노닐다가 마침내 그곳에 호적을 옮겨 의술로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永樂初,膺薦拜松江府醫學正科。
영락 초에 천거를 받아 송강부 의학 정과에 임명되었다.
年幾七旬,覆被召,拜命即行,奏對稱旨,賜金織段服二襲,日食大官。
나이 거의 칠십에 다시 불려 명을 받고 즉시 떠나, 상주하고 대답하는 것이 임금의 뜻에 맞아 금으로 짠 비단 옷 두 벌을 하사받고 날마다 궁중에서 음식을 먹었다.
未幾扈駕北征,給以從人名馬及諸禦寒之具。
얼마 안 되어 임금을 따라 북정에 호종하였는데, 시종과 좋은 말 및 여러 방한 도구를 지급받았다.
或惜其年老,不勝跋涉,肅正色曰:恭逢萬乘,爲天下蒼生而行,吾何敢以老身爲惜,不思報上恩哉!
혹시 나이가 많아 길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염려하자, 이숙이 엄숙히 말하기를: '공손히 천자를 모시고 천하 백성을 위해 가는데, 내 어찌 늙은 몸을 아껴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子敬舉,永樂丁酉鄉科,念肅年老,上疏乞就祿養,特授上海儒學訓導。
아들 이경이 영락 정유년 향시에 합격하여, 아버지 이숙이 늙음을 생각해 상소하여 녹봉으로 봉양하기를 청하자, 특별히 상하이 유학 훈도로 임명되었다.
遇假必放舟泝潮,夕發曉至,上堂拜壽,信宿而返,如是者十載。
휴가 때마다 반드시 배를 띄워 조수를 거슬러 저녁에 떠나 새벽에 도착해 집에 올라 절하고 축수하며, 이틀을 묵고 돌아오기를 이와 같이 십 년 동안 하였다.
孫祥,天順丁丑進士。
손자 이상은 천순 정축년 진사이다.
韓彝 【 韓奭】
한이 【 한석】
按《蘇州府志》:韓彝,凝次子,少失母,育於兄奕爲後,因名詒孫,字子翼,洪武間爲府醫學正科。
《소주부지》에 따르면: 한이(韓彝)는 한응(韓凝)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형 한혁(韓奕)의 양자가 되어 양자로 들어갔고, 이에 이름을 이손(詒孫)이라 하고 자는 자익(子翼)이며, 홍무 연간에 부의 의학정과(醫學正科)가 되었다.
從兄奭,字公茂,少稟學於奕,永樂初爲燕府良醫正,從成袓靖難,擢院判。
종형 한식(韓奭)은 자는 공무(公茂)이며, 어려서 한혁에게 배움을 받았고, 영락 초에 연왕부의 양의정(良醫正)이 되어 성조(成祖)를 따라 정난(靖難)의 공으로 원판(院判)으로 발탁되었다.
上問其有弟否?答以弟詒孫,嘗師事臣,召授御醫,改今名,字公達,賜第致和街。尋升院判。
임금이 그에게 아우가 있는지 물으니, 아우 이손(詒孫)이 일찍이 신을 스승으로 섬겼다고 대답하여, 소환하여 어의(御醫)를 제수하고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자는 공달(公達)이며, 치화가(致和街)에 집을 하사받았다. 얼마 후 원판(院判)으로 승진하였다.
奭肩隨彝,上命並行,超升奭爲院使,扈駕北巡。九年歸京,卒,三品欽葬。
한식이 한이와 나란히 하여, 임금이 함께 다니게 하고 한식을 월등히 승진시켜 원사(院使)로 삼고, 거가를 호위하여 북쪽을 순행하였다. 9년에 경사(京師)로 돌아와 세상을 떠나니, 3품의 예로 흠장(欽葬)하였다.
而陰陽家相穴,乃瘞水中,遠託夢於上,謝曰:臣雖荷賜,榮終骨肉,今魚而灌潤之,害莫可任。上即命官徙葬。
그런데 음양가가 묘자리를 보니 물속에 묻혀 있었고, 멀리서 꿈에 임금에게 나타나 사례로 아뢰었다: '신이 비록 하사하심을 입었으나, 영광이 종신토록 골육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 물고기들이 물을 적셔 대니 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즉시 관리를 시켜 이장하게 하였다.
上患腹痛,彝奏曰:聖體所患,須用雷丸、大黃、木香等劑,服之,下蟲六十二條。
임금이 복통을 앓자, 한이가 아뢰었다: '성체(聖體)의 병환은 마땅히 뇌환(雷丸), 대황(大黃), 목향(木香) 등의 약제를 써야 하며, 복용하면 62마리의 벌레를 배출하게 됩니다.'
蓋彝知上嗜水芹,善生蟲,積久成此病。
대개 한이는 임금이 미나리[水芹]를 즐겨 먹어 벌레가 생기기 쉽고, 오래 쌓여 이 병이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愈,賜裘馬,復賜第大明門內。
병이 낫자, 갖옷과 말을 하사하고, 다시 대명문 안에 집을 하사하였다.
上欲隆賞,彝奏奭子傳南儋衛軍,上命右府除戍,又授傳官御醫。
임금이 후하게 상주려 하니, 한이가 한식의 아들 한전(韓傳)이 남담위(南儋衛) 군졸임을 아뢰어, 임금이 우부(右府)에 명하여 수자리를 면제하게 하고, 또 한전에게 어의 관직을 제수하였다.
奕卒,彝陳情,得假歸葬,仍給葬費。
한혁이 죽자, 한이가 사정을 아뢰어 휴가를 받아 돌아가 장사지내고, 여전히 장례 비용을 하사받았다.
十一年,彝隨駕北巡歸,病不能朝,上命中貴視疾,遣人龜卜,既沒,悼嘆賜葬,祭視三品。
11년에 한이가 거가를 따라 북순(北巡)하고 돌아와 병들어 조정에 나가지 못하자, 임금이 중귀(中貴)를 시켜 병을 살피게 하고 사람을 보내 점을 치게 하였고, 이미 죽자 애도하며 장례를 하사하고 제사를 3품의 예로 하였다.
奕子有,字伯承;從子襄,字克纘。有子充,字克美。皆守世業。
한혁의 아들 한유(韓有)는 자는 백승(伯承)이고, 종자(從子) 한양(韓襄)은 자는 극찬(克纘)이다. 한유의 아들 한충(韓充)은 자는 극미(克美)이다. 모두 대대로 내려오는 업을 지켰다.
趙道震
조도진
按《定遠縣誌》:趙道震,字處仁,金華人,精於醫,凡軒岐以下諸書,靡不精究,受學丹溪,所造益深。
《정원현지》에 따르면, 조도진은 자가 처인이며 금화 사람이다. 의술에 정밀하여, 헌기 이하의 여러 책들을 정밀하게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단계에게 배움을 받아 그 조예가 더욱 깊어졌다.
洪武己巳,徙籍定遠,活人頗多,未嘗言利。
홍무 기사년에 적을 정원으로 옮겨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으나, 이익을 말한 적이 없었다.
永樂丙戌,上命行人召修大典運氣書,震董其事,歸而課子醫,業暇則歌楚辭以自適。
영락 병술년에 상(임금)이 행인을 명하여 대전 운기서를 편수하도록 소집하니, 진(조도진)이 그 일을 감독하고, 돌아와서 자식에게 의술을 가르쳤으며, 일이 끝나면 초사를 노래하며 스스로 즐겼다.
卒年八十四。所著有《傷寒類證》傳於世。
졸년은 84세이다. 지은 책에 《상한류증》이 세상에 전해진다.
陳以誠
진이성
按《嘉興府志》:陳以誠,號處夢,楓涇人,善詩畫,尤精於醫。
《嘉興府志》에 따르면: 진이성은 호가 처몽이고, 풍경 사람이며, 시와 그림을 잘하였고, 특히 의술에 정통하였다.
永樂間,應選隸太醫院,累從中使鄭和往西洋諸國,擢院判歸。
영락 연간에 선발되어 태의원에 소속되었고, 여러 차례 내사 정화를 따라 서양 여러 나라에 가서, 원판으로 승진하여 돌아왔다.
臨終作詩,有九重每進千金劑,四海曾乘萬斛船之句。
임종時에 시를 지었는데, '구중마다 천금의 약을 올렸고, 사해에서 만곡의 배를 탔었다'는 구절이 있다.
許景芳 【 許敬】
허경방 【 허경】
按《嘉興府志》:許敬,字孟寅,世爲感化鄉人。袓文達,父景芳,皆以醫鳴。
《가흥부지》에 따르면, 허경(許敬)의 자는 맹인(孟寅)이며, 대대로 감화향 사람이다. 조부 문달(文達)과 부친 경방(景芳)은 모두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江南治齒痛者,許爲之最。
강남에서 치통을 치료하는 사람 중 허씨가 가장 뛰어났다.
永樂間,景芳以院使戴原禮薦召至京,受知仁宗,錫賚洊加,改梁府良醫正,引年還鄉卒。
영락 연간에 경방이 원사(院使) 대원례(戴原禮)의 천거로 서울에 소집되어 인종의 총애를 받고, 은상과 하사가 거듭되었으며, 양부(梁府)의 양의정(良醫正)으로 개임되고,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子敬世其業,有聲宣德間,院使蔣主善薦入內院。
아들 허경이 그 업을 계승하여 선덕 연간에 명성이 있었고, 원사 장주선(蔣主善)의 천거로 내원(內院)에 들어갔다.
英宗患喉風,更數醫弗效,敬進絳雪噙之,遂愈。
영종이 후풍(喉風)을 앓아 여러 의사를 바꾸었으나 효험이 없었는데, 허경이 강설(絳雪)을 올려 머금게 하니 곧 나았다.
上喜甚,賜以羊酒,拜太醫院御醫,賜勑獎諭。
임금이 매우 기뻐하여 양과 술을 하사하고, 태의원 어의로 임명하고, 칙명을 내려 표창하고 타이르셨다.
年七十致仕。
나이 일흔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有《經驗》三卷藏於家。
《경험(經驗)》 세 권이 집에 소장되어 있다.
王伯承 【 沈仲實 沈承先】
왕백승 【 심중실 심승선】
按《崑山縣誌》:王履子伯承,能繼其武,永樂中,以醫鳴於兩京,後卒無嗣,盡以其祕傳之壻沈仲實雲。
《崑山縣誌》에 따르면: 왕리(王履)의 아들 백승(伯承)이 그 업적을 이어받아 영락(永樂) 연간에 두 도성(南京과 北京)에서 의술로 명성을 떨쳤으나, 후에 아들이 없어 그 비전을 모두 사위 심중실(沈仲實)에게 전했다고 한다.
仲實號松巖,有士行。
중실(仲實)의 호는 송암(松巖)이며 선비의 행실이 있었다.
仲實之孫承先,亦善醫,不嗜利。
중실의 손자 승선(承先)도 의술이 뛰어났으며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
縣令方豪以其能愈母疾,大書助孝二字以贈之。
현령(縣令) 방호(方豪)가 그가 어머니의 병을 고친 능력 때문에 '조효(助孝)' 두 글자를 크게 써서 그에게 선물하였다.
陸昂
육앙
按《鄞縣誌》:陸昂,字季高。始居會稽,遷於鄞。自幼習舉進士業,凡經史百家翰墨,無不旁搜博覽。
《영현지》에 따르면: 육앙, 자는 계고이다. 처음에 회계에 살다가 영으로 이주했다. 어려서부터 진사 과업을 익혀, 모든 경서와 역사 및 제자백가의 글을 널리 찾아보고 두루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性剛方,與人寡合。已而父病,遂棄其業,攻岐黃書以醫自給,周旋調護,親獲耆年,聲名大着,叩者如市。
성품이 강직하고 바르며, 남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가 병들자, 그 업을 버리고 기황의 서적을 연구하여 의술로 생계를 삼았으며, 주선하여 조섭하고 보호하여 부모가 장수하도록 하였고, 명성이 크게 드러나 찾는 사람이 시장 같았다.
永樂初,闢至京師,預修《蘭臺金匱》、《元機素要》等書。
영락 초에 징소되어 서울에 이르러, 《난대금궤》, 《원기소요》 등의 책 편찬에 참여하였다.
彭正
펑정
按《江南通志》:彭正,字思直,太平府人,永樂以良醫再使西洋。
《江南通志》에 따르면: 팽정은 자가 사직이며, 태평부 사람인데, 영락 연간에 우수한 의원으로서 두 차례 서양에 사신으로 갔다.
子賓世其業。
아들 팽빈이 그 업을 세습하였다.
陳貴
진귀(陳貴)
按《德清縣誌》:陳貴,黃安村人。
《덕청현지》에 따르면: 진귀는 황안촌 사람이다.
明永樂中,領本縣醫學訓科。
명 영락 연간에 본현의 의학 훈과를 맡았다.
文皇患背癰,詔徵天下名醫,邑以貴應,上召赴京,進祕方服之,立愈。
문황이 등창을 앓아 천하의 명의를 부르니, 고을에서 진귀를 보내 응했고, 임금이 그를 불러 서울로 오게 하여 비방을 바쳐 복용하니 곧 나았다.
命加一品服,陛辭南歸,號爲南金先生。
명하여 일품 관복을 더해 주고 대궐에서 하직하고 남쪽으로 돌아가니, 남금 선생이라 불렸다.
及卒,遣華亭翰林張益撰文祭之。
그가 죽자 화정 한림 장익을 보내어 제문을 지어 제사하게 하였다.
陸完
육완
按《德清縣誌》:陸完,字用全,號橘庵,世醫頤之子,授指揮,劑有獨得之妙。
《德清縣誌》에 따르면: 육완(陸完)은 자(字)가 용전(用全)이고 호(號)는 귤암(橘庵)이며, 세의(世醫)인 육이(陸頤)의 아들이다. 지휘(指揮) 벼슬을 받았고, 약제에 독특한 묘함이 있었다.
凡病有甚危者,諸醫縮手,完至診視,或許以不死,則竟以無恙。
무릇 병이 매우 위중하여 여러 의사들이 손을 놓은 경우에, 육완이 이르러 진찰하고 혹 죽지 않을 것이라고 허락하면 끝내 병이 없어졌다.
韓履祥
한이상
按《浙江通志》:韓履祥,海鹽澉浦人,讀書能詩,尤精於醫,切脈斷人生死,隔歲輒中。
《浙江通志》에 따르면: 한리상은 해염 감포 사람으로, 글을 읽고 시를 잘 지었으며, 특히 의술에 정밀하여 맥을 짚어 사람의 생사를 판단하였는데, 해를 지나서도 맞추었다.
洪武中選爲御醫,成袓尤加恩遇,遍遊公卿間。
홍무 연간에 선발되어 어의가 되었고, 성조가 특히 은우를 더하였으며, 공경 사이에 두루 다녔다.
四世孫本,亦精其業。
4대 손 본 또한 그 업에 정밀하였다.
駱善由
낙선유
按《舒城縣誌》:駱善由,名醫,永樂間任太醫院判。
《舒城縣誌》에 의하면: 나선유는 유명한 의사로, 영락 연간에 태의원판을 지냈다.
金子性
금자는 성질이
按《永嘉縣誌》:金子性,其先世得異傳,故世業醫。永樂六年制丸以進,授太醫院,後賜鈔歸田養老。
《영가현지》에 따르면: 김자성은 그의 선조가 특이한 전수를 받아서 대대로 의업을行했다. 영락 6년에 환약을 만들어 바쳐서 태의원에 임명되었고, 후에 돈을 하사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노후를 보냈다.
倪讓
예양
按《高淳縣誌》:倪讓,精通醫理,遇奇病,勿事刀圭,悉取效。
《고순현지》에 따르면: 예양은 의학 이치에 정통하여, 기이한 병을 만나면 약을 쓰지 않고도 모두 효험을 얻었다.
洪武二年點入醫版,永樂元年授醫官,命有司給獎。
홍무 2년에 의사 명부에 올랐고, 영락 원년에 의관을 제수받아 관청에서 상을 주도록 명받았다.
其十餘世孫泰昌應別有傳。
그의 십여 대 손 태창은 별도로 전기가 있어야 한다.
蔣武生
장무생
按《儀真縣誌》:蔣武生,字用文,少讀書過目成誦,六歲,有贈裏師萬年松者,賦詩曰:使者來西嶽,採松雲萬年。佳名雖自好,何不長參天?師驚喜曰:是兒已見不凡。
《儀真縣誌》記載:蔣武生,字用文,小時候讀書過目不忘,六歲時,有人贈送村裏的老師萬年松,他賦詩說:使者來到西嶽,採集松樹名為萬年。名字雖然美好,為何不長成參天大樹?老師驚喜地說:這個孩子已經顯現出不凡的氣質。
隨父任,公暇必質所業,聞說無疑問。父奇之曰:吾有嗣矣。父歿,乃習醫,會同黜異,得其要而綜之。決死生,定緩急,治效無一弗中。
跟隨父親任職,公務之餘必定請教所學,聽聞講解沒有疑問。父親覺得很奇特說:我有繼承人了。父親去世後,便學習醫術,融會貫通,剔除異說,掌握要領並綜合運用。判斷生死,確定緩急,治療效果無一不中。
當路薦入太醫院。時戴原禮爲院使,擅其業,人靡有當意者,及見用文,喜曰:君儒而爲醫,吾道昌矣。遂言於上,授御醫。
當權者推薦他進入太醫院。當時戴原禮擔任院使,專精其業,沒有人能讓他滿意,等到見了用文,高興地說:您是儒者而從事醫道,我的學問將興盛了。於是稟報皇上,授予御醫。
太宗御極,用文屢承眷顧。會車駕北巡,仁宗以東宮監國,用文侍上前隨事獻規。上嘗問保和之要,用文對曰:在養正氣。正氣完則邪氣無自而入。又問:御醫效率緩何也?用文對曰:善治者必固本,急之恐傷其原。上皆稱善。
太宗即位,用文屢次受到眷顧。適逢皇帝北巡,仁宗以太子身份監國,用文侍奉在皇上身邊隨事進獻規諫。皇上曾問保養和諧的要點,用文回答說:在於保養正氣。正氣充足則邪氣無從侵入。又問:御醫治療效果緩慢是為什麼?用文回答說:善於治療的人必定鞏固根本,急忙治療恐怕損傷本源。皇上都認為對。
永樂間,遷承直郎太醫院判。丙申,考績最,升承德郎。上嘗命工部爲營第室,用文叩頭謝曰:臣荷恩遇莫能報,又敢糜公費,不益愧悚乎?再辭乃止。
永樂年間,升任承直郎太醫院判。丙申年,考核政績最優,升任承德郎。皇上曾命令工部為他建造宅第,用文叩頭推辭說:臣蒙受恩遇無法報答,又敢浪費公款,豈不更加惶恐慚愧?再三推辭才作罷。
甲辰,謝病上疏乞歸,詞意懇切,末有清心寡慾,慎加調保,以綿聖治,以慰萬方等語。上覽疏驚歎,明日,遣中貴賚敕慰諭,用文力疾讀之,顧謂其子敬忠曰:荷國洪休,萬弗酬一。歸語諸兄弟,宜竭忠孝以繼吾志。遂終,年七十有四。
甲辰年,以有病為由上疏請求辭官歸鄉,言辭懇切,末尾有清心寡慾,謹慎調養保重,以延續聖明之治,以撫慰天下等話語。皇上閱覽奏疏驚歎,第二天,派遣中官帶著詔書慰問,用文強撐病體朗讀,回頭對兒子敬忠說:承受國家大恩,萬分難報其一。回去告訴各位兄弟,應當竭盡忠孝以繼承我的志向。於是去世,享年七十四歲。
仁宗即位,遣中官陳義乘傳護喪,歸建祠墓。用文生平嗜學顏,私室曰靜學。
仁宗即位,派遣中官陳義乘坐驛車護送喪事,回鄉建立祠堂和墳墓。用文平生好學,將自己的居室命名為靜學。
有《詩治效方論》行世。
《시치효방론》이 세상에 유포되었다.
洪熙元年,官其子主善爲院判,亦能共職。
홍희 원년에, 그의 아들 주선을 원판으로 임명하였는데, 또한 직무를 잘 수행하였다.
篤學好古,取商書克一語名齋,中丞吳納記之。
학문을 돈독히 하고 옛것을 좋아하여, 상서의 '극일'이라는 말을 따서 서재 이름을 삼았으며, 중승 오납이 이를 기록하였다.
按《上元縣誌》:蔣用文,其先魏人,洪武初徙句容,遂入都城。
상원현지에 따르면: 장용문은 그의 선대가 위(魏)나라 사람인데, 홍무 초에 구용으로 이주하여 도성에 들어갔다.
精於醫,永樂中爲大醫院判,日侍文華殿。
의술에 정통하였고, 영락 연간에 태의원 판관이 되어 날마다 문화전에서 시중들었다.
其醫主李明之、朱彥修,不執古方,而究病所本自爲方,故所治恆十全。
그의 의술은 이명지와 주언수를 주로 따르며, 옛 처방에 얽매이지 않고 병의 근본을 궁구하여 스스로 처방을 만들었기에 치료한 것이 항상 십전이었다.
王公大人,下逮氓隸,有疾衆所難愈者,謁用文治即愈。
왕공대인부터 아래로 백성과 노예에 이르기까지 병이 있어 여러 사람이 낫기 어렵다고 여기는 자가 용문에게 치료를 청하면 곧 나았다.
謂不可愈,無復愈者。
(그가) 낫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다시 나은 자가 없었다.
祝仲寧
축중녕
按《醫學入門》:祝仲寧,永樂時人。
《의학입문》에 따르면, 축중녕은 영락 연간 사람이다.
治小兒八歲哮喘不得臥,喉中聲如拽鋸,用瀉火清氣之劑而愈。
여덟 살 아이가 천식으로 누워 있지 못하고, 목에서 톱질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을 치료하였는데, 사화청기하는 약을 써서 낫게 하였다.
或曰:小兒無火。公曰:人有老穉,諸氣賁鬱,肺火之發則同。
어떤 이가 말하길, '어린애는 화가 없다.' 하니, 공이 말하길, '사람은 노소가 있지만, 여러 기가 몰려 막히면 폐화가 발하는 것은 같다.' 하였다.
治墜馬不醒人事,他醫用理傷續斷之藥不效。公曰:以降火消痰立愈。
말에서 떨어져 인사불성이 된 것을 치료하였는데, 다른 의사가 상처를 다스리고 접골하는 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공이 말하길, '강화소담하는 약으로 즉시 낫겠다.' 하였다.
治周身百節痛,及胷腹脹滿,目閉肢厥,爪甲青黑,醫以傷寒治之,七日昏沉弗效。
온몸의 모든 마디가 아프고, 가슴과 배가 그득하며, 눈을 감고 사지가 싸늘하며, 손발톱이 검푸른 것을 치료하였는데, 의사가 상한으로 다스렸으나, 이레 동안 혼침하여 효과가 없었다.
公曰:此得怒火與痰相搏。與四逆散加黃芩、黃連,瀉三焦火而愈。
공이 말하길, '이는 노화와 담이 서로 부딪힌 것이다. 사역산에 황금, 황련을 더하여 삼초의 불을 사하니 나았다.' 하였다.
張年
장년
按《松江府志》:張年,字公壽,華亭人,慷慨高簡,善爲文。永樂中再徵不起,隱於醫,治療若神。所著有《杏園稿》,時稱爲杏園先生。
《송강부지》에 따르면: 장년, 자는 공수, 화정 사람으로, 뜻이 크고 고상하며 간결하였고, 글을 잘 지었다. 영락 연간에 두 번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의술에 은거하여 치료함이 신과 같았다. 저술한 책에 《행원고》가 있으며, 당시에 행원 선생으로 불렸다.
劉彥清
유언청
按《鄱陽縣誌》:劉彥清,名曾,以字行,耕耘六世孫。讀書敦義,以醫世其家。
《파양현지》에 따르면: 유언청은 이름이 증(曾)이며, 자(字)로 행세하였고, 경운(耕耘)의 6대손이다. 글을 읽고 의리를 돈독히 하였으며, 의술로 그 집안을 세습하였다.
母魏疾,藥石不效,露香告天,刲股和粥以飼,疾遂愈。
어머니 위씨가 병들었는데, 약석(약과 침)이 효험이 없자, 향을 피워 하늘에 고하고, 넓적다리 살을 베어 죽에 섞어 먹이니 병이 곧 나았다.
會徵廣,以醫選從行,中途渡江墮水,適有牛渡,攀其尾得濟。
때마침 광동(廣東)을 정벌할 때, 의술로 선발되어 따라가다가, 도중에 강을 건너다 물에 빠졌는데, 마침 소가 건너고 있어 그 꼬리를 잡아 건널 수 있었다.
既歸,過彭蠡,風浪覆舟,人盡溺,獨賴舟板以全。
이미 돌아와 팽려(彭蠡)를 지날 때, 풍랑에 배가 뒤집혀 사람들이 모두 빠졌으나, 홀로 뱃전에 의지하여 온전하였다.
兩免大難,人以爲孝感。
두 번 큰 재앙을 면하니, 사람들이 효성이 감응한 것이라 여겼다.
子孟啓,永樂間薦入太醫院。
아들 맹계(孟啓)는 영락(永樂) 연간에 천거되어 태의원(太醫院)에 들어갔다.
虞君平
우군평
按《樂清縣誌》:虞君平,字時寧,其先永嘉人,仕太醫院。
《악청현지》에 따르면: 우군평(虞君平)은 자가 시녕(時寧)이며, 그의 선조는 영가(永嘉) 사람으로 태의원(太醫院)에서 벼슬했다.
永樂初,樂清大疫,君平藥之,悉愈。
영락(永樂) 초기에 악청(樂清)에 큰 전염병이 돌자, 군평(君平)이 약을 써서 모두 낫게 했다.
邑人德之,遂留居焉。
고을 사람들이 그를 은혜롭게 여겨, 마침내 그곳에 머물러 살았다.
子孫世其業。
자손들이 대대로 그 업을 계승했다.
李瑢 【 李炅】
이용(李瑢) 【 이경(李炅)】
按《浙江通志》:李信,汴人,小兒醫也。
《浙江通志》에 따르면: 이신은 변량 사람이며, 소아과 의사이다.
宋高宗危疾,詔信入侍,因年耄,賜安車至禁中,時號李車兒。
송 고종이 위중한 병에 걸려 이신을 불러들여 시중들게 하였는데, 나이가 많아 안거(편안한 수레)를 하사하여 궁중에 들어오게 하였으니, 당시에 이차아(李車兒)라 불렀다.
信八代孫瑢,於明永樂時,亦召入京,官御醫,始移居北郭,植槐於門,子孫因字槐。
이신의 8대손 이용(李瑢)은 명 영락 연간에 또한 서울로 불려 들어가, 어의(御醫) 벼슬을 하였고, 처음으로 북쪽 교외로 이사하여 문 앞에 홰나무를 심었으므로, 자손들이 이로 인해 홰(槐) 자를 이름자로 썼다.
又有李炅字三英,性慷慨立然諾,常破家以濟友人之難,人鹹稱之,於醫爲小兒國工。
또 이경(李炅)이 있으니 자는 삼영(三英)이며, 성품이慷慨(강개)하여 허락한 일은 반드시 지켰다. 자주 집을 파산하여 벗의 어려움을 구제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으며, 의술에 있어서 소아과의 國手(국수)였다.
徐孟會
서맹회
按《江南通志》:徐孟會,武進人,善詩,以醫世其家,治病多驗。
《江南通志》에 따르면: 서맹회는 무진 사람으로, 시를 잘 지었고, 의술로 가업을 삼았으며, 병을 치료함에 많이 효험이 있었다.
永樂間,召至京,賜襲衣以歸。
영락 연간에 서울로 불러들여, 옷을 하사하여 돌려보냈다.
弟孟恂,砭法尤妙,時稱二仙。
아우 맹순은 침법이 더욱 묘하여, 당시에 ‘이선’이라 불렸다.
陳君佐
진군좌
按《揚州府志》:陳君佐,江都人。善方脈,洪武初爲御醫。永樂間棄官,着黃冠,市藥武當山中。以《易》卜人吉凶,多奇中。卒葬山中石穴。
《양주부지》에 따르면: 진군좌는 강도 사람이다. 방맥에 능하여 홍무 초년에 어의가 되었다. 영락 연간에 벼슬을 버리고 도사의 관을 쓰고 무당산 중에서 약을 팔다가, 《주역》으로 사람의 길흉을 점쳐서 신기하게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죽어서 산중의 석굴에 묻혔다.
樓宗望
누종망(이라는 사람)
按《紹興府志》:樓宗望,蕭山人,以醫名。永樂間召至京師,賜予甚厚。
《소흥부지》에 따르면: 루종망은 소산 사람으로 의술로 이름이 났다. 영락 연간에 조정에서 서울로 불러들여 후한 상을 내렸다.
韓左
한좌
按《蘇州府志》:韓左,字伯尚,資偉才敏,於學淹通,兼善醫,周急濟貧,恆若弗及。父卒京師,兄伯濟早世,伯尚與仲伯廣奉母還吳,能盡色養。伯廣卒,伯尚撫其孤。伯濟妻張守志,伯尚使妻事之如姑,年逾七十而卒。
《蘇州府志》에 따르면: 한좌(韓左)는 자가 백상(伯尚)이며, 자질이 뛰어나고 재주가 민첩하며 학문에 널리 통달하였고, 또한 의술에 능하여 주변의 급한 사람을 돕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를 항상 부족한 듯이 하였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망하고 형 백제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백상은 중형 백광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오(吳) 땅으로 돌아와 효성을 다하였다. 백광이 죽자 백상은 그 고아를 보살폈다. 백제의 아내 장씨가 지조를 지키자, 백상은 자신의 아내로 하여금 시어머니처럼 섬기게 하였으며, 칠십 세를 넘어서 세상을 떠났다.
翁晉
옹진
按《嘉定縣誌》:翁晉,字自昭。其先自浙之慈溪,流寓嘉定,遂家焉。晉品行端方,兼善岐黃術,精抉脈理,一時罕出其右。崇禎時,授太苔醫判,有《醫宗摘要》行世。兄文九亦善醫,與晉齊名。
《嘉定縣誌》에 따르면: 옹진(翁晉)은 자(字)가 자소(自昭)이다. 그의 선조는 절강(浙江) 자계(慈溪)에서 와서 가정(嘉定)에 유배되어 살다가 마침내 그곳에 집을 이루었다. 옹진은 품행이 단정하고 방정하였으며, 겸하여 의술(岐黃術)을 잘하였고, 맥리를 정밀하게 꿰뚫어 한 시대에 그보다 나은 자가 드물었다. 숭정(崇禎) 때에 태태의판(太苔醫判)에 임명되었고, 《의종요약(醫宗摘要)》이 세상에 행해졌다. 형인 문구(文九)도 의술을 잘하여 옹진과 이름을 같이 하였다.
萬全
만전
按《羅田縣誌》:萬全,字密齋,精醫,治病全活甚多。着有《保命歌括》、《養生四要》、《育嬰家祕》、《廣嗣精要》、《痘疹啓微》行世。
《羅田縣誌》에 따르면: 萬全은 자가 密齋이며, 의술에 정통하여 병을 치료하여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저서로 《保命歌括》, 《養生四要》, 《育嬰家祕》, 《廣嗣精要》, 《痘疹啓微》가 세상에 유행하였다.
按《湖廣通志》:萬全,字密齋,羅田諸生,隱於醫,所著書甚多,而於痘疹尤精。
《호광통지》에 따르면: 만전, 자는 밀재, 나전 출신의 생원으로, 의술에 은거하였으며, 저술한 책이 매우 많고, 특히 두진에 정통하였다.
一日在鄉先生家,有兩新婦進,欲避全,鄉先生曰:萬先生老,無妨也。
어느 날 시골 선비 집에 두 명의 새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만전을 피하려 하자, 시골 선비가 말하기를: 만 선생은 늙었으니, 괜찮소.
兩婦年俱二十餘。全曰:此皆未痘,痘將作矣。一可救,一不可救。
두 여인은 나이가 모두 스무 살 남짓이었다. 만전이 말하기를: 이들은 모두 수두를 앓지 않았는데, 수두가 곧 발병할 것입니다. 한 명은 구할 수 있고, 한 명은 구할 수 없습니다.
越一月,兩婦布痘,果如其言。
한 달이 지나, 두 여인이 수두를 앓았는데, 과연 그의 말과 같았다.
遊郡城,有布痘者,死已半日矣,全過其門,視之曰:可活。
군성을 여행할 때, 수두를 앓은 사람이 이미 반나절 동안 죽어 있었는데, 만전이 그 집을 지나가다가 보고 말하기를: 살릴 수 있다.
置污泥中三日,痘復發,進數匕而蘇。
진흙 속에 사흘 동안 두었더니, 수두가 다시 발병하여, 몇 숟가락의 약을 먹이자 소생하였다.
有豪家少年聞其名,不爲心服,一日,佯爲大病,重幃密室,呼全診脈。
어떤 부잣집 젊은이가 그의 명성을 듣고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아, 하루는 큰 병을 가장하여, 두터운 휘장을 친 밀실에서 만전을 불러 맥을 보게 하였다.
全診之曰:越十五日當死,不可救,何須藥!少年叱之曰:我何病!聊試汝耳。
만전이 진맥하고 말하기를: 열닷새가 지나면 죽을 것이니, 구할 수 없소, 어찌 약이 필요하겠소! 젊은이가 꾸짖으며 말하기를: 내가 무슨 병이 있소! 그저 그대를 시험해 본 것이오.
全曰:診視如此,不知病也。果至十四日病死。
만전이 말하기를: 진찰이 이러하니, 병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 과연 14일째 되는 날 병으로 죽었다.
吳誠 【 施宗文 盛文繼】
오성【시종문 성문계】
按《蘇州府志》:吳誠,字純伯,武進人。
《蘇州府志》에 의하면: 오성(吳誠)은 자(字)가 순백(純伯)이고, 무진(武進) 사람이다.
高袓櫟堂,宋名儒。
고조(高袓)는 역당(櫟堂)으로, 송(宋)나라 때 유명한 선비였다.
父可大,徙吳,以醫行,誠世其業,尤著名傷寒。
아버지 가대(可大)는 오(吳) 땅으로 이사하여 의술로 생업을 삼았고, 오성(誠)이 그 업을 세습하여 특히 상한(傷寒)으로 유명했다.
後有施宗文、盛文繼者,亦治傷寒奇驗。
후에 시종문(施宗文)과 성문계(盛文繼)라는 사람이 있어 또한 상한을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
沈以潛
침이잠
按《蘇州府志》:沈元,字以潛,以字行,其先由汴徙吳,高宗書良惠二字以賜。潛少孤刻勵,宣德初以醫徵。
《蘇州府志》에 따르면: 심원은 자가 이잠인데, 자로 행세했으며, 그의 선조는 변경에서 오현으로 이주했다. 고종이 '양혜' 두 글자를 써서 하사했다. 심원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스스로를 엄격히 단속하며 힘썼고, 선덕 초기에 의술로 징소되었다.
會院判蔣用文病,上遣中使問曰:卿若死,誰可代用?文以潛名進,即擢御醫,進對稱旨。
마침 원판 장용문이 병들자, 상이 중사를 보내 묻기를: 경이 만약 죽으면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용문이 심원의 이름을 올리니, 곧 어의로 발탁되었고, 진대하여 뜻에 부합했다.
潛爲人平易質重,工詩好琴,有集行世。子寅、孫熙,能繼其學。
심원은 사람됨이 평이하고 질중하며, 시를 잘하고 거문고를 좋아하여, 문집이 세상에 행해졌다. 아들 인과 손자 희가 그 학문을 계승할 수 있었다.
葛哲 【 葛睿】
갈철 [갈예]
按《蘇州府志》:葛哲,字明仲,崑山人,世業儒,尤精醫,以薦授荊府良醫。
《蘇州府志》에 따르면: 갈철은 자가 명중이며, 곤산 사람이다.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삼았고, 의술에 특히 정밀하여 천거로 형부의 양의가 되었다.
所著有《保嬰集》,進宣宗親覽,賜宴獎勞,授迪功郎。
저술한 《보영집》을 선종께 올려 친히 열람하게 하였고, 연회를 하사하여 상을 주고 위로했으며, 적공랑을 제수했다.
弟睿亦善醫,時稱二葛。
아우 갤서 또한 의술을 잘하여 당시에 두 갈이라 불렸다.
徐樞
서추
按《松江府志》:徐樞,字叔拱,華亭人,元醫學教授復子也。
《송강부지》에 따르면: 서추는 자는 숙공이며 화정 사람인데, 원나라 의학 교수 서복의 아들이다.
樞少傳父術,兼學詩於會稽楊維楨。
서추는 어려서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받고, 겸하여 회계 양유정에게 시를 배웠다.
會天下亂,晦跡田裏。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자취를 감추고 시골에 숨었다.
洪武二十八年,年四十餘,始以薦爲秦府良醫正,出丞棗強,召爲太醫院御醫,累奏奇績,歷遷院使,告歸展墓,宣宗親賦詩送之。
홍무 28년, 나이 40여 세에 비로소 천거로 진왕부의 양의정이 되고, 밖으로 조강현승이 되었다가, 불러들여 태의원 어의가 되었다. 여러 차례 기이한 공적을 보고하고, 차례로 승진하여 원사가 되었다. 사직하고 귀향하여 선영에 성묘하니, 선종이 친히 시를 지어 보냈다.
遣中官二,宮人一,護還。
중관 두 명과 궁인 한 명을 보내어 호송하여 돌아가게 하였다.
年八十致仕,賜金帶。
나이 80에 치사하고, 금대를 하사받았다.
又七年卒。
또 7년 후에 졸하였다.
有《足庵集》行世。
《족암집》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子彪。
아들은 표이다.
孫希禮
손희례
按《禹州志》:孫相,世爲陽翟人,元末,仕山西平陽府醫學教授。
《禹州志》에 따르면: 손상은 대대로 양적 사람인데, 원나라 말기에 산서성 평양부 의학교수로 벼슬했다.
相生思忠,思忠爲明初名醫。
손상이 사충을 낳았고, 사충은 명나라 초기의 명의가 되었다.
思忠生奉源、典科。
사충이 봉원과 전과를 낳았다.
奉源生希禮,太醫院博士。
봉원이 희례를 낳았는데, 태의원 박사였다.
宣德中,學正朱仲堅有疾,夢天神示以丹篆曰:希禮神醫。
선덕 연간에 학정 주중견이 병이 났는데, 꿈에 천신이 붉은 글자를 보여주며 말하기를 '희례는 신의'라고 하였다.
迎而醫之,疾果愈。
희례를 맞이하여 치료하니 병이 과연 나았다.
希禮生讓,讓生鎬,鎬生釗,釗生清,世傳袓父祕訣,醫尤精妙。
희례가 양을 낳고, 양이 호를 낳고, 호가 소를 낳고, 소가 청을 낳았는데, 대대로 조부의 비결을 전하여 의술이 더욱 정묘했다.
臨潁大學士賈某重其術,爲詩以贈之。
임영의 대학사 가모가 그 의술을 중히 여겨 시를 지어 증정했다.
嘉靖中,知州莫某扁其門曰:世醫孫氏。
가정 연간에 지주 막모가 그 문에 '세의손씨'라는 편액을 걸었다.
姚暘 【 姚蒙 沈元吉】
요양 【 요몽 심원길】
按《松江府志》:姚暘,字啓明,華亭人。父潤袓,元醫學教授,好古博雅,著稱吳越。暘少孤,事母孝,世其家學。洪武中,以人材試行人,宣德間,除莆田知縣,有聲。未幾辭歸,號柳隱。
《송강부지》에 따르면: 요양(姚暘)은 자가 계명(啓明)이며 화정(華亭) 사람이다. 아버지 요윤조(潤袓)는 원나라 의학 교수였으며, 고전을 좋아하고 박학다식하여 오월(吳越) 지역에 이름을 떨쳤다. 요양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섬기는데 효성스러웠으며, 가업을 계승하였다. 홍무(洪武) 연간에 인재로 뽑혀 행인(行人)이 되었고, 선덕(宣德) 연간에 보전(莆田) 지현(知縣)에 임명되어 명성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하고 돌아와 호를 유은(柳隱)이라 하였다.
孫蒙,字以正,沉靜博學,善醫,尤精太素脈,定人休咎若符契。
손자 몽(蒙)은 자가 이정(以正)이며, 침착하고 박학하며 의술에 능하고, 특히 태소맥(太素脈)에 정밀하여 사람의 길흉을 점치는 것이 부적과 같았다.
巡撫鄒來學常使視脈,蒙既敘病源,因曰:公根器別有一竅出污水。來學大驚曰:此隱疾何由知?蒙曰:以脈得之。左關滑而緩,肝第四葉有漏洞下,相通既久。
순무(巡撫) 추내학(鄒來學)이 항상 맥을 보게 하였는데, 몽이 병의 근원을 설명한 후에 말하기를: “공의 근기(根器)에 별도로 한 구멍이 있어 더러운 물이 나옵니다.” 내학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은밀한 병을 어찌 알았습니까?” 몽이 말하기: “맥으로 알았습니다. 왼쪽 관맥(關脈)이 활(滑)하면서 완(緩)한데, 간의 네 번째 엽(葉)에 누출되는 구멍이 있어 아래로 통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來學改容謝。請藥弗予,屈指計曰:但還留臺,五日可到。來學解其意,即治行,果抵會同館而卒。
내학이 얼굴빛을 고쳐 사례하였다. 약을 청하였으나 주지 않고, 손가락을 꼽아 계산하며 말하기: “다만 유대(留臺)로 돌아가면, 5일 만에 도착할 것입니다.” 내학이 그 뜻을 알고 즉시 여행을 준비하였는데, 과연 회동관(會同館)에 도착하여 죽었다.
蒙屢徵不起,臨終作謝世辭,驚悟超脫,蓋有所見雲。
몽은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지 않았고, 임종할 때 세상을 하직하는 글을 지었으며, 놀랍도록 깨달아 초탈하였으니, 대개 소견이 있었던 것이다.
同時有沈元吉者,切脈不逮蒙,而明斷善用藥,屢起危疾,與蒙並稱。
같은 시기에 심원길(沈元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맥을 짚는 것은 몽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명확하게 판단하고 약을 잘 써서 자주 위급한 병을 낫게 하여, 몽과 함께 칭송을 받았다.
陳常
진상
按《松江府志》:陳常,字用恆,上海人,世業儒。
《송강부지》에 따르면:진상(陳常)은 자가 용항(用恆)이고 상해 사람이며, 대대로 유학을 업으로 삼았다.
常傳外氏邵艾庵醫,即有名。
진상은 외가인 소애암(邵艾庵)의 의술을 전수받아 곧 이름을 날렸다.
永樂十五年,遣使下西洋,常以醫氏從,歷洪熙宣德間,凡三往返,恭勤願愨,上官皆器重之。
영락 15년에 사신을 서양에 파견할 때 진상이 의원으로 따라갔으며, 홍희와 선덕 연간을 지나 총 세 번 왕복하였고,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정성스럽고 성실하여 상관들이 모두 그를 중히 여겼다.
常言:海中行以六十里爲二更,往返一千六百更,爲九萬餘里。
진상이 말하기를: 바다에서는 60리를 2경(更)으로 삼아, 왕복 1600경이면 9만여 리가 된다.
行皆候風占星,以針取路,以干支取某山某嶼,進某澳轉某門,以至開洋避嶕避淺,皆以針定。
항해할 때는 모두 바람을 기다리고 별을 점쳐 나침반으로 길을 잡고, 간지(干支)로 어떤 산, 어떤 섬을 취하여 어떤 포구로 들어가고 어떤 문을 돌아나가며, 나아가 대양으로 나가서 암초를 피하고 얕은 곳을 피하는 것을 모두 나침반으로 정하였다.
計所涉歷,自占城至忽魯謨斯,凡三十國。
지나온 곳을 헤아리면 점성(占城)에서부터 호로모사(忽魯謨斯)에 이르기까지 모두 30개 나라였다.
平生足履人所不到,目見人所不知,未嘗自多,臨終但曰:今不葬魚腹矣。
평생 발로는 남이 이르지 못한 곳을 밟고 눈으로는 남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았으나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으며, 임종 때에 다만 말하기를: 이제는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지 않게 되었구나.
子經,字宗理,世其醫,教授裏中,循循有矩度。
아들 경(經)은 자가 종리(宗理)이며 아버지의 의술을 계승하여 마을에서 가르치기를 온화하고 절도가 있었다.
王興宗
왕흥종
按《旌德縣誌》:王興宗,德文孫,精明軒岐,洞達壽夭。
《旌德縣誌》에 따르면: 왕흥종은 덕문의 손자로, 의술에 정통하고 수명의 길고 짧음을 통달했다.
宣德元年,知縣田穀,以明醫薦送赴部,歷任十餘年,存心濟人。
선덕 원년에 현감 전곡이 명의로 천거하여 중앙에 보내니, 여러 해 동안 벼슬하며 마음을 다해 사람들을 구제했다.
景泰元年,以年老致仕,壽八十五卒。
경태 원년에 나이가 많아 벼슬을 그만두고, 나이 여든다섯에 세상을 떠났다.
姚良
요량
按《吳縣誌》:姚良,字晉卿,宋諡文康爽之七世孫,明醫。所著《尚書孔氏傳》、《律呂會元泝源》、《指治方論》、《考古鍼灸圖經》。
《吳縣誌》에 따르면: 요량은 자가 진경이며, 송나라 시호 문강인 상의 7세손으로, 의술에 밝았다. 저서로 《상서공씨전》, 《율려회원소원》, 《지치방론》, 《고고침구도경》이 있다.
錢瑛
전영
按《蘇州府志》:錢瑛,字良玉,宗道子,世傳顱顖醫。
《소주부지》에 따르면: 전영은 자가 양옥이고, 종도의 아들이며, 대대로 두개골과 숫구멍 의술을 전했다.
宣德中,入太醫院。
선덕 연간에 태의원에 들어갔다.
寧陽侯孫,生九月,驚悸數啼而汗,百方莫效。
영양후의 손자가 태어난 지 9개월에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자주 울고 땀을 흘렸는데, 온갖 방법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瑛後至,命坐兒於地,使掬水爲戲,驚啼頓止。
전영이 뒤에 도착하여 아이를 땅에 앉히고 물을 움켜서 장난치게 하니, 놀라서 울던 것이 곧 그쳤다.
人問之,曰:時當季春,兒豐衣帷處,不離懷抱,熱鬱難泄,使近水則火邪殺,得土氣則髒氣平,不藥自愈。
사람들이 묻자 말하기를: 때는 늦봄이라 아이가 옷을 많이 입고 장막 안에 있으며 품을 떠나지 못해 열이 막혀 배출되기 어려웠으니, 물을 가까이 하면 화사(火邪)가 사라지고 토기(土氣)를 얻으면 장기가 평온해져 약 없이 저절로 낫는다.
子恆、愷、悌、愃,皆世其業。
아들 전항, 전개, 전제, 전훤이 모두 그 업을 계승했다.
恆字伯常,成化間,召授御醫,進院判,每退內直,士大夫迎治孺子疾者,戶外僕馬不絕。
전항은 자가 백상이며, 성화 연간에 어의(御醫)로 임명되고 원판(院判)으로 승진했으며, 매번 관청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대부들이 아이들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맞이하여 문 밖에 하인과 말이 끊이지 않았다.
愷字伯康,與兄齊名,以濟生爲念,酬以金幣,一無所取。
전개는 자가 백강이며 형과 명성이 같았고, 생명을 구제하는 것을 생각으로 삼아, 금폐(金幣)로 보답해도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恆子鈍,字汝礪,能事其業。亦化爲院判。
전항의 아들 전둔은 자가 여려이며, 그 일을 잘 하였다. 또한 원판(院判)이 되었다.
摸先生
맥을 짚는 선생님
按《香案牘》:摸先生,束雙髻於頂,攜小竹笥賣藥,有疾者,手摸之輒愈,人呼爲摸先生。
《香案牘》에 따르면:摸先生은 정수리에 쌍상투를 틀고, 작은 대나무 상자를 가지고 약을 팔았는데, 병이 있는 사람은 손으로 만지면 곧 나았으므로, 사람들이 모선생이라 불렀다.
楊雲
양운
按《浙江通志》:楊雲,家世業醫,名動一時。
《浙江通志》에 따르면, 양운(楊雲)은 대대로 의업을 이어받아 당시에 명성이 자자했다.
宣德乙卯,召至京師,入對稱旨,超授御醫。
선덕(宣德) 을묘년(1435년)에 서울로 불려 들어가 대답이 임금의 뜻에 맞아, 특별히 어의(御醫)로 임명되었다.
適睿宗弗怡,進藥有效,特升太醫院使,賞賚甚厚,寵遇與楊少師士奇等,名動朝野。
마침 예종(睿宗)이 편찮으셨는데, 진상한 약이 효과가 있어 특별히 태의원사(太醫院使)로 승진시키고 상이 매우 두터웠으며, 총애가 양소사(楊少師) 사기(士奇) 등과 같아 조야에 이름을 떨쳤다.
舊名榮,睿宗以其與楊尚書榮同,不便宣召,賜更名雲。
본래 이름이 영(榮)이었는데, 예종이 그 이름이 양상서(楊尚書) 영(榮)과 같아 부르기 어렵다 하여 이름을 운(雲)으로 고쳐 주었다.
王尚
왕상
按《杭州府志》:王尚,休寧人,居儀鳳場口,少習外科,事母以孝聞。母病,往浦江求醫,風雨寒甚,遇虎,徘徊號泣,忽遇異人曰:我能爲子醫。延至家,備極恭敬。
《杭州府志》에 따르면: 왕상은 휴녕 사람으로, 의봉장 입구에 살았으며, 젊어서 외과를 배우고 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겨 알려졌다. 어머니가 병들자 포강으로 의원을 찾아갔는데, 비바람이 차고 심했으며, 호랑이를 만나 배회하며 울부짖다가 홀연히 이인을 만나니, 이인이 말하기를: 내가 당신의 어머니를 치료해 줄 수 있다. 집으로 맞아들여 지극히 공경하였다.
異人曰:子能孝母,又天真不鑿,可以傳道。因過山中,指道旁一草示之曰:以此治人傷,可死中回生。
이인이 말하기를: 당신이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또한 천진하여 인위적으로 깎이지 않았으니 도를 전할 수 있다. 이에 산중을 지나며 길가의 한 풀을 가리키며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것으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하면, 죽음 가운데서 되살릴 수 있다.
如言治之,凡跌壓折傷者,即氣絕三日,以箸啓齒灌藥,無不立生。
말한 대로 치료하니, 무릇 넘어지거나 압사하여 뼈가 부러진 자는, 즉시 숨이 끊어져 삼일이 지나도, 젓가락으로 이를 벌려 약을 붓넣으면, 살아나지 않는 이가 없었다.
或腦裂額破,則搏腦敷藥,越百日無所損。間有腹剖腸出,則浣腸納腹中,用桑皮線縫合,迄無恙。
혹은 뇌가 갈라지고 이마가 터지면, 뇌를 뭉쳐 약을 바르면, 백 일이 지나도 손상된 곳이 없었다. 간혹 배가 갈라져 창자가 나오면, 창자를 씻어 배 속에 넣고, 뽕나무 껍질 실로 꿰매었는데, 끝내 아무 탈이 없었다.
造門乞藥者,率以先後爲序,不問貧富人,鹹感悅。居恆患痚疾,邑中稱爲王痚。
문을 찾아와 약을 구하는 자들은, 대개 선후를 차례로 하였고, 가난하고 부유함을 묻지 않으니, 모두 감동하고 기뻐하였다. 평소에 항상 학질을 앓아, 고을에서 왕학이라 일컬었다.
盛寅 【 草澤醫人 盛宏 盛僎 盛倫 盛愷 劉敏 李思勉】
성인 【 초택의인 성굉 성전 성륜 성개 유민 이사면】
按《明外史》本傳:盛寅,字啓東,吳江人,受業於郡人王賓。
《明外史》本傳記載:盛寅,字啓東,吳江人,跟隨同郡人王賓學習。
初,金華戴原禮客吳下,賓與之遊,翼得其醫術。
起初,金華戴原禮客居吳地,王賓與他交往,希望得到他的醫術。
原禮笑曰:吾固無所吝,君獨不能少屈乎?
原禮笑著說:我本來沒有吝嗇,你難道不能稍微委屈一下嗎?
賓謝曰:吾老矣,不能復居弟子列。
王賓推辭說:我老了,不能再居於弟子之列。
他日,伺原禮出,竊發其書以去,醫遂有名。
後來,趁原禮外出,偷偷打開他的書拿走了,於是醫術有了名聲。
將死,無子以授寅,寅既得原禮學,復討究《內經》以下諸方書,醫道大行。
臨死時,沒有兒子,把醫書傳給盛寅,盛寅既學到原禮的學問,又研究《內經》以來的各種方書,醫道大為盛行。
永樂初爲醫學正科,坐累逮入南京,至則駕已北幸,輸作天壽山列侯。
永樂初年擔任醫學正科,因罪被逮捕到南京,到達時皇帝已北巡,被罰在天壽山服勞役。
監工者見而奇之,令主書算。
監工的人見到他覺得奇特,讓他主管文書計算。
先是有中使督花鳥於江南,主寅舍,病脹,寅愈之,通遇諸途,驚曰:盛先生固無恙耶?予所事太監,正苦脹,曷與我視之?
此前有宦官在江南督辦花鳥,住在盛寅家,患腹脹,盛寅治好了他,後來在路上相遇,驚訝地說:盛先生原來無恙嗎?我侍奉的太監,正苦於腹脹,何不替我診治?
既視,投以藥即愈。
診治後,用藥即愈。
適成袓西苑較射,太監往視,成袓遙望見,愕然曰:謂汝死矣,安得生?
恰逢成祖在西苑比射箭,太監前往,成祖遠遠望見,愕然說:以為你死了,怎麼還活著?
太監具以告,因盛稱寅,即召入便殿,令診脈。
太監詳細稟告,趁機盛讚盛寅,立即召入便殿,讓他診脈。
寅奏上脈有風溼病,帝大然之,曰:吾逐寇出塞,動至經年,爲風寒所侵,吾謂是溼,而諸醫不知,幾誤我。
盛寅奏報皇帝脈象有風濕病,皇帝非常贊同,說:我追逐敵寇出塞,往往長達一年,被風寒侵襲,我以為是濕氣,但眾醫不知,幾乎誤了我。
進藥果效,遂授御醫。
服藥果然有效,於是授予御醫之職。
一日雪霽召見,帝語白溝河戰勝狀,氣色甚厲。
一天雪後天晴被召見,皇帝談論白溝河戰勝的情形,神色很嚴厲。
寅曰:是殆有天命耳!帝不懌,起而視雪。
盛寅說:這大概有天命吧!皇帝不高興,起身看雪。
寅後詠唐人詩:長安有貧者,宜瑞不宜多句,聞者咋舌。
盛寅後來吟詠唐詩:長安有貧者,宜瑞不宜多句,聽到的人咋舌。
他日,與同官對奕御藥房,帝猝至,兩人斂枰伏地謝死罪,帝命終之,且坐以觀。
後來,和同僚在御藥房下棋,皇帝突然到來,兩人收起棋盤伏地請死罪,皇帝命令下完,並且坐著觀看。
寅三勝,帝喜,命賦詩立就,帝益喜,賜象牙棋枰,並詞一闋。
盛寅連勝三局,皇帝高興,命令他當場作詩,盛寅立刻完成,皇帝更高興,賜給象牙棋盤和一首詞。
帝晚年猶欲出塞,寅以帝春秋高,勸毋行,不納,果有榆木川之變。
황제가 말년에 오히려 변방 출정을 원했는데, 인진이 황제의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가지 말기를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과연 유목천의 변고가 있었다.
仁宗在東宮時,妃張氏經期不至者十月,衆醫以妊身賀,寅獨謂不然,出言病狀。
인종이 동궁에 있을 때, 비 장씨가 월경이 오지 않은 지 열 달이 되자 여러 의사들이 임신이라 하례했지만, 인진만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고 병의 상태를 말하였다.
妃遙聞之曰:醫之言甚當,有此人,奈何不令早視我?
비가 멀리서 듣고 말하기를: "의사의 말이 매우 적절하니, 이런 사람이 있는데 어찌 하여 일찍 나를 보게 하지 않았는가?"
及疏方,乃破血劑,東宮怒不用。
처방을 내니, 이는 어혈을 깨는 약이었다. 동궁이 노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數日脹益甚,命寅再視,疏方如前。
며칠 후 배가 더욱 부어올라, 인진에게 다시 진찰하라 명하고 처방을 내니 전과 같았다.
妃令進藥,而東宮慮墮胎,械寅以待。
비가 약을 올리라 명하였으나, 동궁은 유산을 우려하여 인진에게 수갑을 채워 기다리게 하였다.
已而血大下,病旋愈。
이윽고 피가 대량으로 나오고 병이 곧 나았다.
當寅之被系也,闔門惶怖,曰是殆磔死,或曰且籍沒。
인진이 감금되었을 때, 집안 식구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이는 아마 능지처참 될 것"이라 하였고, 또는 "곧 가산이 적몰될 것"이라 하였다.
既三日,紅仗前呼還邸舍,賞賜殊腆。
사흘 후, 붉은 의장이 앞서 외치며 관사로 돌아가게 하였고, 상이 매우 후하였다.
寅與袁忠徹素爲東宮所惡,既愈妃疾,度怒稍解,然意猶甚懼。
인진과 원충철이 평소 동궁의 미움을 샀는데, 비의 병을 낫게 한 후 미움이 조금 풀렸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매우 두려웠다.
忠徹曉相術,知仁宗壽不永,密言於寅,寅猶畏禍。
충철이 관상술을 알아 인종의 수명이 길지 않음을 알고 은밀히 인진에게 말했지만, 인진은 여전히 화를 두려워했다.
及仁宗嗣位,求出爲南京太醫院。
인종이 즉위하자, 인진은 남경태의원으로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宣宗立召還,以正統六年卒。
선종이 즉위하자 곧 불러들였으며, 정통 6년에 졸하였다.
初,寅晨直御藥房,忽昏眩欲死,募人療寅,莫能應,一草澤醫人應之,一服而愈。
처음, 인진이 아침에 어약방에 직무를 보다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서 죽을 것 같아, 사람을 모집하여 인진을 치료하게 하였으나 응하는 자가 없었는데, 한 초야 의원이 응하여 한 번 복용하고 나았다.
問狀,其人曰:寅空心入藥房,卒中藥毒,能和解諸藥者,甘草也。
그 사정을 묻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인진이 공복에 약방에 들어가 갑자기 약독에 중독된 것입니다. 여러 약을 조화롭게 풀 수 있는 것은 감초입니다."
帝問寅果空腹入,乃厚賜草澤醫人而遣之。
황제가 묻자 인진이 과연 공복에 들어갔으므로, 이에 초야 의원에게 두둑이 상을 주고 보냈다.
按《吳江縣誌》:盛寅,字啓東,以字行,逮之子,工詩善醫。
《오강현지》에 따르면: 성인은 자가 계동이며, 자로 행세하였고, 체의 아들이며, 시를 잘 짓고 의술에 능숙하였다.
永樂中,治內侍蠱奇驗,聞於上,召對稱旨,投太醫院御醫。
영락 연간에 내시의 고질병을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있었고, 임금께 들리어 불러 대답이 뜻에 맞아, 태의원에 써서 어의로 삼았다.
太子妃孕而疾動,命寅診之,曰:此血疾也,當用利藥。
태자비가 임신하여 병이 동하자, 인에게 진찰을 명하니, 말하길: 이는 혈질이니, 이뇨약을 써야 합니다.
諸醫皆駭,沮。妃令言利藥者進治,明日,疾大已,乃錫金幣直錢千緡。
의사들이 모두 놀라며 반대하였다. 비가 이뇨약을 말한 자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니, 다음 날 병이 크게 나았고, 이에 금화와 폐백을 천 민어치 하사하였다.
寅在上前,持論梗梗,上甚重之。扈從北征,尋掌太醫院事。
인이 임금 앞에서 주장을 강직하게 하여, 임금이 그를 매우 중히 여겼다. 북쪽 정벌에 수행하였고, 얼마 후 태의원 일을 주관하였다.
宣德元年,賜勑褒嘉,日侍上,命視親王疾,有效,特賜白金良馬。
선덕 원년에 칙서를 내려 표창하고, 날마다 임금을 모시며, 명하여 친왕의 병을 보게 하였는데 효험이 있어, 특별히 백금과 좋은 말을 하사하였다.
嘗應制賦瑞雪詩。又嘗與同官韓叔暘奕於御藥房,駕卒至,不及屏,二人叩頭待罪,上命終局,因御製醉太平詞一闋以賜,仍命作詩,其寵遇如此。
일찍이 응제하여 서설시를 지었다. 또 동료 한숙양과 어약방에서 바둑을 두다가, 거가가 갑자기 이르러 피하지 못하고, 두 사람이 머리를 조아려 죄를 기다리니, 상이 끝까지 두게 하고, 이에 어제 취태평사 한 곡을 지어 주고, 또 시를 짓게 하였으니, 그 총애가 이와 같았다.
正統元年,丁父艱歸。周文襄公忱,素善寅,餉米百石,寅卻之。
정통 원년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돌아갔다. 주문양공 침이 평소에 인과 친하여 쌀 백 석을 보냈으나, 인이 사양하였다.
貽以詩,有:魚龍江海夢,雀鼠稻梁謀。忱歎服焉。
시를 보내어 이르기를: '어룡은 강해의 꿈이요, 작서는 도량의 꾀라.' 침이 탄복하였다.
服闋將赴都,忽遘疾,自診脈曰:吾不起矣。臨終作詩三首,年六十七。
상복을 벗고 도성으로 가려다가 갑자기 병을 만나, 스스로 맥을 짚고 말하길: 나는 일어나지 못하겠다. 임종 때 시 세 수를 지었고, 나이 육십칠 세였다.
弟宏、子僎、從子倫、孫愷,俱以醫世其家。
아우 굉, 아들 전, 조카 윤, 손자 개가 모두 의술로 그 집안을 이었다.
僎性耿介,嘗使家童輸糧於官,多取一籌以歸,僎怒,置米屋後,以餉鳥雀。
전의 성품은 강직하여, 일찍이 집 하인으로 하여금 관청에 곡식을 바치게 하였는데, 하나를 더 취하여 돌아오자, 전이 노하여 쌀을 집 뒤에 두어 새와 참새에게 먹였다.
初,寅醫得之王高士賓,賓得之戴原禮,原禮得之丹溪朱彥修,故其術特精。
처음에 인의 의술은 왕고사 빈에게서 얻었고, 빈은 대원례에게서 얻었으며, 원례는 단계 주언수에게서 얻었으므로, 그 기술이 특히 정밀하였다.
時又有劉敏、李思勉者,俱傳寅術。
그때 또 유민, 이사면이라는 자가 있어, 모두 인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寅所著有《流光集》。
인이 지은 저서에 《유광집》이 있다.
張存
장존
按《燉煌新錄》:張存,善針。
《돈황신록》에 따르면: 장존은 침술을 잘했다.
存有奴,好逃亡。
장존에게 노비가 있었는데, 도망치기를 좋아했다.
存宿行鍼縮奴腳,欲使則針解之。
장존이 미리 침을 놓아 노비의 발을 오그라들게 하고, 부리려 할 때는 침을 풀었다.
劉冠
유관
按《畿輔通志》:劉冠,儀封人。袓浩,從太袓取張士誠有功,授都指揮,不受,願就醫。
《畿輔通志》에 따르면: 유관은 의봉 사람이다. 할아버지 유호는 태조를 따라 장사성을 취하는 데 공을 세워 도지휘에 임명되었으나 받지 않고 의술에 종사하기를 원했다.
隨徐武寧調理軍士,遂家山海爲醫,不輕試藥餌。
서무녕을 따라 군사를 조리하다가 마침내 산해에 정착하여 의원이 되었으며, 약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時鄔主政艱嗣,寵姬多人,內有娠者,嘗以疾求診脈。
당시 오주정이 자식이 없어 걱정하였는데, 총애하는 첩이 여러 명 있었고 그중 임신한 자가 있어 병을 핑계로 진맥을 청하였다.
冠曰:請以面盤印手。訖,出盤,冠曰:此非疾,乃吉兆也。主生男。後果驗。
유관이 말하기를: '국수 반죽 그릇에 손을 찍어 보십시오.' 끝나자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이는 병이 아니라 길조입니다. 아들을 낳을 것입니다.' 후에 과연 들어맞았다.
周振譽
주진예
按《崑山縣誌》:周振譽,字彥聲。世業醫,至振譽益精。正統初,徵入太醫院,擢楚府良醫,老於鄉。治危疾多取奇效,名滿吳中。
《崑山縣誌》에 따르면: 주진예는 자가 언성이며, 대대로 의업을 이어오다 진예에 이르러 더욱 정밀해졌다. 정도(정통) 초년에 징소되어 태의원에 들어갔고, 초부의 양의로 발탁되었으며, 고향에서 늙었다. 위험한 병을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을 많이 얻었고, 이름이 오중에 가득했다.
欽謙
공손히 겸손하다
按《蘇州府志》:欽謙,吳縣人,由都督府經歷,改太醫院判,加一級。宣宗數召見,索祕藥,三問皆以不知對,最後切諭之,謙叩頭曰:臣以醫受陛下官祿,先聖傳醫道者,無此等術,亦無此等書。升下承袓宗洪業,宜兢兢保愛聖躬,臣死不敢奉詔。上愧怒,命力士以旃席裹頭,亟持付獄。謙入朝不歸,家人莫知其由,遍訪不得。有錦衣卒知狀,言械繫衛獄,後幽室中。久之,上悟釋出,復其官。正統末,隨駕出土木殉難。天順初,贈奉政大夫太醫院使,蔭其後。
《蘇州府志》에 따르면: 흠겸(欽謙)은 오현(吳縣) 사람으로, 도독부 경력(都督府經歷)에서 태의원 판관(太醫院判)으로 옮기고 한 급(級) 더 올랐다. 선종(宣宗)이 여러 번 불러 보고 비밀 약을 구했는데, 세 번 물어도 모두 모른다고 대답하다가 마지막에 간절히 타이르자 흠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臣)은 의술로 폐하의 관직과 녹봉을 받았습니다. 선성(先聖)이 의도를 전한 이에게 이런 술법도 없고 이런 책도 없습니다. 폐하께서 종묘사직의 큰 업을 이으셨으니, 마땅히 삼가며 성체를 보호하고 사랑하소서. 신은 죽어도 감히 조칙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임금이 부끄럽고 노하여 힘줄(力士)에게 명하여 펄천(旃席)으로 머리를 싸서 급히 옥(獄)에 가두게 했다. 흠겸이 조정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이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두루 찾아도 찾지 못했다. 한 금의위(錦衣衛) 군졸이 상황을 알고 말하기를, 형구를 채워 위옥(衛獄)에 갇혔고 나중에 깊은 방에 숨겨졌다고 했다. 오래 지나 임금이 깨닫고 풀어 내보내며 그 관직을 회복시켰다. 정통(正統) 말기에 임금을 따라 출토(土木)에 가서 순난(殉難)했다. 천순(天順) 초에 봉정대부(奉政大夫) 태의원사(太醫院使)를 추증하고 그 후손을 음서(蔭敍)하였다.
何全
하전
按《松江府志》:何全,字廷用,華亭人,自宋元來,世以醫名。
《송강부지》에 따르면: 하전(何全)은 자가 정용(廷用)이고, 화정(華亭) 사람이며, 송원(宋元) 이래로 대대로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全生而穎慧,遊郡庠有聲。
하전은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하고 총명하여, 군학교(郡庠)에서 수학하며 명성이 있었다.
正統十二年,領鄉薦不欲徙故業,益精岐黃術,每以匕劑起沉痾,無責報意。
정통(正統) 12년에 향천(鄉薦)을 받았으나 옛 업(업)을 바꾸지 않고자 하여, 더욱 기황술(岐黃術)을 정밀하게 익혔으며, 항상 숟가락 약(匕劑)으로 고질병을 낫게 하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同郡張弼盛稱之。
같은 군(郡)의 장필(張弼)이 그를 크게 칭송하였다.
曾孫十翼仕爲景楚二府良醫,能世其業。
증손(曾孫) 십익(十翼)이 벼슬하여 경(景) · 초(楚) 두 관청의 양의(良醫)가 되어, 그 업(업)을 대대로 이었다.
今郡中治傷寒,猶首推何氏。
지금 군(郡)에서 상한(傷寒)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도 여전히 하씨(何氏)를 으뜸으로 꼽는다.
蔣博
장박(蔣博)
按《青浦縣誌》:蔣博,字原博,號靜庵。
《청포현지》에 따르면: 장박(蔣博)은 자(字)가 원박(原博)이고, 호(號)가 정암(靜庵)이다.
正統辛酉發解南畿,乙丑進士,授南京刑部主事。
정통(正統) 신유년(辛酉年)에 남기(南畿)에서 향시(鄕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을축년(乙丑年)에 진사(進士)가 되어 남경형부주사(南京刑部主事)에 임명되었다.
獄疫,博素知醫。
옥중에 전염병이 돌자, 장박이 평소 의술을 알았다.
手治善藥療之。
손수 좋은 약을 지어 치료하였다.
累官至四川按察使,卒賜葬畲山。
여러 관직을 거쳐 사천안찰사(四川按察使)에 이르렀고, 죽은 후에 사산(畲山)에 장사를 하사받았다.
徐沛
서서히 땀을 흘리다.
按《青浦縣誌》:徐沛,字澤卿,少從周萊峯遊,以文章行誼相切,讀古書,工詩,涉獵《內經》,用以診疾,危者輒起,然不售術也。以子三重貴受封,布袍角巾,闔門吟詠。
《청포현지》에 따르면: 서패(徐沛)는 자가 택경(澤卿)으로, 젊어서 주래봉(周萊峯)을 따라 학문을 닦으며 문장과 행실로 서로 격려하였고, 옛 책을 읽고 시를 잘 지었으며 《내경》을 널리 섭렵하여 병을 진찰하는 데 사용하였는데, 위중한 자도 곧 낫게 하였으나 그 술법을 팔지는 않았다. 아들 삼중(三重)이 귀하게 되어 봉작을 받았으나, 베 옷과 두건을 입고 문을 닫고 시를 읊었다.
胡俊
호준
按《滁州志》:胡俊,字士英,號兩庵,舒城人。
《滁州志》에 의하면, 호준(胡俊)은 자가 사영(士英)이고 호는 양암(兩庵)이며, 서성(舒城) 사람이다.
明正統末寓椒,行岐黃術,多奇驗。
명나라 정통(正統) 말년에 초(椒) 땅에 살면서 의술(岐黃術)을 행하였는데, 기이하게 맞아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一日,過白汪橋,見一婦伏男子屍,哭甚哀,將入殮。
어느 날, 백왕교(白汪橋)를 지나다가 한 여자가 남자 시체에 엎드려 매우 슬피 울며, 장차 염(殮)을 하려는 것을 보았다.
兩庵入視之曰:莫哭!緩須臾不殮,服吾藥,可不死。
양암이 들어가서 보고 말하기를: "울지 마시오! 잠시 시체를 염하지 말고, 내 약을 복용하게 하면 죽지 않을 수 있소."
即解囊取藥少許,使屍口中,頃之,輒伸久,良久竟蘇,由是椒人以爲神,稱名醫,而商南冏臺及六曹長皆來聘。
즉시 주머니를 풀어 약을 조금 꺼내 시체 입에 넣었더니, 잠시 후에 곧 팔다리를 쭉 펴고 오랫동안 있다가 마침내 소생하였다. 이로 인해 초 땅 사람들이 신으로 여기며 명의(名醫)라 일컬었고, 상남(商南)의 경대(冏臺)와 육조(六曹)의 장관들이 모두 와서 초빙하였다.
莆陽進士鄭克昭述其行爲最詳。
보양(莆陽)의 진사(進士) 정극소(鄭克昭)가 그의 행적을 가장 자세히 서술하였다.
年七十有八,因家於椒,爲巨族。
나이 일흔여덟에 초 땅에 집을 잡아 대가족이 되었다.
文學胡庭桂其裔也。
문학(文學) 호정계(胡庭桂)가 그의 후손이다.
今諸子孫,亦表表有文聲。
지금 여러 자손들도 또한 뛰어나게 문명(文名)이 있다.
徐彪
서표
按《松江府志》:徐彪,字文蔚,太醫院使樞子也。
《송강부지》에 따르면: 서표는 자가 문위이며, 태의원사 서추의 아들이다.
正統十年,以能醫薦入太醫院。
정통 10년에 의술이 능하다 하여 천거되어 태의원에 들어갔다.
時代王久病瘇,又昌平侯楊洪在邊疾篤,受詔往視,皆不旬日而瘳,遂留御藥房。
당시 대왕이 오래 종기로 앓고 있었고, 또 창평후 양홍이 변방에서 병이 위독하여 조서를 받들어 가서 진찰하였는데, 모두 열흘이 못 되어 낫게 하여 마침내 어약방에 머물렀다.
十三年,擢御醫。
13년에 어의로 발탁되었다.
景泰二年,遷院判,常侍禁中,每以醫諫。
경태 2년에 원판으로 승진하여 항상 금중에서 모시며 매번 의술로 간언하였다.
景帝問藥性遲速,對曰:藥性猶人性也,善者千日而不足,惡者一日而有餘。
경제가 약성의 빠르고 느림을 묻자, 대답하기를: 약성은 사람의 성품과 같아서 착한 자는 천 날이 되어도 부족하고 악한 자는 하루가 지나도 남음이 있습니다.
問攝生,以固元氣對。
양생을 묻자, 원기를 굳게 하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其因事納忠類此。
그가 일에 따라 충성을 바친 것이 이와 같았다.
六年,預修中祕書錄。
6년에 중비서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子墱爲國子生,彪質直洞達,善談議,少從父入秦,其邸舍,元許文正衡遺址也。
아들 서등은 국자생이 되었는데, 서표는 성질이 곧고 통달하며 말과 의논을 잘하였고,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진(秦)에 들어갔으며, 그의 객사는 원나라 허문정공 허형의 옛터였다.
秦王以魯庵題之,秦中稱爲魯庵。
진왕이 노암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 진중에서 노암이라 불렀다.
及歸老,以詩畫適情,自號希古。
늙어서 물러난 뒤에는 시와 그림으로 심정을 즐기며, 스스로 호를 희고라 하였다.
所著《本草證治》、《辨明論》、《欬嗽條》、《傷寒纂例》各一卷。
지은 책으로 《본초증치》, 《변명론》, 《해수조》, 《상한찬례》 각 1권이 있다.
王思忠
왕사충
按《介休縣誌》:王思忠,太醫院吏目,陝西渭南人。
《개휴현지》에 따르면: 왕사충은 태의원 이목으로, 섬서 위남 사람이다.
父當夏月,忽目不見物。
아버지가 한여름에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思忠藥之,三日而愈。
사충이 약을 써서 사흘 만에 낫게 하였다.
其神速皆類此。
그 신속함이 모두 이와 같았다.
方政
처방과 치료
按《望江縣誌》:方政,本縣人。景泰間以醫名,召入太醫院。
《望江縣誌》에 따르면:방정은 본 현의 사람이다. 경태年間에 의술로 이름을 떨쳐 태의원에 불려 들어갔다.
陸惟恭
육유공
按《太平府志》:陸惟恭,精於醫,診視高帝有功,除太醫院判。
《태평부지》에 따르면, 육유공은 의술에 정통하여 고제(명 태조)를 진료한 공으로 태의원 판관에 임명되었다.
子才修父業,景泰間亦任太醫院判,京師稱陸一貼,謂愈不再贖也。
아들 육재는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경태 연간에 역시 태의원 판관을 지냈는데, 서울에서는 '육일첩'이라 불렀으니, 한 번의 약으로 낫게 하여 다시 약을 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生三子,長豫,字克賢;次道常,字克容,任蕪湖訓科;又次道源,字克貞,任太醫院御醫。
아들 셋을 두었는데, 맏이는 육예(자 극현)이고, 둘째는 육도상(자 극용)으로 무호 훈과를 지냈으며, 셋째는 육도원(자 극정)으로 태의원 어의를 지냈다.
豫子敏,字懋學,以太醫院醫生,中景泰元年順天鄉試。
육예의 아들 육민(자 무학)은 태의원 의생으로 경태 원년 순천 향시에 합격하였다.
敏弟敔,字懋韶,任本府正科。
육민의 아우 육어(자 무소)는 본부 정과를 지냈다.
陸氏代以善療傷寒,敔尤收速效,觀形色即知病源,一時重之。
육씨 대대로 상한 치료에 능하였는데, 육어는 특히 빠른 효과를 거두었으며, 환자의 형색을 보고 곧 병의 근원을 알아내어 당시에 중히 여겨졌다.
武瓛
무환
按《介休縣誌》:武瓛,字大器,景泰時人,籍石澗裏,性聰敏,母久病,時無能療者,嘆曰:爲人子不知醫,不孝也。
《介休縣誌》에 따르면: 무환, 자는 대기이며, 경태 연간 사람으로, 석간리 출신이다. 성품이 총명하고 민첩하며, 어머니가 오래 병들었으나 당시에 치료할 사람이 없었다. 탄식하여 말하기를: '자식 된 자가 의술을 모르면 불효이다.'라고 하였다.
乃之縣南抱腹巖,研究《內》、《難》諸書,三年,人謗爲讀妖書,縣系鞫之,知爲母攻醫,乃釋。
이에 현 남쪽 포복암에 가서 《내경》과 《난경》 등 여러 책을 연구하여 3년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요사한 책을 읽는다고 비방하여 현에서 잡아다 심문하였으나, 어머니를 위해 의학을 공부한 것을 알고 풀어주었다.
久之,以脈訣未真,遠遊參證,得異人傳授,治病按脈,決生死若神。
오래 지나서, 맥결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여겨 멀리 유람하며 증험을 참고하였고, 이인에게 전수를 받아 병을 치료하고 맥을 짚어 생사를 판단함이 신과 같았다.
有欲試瓛術者,版築崇堵,上望瓛過,躍下索診,瓛曰:汝速歸,死在目下。人以爲戲,其人赴家,果即死,蓋飽食致腸斷也。名遂大着。
무환의 술법을 시험하려는 자가 있어, 흙담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서 무환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뛰어내려 진찰을 청하였다. 무환이 말하기를: '너는 빨리 돌아가라. 죽음이 눈앞에 있다.' 사람들이 농담으로 여겼으나, 그 사람이 집에 도착하자 과연 곧 죽었으니, 이는 배불리 먹어서 창자가 끊어진 까닭이었다. 이름이 이로 인해 크게 드러났다.
每治危疑難辦諸證,不循常法,沉痾立起,人以是益奇之。
매번 위험하고 의심스러우며 처리하기 어려운 여러 증상을 치료할 때, 상법을 따르지 않고 오랜 병을 즉시 낫게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로 인해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瓛既精於醫,益知醫學之難,作論遺子孫,非甚明理有救人之心者,戒勿輕學。
무환이 이미 의술에 정통하고 나서 더욱 의학의 어려움을 알게 되어, 논을 지어 자손에게 남기되, 매우 이치에 밝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자가 아니면 가벼이 배우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張源
장원 (張源)
按《松江府志》:張源,字複本,華亭人,少業嬰醫。
《송강부지》에 따르면, 장원은 자가 복본이고 화정 사람이며, 어려서 소아과 의술을 업으로 삼았다.
永樂中,徵入太醫院,供奉禁廷,侍從北巡,常受金繒之賜。
영락 연간에 태의원으로 불려 들어가 궁중에 시봉하고 북쪽 순행을 수행하며, 자주 금과 비단을 하사받았다.
洪熙初,賜第於皇華坊。
홍희 초에 황화방에 집을 하사받았다.
宣德中,授御醫。
선덕 연간에 어의에 임명되었다.
正統間遷院判,丁母憂,賜乘傳奔喪,即還職。
정통 연간에 원판으로 승진했으며, 어머니 상을 당하자 역마를 타고 상사에 달려가도록 하사받고, 곧바로 관직에 복귀하였다.
景泰中,乞骸骨,置第城西南隅,有園池花竹之勝,特出賜金以會賓客,贍貧乏。
경태 연간에 치사를 청하고, 성 서남쪽 구석에 집을 마련했는데, 정원과 연못, 꽃과 대나무의 경치가 뛰어났으며, 특별히 하사금을 내어 빈객을 모으고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年八十有八卒。
나이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蔣主善
장주선
按《上元縣誌》:蔣主善,用文長子,能世其傳。
상원현지에 따르면, 장주선은 용문의 큰아들로, 가업을 계승할 수 있었다.
仁廟嘗諭用文曰:卿有子矣。
인종 폐하가 일찍이 용문에게 이르시길: 경에게 아들이 있도다.
用文卒,召赴京,諭慰再四,賜織金衣,即日授御醫,尋升院使,出宮媛三人李、莊、徐以爲繼室,恩賚甚厚。
용문이 죽자, 주선을 불러 서울로 오게 하고, 여러 번 위로하며, 직금의를 하사하고, 즉일로 어의를 제수하고, 곧 원사로 승진시키고, 궁녀 세 명 이씨, 장씨, 서씨를 내주어 후처로 삼게 하니, 은혜와 하사가 매우 두터웠다.
景泰間卒。
경태 연간에 죽었다.
次主敬、主孝、主忠皆以醫名,而主孝喜爲詩,主忠尤嗜儒術,爲古文辭。
다음으로 주경, 주효, 주충은 모두 의원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주효는 시 짓기를 좋아했고, 주충은 특히 유학을 좋아하여 고문과 문장을 지었다.
徐述 【 徐迪】
서술【서적】
按《武進縣誌》:徐述,毘陵人。毘陵舊以醫着姓者稱徐、蔣、湯、丁雲。徐之先世居毘陵,元兵屠城獲脫,覆被擄至燕,居久之,得常州織染局官以歸。
《武進縣誌》에 따르면: 서술은 비릉 사람이다. 비릉에서 예로부터 의술로 저명한 성씨는 서, 장, 탕, 정 씨라 일컬었다. 서씨의 선조는 비릉에 살았는데, 원나라 군사가 성을 함락할 때 겨우 벗어났다가 다시 사로잡혀 연경에 끌려가 오래 있다가, 상주직염국의 관직을 얻어 돌아왔다.
生二子,長曰養浩,博通儒書,始業醫,爲無錫州學教授。子仲清繼,其業尤精,爲湖州路儒學教授。子矩用薦兩任襄縣黃縣教諭。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를 양호라 하여 유서에 널리 통달하고 처음으로 의업에 종사하여 무석주 학 교수가 되었다. 아들 중청이 이어받아 그 업이 더욱 정밀하여 호주로 유학 교수가 되었다. 아들 구는 천거로 두 번 양현과 황현의 교유를 지냈다.
生三子:長曰述,字孟魯;次曰迪,字孟恂;又次曰選,字孟倫。述善診,迪善意。述診決人生死旦夕歲月若神。迪所治不盡責效於湯液醪醴,率以意爲之。
세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를 술, 자는 맹로라 하고; 둘째를 적, 자는 맹순이라 하며; 셋째를 선, 자는 맹륜이라 하였다. 술은 진단을 잘하였고, 적은 의사를 잘하였다. 술은 사람의 생사를 아침저녁이나 세월 단위로 판단하기가 신과 같았다. 적이 치료한 것은 모두 탕액과 약주에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대개 의사대로 하였다.
述常過市,市人躍而踰櫃請診。迪曰:子腸已斷,法當死。市人曰:吾方食飽而出,本無疾也,烏得死!至暮果死。
술이 일찍이 저자를 지나가는데, 저자 사람이 뛰어올라 진열장을 넘으며 진찰을 청하였다. 적이 말하기를: 그대의 창자가 이미 끊어졌으니, 법상 죽어야 마땅하다. 저자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막 배불리 먹고 나왔는데, 본래 병이 없으니 어찌 죽겠는가! 저물녘에 과연 죽었다.
其他病甚且暝,述許其生,血肉華色,動履如常,述謂其死,而驗者尤衆。
다른 병이 심하고 또 혼미한데, 술이 그를 살 것이라고 허락하면 피부와 살이 윤택해지고 움직이고 다니기가 평상시와 같았으며, 술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리고 증험된 것이 더욱 많았다.
一女傷於怒,內向臥不得轉,迪診之,因索花作婦人妝,且歌且笑,患者聞之,不覺回顧大笑而愈。
한 여자가 노여움에 상하여 안으로 향해 누워 돌아눕지 못하였는데, 적이 진찰하고, 이에 꽃을 구해 여자 분장을 하고, 노래하고 웃으며, 환자가 듣고는 부지중에 돌아보며 크게 웃고 나았다.
一孕婦仰而探物,遂不能俯。迪令之衣以裙數十層,掖之衆中,以漸而解,每解一裙,輒擲婦前,解至中牏,其婦不覺用手力護,因得俯。
한 임산부가 위를 향하여 물건을 더듬다가, 드디어 구부리지 못하게 되었다. 적이 그에게 치마 수십 겹을 입히고, 무리 가운데서 부축하여, 차츰 벗기는데, 치마 하나를 벗길 때마다 곧 부인 앞에 던지고, 벗기기를 중牏에 이르자, 그 부인이 부지중에 손으로 힘껏 보호하여, 이에 구부릴 수 있게 되었다.
一人病俯而不能仰,迪令之坐,因以大鈹針,徐擬之,其人漸避漸仰。其用意皆此類。
한 사람이 병들어 구부러지고 펴지 못하였는데, 적이 그를 앉히고, 이에 큰 가느다란 침으로 천천히 찌르는 시늉을 하니, 그 사람이 점점 피하며 점점 펴졌다. 그 의도한 바가 모두 이와 같았다.
至其用針,尤多神效,俗呼曰:徐神仙。然三人者,皆負意氣,好施與,博物洽聞,於諸家多所究心。述尤工天文,選更以孝友稱。
그 침을 사용함에 이르러서는 더욱 신기한 효험이 많아, 세속에서 '서신선'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두 의기가 있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박물하고 견문이 넓어 여러 학파에 마음을 쏟았다. 술은 특히 천문에 능했고, 선은 더욱 효성과 우애로 일컬어졌다.
歲且除,從宜興載米百斛還,未至家,遍索故人與之,家人方潔鬵待炊弗恤也。
해가 저물어가는데, 의흥에서 쌀 백 석을 싣고 돌아와, 집에 이르지 않고 두루 옛 친구를 찾아 그들에게 주었으며, 집에서는 솥을 깨끗이 씻고 밥 짓기를 기다렸으나 돌보지 않았다.
吳人周克恭者,嘗有所託於選,家人弗知也。克恭歿,選急走其家,悉還之。
오나라 사람 주극공이 일찍이 선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는데, 집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극공이 죽자, 선이 급히 그 집에 달려가 모두 돌려주었다.
道遇一貧人,寒甚,急解襦與之。
길에서 한 가난한 사람을 만나, 매우 추워하자 급히 속옷을 벗어 그에게 주었다.
述嘗夜讀《嶽武穆傳》,怒甚,持梃起,無所泄忿,碎其盎於爨下。鄰人驚問之,曰:吾方切齒於檜賊也。
술이 일찍이 밤에 《악무목전》을 읽다가 매우 노하여,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 분을 풀 곳이 없어, 아궁이 아래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이웃 사람이 놀라 묻자, 말하기를: 내가 방금 회 도적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洪武中,述、迪皆以他醫累,當遠戍,選贅得免。
홍무 연간에, 술과 적이 모두 다른 의원에 연루되어 먼 변방을 지켜야 했는데, 선이 사위가 되어 면할 수 있었다.
迪將奉母行,選不忍也,遂同行,艱苦備嗜者廿年,不以爲勞。
적이 장차 어머니를 모시고 가려 하자, 선이 차마 그러지 못하여, 마침내 함께 가서, 어려움을 겪으며 모든 고초를 맛본 지 20년이 되도록 수고로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正統初,述語族子曰:天象如此。不越三年,萬乘其蒙塵乎?既而曰:其在己巳也。是年果有土木之變。
정통 초년에, 술이 족자에게 말하기를: 천문이 이와 같다. 3년을 넘지 않아, 천자가 어려움을 당하겠는가? 이어 말하기를: 그때는 기사년일 것이다. 그 해에 과연 토목의 변이 있었다.
景皇帝嘗召見述,欲官之,不果,厚賜金帛以歸。
경황제가 일찍이 술을 불러 만나보고,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후하게 금과 비단을 하사하여 돌아가게 하였다.
述所著有《難經補註》。
술이 지은 책에 《난경보주》가 있다.
陸麟 【 陸朝 嚴漢】
육린 【 육조, 엄한】
按《嘉興府志》:陸朝,嘉之世醫也。
《嘉興府志》에 따르면:陸朝는 嘉興의 世醫이다.
其先有名麟者,景泰間,衛軍徵沙寇,以醫術療從行將士有功,授醫官,子孫遂世善其業。
그의 선조 중에 麟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景泰年間에 衛軍이 沙寇를 정벌할 때 의술로 수행하는 장수와 병사를 치료하여 공이 있어 醫官에 임명되었고, 자손이 이에 대대로 그 업을 잘했다.
朝尤深於《內經》、《本草》,切脈洞見病源,決死生,一一不爽;治傷寒更隨手而瘥。
陸朝는 더욱 《內經》과 《本草》에 깊었으며, 切脈하여 병의 근원을 환히 꿰뚫어보고 죽고 사는 것을 판단함에 하나하나 틀림이 없었으며; 傷寒을 치료함에는 더욱 손을 대자마자 나았다.
然朝治病,不欲人遲於見功。
그러나 陸朝가 병을 치료할 때에는 사람들이 효과를 보는 것이 더딘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每治女子及癆瘵不即起者,輒推引嚴漢,漢用藥以和緩取效,不效,不峻爲攻補,名亞於朝。
여자와 癆瘵로 즉시 낫지 않는 자를 치료할 때마다, 문득 嚴漢을 추천하였는데, 嚴漢은 약을 써서 和緩하게 효과를 취하고, 효과가 없더라도 공격하거나 보하는 것을 급하게 하지 않아, 이름이 陸朝에 다음 갔다.
稱良醫者,必曰陸紹泉、嚴陵坡,蓋兩人別號也。
훌륭한 의사를 일컬음에 반드시 陸紹泉과 嚴陵坡를 말하였는데, 이는 두 사람의 別號이다.
錢時用
전시용
按《江陰縣誌》:錢時用,善度金針,殘廢立起,素爲兵憲胡亶禮重。
《강음현지》에 따르면: 전시용은 금침을 잘 다루어, 병들고 불구인 자가 즉시 일어났으며, 평소에 병헌 호단의 예우를 받았다.
子鼎鉉克紹父術,各憲及帥府匾獎盈庭。
아들 정현이 아버지의 기술을 잘 이어받아, 각 헌과 장수들이 현판과 상을 내려 뜰에 가득했다.
劉國符
유국부
按《江陰縣誌》:劉國符,醫術工巧,且素性義俠,五控各憲碑禁關蠹,越詐鄉鎮,造福地方,不僅三指壽民。
《江陰縣誌》에 의하면: 유국부는 의술이 정교하고 뛰어났으며, 또 평소 성품이 의협적이었다. 여러 번 관청에 상소하여 세관의 해충을 금지하는 비석을 세우게 하고, 고을을 속이는 행위를 막아 지방에 복을 내렸으니, 단지 의술로 백성의 수명을 연장한 것만이 아니었다.
鄒兆麟
추조린
按《西安縣誌》:鄒兆麟,精岐黃術,素行醇謹,性好施予。
《西安縣誌》에 따르면, 추조린은 의술에 정통하고 평소 행실이 순수하고 신중하며 성품이 베풀기를 좋아했다.
凡饑民疫癘,兆麟皆捐施贈藥,全活甚衆。
무릇 굶주린 백성과 전염병이 돌면, 조린이 모두 재물을 내어 약을 베풀어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虞摶
우박
按《金華府志》:虞摶,字天民,義烏人。
《金華府志》에 따르면: 우단은 자가 천민이며, 의오 사람이다.
幼習舉子業,博覽羣書,能詩章。
어려서 과거 공부를 하여 여러 책을 널리 읽고, 시를 지을 줄 알았다.
因母病攻醫,醫道大行,求療者不責報。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의학을 연구하여 의술이 크게 행해졌고, 치료를 구하는 자에게 보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尤精於脈理,數年前診之,生死無不驗。
특히 맥리에 정밀하여, 몇 년 전에 진단한 것이 생사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韓方伯聞其名來聘,馳驛往見,雅敬重焉。
한 방백이 그의 명성을 듣고 초청하여, 역마를 달려 가서 보았으며, 매우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治病餘,扣問醫道,摶以節嗜慾、戒性氣、慎言語、謹服食,乃攝養之要,益加禮敬。
병을 치료하는 여가에 의도를 물으니, 우단이 욕구를 절제하고 성질을 경계하며 말을 삼가고 음식을 조심하는 것이 섭생의 요체라고 하여, 더욱 예우하고 존경하였다.
義烏以醫名者,代不乏人,丹溪之後。
의오에서 의술로 이름난 자는 대대로 사람이 없지 않았으나, 단계 이후로는 오직 우단이 가장 뛰어났다.
惟摶爲最。
오직 우단이 가장 뛰어났다.
所著有《醫學正傳》、《方脈發矇》、《百字吟》、《半齋稿》行於世。
저술한 것으로는 《의학정전》, 《방맥발몽》, 《백자음》, 《반재고》가 세상에 유행한다.
程朋
정붕
按《青州府志》:程朋,樂安人,饒資善醫。天順間,發粟濟荒,一方賴之。
《청주부지》에 따르면: 정붕은 낙안 사람으로, 자산이 넉넉하고 의술이 뛰어났다. 천순 연간에 곡식을 풀어 기근을 구제하니, 한 지방이 그에게 의지하였다.
徐嘉嗣
서가사
按《青州府志》:徐嘉嗣,臨淄人,善醫術,活人甚多。
《청주부지》에 따르면: 서가사는 임치 사람인데, 의술에 능하여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彭賓
팽빈
按《太平府志》:彭賓,正之子。天順壬午,乘傳診療諸王,獲重賞。子輔亦典供御藥,授王府醫正。
《태평부지》에 따르면, 팽빈은 팽정의 아들이다. 천순 임오년에 역마를 타고 여러 왕을 진료하여 중한 상을 받았다. 아들 팽보 또한 어약을 관장하였고, 왕부 의정에 임명되었다.
王容
왕용
按《太平府志》:王容,字志宏。天順間,療邊關戰士多愈,授王府良醫副。
《태평부지》에 따르면, 왕용은 자가 지홍이다. 천순年間에 변방 관문의 전사들을 치료하여 많이 낫게 하였고, 왕부의 양의부 직책을 받았다.
蔣宗武
장종무
按《武進縣誌》:蔣宗武,字季文。曾袓達善,以醫名吳越間,所著有《醫鏡》三十卷。宗武益精其業。
《무진현지》에 따르면: 장종무는 자가 계문이다. 증조부는 달선으로, 의술로 오월 지역에 이름을 떨쳤으며, 저술한 《의경》 30권이 있다. 종무는 그 업을 더욱 정밀하게 익혔다.
明天順間以明醫徵入供奉,授太醫院御醫,升院判院使,進通政使左通政,官至禮部左侍郎。
명나라 천순 연간에 명의로 징소되어 궁중에 들어가 봉공하였고, 태의원 어의에 임명되었으며, 승진하여 원판 원사가 되고, 통정사 좌통정으로 올랐으며, 관직이 예부 좌시랑에 이르렀다.
宗武所治,能取捷效。周太后不豫,宗武投藥一劑,輒愈。
종무가 치료한 바는 신속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주태후가 편찮았는데, 종무가 약 한 첩을 쓰니 곧 나았다.
初,上在幹清宮病目,亦以宗武藥愈。至是召至便殿,將驟遷以酬之。宗武固辭,乃命兵部免其戍籍,籍太醫院。
처음에 황상이 건청궁에서 눈병이 났을 때도 종무의 약으로 나았다. 이에 편전으로 불러 갑자기 승진시켜 보답하려 하였으나, 종무가 굳이 사양하므로 병부에 명하여 그 수자리 명적을 면제하고 태의원에 소속시키도록 했다.
一日進藥,上問以保身養氣之道,宗武對曰:保身莫若寡慾,養氣莫若省心。上嘉納之。
어느 날 약을 올리는데, 황상이 몸을 보호하고 기를 기르는 도를 묻자, 종무가 대답하기를: '몸을 보호하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기를 기르는 것은 마음을 돌보는 것만 같음이 없습니다.' 황상이 이를 칭찬하며 받아들였다.
宗武謹厚寡言,數荷優異,絕無矜色。出入禁掖數十年,人問以宮中事不答也。
종무는 신중하고 후하며 말수가 적었고, 여러 번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나 전혀 자랑하는 기색이 없었다. 궁궐에 출입한 지 수십 년이었으나, 사람들이 궁중 일을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既歸,雖襏襫襤褸之夫,以病叩無不爲盡心者。後子孫業儒。孫亨自有傳。
돌아간 뒤에는 비록 거친 옷을 입고 남루한 사람이라도 병으로 문을 두드리면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후에 자손들은 유학을 업으로 삼았다. 손자 형은 따로 전기가 있다.
周溥
주박(周溥)이라 한다.
按《河南通志》:周溥,字文淵。其先浙江會稽人,國初徙居汴城。
《河南通志》에 따르면, 주박은 자가 문연이다. 그의 선조는 절강 회계 사람인데, 나라 초기에 변성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溥穎敏嗜學,及長患羸,自度弗起,遇南郡高子明療之而愈。
주박은 영민하고 학문을 좋아했으며, 자라서 쇠약한 병에 걸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남군의 고자명을 만나 치료를 받고 나았다.
溥遂從子明,傳黃帝扁鵲之脈書,及諸祕方。
주박이 이에 자명을 따라 황제와 편작의 맥서 및 여러 비방을 전수받았다.
溥受之,且錄且讀三年。
주박이 그것을 받아서, 기록하고 읽기를 3년 동안 하였다.
爲人診視療治多驗,於是四方迎謁者,絡繹不絕。
사람들을 위해 진찰하고 치료한 것이 많이 효험이 있었으므로, 사방에서 맞이하여 뵙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其贈貽粟帛之外,奇物異玩,悉謝不受。
그가 선물로 받은 곡식과 비단 외에 진기한 물건과 기이한 완구들은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溥病時俗多守《局方》,乃發明《素》、《難》及東垣、丹溪之義,爲書一編,名曰《方法考源》。
주박은 당시 풍속이 《국방》을 많이 고수하는 것을 병통으로 여겨, 이에 《소문》, 《난경》 및 동원과 단계의 뜻을 밝혀 한 권의 책을 지었는데, 이름을 《방법고원》이라 하였다.
又謂先哲詞義微奧,初學之士,莫能盡解,復着《用藥歌括》若干首,至今汴之工醫者皆宗之。
또한 선철들의 말과 뜻이 미묘하고 오묘하여 초학자들이 다 해석하지 못한다고 여겨, 다시 《용약가괄》 약간 수를 지었는데, 지금까지 변성의 의술에 능한 자들이 모두 그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成化中,以耆宿詔賜冠帶,年八十七而卒。
성화 연간에 노현으로 조서를 내려 관과 띠를 하사하였고, 나이 87세에 졸하였다.
陳公賢
진공현
按《吳縣誌》:陳公賢,字公尚,元季良炳之後也。
《吳縣誌》에 따르면: 진공현은 자가 공상이며, 원나라 말기 양병의 후손이다.
良炳孫道,爲孟景暘館甥,得傳其業,公賢因以顱囟?頁鳴。
양병의 손자 도는 맹경양의 사위가 되어 그의 업을 전수받았고, 공현은 이로 인해 두개골과 천문에 관한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成化中徵爲醫士,一詣都,念母老即歸。
성화 연간에 의사로 징발되어 한 번 도성에 갔으나, 어머니가 늙음을 생각하고 곧 돌아왔다.
已復召入御藥房,旋授御醫,累奏奇效。
이후 다시 불려 어약방에 들어가 곧 어의에 임명되었고, 여러 번 기이한 효험을 올렸다.
進院判。
승진하여 원판이 되었다.
孝宗即位,授迪功郎,上章乞歸。
효종이 즉위하자 적공랑을 제수받았으나, 상소를 올려 귀향을 청하였다.
帝曰:如公賢何可使去左右?而請益堅,遂得致仕。
황제가 말하길: "공현 같은 이를 어찌 곁에서 떠나게 할 수 있겠는가?" 했으나, 청함이 더욱 간절하여 마침내 치사(致仕)를 허락받았다.
卒,詔葬祭。
사망하자 조칙으로 장사와 제사를 지내 주었다.
子憲、寵,皆能世其業。
아들 헌과 총이 모두 그 업을 계승할 수 있었다.
寵,宏治間召入禁典藥,歷官院使,加秩右通政。
총은 홍치 연간에 불려 궁중에 들어가 약을 관장하였고, 관직을 거쳐 원사에 이르렀으며, 품계가 더해져 우통정이 되었다.
武鳴岡
무명강
按《介休縣誌》:武鳴岡,瓛孫。趙郡伯召視婦疾,帷數婦試之,至後一人曰:餘都無病,惟此一人始受胎耳。其夫未知也,曰:以藥驗之必動。然須小損,更一劑療之,亦不至後患。已而果然。郡人何三泉亦業醫,患怔忡頭暈,四肢無力,久不愈。鳴岡診曰:汝躬炮炙,坐臥藥室中乎?臟腑弱,毒氣所侵也。飲甘草湯數碗而止。着效甚多,不具述。其父武惟真亦能醫,療疾不計利,鳴岡實家傳也。
《介休縣誌》에 따르면: 무명강은 무손의 손자이다. 조군백이 부인들의 병을 보려고 불러서, 장막 안에 여러 부인들을 시험해 보게 하였다. 맨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러 말하기를: 나머지는 모두 병이 없고, 오직 이 한 사람만이 처음으로 임신한 것입니다. 그 남편이 이를 알지 못하자, 말하기를: 약으로 시험하면 반드시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약간 손상이 있을 것이니, 다시 한 첩을 써서 치료하면 후환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과연 그러하였다. 군 사람 하삼천 또한 의업에 종사하였는데,怔忡(가슴 두근거림)과 어지럼증, 사지 무력을 앓아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명강이 진찰하고 말하기를: 당신이 직접 약을 볶고 다리며, 약방에 앉거나 누워 있습니까? 장부가 약하여 독기가 침범한 것입니다. 감초탕 여러 그릇을 마시니 곧 멈추었다. 효과가 나타난 것이 매우 많아 모두 다 기술하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 무유진 또한 의술을 잘하여, 병을 치료함에 이익을 헤아리지 않았으니, 명강은 실로 가전을 받은 것이다.
劉琮
유종
按《六合縣誌》:劉琮,應明醫薦,待憲廟,並療鄭世子,授太醫院御醫,勑進迪功郎。
《육합현지》에 따르면: 유종은 명의로 천거되어 헌묘를 모시고 정세자의 병을 치료하였으며, 태의원 어의에 임명되고 칙령으로 적공랑에 올랐다.
黃(王扁)
황편
按《儀真縣誌》:黃(王扁),字楚祥。
《의진현지》에 따르면: 황변, 자는 초상이다.
少孤,母教之業儒,刻苦問學。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그에게 유학을 가르쳐 고통스럽게 학문을 닦았다.
既而曰:醫,仁術也,苟精之,亦足以濟人,豈必官可行志乎?
얼마 뒤에 말하기를: 의술은 인술이다. 만약 정밀하게 익힌다면 또한 충분히 사람을 구제할 수 있으니, 어찌 반드시 벼슬을 해야 뜻을 펼 수 있겠는가? 하였다.
於是從事《素》、《難》諸家,遂精其業,有名淮揚間。
이에 《소문》, 《난경》 등의 여러 책들을 연구하여 마침내 그 업에 정통하게 되어, 회양 지방에서 이름을 떨쳤다.
正統初,徵爲太醫。
정통 초년에 징소되어 태의가 되었다.
景泰間選入朝,日侍禁近。
경태 연간에 선발되어 조정에 들어가, 날마다 궁궐 가까이에서 모셨다.
院使董肅薦於上,召見便殿,上問(王扁)邑里年數及所業藥性寒溫諸類,(王扁)敷奏詳明,數荷寵遇焉。
원사 동숙이 상께 천거하여 편전에서 소견을 받았는데, 상이 변에게 고을과 나이, 그리고 익힌 약성의 한온 등 종류를 묻자, 변이 자세하고 명확하게 아뢰어 여러 번 총애를 입었다.
自是掖庭有疾,率召王?扁治輒效,數賜白金文綺。
이로부터 궁중에 병이 있으면 모두 변을 불러 치료하면 곧 효과를 보았고, 여러 번 백금과 비단을 하사받았다.
英宗復辟,益承眷顧,遷御醫,尋奉詔採藥,勑階修職郎,益感激,務以保和聖躬爲己任。
영종이 복위하자 더욱 총애를 받아 어의로 승진하고, 이내 조칙을 받들어 약을 캐고, 수직랑의 품계를 명받아 더욱 감격하여, 성체를 보호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上益嘉之,賚以珍膳金帛。
상이 더욱 가상히 여겨 진수성찬과 금백을 하사하였다.
是時招集名醫闕下,鹹命統之。
이때 명의들을 궐하에 소집하여 모두 그에게 통솔하도록 명하였다.
成化中,遷南京院判,至則興滯警貪,僚屬敬憚。
성화 연간에 남경 원판으로 승진하였는데, 이르러서는 침체된 것을 일으키고 탐관오리를 경계하여 동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三載抗疏乞引年,詔可。
3년 만에 상소를 올려 치사를 청하니, 조칙으로 허락하였다.
既歸,日與士友昆季爲真率會,事母撫弟,篤恩誼,賙族睦鄰,鄉人善之。
돌아온 후에는 날마다 선비와 친구, 형제들과 진솔한 모임을 갖고, 어머니를 섬기고 아우를 보살펴 은의를 돈독히 하며, 일가를 구제하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니, 마을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였다.
後以子用貴,贈奉訓大夫,南京兵部職方員外郎。
뒤에 아들 용이 귀하게 되어 봉훈대부, 남경 병부 직방원외랑에 추증되었다.
卒年七十九。
졸년은 일흔아홉이었다.
後孫應夏紹其業,亦以醫名世。
뒤에 손자 응하가 그 업을 이어받아 또한 의술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何欽
무슨 뜻이냐
按《懷遠縣誌》:何欽,字大敬,先世濮人,元季遷居懷遠。世業醫,邃其術,凡經診視,生死不爽。學者請究其術,欽曰:李明之、朱彥修,皆通經學古士也。汝必欲究其術,盍先讀《易》以察時變,讀《禹貢》以識九州島山川風景,博極方書,歸約於《內經》,庶可與汝言耳。聞者知其術之有自也。王文莊公鴻儒使鳳陽,採輯憲宗實錄,疾作,更數醫不愈,聞欽名延之,試脈知其病源,遂一劑而愈。文莊喜甚,因爲文紀之。欽從孫推官森,載之家乘。
《회원현지》에 따르면: 하흠(何欽)은 자가 대경(大敬)이며, 선조는 박인(濮人)이었는데, 원말에 회원(懷遠)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대대로 의업을 하여 그술에 깊었으며, 진찰하는 족족 생사를 틀리지 않았다. 배우는 자들이 그 술을 연구하기를 청하니, 흠이 말하기를: 이명지(李明之)와 주언수(朱彥修)는 모두 경학(經學)에 통달하고 옛글을 배운 선비이다. 네가 반드시 그 술을 연구하려거든, 왜 먼저 《주역(周易)》을 읽어 시세의 변화를 살피고, 《우공(禹貢)》을 읽어 구주(九州)의 산천과 풍경을 알며, 방서(方書)에 널리 통달하고, 《내경(內經)》에 귀결해야, 그제야 너와 말할 수 있겠다. 듣는 자들이 그 술의 근원을 알았다. 왕문장공(王文莊公) 홍유(鴻儒)가 봉양(鳳陽)에 사신으로 가서 헌종실록을 채집하던 중 병이 들었는데, 여러 의사를 바꿔도 낫지 않았다. 흠의 명성을 듣고 초청하여 맥을 보니 병의 근원을 알고, 한 번의 약으로 낫게 하였다. 문장공이 크게 기뻐하여, 이에 글을 지어 기록하였다. 흠의 종손(從孫) 추관(推官) 삼(森)이 가승(家乘)에 실었다.
任滐
임헌
按《旌德縣誌》:任滐,十八都人,本縣以明醫舉,成化年任太醫院。
《旌德縣誌》에 따르면: 임결은 십팔도 사람인데, 본 고을에서 명의로 천거되어 성화 연간에 태의원을 지냈다.
葉伯清
섭백청
按《天台縣志》:葉伯清,太坊人,號橘泉。
《天台縣志》에 의하면: 섭백청(葉伯清)은 태방(太坊) 사람이고, 호는 귤천(橘泉)이다.
永樂進士穎孫,習儒未就,業精岐黃,時有半仙之謠。
영락(永樂) 때 진사(進士)인 영손(穎孫)의 아들로, 유학을 익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황(岐黃)의 업을 정밀히 하여, 당시에 반선(半仙)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延今五代,其後萬春制行淳龐,醫學愈神。
지금까지 오대를 이어왔는데, 그 후손 만춘(萬春)은 행실이 순박하고 큼직하며, 의학이 더욱 신묘해졌다.
張福興 【 張榮】
장복흥 【 장영】
按《建昌府志》:張榮,號繼川,新城人。
《건창부지》에 따르면: 장영은 호가 계천이며, 신성 사람이다.
四世袓福興,成化中,以幼科薦,醫孝宗,獲殊寵,官太醫院使。
4대조 복흥은 성화 연간에 소아과로 천거되어 효종을 치료하여 특별한 총애를 받았고, 관직은 태의원사였다.
致政之日,大學士劉詡等賦詩以贈。
퇴직하는 날, 대학사 유후 등이 시를 지어 증정하였다.
榮能世其業。
장영은 그 업을 대대로 이을 수 있었다.
崇禎丙子壬午,復出米賑饑,鄧澄作仁壽扁贈之。
숭정 병자년과 임오년에 다시 쌀을 내어 기근을 구제하자, 등징이 인수(仁壽)라고 쓴 편액을 지어 증정하였다.
方叔和
방숙화
按《嚴州府志》:方叔和,建德人,精通醫術,兼讀儒書。
《嚴州府志》에 따르면: 방숙화는 건덕 사람으로, 의술에 정통하고 유서를 겸하여 읽었다.
成化間,禮部列名,欽取赴京,授御醫。
성화 연간에 예부에 이름이 올라, 어명으로 서울에 불려가 어의를 제수받았다.
適岐陽構疾,叔和診療有效,累受白金文綺之賜。
마침 기양이 병에 걸렸는데, 숙화가 진료하여 효과가 있어 여러 차례 백금과 비단을 하사받았다.
八年,陳乞歸田,賜之勑命:有曰:御醫方叔和早有醫名,旋登仕籍,歲年滋久,勞效良多,用進爾階,錫之勑命,益精乃術,毋曠攸司。
8년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여 칙명을 하사받았는데, 이르기를: 어의 방숙화는 일찍이 의명이 있었고, 곧 관직에 올랐으며, 세월이 오래되어 노고와 공효가 많으므로, 이에 너의 품계를 올리고 칙명을 주노니, 더욱 그 기술을 정밀히 하고 그 직무를 게을리하지 말라.
後卒於家。
후에 집에서 죽었다.
子百壽,國子生,早卒。
아들 백수는 국자생이었으나 일찍 죽었다.
侄孫應元承繼,領嘉靖乙卯浙江鄉薦。
조카손자 응원이 뒤를 이어 가정 을묘년 절강 향시에 합격하였다.
王觀
왕관
按《蘇州府志》:王觀,字惟顒。初金華朱彥修既得河間真傳,以授戴原禮,原禮授王仲光,觀曾袓也。
《소주부지》에 따르면, 왕관의 자는 유옹이다. 처음에 금화의 주언수가 하간의 진정한 전수를 받아 대원례에게 주었고, 대원례는 왕중광에게 주었으며, 왕중광은 왕관의 증조이다.
觀爲人高簡自愛,其醫操遠識,集奇效,先後不可勝算。
왕관은 사람됨이 고결하고 간결하며 자중하였으며, 그의 의술은 원대한 식견을 지니고 기이한 효험을 모았으니 선후로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自成化以來,江之南北,達乎京師,稱上醫者,觀爲之冠。
성화 연간 이래로 강남과 강북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상의라고 일컬어지는 자들 중에 왕관이 으뜸이었다.
賙濟廣
도움을 베푸는 것이 널리 퍼지다
按《無錫縣誌》:賙濟廣,名紘,以字行。讀書於外家金氏,攻醫,遂精其術,瘍疹婦人諸科,無不通曉,名滿吳中。
《무석현지》에 따르면, 주제광의 이름은 굉이고, 자로 통용되었다. 외가 김씨에게서 글을 배우고 의학을 연구하여 그 기술이 정밀해졌으며, 종기·발진·부인과 등 여러 과목에 모두 통달하여 오중에 명성이 가득했다.
成化中,以明醫徵至京師,引疾還。
성화 연간에 명의로 징발되어 수도에 이르렀으나, 병을 이유로 사양하고 돌아갔다.
每診人脈,豫知人生死之期。
사람의 맥을 진찰할 때마다 미리 그 사람의 생사 시기를 알았다.
子敷牧,孫萃,皆世其學。
아들 부목과 손자 췌가 모두 그의 학문을 세전으로 이었다.
劉毓
유육
按《蘇州府志》:劉毓,字德美,其先南都人,高袓季德徙吳。
《蘇州府志》에 따르면: 유육은 자가 덕미이며, 그의 선조는 남도 사람인데, 고조 계덕이 오 땅으로 이주했다.
毓少孤,鞠於外家徐氏,徐故醫藥爲業,遣學於盛寅,得其源委。
유육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외가 서씨 집에서 길러졌는데, 서씨는 본래 의약을 업으로 삼았으므로, 그를 보내어 성인에게 배우게 하여 그 학문의 원류를 얻었다.
成化間,徵爲御醫,蒙眷久之乞歸,上猶問前日白鬚老人安在?其賞識如此。
성화 연간에 불려 어의가 되었고, 오랫동안 총애를 받다가 귀향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르길 '지난날의 흰 수염 노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그가 인정받은 것이 이와 같았다.
李懋
이무
按《蘇州府志》:李懋,字思勉,與劉毓同受學於盛寅,得其傳。
《蘇州府志》에 따르면: 이무는 자가 사면인데, 유육과 함께 성인에게 배움을 받아 그 전수를 얻었다.
成化間亦徵爲御醫。
성화 연간에 또한 징발되어 어의가 되었다.
劉川
유천
按《安福縣誌》:劉川,成化間以醫聞,尤善療奇疾,篤尚誼行。其先冒鳳林羅姓,凡九世。川感羅一峯言,物無二本,遂複姓,士論韙之。子述文益深《素問》、《難經》,起諸痾廢,羅太史念庵,贈之敘。
《안복현지》에 따르면: 유천은 성화 연간에 의술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기이한 병을 치료하는 데 뛰어났고, 우정과 행실을 돈독히 하였다. 그의 선조는 봉림 나씨 성을 사칭한 지 아홉 대가 되었다. 유천이 나일봉의 말에 감동하여, 만물은 두 근본이 없다 하여 성을 되찾았고, 선비들이 이를 옳게 여겼다. 그의 아들 술문이 《소문》과 《난경》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여러 질병을 낫게 하였고, 나태사 염암이 서문을 지어 주었다.
陳光遠
진광원
按《蘇州府志》:陳光遠,不知何許人。
《蘇州府志》에 따르면, 진광원은 어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成化中僑居安亭望仙墩,醫術神異。
성화 연간에 안정 망선돈에 우거하며 의술이 신기하였다.
所善客子死痘,攜槥將之野,道遇光遠,視之曰:而子不死,吾當活之。
친한 손님의 아이가 마마로 죽어, 관을 들고 들에 장사 지내려 가는데 길에서 광원을 만나, 그가 보고 말하기를 "그대의 아이는 죽지 않았으니 내가 살리리라." 하였다.
取沙遍壅其體,命衆羅擊鉦鐃之屬,觀者如堵,以爲誕也。
모래를 가져다 아이 몸에 두루 덮고, 여러 사람에게 징과 나발 등을 치게 하니, 구경꾼이 담장처럼 둘러서서 허황되다고 여겼다.
有頃,兒忽動,旋活矣。
잠시 후 아이가 갑자기 움직이더니 곧 살아났다.
客問所以,曰:兒所苦水痘,無力自達,得土氣,乃疏金爲水,母鳴則應而出矣。
손님가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아이는 수두로 고생하며 스스로 발진을 내지 못하였는데, 흙 기운을 얻어 쇠가 물을 소통시키니, 어미가 울면 응하여 나온 것이다." 하였다.
御史行部而病,召視,長揖不拜,且索坐,既診脈,曰:大人無疾。
어사가 지방 순행하다 병이 들어, 불러 진찰하게 하니, 길게 읍하고 절하지 않으며 자리를 요구하고, 맥을 진찰한 뒤 말하기를 "대인은 병이 없습니다." 하였다.
往時病中服補中湯二十劑,灸膻中二十壯,乃瘥,皆中半而止,所以復發,滿之自愈。
지난번 병에 보중탕 20첩을 복용하고, 단중혈에 20장을 뜸뜨고는 나았는데, 모두 중간에 그쳐서 재발하였으니, 채우면 저절로 낫습니다.
御史驚以爲神,改容禮之。
어사가 놀라 신인으로 여기고, 얼굴빛을 고쳐 예를 갖추었다.
他日就訪其廬,茅舍三楹,不蔽風雨,欲爲繕修,固辭不受。
후일에 그의 집을 방문하니, 초가 세 칸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여, 수리해 주려 하였지만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鹿城富人某,父病且死,延致之。
녹성의 부자 모씨가 아버지가 병들어 죽게 되자, 그를 청하여 데려왔다.
方爲療治,聞鼓吹聲,問知納妾。
한창 치료를 하다가 풍악 소리를 듣고 물어보니 첩을 들이는 일임을 알았다.
語其子:吾意不在金帛,脫幸活君父,願以新姬相贈。
그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 뜻은 금과 비단에 있지 않소. 만약 다행히 그대 아버지를 살린다면 새 첩을 선물로 주시오." 하였다.
子唯唯,夕即出令侍寢。
아들이 응낙하고, 저녁에 곧 내보내어 시중들어 잠자리를 들게 하였다.
光遠笑舉所佩金牌示之,有不近女色四字,文且漫滅,不知年所。
광원이 웃으며 차고 있던 금패를 들어 보이니, '불근여색' 네 글자가 있고, 글자가 닳아 없어져 언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曰:吾以試子,父與妾孰重,子無恡情,可謂孝矣。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시험한 것이오. 아버지와 첩 중 어느 것이 중한지, 그대가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효성스럽다 할 수 있소." 하였다.
卒活之。
마침내 아버지를 살렸다.
所至有奇效,遺以金輒不受,後去不知所終。
가는 곳마다 기이한 효험이 있었고, 금을 주어도 받지 않았으며, 후에 떠나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鄭誼
정의(의사 이름)
按《開封府志》:鄭誼,字尚宜,業醫,療病多神異。年逾七十,著述不輟。有《續醫說》、《醫書百朋》、《杏花春曉堂方》、《方法考》諸書行於世。子名河,號星源,亦以國手名。
《개봉부지》에 따르면: 정의는 자가 상의이며, 의술을 업으로 삼아 병을 치료함에 신기한 일이 많았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저술을 그치지 않았다. 《속의설》, 《의서백붕》, 《행화춘효당방》, 《방법고》 등의 여러 책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아들 이름은 하, 호는 성원이며, 또한 국수(국가 최고의 의사)로 이름을 떨쳤다.
鄭疆
정장(鄭疆)
按《開封府志》:鄭疆,字無疆,祥符人,侍御公之弟也。
《개봉부지》에 따르면: 정강은 자가 무강이고, 상부 사람이며, 시어공의 아우이다.
幼聰穎,弱冠入庠,孝父恭兄,族黨無間言。
어릴 때 총명하고, 약관에 학교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효도하고 형에게 공손하여, 족당에서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汴城水淹,後寓居淮陰,及歸裏,以善醫聞公卿間。
변성에 물이 들어, 후에 회음에 우거하다가, 귀향하여, 의술이 뛰어나 공경 사이에 이름이 났다.
不計利,以濟人爲心,人比之范文正公雲。
이익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사람들이 범문정공에 비유하였다.
李信
이신
按《祥符縣誌》:李信,字用誠。其先世業小兒醫,趙宋時有醫皇子脛瘍者,予之官不受,賜以金鐘,懸諸門,故號金鐘李氏。
《상부현지》에 따르면: 이신, 자는 용성이다. 그의 선대는 소아의를 업으로 삼았는데, 송나라 때 황자의 정창을 치료한 자가 있어 벼슬을 주었으나 받지 않으니 금종을 하사하여 문에 걸게 하였으므로, 금종 이씨라 불렸다.
按《開封府志》,李信,字用誠,祥符人。坦易忱愨,孚於鄉里。
《개봉부지》에 따르면, 이신은 자가 용성이며 상부 사람이다. 평탄하고 쉽게 사귀며 성실하고 신중하여 고을 사람들의 믿음을 얻었다.
世居汴城,精醫術,專療治嬰孩。
대대로 변성에 살았으며, 의술에 정통하여 어린아이 치료를 전문으로 하였다.
每有請治者,無遠近晦明風雨,信皆身親歷之,一視則生死立決。
치료를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멀고 가까움, 어둡고 밝음, 바람과 비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몸소 가서 보았으며, 한 번 보면 생사를 즉시 결정하였다.
當正統、景泰、天順、成化間,縉紳先生迎致無虛日,其所報貽,腆薄不較也。
정통, 경태, 천순, 성화 연간에 사대부들이 그를 초청하여 빈 날이 없었으며, 그가 받은 보답은 후하고 박함을 따지지 않았다.
郡守括蒼金文雅重之,嘗賦安幼堂詩以贈。門懸金鐘爲號,至今汴人猶稱爲金鐘李氏雲。
군수인 괄창 김문아가 그를 중히 여겨 일찍이 안유당 시를 지어 선물하였다. 문에 금종을 달아 표지로 삼았는데, 지금까지 변 사람들이 금종 이씨라고 부른다.
子敬世其業,亦精於醫。
아들 경이 대대로 그 업을 이어받아 또한 의술에 정통하였다.
胡廷寅
호정인
按《會稽縣誌》:胡廷寅,名諲,以字行,幼業儒,長遇異人,遂精醫術。
《회계현지》에 따르면: 호정인은 이름이 인이며, 자로 행세하였고,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며, 자라서 이인을 만나 의술에 정통하게 되었다.
憲宗朝徵至京師,授御醫,加左通政,出入禁闥,恩寵罕儷。
헌종 때 조정에서 서울로 불러서 어의를 제수하고 좌통정을 더하였으며, 금궐을 출입하며 은총이 짝이 드물었다.
黃武
황무
按《山陰縣誌》:黃武,字惟周,少穎敏,有志康濟,尤善古詩文。事舉子業不就,遂精岐黃術。
《山陰縣誌》에 따르면: 황무(黃武)는 자(字)가 유주(惟周)이며,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민첩하며,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었고, 특히 고시문(古詩文)에 능했다. 과거 공부를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기황(岐黃)의술을 정밀히 익혔다.
先是越人療傷寒,輒用麻黃耗劑,武獨曰:南人質本弱,且風氣漸漓,情慾日溢,本實已撥,而攻其表,殺人多矣。
이전에 월(越) 사람들이 상한(傷寒)을 치료할 때, 자주 마황(麻黃)을 쓰는 고갈시키는 약을 사용했는데, 황무가 홀로 말하기를: 남쪽 사람은 체질이 본래 허약하고, 또 풍속이 점차 박해지고, 정욕이 날로 넘치니, 근본이 이미 상했는데, 그 표(表)를 공격하면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하고는
乃投以參、芪,輒取奇效。自是越之醫,鹹袓述之。一時名醫,如陳淮、何鑑,鹹出其門。
이에 인삼(人蔘), 황기(黃芪)를 투여하여, 곧 기이한 효험을 얻었다. 이로부터 월(越)의 의사들이 모두 그를 조술(祖述)하였다. 한 시대의 명의로서 진회(陳淮), 하감(何鑑) 같은 이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所著有《醫學綱目》數百卷、《脈訣》若干篇行於世。
저술한 책으로 《의학강목(醫學綱目)》 수백 권과 《맥결(脈訣)》 약간 편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葛林
갈림
按《杭州府志》:葛林,字茂林,錢塘人,攻小兒科,名聞京師。成化年,命內臣徐來杭驛致之,充太醫院官。時武廟方在嬰稚,皇太后保護甚周,每召供御。一夕,武廟癎疾作,中外惶怖,夜分召林,一匕而安。明日使與宴,有白金彩幣之賜。
《杭州府志》에 따르면: 葛林은 자가 茂林이고 錢塘 사람이며, 소아과를 연구하여 이름이 京師에 알려졌다. 成化 연간에 내시 徐를 명하여 杭州에서 역마로 그를 맞이하게 하여 태의원 관직을 채웠다. 당시 武廟(정덕제)가 갓 유아였는데, 皇太后가 보호하기를 지극히 하여 매번 불러 어공(御供)을 하게 하였다. 어느 날 저녁, 武廟에게 간질병이 발작하여 궁중 밖이 놀라고 두려워하였고, 밤중에 林을 부르니 한 숟가락 약으로 안정되었다. 다음 날 잔치에 참여하게 하였고, 白金과 彩幣의 하사가 있었다.
汪比部有子年二十五矣,忽患痘,而汪知醫,以爲無恙也。林視之,怫然。迨五日而足,七日而靨,至十四日而痂落。林曰:災其在彌月乎!至期而其子晏然,汪置酒高會,若以誚林者。林視其子之足底有泡,結瘢膚內,曰:籲!其百日哉!迨是日而暴歿。
汪比部에게 아들이 나이 25세였는데, 갑자기 痘(천연두)를 앓았다. 汪이 의술을 알았기 때문에 병이 없다고 여겼다. 林이 보더니 불쾌하게 여겼다. 5일째에 발이 나고, 7일째에 함몰되었으며, 14일째에 딱지가 떨어졌다. 林이 말하기를: 재앙이 그 달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되었는데도 그 아들이 평안하였다. 汪이 술자리를 벌여 큰 모임을 열어 마치 林을 비웃는 듯하였다. 林이 그 아들의 발바닥에 물집이 있어 피부 안에 흉터가 맺힌 것을 보고 말하기를: 아! 그 100일째에 일어나리라! 그 날이 되어 갑자기 죽었다.
汪以爲神,問其故。林曰:痘者,構形之餘穢也。苟有纖芒未盡,亦無生理。是疾初發自腎而不能暢,是以必死,既而流着於足底焉,以故發之緩也。汪歎服。
汪이 신묘하다고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林이 말하기를: 痘(천연두)는 형태를 이루고 남은 찌꺼기입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으면 살아날 이치가 없습니다. 이 병이 처음에 腎에서 발발했으나 순조롭게 나오지 못했기에 반드시 죽으며, 이내 흘러 발바닥에 머물렀으므로 발병이 늦어진 것입니다. 汪이 감탄하며 복종하였다.
少師楊公子當暑而驚眩,已絕,且移之木矣。林趨入曰:無傷也,亟出之!公曰:兒已噤矣,奈何劑也?林曰:予無劑也,所恃者天上雲耳。雲生而悽悽欲雨,陰氣舒而陽鬱消。吾以清利物煮水,而蒸於其下,其可瘳乎!如其法而疾愈,迨暮而兒戲於庭矣。
少師 楊의 아들이 더위에 놀라 어지러움을 겪어 이미 기절하였고, 나무판 위에 옮겨졌다. 林이 급히 들어가 말하기를: 상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꺼내시오! 公이 말하기를: 아이가 이미 입을 다물었는데, 어떻게 약을 쓰겠소? 林이 말하기를: 저는 약이 없습니다, 의지하는 것은 하늘의 구름일 뿐입니다. 구름이 생기면서 음산하게 비가 오려 하면 음기가 펴지고 양의 울체가 사라집니다. 제가 清利物로 물을 끓여 그 아래에서 찌면, 낫지 않겠습니까? 그 방법대로 하여 병이 나았고, 저물녘에는 아이가 뜰에서 놀았다.
林貌清癯骨削,而目睛烱然,其視疾得其聲色,洞若燭照,既而切脈以決死生,莫一遁也。善制方劑,其應若響。累官太醫院判。壽八十八。所著有《杏塢祕訣》一卷。
林은 얼굴이 맑고 수척하며 뼈가 드러났으나 눈동자는 밝게 빛났고, 병을 볼 때 그 소리와 색을 얻어 꿰뚫어 보는 듯하였으며, 이어 맥을 짚어 사생을 판단하여 하나도 숨지 못하였다. 방제를 잘 만들어 그 반응이 메아리와 같았다. 여러 관직을 거쳐 太醫院判에 이르렀다. 나이 88세에 죽었다. 저서로 《杏塢祕訣》 한 권이 있다.
費傑
비걸
按《山陰縣誌》:費傑,字世彥。
《山陰縣誌》에 따르면: 비걸(費傑)은 자(字)가 세언(世彥)이다.
曾大父子明爲元世醫宗,傑故以醫承其家。
증조부 자명(子明)은 원(元)나라 때 세의종(世醫宗)이 되었으므로, 걸(傑)이 의술로 가업(家業)을 계승하였다.
性古愨淳篤,邑人患劇疾,雖百里外必迎候,傑至,投一二劑輒效。
성품이 고고하고 순박하며 돈독하여, 고을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비록 백 리 밖이라도 반드시 맞이하였고, 걸이 도착하면 한두 첩을 써서 곧 효험이 있었다.
嘗設藥餌以周邑之煢獨,葬疏遠無歸者數十人,嫁外姓之孤者五人。
일찍이 약과 음식을 베풀어 고을의 외로운 이들을 구휼하였고, 소원하여 돌아갈 데 없는 수십 명을 장사 지내주었으며, 다른 성씨의 고아 다섯 명을 시집보냈다.
郡守戴琥尤重其雅誼,加賓禮焉。
군수 대호(戴琥)가 특히 그의 아름다운 우정을 중히 여겨 빈객의 예를 더하였다.
所著有《畏齋詩稿》、《名醫抄》、《經驗良方》,爲世所宗。
저술한 것으로 《외재시고(畏齋詩稿)》、《명의초(名醫抄)》、《경험양방(經驗良方)》이 있어 세상에서 존중받았다.
傑子愚,登進士,官大理評事,歷守名郡,秉節不阿。
걸의 아들 우(愚)는 진사에 올라 벼슬이 대리평사(大理評事)에 이르렀고, 명군(名郡)을 두루 지키며 절개를 지키고 아첨하지 않았다.
孝宗朝以貞諒聞,司空劉麟嘗爲愚着傳,稱愚剛方清介雲。
효종(孝宗) 조정에서 정직하고 신실함으로 알려졌으며, 사공(司空) 유린(劉麟)이 일찍이 우(愚)를 위하여 전(傳)을 지어, 우(愚)가 강직하고 청렴하고 고고하다고 칭송하였다.
按《紹興府志》:
《소흥부지》에 따르면:
費傑,字世彥,山陰人。
비걸은 자는 세언이며, 산음 사람이다.
時劉憲使患熱證,或誤投以桂、附,瀕死,
당시 유헌사가 열증을 앓았는데, 어떤 이가 잘못하여 계지와 부자를 투여하여 죽음에 이르렀다.
傑亟疏治之,乃蘇,
비걸이 급히 설사시키는 약을 써서 치료하니, 이에 소생하였다.
竟不居其功,憲使甚賢之。
끝내 그 공을 자랑하지 않으니, 헌사가 매우 현명하게 여겼다.
胡新
호신(胡新)
按《舒城縣誌》:胡新,字日新,宏治間任太醫院醫官,能詩,士林重之。
《舒城縣誌》에 따르면, 胡新은 字가 日新이고, 宏治 연간에 太醫院의 醫官을 지냈으며, 시를 잘 지어 士林에서 그를 중히 여겼다.
孫復吉
손복길
按《嘉善縣誌》:孫復吉,字見心,世習岐黃,精《內經》、《素問》、《脈訣》諸書,與薛立齋、王肯堂往復參究,互相讚歎。
《嘉善縣誌》에 따르면, 손복길(孫復吉)은 자가 견심(見心)이며, 대대로 의술(岐黃)을 익혀 《내경(內經)》, 《소문(素問)》, 《맥결(脈訣)》 등의 여러 책에 정통하였고, 설립재(薛立齋), 왕긍당(王肯堂)과 서로 의논하고 연구하며 칭찬하였다.
復吉古貌古心,鄉士大夫訂爲素心交。
손복길은 고풍스러운 외모와 마음을 가져, 고을의 사대부들이 그와 순수한 벗이 되기를 약속하였다.
求療者雖極貧,寒暑晝晦無倦,郡邑慕之,登堂旌獎,壽八十餘。
치료를 청하는 자가 아주 가난하더라도 추위와 더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고을 사람들이 그를 흠모하여 그의 집에 올라가 표창하였고, 나이가 여든이 넘도록 살았다.
次子文鋒,歲貢昌化教諭。
둘째 아들 문봉(文鋒)은 해마다 공물을 바치는 생원으로 창화(昌化)의 교유(教諭)가 되었다.
薛鎧
설개
按《吳縣誌》:薛鎧,字良武,府學諸生,精醫理,療病必本五行生剋,不按方施治。著述甚多,《保嬰撮要》,尤足爲後世法程。宏治間,徵爲太醫院,屢着奇驗。以子己,贈院使。己字新甫,尤殫精醫學,正德時選爲御醫,擢院判;嘉靖間進院使。所著有《家居醫錄》十六種。
《吳縣誌》에 따르면: 설개는 자가 양무이고, 부학의 여러 생도였으며, 의학 이치에 정통하였고,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오행의 생극에 근거하였으며, 방제에 따라 치료하지 않았다. 저술이 매우 많았는데, 《보영촬요》는 특히 후세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홍치 연간에 태의원으로 징소되었고, 여러 차례 기이한 효험을 보였다. 아들 설기가 있어 원사로 추증되었다. 설기는 자가 신보이며, 특히 의학에 정성을 다하였고, 정덕 때 어의로 선발되어 원판으로 승진하였고, 가정 때 원사로 올랐다. 저술한 것으로 《가거의록》 16종이 있다.
陳憲
진헌
按《蘇州府志》:陳憲,字文中,公賢子,治痘多效。
《蘇州府志》에 따르면: 진헌(陳憲)은 자가 문중(文中)이며, 공현(公賢)의 아들로, 마마(痘)를 치료하는 데 효험이 많았다.
有徐氏子患痘,脾泄,衆謂不治。
서씨(徐氏)의 아들이 마마를 앓고 비설(脾泄)이 있어, 여러 사람이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憲曰:非附子不療。
진헌이 말하기를: 부자(附子)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다.
投一劑,少間,再投而愈。
한 첩을 투약하니 잠시 후, 다시 투약하여 나았다.
人云錢主用寒而陳用熱。
사람들이 말하기를 전씨(錢氏)는 주로 한성(寒性) 약을 쓰고 진씨(陳氏)는 열성(熱性) 약을 쓴다고 하였다.
弟寵,字希承,宏治間召入禁典藥,上喜其恭謹,用藥神效,簡二奇方,識御寶以賜之。
아우 진총(陳寵)은 자가 희승(希承)이며, 홍치(宏治) 연간에 불러들여 금중(禁中)의 약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임금이 그의 공손하고 근신함을 기뻐하고, 약을 씀에 신기한 효험이 있어 두 가지 기이한 처방을 가려서 어보(御寶)를 찍어 그에게 하사하였다.
歷遷院使,加秩至右通政。
여러 번 옮겨 원사(院使)가 되고, 품계가 더하여져 우통정(右通政)에 이르렀다.
施仲謨 【 施廉】
시중모 【시렴】
按《無錫縣誌》:施仲謨,世業幼科。
《무석현지》에 따르면, 시중모는 대대로 소아과를 업으로 삼았다.
子中立爲太醫院醫士。
아들 시중립은 태의원 의사가 되었다.
孫澤民、潤民、濟民,始兼通朱、李之學術,遂盛行。
손자 시택민, 시윤민, 시제민에 이르러 처음으로 주진형과 이동원의 학술을 겸하여 통달하니, 마침내 성행하였다.
濟民官訓科。
시제민은 훈과 벼슬을 지냈다.
子廉,宇彥清,精脈理,每危疾,諸醫斂手,廉至輒起之。
아들 시렴, 자는 언청으로 맥리를 정밀히 하여, 위급한 병에 여러 의사들이 손을 거두어도 시렴이 이르면 바로 낫게 하였다.
讀書能詩。
글을 읽고 시를 잘 지었다.
宏治中以明醫徵至京師?不受職而還,爲碧山吟社十老之一。
홍치 연간에 명의로 징소되어 경사에 이르렀으나, 관직을 받지 않고 돌아와 벽산음사 십로의 한 사람이 되었다.
族子言諫,並以醫名,族孫教尤着。
족자 시언간도 의술로 이름을 떨쳤으며, 족손 시교가 더욱 두드러졌다.
任榮
임영(任榮)이라는 인물을 가리킵니다.
按《山西通志》:任榮,雲中世醫,有陰德,活人甚多。宏治間,年六十,無疾而終。後一年,鄉人陳守至河南,於陳州市見之。
《山西通志》에 따르면, 임영(任榮)은 운중(雲中)의 대대로 의업을 하던 의사로, 음덕이 있어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홍치(弘治) 연간에 나이 예순에 병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일 년 뒤, 같은 고향 사람 진수(陳守)가 하남(河南)에 이르러 진주(陳州) 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其曾孫服遠,幼紹袓父業。庚辰歲瘟疫大行,得疾者,親友不相訪問,染之即不起。服遠軫念之,夢袓謂曰:何不取松黃岡普濟消毒飲服之?醒覺,即檢閱,果得是方,依方投劑,身親診視,痊活人數千。
그 증손자 복원(服遠)은 어려서 조부의 업을 이었다. 경진년(庚辰年)에 온역(瘟疫)이 크게 유행하여 병에 걸린 사람은 친구나 친척도 서로 방문하지 않았고, 걸리면 즉시 일어나지 못했다. 복원이 이를 가엾게 여겨 걱정하다가 꿈에 조부가 말하기를 "어찌 송황강(松黃岡)에서 보제소독음(普濟消毒飲)을 가져다 복용하게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즉시 찾아보니 과연 그 방(方)을 얻어, 방에 따라 약을 투여하고 몸소 진찰하여 수천 명을 낫게 하였다.
人鹹以神醫誦之,遠近禮迎。子孫濟濟,皆列庠序,其世德之驗雲。
사람들이 모두 신의(神醫)라고 칭송하였고, 멀고 가까운 곳에서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다. 자손이 많아 모두 학교에 줄을 섰으니, 그 대대로 쌓은 덕의 증험(證驗)이라 하였다.
李先春
이선춘
按《山西通志》:李先春,雲中世醫,資性聰穎,博通經書,精研脈理,藥餌不拘古方,隨投輒效。常懷濟人利物之心,無論遠近貧富,凡有求者,莫不應赴,全活甚衆。當路諸縉紳,延請無虛日。先春處之無德色,人呼爲李仙。
《山西通志》에 따르면: 이선춘은 운중의 세의로, 자질이 총명하고 경서에 널리 통달했으며, 맥리를 정밀히 연구하여 약제를 고방에 구애받지 않고 투여하면 곧 효험이 있었다. 항상 사람을 구하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품어, 멀고 가까움과 가난하고 부유함을 가리지 않고, 구하는 자가 있으면 응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살려낸 이가 매우 많았다. 당시의 여러 사대부들이 연일 그를 초청했으나, 이선춘은 이에 대해 덕을 내세우는 기색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이선을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