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今图书集成医部全录卷五百十二

古今圖書集成醫部全錄卷五百十二
고금도서집성 의부전록 권 오백십이
醫術名流列傳
의술 명류 열전
明
밝다
凌雲
능운
按《明外史》本傳:凌雲,字漢章,歸安人。
《明外史》本傳에 따르면:凌雲은 자는 漢章이며 歸安 사람이다.
爲諸生,棄去,北遊泰山古廟前,有病人氣息垂絕,雲嗟嘆久之。
생원이 되었으나 버리고 떠나 북쪽으로 泰山을 유람하던 중 옛 절 앞에 병이 들어 숨이 끊어지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凌雲이 한참 동안 탄식하였다.
一道人忽問曰:汝欲生之乎?曰:然。
한 도사가 갑자기 물었다. “너는 그를 살리고 싶으냐?” “그렇습니다.”
道人針其左股,立蘇。
도사가 그의 왼쪽 넓적다리에 침을 놓자 곧 소생하였다.
語云曰:此人毒氣內侵,非死也,毒散自生耳。
도사가 凌雲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독기가 안으로 침입한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니, 독이 흩어지면 저절로 살아날 것이다.”
因授以針,雲拜受之。
이에 침을 주며 가르쳐주었고, 凌雲은 절하고 받았다.
爲人治疾無不效。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함에 효험이 없는 경우가 없었다.
里人嗽不止,絕食五日,衆醫以爲虛,投補劑愈甚。
마을 사람이 기침을 멈추지 못하고 닷새 동안 음식을 끊었는데, 여러 의사들이 허증이라고 여겨 보약을 투여하자 더욱 심해졌다.
雲曰:此寒溼積也,穴在頂,針之必暈絕,逾時始蘇。
凌雲이 말했다. “이는 한습이 쌓인 것이다. 혈자리는 정수리에 있으니, 침을 놓으면 반드시 어지러워져 깨어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소생할 것이다.”
命四人分牽其發,使勿傾倒,乃針,果暈絕,家人皆哭,雲言笑自如。
네 사람을 시켜 각각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쓰러지지 않게 한 뒤 침을 놓았더니, 과연 혼절하였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울었으나 凌雲은 말하고 웃기를 평소와 같이 하였다.
頃之,氣漸舒,復加補,始出針,嘔積痰鬥許,病即除。
잠시 후 기운이 점차 펴지자 다시 보법을 더한 후에야 침을 빼냈는데, 쌓인 가래를 한 말쯤 토하자 병이 곧 제거되었다.
有男子病後舌吐。
어떤 남자가 병을 앓은 후에 혀를 내밀었다.
雲兄亦知醫,謂雲曰:此病後近女色太早也。
凌雲의 형도 의술을 알아 凌雲에게 말했다. “이는 병 후에 여색을 너무 일찍 가까이했기 때문이다.”
舌者心之苗,腎水竭不能制心火,病在陰虛。
혀는 마음의 싹이니, 신수의 물이 마르면 심화를 제어하지 못하며, 병은 음허에 있다.
雲曰:然。
凌雲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兄曰:其穴在左股太陽,是當以陽攻陰。
형이 말했다. “그 혈자리는 왼쪽 넓적다리의 태양에 있으니, 이는 마땅히 양으로 음을 공격해야 한다.”
雲曰:然。
凌雲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如其穴針之,舌吐如故。
그 혈자리에 따라 침을 놓았으나 혀가 그대로 나와 있었다.
兄茫然自失。
형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스스로 잃은 바가 있었다.
雲曰:此知瀉而不知補也。
凌雲이 말했다. “이는 사하는 것은 알았으나 보하는 것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補碼劑,舌漸復。
보하는 침을 더하자 혀가 점차 회복되었다.
故淮陽王病風三載,請於朝,召四方名醫治,不效。
옛날 淮陽王이 풍병을 앓은 지 3년이 되어 조정에 요청하여 사방의 명의들을 불러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雲投以針,不三日行步如故。
凌雲이 침을 놓아주니 사흘이 못 되어 걸음걸이가 예전과 같아졌다.
金華富家婦,少寡,慾火熾,失心,始見屋柱,走抱之;久之,見帚杖諸物,即以兩手爬之;甚至裸形野立。
金華의 부잣집 부인이 젊어서 과부가 되어 욕정이 왕성해져 정신이 나갔다. 처음에는 집 기둥을 보고 달려가 껴안았고, 오래되면 비나 지팡이 같은 물건들을 보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심지어는 알몸으로 들에 서 있기도 하였다.
雲視之曰:是謂喪心。
凌雲이 보고 말했다. “이는 이른바 상심(喪心)이다.”
吾針後須蔽以帳,其心正,當知恥。
내가 침을 놓은 후에는 장막으로 가려야 하니, 그 마음이 바르면 마땅히 부끄러움을 알게 될 것이다.
乃令二人堅持之,用涼水噴面,針其心,次補泄並施,不踰時,狂疾頓除。
이에 두 사람을 시켜 단단히 붙잡게 하고 냉수로 얼굴을 뿌린 후, 그 마음에 침을 놓고 다음으로 보법과 사법을 함께 시행하니 한때를 넘기지 않고 미친 병이 곧 없어졌다.
屬其家人,慰以好言,釋其愧恥,病遂不發。
그 집안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좋은 말로 위로하게 하고 그 부끄러움을 풀어주니, 병이 끝내 발병하지 않았다.
吳江貴家婦臨產,胎不下者三日,呼號求死。
吳江的一位貴族婦人臨產,胎兒三天都沒能產下,大聲呼叫求死。
雲針刺其心,針出,兒應手下。
淩雲用針刺她的心口,針拔出後,胎兒隨即產下。
主人喜問故?
主人高興地問原因?
曰:此抱心生也。
答道:這是胎兒手抱心所致。
針出則手舒,手舒則胎下。
針拔出後手就鬆開,手鬆開後胎兒就產下。
取兒掌視之,有針痕。
拿過胎兒手掌來看,有針刺的痕跡。
孝宗聞雲名,召至京,命太醫官出銅人,蔽以衣而試之,所刺無不中,乃授御醫。
孝宗聽說淩雲的名聲,召他到京城,命令太醫官拿出銅人,用衣服遮蓋來測試他,所刺的部位沒有不中的,於是任命他為御醫。
年七十七,卒於家。子孫傳其術。
七十七歲時,在家中去世。子孫傳承他的醫術。
海內稱針法者,曰歸安淩氏。
天下稱道針法的人,都說歸安淩氏。
按《浙江通志》:
《浙江通志》에 의하면:
凌漢章,名雲,號臥巖,歸安文學,
능한장(凌漢章)은 이름이 운(雲)이고, 호는 와암(臥巖)이며, 귀안(歸安)의 문학(文學)이다.
以孝感遇泰山異人,
효성(孝誠)으로 태산(泰山)의 이인(異人)을 만나게 되어,
授明堂針術,
명당침술(明堂針術)을 전수받았다.
治秦藩疾得瘳,
진번(秦藩)의 병을 치료하여 나았다.
孝宗聞之,延見聖躋殿,賜太醫院御醫。
효종(孝宗)이 이를 듣고 성제전(聖躋殿)에서 불러들여 만나보고 태의원 어의(太醫院御醫)를 하사하였다.
年七十有七,無疾而終。
나이 일흔일곱에 병 없이 세상을 마쳤다.
生平輕財好義,死之日家無餘資。
평소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의로움을 좋아하여, 죽던 날 집에 남은 재산이 없었다.
聶瑩
섭영
按《浙江通志》:聶瑩,得湖州凌漢章針法,針至病起,雖厚衣可按穴而定,不以錢帛介意,人稱神醫,爭迎之。
《浙江通志》에 의하면: 섭형이 호주 능한장의 침법을 얻어, 침을 놓으면 병이 낫고, 두꺼운 옷을 입어도 혈을 짚어 정할 수 있었으며, 돈이나 비단에 개의치 않아 사람들이 신의라 칭하며 다투어 맞이하였다.
袁仁
원인
按《嘉興府志》:袁仁,字良貴。父祥,袓灝,皆有經濟實學,至仁愈邃,謂醫賤業可以藏身濟人,遂隱於醫。
《嘉興府志》에 따르면: 원인(袁仁)은 자가 양귀(良貴)이다. 아버지는 상(祥), 할아버지는 호(灝)인데, 모두 경세제민의 실학을 지녔다. 원인에 이르러 더욱 깊어져, 의업이 천한 직업이나 자신을 숨기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여겨, 의술에 은둔하였다.
崑山魏校疾,召仁,使者三至弗往,謝曰:君以心疾苦,當咀仁義,炮禮樂,以暢君之精神,不然,雖十至無益也。
곤산(崑山)의 위교(魏校)가 병이 들어 원인을 불렀는데, 사자가 세 번이나 갔으나 가지 않았다. 사양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마음의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니, 마땅히 인의(仁義)를 씹고 예악(禮樂)을 달여서 그대의 정신을 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비록 열 번 와도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
卒之日,沐浴更衣,呼筆題詩,有附贅乾坤七十年,飄然今喜謝塵緣之句,投筆而逝。
죽는 날,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붓을 불러 시를 지었는데, '부착된 살처럼 건곤에 칠십 년, 표연히 이제 기쁘게 속세 인연을 하직하네'라는 구절이 있었고, 붓을 던지고 세상을 떠났다.
高昶
고창
按《青州府志》:高昶,益都金嶺鎮人,性醇厚正直,以濟利存心。
《청주부지》에 따르면: 고창은 익도 금령진 사람으로, 성품이 순후하고 정직하며, 구제하고 이익을 주는 것을 마음에 두었다.
宏治間,傳異人醫術,精診視察,故辨證出奇,天下讓能,羣醫莫及,時號爲盧扁。
홍치 연간에, 뛰어난 사람에게서 의술을 전수받아, 진찰과 관찰이 정밀하였고, 그래서 변증이 기이하여, 천하가 그의 능력에 양보하였고, 여러 의사들이 미치지 못하여, 당시에 '노편'이라 불렀다.
尤專傷寒,鈐法定脈,不差時刻,所全活者不可勝計,抱疾求療者踵門無虛日。
특히 상한에 전문화되어, 검법으로 맥을 정하여, 시각의 오차가 없었으며, 살려낸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병을 가지고 치료를 구하는 자가 문을 따라 빈 날이 없었다.
尤注念貧困家,務與善藥,未嘗有責報心。
특히 가난한 집을 염려하여, 좋은 약을 주는 데 힘썼으며, 일찍이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
行年七十餘卒,逮屬纊,問藥者猶在門也。
나이 일흔이 넘어 죽었는데, 임종에 이르러서도 약을 묻는 자가 문에 있었다.
所著有《鈐法書》一卷。
저술한 바에 《검법서》 한 권이 있다.
趙鏜
조당
按《青州府志》:越鏜,益都人,精眼科,人以趙光明稱之。
《청주부지》에 따르면: 월당은 익도 사람으로, 안과에 정통하여 사람들이 조광명이라고 불렀다.
少問其父曰:開光砭瞖,孰愈起死回生?治療一端,孰愈保安全體?父大異之,令窮研醫典。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묻기를: 눈을 뜨게 하고 눈가림을 치료함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나은가? 치료의 한 부분이 온전한 몸을 보전하는 것보다 나은가? 아버지가 매우 기이하게 여겨, 의전을 깊이 연구하게 하였다.
遂潛心體驗,已而洞豁至理,至對脈察疾,應驗如神。尤矢心施藥,所全活者甚衆。
이에 마음을 가라앉혀 체험하여, 이내 진리를 환히 깨달았고, 맥을 보고 병을 살핌에 신통하게 맞았다. 특히 마음을 다하여 약을 베풀어, 살린 자가 매우 많았다.
一日,夢神人告之,曰:扶危濟顛,陰功陽報,金紫之貴也。
하루는 꿈에 신인이 그에게 말하기를: 위급한 이를 돕고 넘어진 이를 구제함은 음덕에 양보(陽報)를 받아, 금자(金紫)의 귀함이 있다 하였다.
未幾,朝命冊封長女爲衡藩新樂王妃,恩授西城兵馬指揮,始徵前夢。
얼마 후, 조정에서 명하여 큰딸을 형번 신락왕비로 봉하고, 은혜로 서성 병마지휘를 제수하니, 비로소 앞의 꿈이 징험되었다.
李玉
이름
按《明外史》凌雲傳:有李玉者,官六安衛千戶,善鍼灸。
《明外史》의 凌雲傳에 따르면, 李玉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이 六安衛의 千戶였고 鍼灸를 잘하였다.
或病頭痛不可忍,雖震雷不聞。
어떤 이가 머리가 아파 견딜 수 없고, 천둥소리도 들리지 않는 병이 들었다.
玉診之曰:此蟲啖腦也。
李玉가 진맥하고 말했다: "이는 벌레가 뇌를 먹는 것입니다."
合殺蟲諸藥爲末,吹鼻中,蟲悉從眼耳口鼻出,即愈。
살충하는 여러 약들을 합쳐 가루로 만들어 코 속에 불어넣으니, 벌레가 모두 눈·귀·입·코에서 나와 곧 나았다.
有跛人扶雙杖至,玉針之,立去其杖。
다리를 저는 사람이 두 지팡이를 짚고 왔는데,李玉가 침을 놓자 곧 지팡이를 버렸다.
兩京號神針。
두 서울(南京과 北京)에서 神針이라 일컬었다.
李玉兼善方劑。
李玉는 또한 방제(처방)를 잘하였다.
或病痿,玉察諸醫之方,與治法合而不效,疑之,
어떤 이가 위증(痿證)이 들었는데,李玉가 여러 의사의 처방을 살펴보니 치료법에 부합하나 효험이 없어 의심하였다.
忽悟曰:藥有新陳則效有遲速,此病在表而深,非小劑能愈。
문득 깨달아 말했다: "약은 새것과 묵은 것이 있으면 효험에 빠르고 더딤이 있고, 이 병은 표(表)에 있으면서도 깊어서 적은 양의 약으로는 낫지 않습니다."
乃熬藥二鍋,傾缸內稍冷,令病者坐其中,以藥澆之,踰時汗大出立愈。
이에 약을 두 솥 달여 항아리에 부어 약간 식힌 후, 병자로 하여금 그 속에 앉게 하고 약을 끼얹으니, 한때가 지나 땀이 많이 나고 곧 나았다.
按《六安州志》:李玉,字成章,本衛千戶,善騎射,尤精於醫,鍼灸所施,應手而愈。
《육안주지》에 따르면: 이옥, 자는 성장, 본래 위(衛)의 천호였으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특히 의술에 정밀하여 침과 뜸을 시술하면 손을 대자마자 곧 낫게 했다.
一婦有孕而嘔血數升,幾死。
한 부인이 임신 중에 피를 토하기를 몇 되나 하여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玉診其脈曰:此子癎也。
이옥이 그 맥을 진찰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자간(子癎)입니다.
依方治之,加竹瀝而愈,兩都號曰神針李。
처방에 따라 치료하면서 죽력(竹瀝)을 더하여 낫게 하였으므로, 양도(兩都)에서 그를 신침 이(神針李)라고 불렀다.
吳傑
오걸
按《明外史》本傳:吳傑,武進人。
《明外史》本傳에 따르면, 오걸은 무진 사람이다.
宏治中,以善醫徵至京師,下禮部試,故事高等,入御藥房,次入太醫院,下者遣還。
홍치 연간에, 의술이 뛰어나 조정에 부름을 받아 서울에 이르러, 예부 시험을 치르게 하였는데, 전례로 높은 등급은 어의방에 들어가고, 그 다음은 태의원에 들어가며, 낮은 자는 돌려보냈다.
時傑在高等,而當遣者甚衆。
그때 오걸은 고등에 있었으나, 돌려보내야 할 사람이 매우 많았다.
傑言於尚書曰:國家三四十載纔一徵醫,若等幸被徵,又待次都下十餘載,一旦遣還,誠流落可憫,傑願辭御藥房,與諸人同入院。
오걸이 상서에게 말하기를, 나라에서 삼사십 년에 한 번 의사를 부르는데, 이들이 다행히 부름을 받았고, 또한 서울에서 차례를 기다린 지 십여 년인데, 하루아침에 돌려보내면 진실로 유락하여 가엽습니다. 오걸은 원컨대 어의방을 사직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태의원에 들어가겠습니다.
尚書義而許之。
상서가 의롭게 여겨 이를 허락하였다.
正德中,武宗得疾,傑一藥而癒。
정덕 연간에, 무종이 병을 얻자 오걸이 한 첩의 약으로 낫게 하였다.
帝喜甚,即擢御醫。
황제가 매우 기뻐하며 즉시 어의로 발탁하였다.
一日,帝射獵,還憊甚,感血疾,服傑藥即愈。
하루는 황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매우 피곤해졌는데, 혈병에 걸렸다. 오걸의 약을 복용하고 곧 나았다.
進一官,賜彪虎衣。
관직을 한 등급 올리고 범과 호랑이 무늬 옷을 하사하였다.
嘗幸虎圈,虎騰而驚,傑療之,立愈。
일찍이 호랑이 우리에 행차하였는데, 호랑이가 뛰어올라 놀라게 하였다. 오걸이 치료하여 곧 나았다.
再進一官,賚金幣。
다시 한 등급 올리고 금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頃之,試馬腹痛,又以傑藥而癒,賚繡春刀及銀幣。
얼마 후, 말을 타보려다 배가 아팠는데, 또 오걸의 약으로 나았다. 수춘도와 은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帝每行幸,必以傑從。
황제가 행차할 때마다 반드시 오걸을 따르게 하였다.
積至太醫院使。
여러 번 승진하여 태의원사에 이르렀다.
帝欲南巡,傑諫曰:聖躬未安,不宜遠涉。
황제가 남쪽 순행을 하려 하자 오걸이 간언하기를, 성상의 몸이 편안하지 않으니 멀리 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帝怒,叱左右掖出。
황제가 노하여 좌우를 꾸짖으며 끌어내라고 하였다.
及駕還,漁於清江浦,溺而得疾。
수레가 돌아올 즈음, 청강포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물에 빠져 병을 얻었다.
至臨清,急遣使召傑。
임청에 이르러 급히 사자를 보내 오걸을 불렀다.
及至,疾已深,遂扈歸通州。
도착했을 때는 병이 이미 깊었고, 마침내 통주로 모시고 돌아갔다.
時江彬握兵居左右,慮帝晏駕,己得禍,力請幸宣府。
당시 강빈이 병권을 잡고 좌우에 있었는데, 황제가 승하할까 두려워 자신이 화를 입을까 하여 힘껏 선부로 행차할 것을 청하였다.
傑憂之,語近侍曰:痰亟矣,僅再還大內,倘至宣府,有不諱,吾輩寧有死所乎?
오걸이 이를 걱정하여 근시에게 말하기를, 담이 위급합니다. 겨우 두 번 대내로 돌아왔는데, 만약 선부에 이르러 불운이 있으면 우리들이 어찌 죽을 곳이 있겠습니까?
近侍懼,百方勸帝,始還京。
근시가 두려워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황제를 권하여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
甫還而帝崩。
막 돌아왔는데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
彬伏誅,中外晏然。
강빈이 주살되어 조정과 민간이 편안하였다.
不然,變且不測。
그렇지 않았더라면 변고가 헤아릴 수 없을 뻔하였다.
未幾,傑致仕。
얼마 지나지 않아 오걸이 벼슬을 그만두었다.
子希周進士,戶科給事中。希曾舉人。
아들 희주는 진사로 호과급사중이었으며, 희증은 거인이었다.
按《武進縣誌》:吳傑,字士奇,宏治間以名醫徵至京師,一時所徵諸醫。無不望風下之。
《武進縣誌》에 따르면: 오걸(吳傑)은 자(字)가 사기(士奇)이며, 홍치 연간에 명의로 징집되어 서울에 이르렀는데, 당시에 징집된 여러 의사들이 모두 그의 풍모에 눌려 따랐다.
都御史王鉞方鎮大同,聞傑名,以調治邊軍請,臺省爭言醫如傑當在供奉,不宜出之外地。
도어사(都御史)王鉞이 대동(大同)을 진수(鎭守)하고 있을 때 오걸의 명성을 듣고 변경 군대를 치료하기 위해 그를 청하자, 대성(臺省)에서 다투어 말하기를 "의사가 오걸과 같다면 마땅히 공봉(供奉)에 있어야 하지, 외지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下禮部試之,果無踰傑者,宜入御藥房。
예부(禮部)로 내려서 시험하게 하였는데, 과연 오걸보다 나은 자가 없어 마땅히 어약방(御藥房)에 들게 하였다.
以同徵者多遣還,願貶己秩留之。
함께 징집된 사람들을 많이 돌려보내면서, 자신의 품계를 낮추어 그들을 남게 하기를 원하였다.
久之,掌院者竟薦入御藥房。
오래 지나, 장원자(掌院者)가 마침내 그를 천거하여 어약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上病喉甚危,按名召傑,進上清丸一服而愈,自是得幸。
임금이 목이 아파 매우 위독하여, 이름을 적어 오걸을 불렀다. 오걸이 상청환(上清丸) 한 첩을 올리니 나았고, 이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一日,上射獵還,口出血,傑進犀角湯,愈。
하루는 임금이 사냥하고 돌아와 입에서 피가 나므로, 오걸이 서각탕(犀角湯)을 올려 나았다.
後以幸虎圈,虎驚傷,又試馬御馬監腹卒痛,傑療之無不立愈者。
후에 호랑이 우리에 행차하여 호랑이가 놀라 상처를 입히고, 또 어마감(御馬監)에서 말을 시험하다가 배가 갑자기 아파도 오걸이 치료하면 즉시 낫지 않는 것이 없었다.
每愈,輒進一官,且有殊錫。
나을 때마다 곧 관직 한 등급을 올려주고 특별한 하사도 있었다.
上所遊幸,必以傑從,時侍上臥起,左右撫摩,有不以屬之近幸,而屬之傑者。
임금이 행차할 때마다 반드시 오걸을 따르게 하였고, 때로는 임금의 잠자리와 기상을 모시며 좌우에서 어루만져 주었는데, 가까이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기지 않고 오걸에게 맡기는 일이 있었다.
至欲以禁衛銜授傑,傑固辭乃止。
심지어 금위(禁衛)의 직함을 오걸에게 주려 하였으나, 오걸이 굳이 사양하므로 그만두었다.
上南巡,獨不以隨,則以傑力諫,失上意也。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할 때 오직 오걸만 데리고 가지 않았는데, 이는 오걸이 힘껏 간언하여 임금의 뜻을 거스른 까닭이었다.
既而駕還清源,病甚,夢傑,亟召之。
이윽고 행차가 청원(清源)으로 돌아오는데 병이 심해져 꿈에 오걸을 보고 급히 불렀다.
因扈從還通州時,江彬語無不入,則力促大閹請還,上得崩於大內,彬得就擒,傑有力焉。
그리하여 통주(通州)로 호종(扈從)하여 돌아올 때에 강빈(江彬)의 말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자, 오걸이 힘껏 대환(大閹)을 재촉하여 환궁을 청하였고, 임금이 대내(大內)에서 붕어(崩御)하고 강빈이 체포될 수 있었던 것은 오걸의 힘이 있었다.
傑善診脈,用藥以脈,不主古方,甚有若與證相盩,而卒無不效。
오걸은 진맥을 잘하였고, 맥에 따라 약을 썼으며, 고방(古方)을 주로 하지 않았다. 증상과 어긋나는 듯한 경우도 있었으나 결국 효험이 없지 않았다.
及其進御,則不得不用古方,亦無不效者。
그러나 어전에 올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고방을 사용해야 했는데, 또한 효험이 없는 경우가 없었다.
年七十八卒。
나이 78세에 졸하였다.
卒時了了,疑有道術雲。
죽을 때 분명하여 도술(道術)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고 한다.
樓英
누영
按《紹興府志》:樓英,蕭山人,字全善,精於醫,居元度巖,有《仙岩文集》二卷,又着《氣運類注》四卷、《醫學綱目》四十卷。
《紹興府志》에 따르면:누영은 소산 사람이니, 자는 전선이며, 의술에 정통하고 원도암에 살았다. 《선암문집》 2권이 있고, 또 《기운류주》 4권과 《의학강목》 40권을 저술하였다.
林彥圭
임언규
按《福寧州志》:林彥圭,杯溪人,工岐黃之術,以活人爲心,不計利。
《복녕주지》에 따르면: 임언규는 배계 사람으로, 기황의 술[의술]에 능하였으며, 사람을 살리는 것을 마음에 두어 이익을 따지지 않았다.
其子思齊,孫璧,皆得禁方,稱世醫雲。
그의 아들 사제와 손자 벽이 모두 금방(비전의 처방)을 얻어 세의(대대로 의술을 행하는 집안)라 일컬어졌다.
丁杞
정기
按《福寧州志》:丁杞,號種松子,世業醫,診脈能決生死。知州李時子病劇,醫者皆袖手,得杞劑良已。
《복녕주지》에 따르면: 정기(丁杞)는 호가 종송자(種松子)이며, 대대로 의업을 하였고, 맥을 짚어 생사를 판단할 수 있었다. 지주(知州) 이시(李時)의 아들이 병이 위독하여 의사들이 모두 손을 놓았는데, 정기의 약을 얻자 잘 낫게 되었다.
正德六年,州大疫,知州萬廷彩命施藥於申明亭,存活甚衆。
정덕(正德) 6년(1511년)에 주에 큰 역병이 돌자, 지주 만정채(萬廷彩)가 신명정(申明亭)에서 약을 나누어 주게 하여 살아난 사람이 매우 많았다.
張世華
장세화
按《蘇州府志》:張世華,字君美,其先汴人。
《소주부지》에 따르면: 장세화는 자가 군미이며, 그의 선조는 변량 사람이다.
宋南渡時,有彥者以防禦使擁兵衛吳,遂家焉。
송나라가 남쪽으로 도강할 때, 방어사로서 병력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지킨 언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마침내 그곳에 정착했다.
三傳至端禮,始以醫名。
삼대를 전하여 단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逮元善進爲保衝大夫。
원선에 이르러 보충대부로 승진했다.
曾大父縉尤著名,嘗爲周文襄所禮重。
증조부 진은 더욱 유명하여, 일찍이 주문양에게 예우 중하게 대우받았다.
父頤,字養正,能豫刻年月,決人生死。
아버지 이는 자가 양정이며, 미리 연월을 새겨 사람의 생사를 판단할 수 있었다.
世華嘗就徵,從使西南諸國,軍士行道病者,多賴全活。
세화는 일찍이 소집되어 사신을 따라 서남 여러 나라에 갔는데, 군사들이 길에서 병들면 많이 의지하여 살아났다.
正德間,吳大疫,世華攜藥囊於通衢,隨請而應。
정덕 연간에 오 지방에 큰 역병이 돌자, 세화는 약 주머니를 가지고 큰길에 나가 청하는 대로 응했다.
有酬之金帛,笑而謝之。
금과 비단으로 보답하는 이가 있어도 웃으며 사양했다.
子承宗,孫學禮,並以保御勞擢官。
아들 승종과 손자 학례는 모두 보위와 방어의 공로로 관직에 발탁되었다.
汪宦
왕환
按《祁門縣誌》:汪宦,居三遷堂,精通醫理,善著書,有《醫學質疑》若干卷。
《祁門縣誌》에 따르면: 汪宦은 三遷堂에 살며 醫理에 精通하고 著書를 잘 하였으며, 《醫學質疑》 若干 卷이 있다.
趙銓
조전
按《廬陵縣誌》:趙銓,字仲衡,與羅文莊善,贈以古風,稱爲石亭子是也。高唐里人。精岐黃家言,雖爲制舉業不廢,以諸生入監貢。仕靈壽、霍山兩邑夏貴溪,大拜入京,取道吳城,夜泊,更闌人靜,忽擁騶傳呼,聲出空中,雜以絲竹金革,滿驛交喧,俱以爲宰相天人當有異,乃明下隱隱有宣言藥王爺爺到。聞於貴溪,使人詢:藥王何人?曰:姓趙者,已而寂然。乃銓舟至,貴溪有心物色之,問來舟爲誰?曰:秀才姓趙者。相國即月下索趙生見,倒屣與語,大加賞異,即攜與入京。
《廬陵縣誌》에 따르면: 조전(趙銓)은 자가 중형(仲衡)이며, 나문장(羅文莊)과 사이 좋게 지내 그가 고시를 지어 주며 석정자(石亭子)라고 불렀다. 고당리(高唐里) 사람이다. 의술(岐黃의 말)에 정통하였고, 과거 공부를 하면서도 의학을 그만두지 않아, 생원(諸生)으로서 국자감(監貢)에 들어갔다. 영수(靈壽)와 곽산(霍山) 두 고을에서 관직을 지냈다. 하귀계(夏貴溪)가 크게 벼슬하여 입경(入京)할 때 오성(吳城)을 경유해 밤에 배를 대었는데, 깊은 밤 인적이 끊기자 갑자기 가마를 호위하며 전령하는 소리가 허공에서 나고, 관현악과 금두(金革) 소리가 섞여 역참 전체에 요란하게 울렸다. 모두 재상은 천인이니 응당 이상한 일이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명(明) 아래에서 은은히 '약왕 할아버지 오신다(藥王爺爺到)'는 말이 들렸다. 귀계(貴溪)가 듣고 사람을 시켜 묻기를 '약왕이 누구인가?' 하니, '성 조(趙)씨인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곧 조용해졌다. 마침 조전의 배가 도착하였는데, 귀계가 마음속으로 물색하여 오는 배가 누구인지 묻자, '성 조씨인 수재(秀才)입니다'라고 하였다. 상국(相國)이 곧 달빛 아래에서 조생(趙生)을 불러 보고,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와 이야기하며 크게 칭송하고 기이하게 여겨 곧 데리고 입경하였다.
會世廟不豫,大醫束手,貴溪及大臣公卿鹹舉銓入診視,不終劑而龍體大安。上既龍性,加不豫,益稍不受嬰拂,太醫待詔者入,未診視,而得罪杖殺者再三。銓入見,龍袍垂地,跽不得前。上曰:可前?銓曰:龍袍在地上。上乃喜笑曰:會講話,便知醫。乃手舉起龍袍以前。乃知前待詔對以龍袍在地下,是以觸上忌耳。銓既稱旨,朝廷官之而就令焉。銓意不欲久仕,解組歸,惟著書修真而已。有乞醫者即赴之,不責人金帛,而施藥不怠。銓診太素有神。清江蕭公須山病篤,銓往,適病者假寐,銓先診其長子,診畢,取酒相歡曰:子脈無憂,何妨乎父壽?投一劑而愈。
마침 세묘(世廟, 세종)가 편찮으셔서 태의(大醫)들이 어쩌지 못하자, 귀계와 대신 공경들이 모두 조전을 천거하여 진찰하게 하였는데, 한 첩을 다 쓰기도 전에 용체(龍體)가 크게 편안해졌다. 상(上)이 본래 용(龍)의 성품(성격이 까다로움)을 지니고, 병환까지 더해져서 조금도 거스름을 받아들이지 않아, 태의로서 기다려 부름을 받는 자가 들어가 진찰하기도 전에 죄를 얻어 곤장 맞아 죽은 자가 여러 번이었다. 조전이 들어가 뵈니, 용포(龍袍)가 땅에 끌려서 꿇어앉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상이 말씀하시길: '나아올 수 있느냐?' 조전이 아뢰길: '용포가 땅에 있습니다.' 상이 기뻐하며 웃으시길: '말을 잘하니 의술을 알겠다.' 하시고 손으로 용포를 들어 올려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다. 이에 이전에 부름을 받은 태의가 '용포가 땅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상의 꺼림을 촉발했음을 알았다. 조전이 뜻에 맞자, 조정에서 그에게 관직을 주고 명에 따르게 하였다. 조전은 뜻이 오래 벼슬하기에 있지 않아, 인끈을 풀고 돌아와 오직 책을 짓고 수련(修真)할 뿐이었다. 의원을 구하는 자가 있으면 곧 가서, 사람에게 금과 비단을 요구하지 않고 약을 베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전의 태소(太素) 맥진(診脈)은 신묘함이 있었다. 청강(清江) 소공(蕭公) 수산(須山)이 병이 위독하였는데, 조전이 가니 마침 병자가 졸고 있었다. 조전이 먼저 그 장자를 진맥하고 진찰을 마친 뒤, 술을 가져다 함께 즐기며 가로되: '그대의 맥(脈)은 근심이 없으니, 어찌 아버님의 수명을 해치겠습니까?' 한 첩을 투여하여 낫게 하였다.
方出都門時,見一死者,已含斂,方入棺,銓下馬啓其衣衾,令取沸水下刀圭灌之,死者立蘇。或以問銓,銓曰:吾過其旁,知其無死氣。若有死氣,十丈內可決,忍妄啓其衣衾耶?其神類若此。銓臨終無病,腹中閣閣作聲,笑曰:龍吟虎嘯,風雲慶會,吾當赴之。有頃,異香滿室,見頂上一道光彩,冉冉而上,而銓坐逝矣。經日如生,舉棺時,舁者覺輕虛若無七尺身者,或傳以爲尸解雲。銓所著有《春風堂集》、《石亭醫案》、《岐黃奧旨》、《諸家醫斷》、《太素脈訣》、《體仁彙編》。
막 도성문을 나설 때, 한 죽은 사람을 보았는데 이미 입에 구슬을 물리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으려 하였다. 조전이 말에서 내려 그 옷과 이불을 열고, 끓는 물에 한 숟갈의 가루 약을 타서 부어 넣게 하니, 죽은 사람이 곧 살아났다. 어떤 이가 조전에게 묻자, 조전이 가로되: '내가 그 곁을 지나며 그에게 사기(死氣)가 없음을 알았다. 만약 사기가 있다면 십장(十丈) 안에서도 판단할 수 있거늘, 어찌 함부로 그 옷과 이불을 열었겠는가?' 그 신통함이 이와 같았다. 조전이 임종할 때에 병이 없었는데, 배 속에서 꼴깍꼴깍 소리가 나며 웃으며 말하기를: '용이 우는가 호랑이가 포효하는가, 풍운(風雲)이 경사롭게 모였으니, 내가 마땅히 그곳으로 가리라.' 잠시 후,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정수리 위에 한 줄기 광채가 아른아른 올라가는데, 조전은 앉아서 세상을 떠났다. 하루가 지나도 산 사람 같았고, 관을 들어 옮길 때 메는 이들이 가볍고 텅 빈 듯하여 일곱 자(尺)의 몸이 없는 것 같이 느꼈다. 혹 전하기를 시해(尸解)라 한다 하였다. 조전이 저술한 것으로는 《춘풍당집(春風堂集)》, 《석정의안(石亭醫案)》, 《기황오지(岐黃奧旨)》, 《제가의단(諸家醫斷)》, 《태소맥결(太素脈訣)》, 《체인휘편(體仁彙編)》이 있다.
吉兆來
길조가 온다
按《江寧縣誌》:吉兆來,字逢生,爲瘍醫,有神效。誠樸無僞,隨疾輕重,爲人施治,絕不計利。尤善用針,相其形色,針到而害患隨除。父秋宇,有詩名,兆來乞陳仲醇序其遺稿而刊行之,錢御冷相國、李曉湘太僕皆重之。三子皆能世其術。
《江寧縣誌》에 따르면: 길조래(吉兆來)는 자가 봉생(逢生)이며, 외과 의사로서 신묘한 효과가 있었다. 성실하고 질박하며 거짓이 없었고, 병의 경중에 따라 사람에게 치료를 베풀었으며 결코 이익을 따지지 않았다. 특히 침을 잘 사용했는데, 환자의 형색을 살펴 침을 놓으면 해로운 병이 따라 제거되었다. 아버지 추우(秋宇)는 시로 명성이 있었는데, 조래가 진중순(陳仲醇)에게 청하여 아버지의 유고에 서문을 짓게 하여 간행하였고, 재상 전어렁(錢御冷)과 태복(太僕) 이효상(李曉湘)이 모두 그를 중히 여겼다. 세 아들이 모두 그의 기술을 계승할 수 있었다.
司馬隆
사마륭
按《江寧縣誌》:司馬隆,字季平。
《江寧縣誌》에 따르면: 사마륭은 자가 계평이다.
先世陝之咸寧人。
선조는 섬서성 함녕 사람이다.
父元亨,家金陵,儒而能醫。
아버지 원형은 금릉에 집을 두었으며, 유학자이면서 의술을 잘했다.
隆少勤學,嘗從林龍溪受《尚書》,後繼父業,遂擅醫名。
륭은 어려서 학문에 부지런하여 일찍이 임용계에게 《상서》를 배웠고, 뒤에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아 마침내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讀《內經》、丹、垣諸書,手不釋卷。
《내경》·단계·동원 등 여러 책을 읽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每至病者家,或羣醫俱集,辨論紛然,隆徐以一言定之,人皆悅服。
매번 환자 집에 가면, 혹은 여러 의사들이 모여 논변이 분분할 때, 륭이 천천히 한마디로 결정하니 사람들이 모두 기꺼이 따랐다.
遇人危疾,端居靜繹,或通夕不寐,必得其病之源治之而後已。
사람이 위급한 병을 만나면, 단정히 앉아 조용히 생각하고 혹은 밤을 새워 자지 않으며, 반드시 그 병의 근원을 얻어 치료한 후에 그쳤다.
有貧士病疫,親族畏避,隆診視不輟。
가난한 선비가 역병에 걸리자 친족들이 두려워하여 피했으나, 륭은 진찰을 그치지 않았다.
嘗曰:人皆有死,豈獨疫疾能死人哉?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죽음이 있는데, 어찌 홀로 역병만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子泰中,嘉靖癸未進士。
아들 태중은 가정 계미년에 진사가 되었다.
鄭元厚
정원후
按《江寧縣誌》:鄭元厚,字載之。父宗化,以明經教諭滁陽,延集多士,置講席,四時不輟,有鄭夫子之號。
《강녕현지》에 따르면, 정원후는 자가 재지이다. 아버지 정종화는 명경으로 척양에서 교유를 지내며 많은 선비들을 모아 강석을 설치하고 사시로 끊이지 않아 정부자라는 호를 얻었다.
性至孝,居異母喪,總制未嘗見齒,都人士稱述之。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이모의 상을 당했을 때 총제가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도시의 선비들이 칭송하였다.
元厚有父風,曾遇異人授以道術,由是精於導引內視之學,病者求其搬運撫摩,法簡功倍,醫藥可省,立愈,人益神之。
원후는 아버지의 풍모가 있었고, 일찍이 이인을 만나 도술을 전수받아 이로부터 도인과 내시의 학문에 정통하였다. 병자들이 그에게 운반과 안마를 구하면 법이 간단하고 효과는 배가되어 의약을 덜 수 있었고 즉시 나아 사람들이 더욱 신기하게 여겼다.
其言人身臟腑關會之處,皆可指而數也。審察病源,舉其竅要,施功膚骼之間,透切膏肓之隱。
그가 말하기를 사람 몸의 장부와 관회하는 곳은 모두 가리켜 셀 수 있다고 하였다. 병원을 살피고 그 요점을 들어 피부와 뼈 사이에 공을 들여 고황의 은밀한 곳을 꿰뚫었다.
其祕多不傳,惟僧常然得其要領雲。
그 비법은 많이 전하지 않았는데, 오직 승려 상연이 그 요령을 얻었다고 한다.
諸餘齡
여러 나머지 병증들
按《浙江通志》:諸餘齡,字雲泉,仁和人。
《浙江通志》에 따르면, 제여령은 자가 운천이고 인화 사람이다.
卜居如松裏,善書奕,博通醫家言,而多新得,四方爭迎致之。
여송리에서 살며 글씨와 바둑을 잘했고, 의가의 말을 널리 통달하여 새로운 깨달음이 많았으므로 사방에서 다투어 맞이하였다.
晚隱靈鷲山,善李元昭,預知死期俱不爽。
말년에 영취산에 은거하며 이원소와 친하게 지냈는데, 죽을 때를 미리 알아 모두 어긋나지 않았다.
每語客曰:我巾車馳城中起死人,何得身爲死人馳喪車出城乎?當終於此。
항상 손님에게 말하기를 "내가 수레를 타고 성 안에서 죽은 사람을 살렸는데, 어찌 내가 죽은 사람이 되어 상여를 타고 성 밖으로 나가랴? 마땅히 여기서 마쳐야 한다."고 하였다.
與徐鏜輩諸名醫爲天醫社雲。
서당 등 여러 명의와 함께 천의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子夢環成隆慶辛未進士。
아들 몽환이 융경 신미년에 진사가 되었다.
盧復 【 盧之頤】
노복【노지이】
按《浙江通志》:盧復,皆岐黃,兼通大乘,剖疑晰理,解悟不滯。
《浙江通志》에 따르면: 노복은 모두 기황(의학)에 능통했고, 대승(불교)에도 통달하여 의문을 분석하고 이치를 명확히 하며 깨달음이 막힘이 없었다.
子之頤,資性開明,而學有根柢,陰紐陽絡,證辨入微,善療奇疾。
아들 지이는 타고난 자질이 명석하고 학문에 기초가 있었으며, 음양의 경락을 꿰뚫어 증상을 미세하게 변별하여 기이한 질병을 잘 치료하였다.
凡屍蹶迵風,投劑無不中。
무릇 시궐(屍蹶)이나 회풍(迵風) 같은 병에 약을 쓰면 맞지 않음이 없었다.
然負氣陵物,議論踔厲,譭譽殆半焉。
그러나 성격이 강직하여 남을 업신여겼고, 논의가 날카로워 칭찬과 비난이 거의 반반이었다.
所著《仲景論》、《本草乘》、《金匱要略論疏》諸書行於世。
저술한 《중경론》, 《본초승》, 《금궤요략론소》 등의 책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孫卓三
손탁삼
按《饒州府志》:孫卓三,浮樑北鄉人,精岐黃。正德間,故藩覓醫於縣,王嚴里人欲傾卓三,舉以應,迫而行藥,輒應手得大效,獲寵受厚糈,聲名大起。其思理多在意表。
《요주부지》에 따르면: 손탁삼은 부량 북쪽 고을 사람으로, 의술에 정통했다. 정덕 연간에 고藩(왕의 친척)이 그 현에서 의사를 구하자, 왕엄 마을 사람들이 탁삼을 해치려고 그를 천거하여 응하게 했고, 억지로 약을 쓰게 했으나 손에 닿는 대로 큰 효과를 보아 총애를 받고 후한 녹봉을 얻어 명성이 크게 올랐다. 그의 생각과 이치는 대개 뜻밖에 있었다.
邑令以宸濠之變,先輿送其夫人避山中,病前祕五日,腹膨如鼓,仰面張目,息已微,急召卓三。
고을 원님이 진호의 난 때문에 먼저 수레로 부인을 산중에 피신시켰는데, 병이 들어 닷새 전부터 대변이 막히고 배가 북처럼 팽창했으며, 얼굴을 쳐들고 눈을 뜨고 숨결이 이미 미약하여 급히 탁삼을 불렀다.
卓三曰:此盛暑急驅,飲水過度,羞溺而胞轉也。法以豬尿胞吹氣貫滿,令女婢投入衝之,而溺淋淋下,遂起。
탁삼이 말했다: 이는 한여름에 급히 달려 물을 지나치게 마시고, 오줌을 참느라 방광이 뒤틀린 것입니다. 법은 돼지 방광에 바람을 가득 불어넣어 여종으로 하여금 집어넣어 충돌하게 하니, 오줌이 주룩주룩 내려와서 곧 일어났다.
新安富室有男子淋溺不止者,漸痿黃,諸醫束手。卓三醫之,亦弗效。偶隱几坐,以手戲弄水罐,後孔塞則前竅止,開則通。爲腦後一穴,灸火三壯,立愈。
신안 부유한 집에 오줌이 그치지 않는 남자가 있어 점차 쇠약해져 누렇게 되었는데, 여러 의사들이 손을 쓸 수 없었다. 탁삼이 치료했으나 또한 효과가 없었다. 우연히 책상에 기대어 앉아 손으로 물항아리를 장난치다 보니, 뒤 구멍을 막으면 앞 구멍이 멈추고 열면 통하는 것이었다. 머리 뒤 한 혈에 뜸을 세 번 뜨니 곧 나았다.
王綸
왕륜
按《明外史》吳傑傳:士大夫以醫名者,有王綸、王肯堂。
《明外史》의 오걸전에 따르면, 의술로 이름난 사대부로는 왕륜과 왕긍당이 있다.
綸字汝言,慈溪人,舉進士,遷禮部郎中,歷廣東參政,湖廣廣西布政使。
왕륜의 자는 여언이며, 자계 사람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낭중으로 승진하고, 광동참정, 호광과 광서의 포정사를 역임했다.
正德中,以副都御史巡撫湖廣。
정덕 연간에 부도어사로 호광을 순무했다.
綸精於醫,所在爲人治疾,無不立效。
왕륜은 의술에 정밀하여, 있는 곳마다 사람들의 병을 치료했는데 즉시 효험이 없지 않았다.
有《本草集要》、《明醫雜着》行於世。
《본초집요》와 《명의잡저》가 세상에 유행한다.
按《醫學入門》:王綸,字汝言,號節齋,浙江慈溪人。宏治時,官至廣東佈政。因父病精醫,着《明醫雜着》,發丹溪所未發,世多尊信之。並着《本草集要》行世。兄經,舉進士,亦知醫。
《醫學入門》에 따르면: 왕륜은 자가 여언이고 호가 절재이며, 절강 자계 사람이다. 홍치 연간에 관직이 광동포정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의술에 정통해져 《명의잡저》를 저술하여 단계가 미처 밝히지 못한 것을 발굴했으며, 세상 사람들이 많이 존중하고 믿었다. 또한 《본초집요》를 저술하여 세상에 유통시켰다. 형인 왕경은 진사에 급제하여 또한 의술을 알았다.
袁廷用
원정용
按《桐廬縣誌》:袁廷用,坊郭人。正德間,由醫士授太醫院吏目。
《동려현지》에 따르면: 원정용은 성 안에 사는 사람이다. 정덕 연간에 의사로부터 태의원 이목에 임명되었다.
袁(王相)
원(왕상)
按《桐廬縣誌》:袁(王相),坊郭人,由醫士任岷府良醫正。
《동려현지》에 따르면: 원상(袁王相)은 방곽 사람인데, 의사로 있다가 민부(岷府)의 양의정(良醫正)에 임명되었다.
戴廷贄
대정지
按《桐廬縣誌》:戴廷贄,坊郭人。正德間,任太醫院冠帶醫士。
《桐廬縣誌》에 따르면: 戴廷贄는 坊郭 사람이다. 正德 연간에 太醫院 冠帶醫士를 지냈다.
袁(王堂)
원숭이(왕당)
按《桐廬縣誌》:袁(王堂),坊郭人,由醫士任北京太醫院御醫,進階院判。
《동려현지》에 따르면: 원당은, 성곽 사람으로, 의사로서 북경 태의원 어의에 임명되었고, 승진하여 원판이 되었다.
胡尚禮
호상례
按《儀真縣誌》:胡尚禮,字景初,世醫也。
《의진현지》에 따르면, 호상례는 자가 경초로 대대로 의업을 이어온 의사이다.
其父倫,命讀岐黃諸書,曰:吾家傳,通醫必先通儒爲本,理不明,安悟診視之奧?
그의 아버지 호륜이 기황(기백과 황제)의 여러 서적을 읽도록 명하며 말하기를, '우리 집의 전통은 의학을 통달하려면 반드시 먼저 유학에 통달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치가 분명하지 않으면 어찌 진찰의 오묘함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禮遂能識奇病,活人甚衆。
이에 호상례는 기이한 병증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사람을 살렸다.
許紳
허신
按《明外史》吳傑傳:有許紳者,京師人。初供事御藥房;嘉靖改元,授御醫,屢遷太醫院使。
《명외사》 오걸전에 따르면: 허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경사 사람이다. 처음에 어약방에서 일했으며; 가경 연호가 바뀌어, 어의에 임명되고, 여러 번 승진하여 태의원사가 되었다.
受知於世宗,連加通政使禮部侍郎工部尚書,並領院事。
세종의 총애를 받아, 통정사 예부시랑 공부상서를 잇달아 더하고, 함께 원사를 관장했다.
二十年,官婢楊金英等謀逆,以帛縊帝,氣已絕,紳急調峻劑下之,辰刻下藥,未時忽作聲,去紫血數升,遂能言,又數劑而愈。
20년, 관비 양금영 등이 역모하여, 비단으로 황제를 목매어, 숨이 끊어졌다. 허신이 급히 맹렬한 약을 조제하여 내렸는데, 진시에 약을 내리고, 미시에 갑자기 소리를 내며, 자색 피를 몇 되 토하고 마침내 말을 할 수 있었고, 또 몇 첩의 약으로 낫게 되었다.
帝德紳,加太子太保禮部尚書,賜賚甚厚。
황제가 허신의 은덕을 생각하여, 태자태보 예부상서를 더하고, 하사하는 것이 매우 두터웠다.
未幾,紳得疾,或問之,紳曰:吾不起矣。曩者宮變,吾自分不效,必殺身,因此驚悸,非藥石所絡療。已而果卒。
얼마 지나지 않아, 허신이 병에 걸렸다. 혹시 묻자, 허신이 말했다: 나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난번 궁중의 변고에, 나는 효과가 없으면 반드시 죽음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여, 이로 인해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니, 약석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후 과연 죽었다.
賜諡恭僖,官其一子,卹典有加。明世醫者官最顯,止紳一人。
시호를 공희라고 내리고, 그 아들 하나를 관직에 임명하고, 조문을 더하였다. 명나라 세상에 의사로서 벼슬이 가장 현달한 자는 오직 허신 한 사람뿐이었다.
謝儒 【 謝世泰】
사유(謝儒) 【 사세태(謝世泰)】
按《江寧府志》:謝世泰,字約齋。曾袓儒,郡廩生,兼通醫,每逢奇證,他醫或不能辨,儒必識之,識即療之。
《江寧府志》에 따르면: 사세태는 자가 약재이다. 증조부 유는 군의 생원으로 의술에도 능통하여, 기이한 증상을 만나면 다른 의사들이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유는 반드시 알아보고, 알아보면 곧 치료하였다.
售爲徐文敏季子治腮瘍,奇效。文衡山爲文以贈儒。
일찍이 서문민의 막내아들의 볼기(腮癰)를 치료하여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 문형산이 글을 지어 유에게 증정하였다.
傳子日升,升傳世泰,皆有名。泰存心濟物,不責報,人多稱之。
그것이 아들 일승에게 전해지고, 일승이 세태에게 전하였는데, 모두 이름이 났다. 세태는 마음을 가져 사물을 구제하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칭송하였다.
林(忄胥)
임(림) 서(서)
按《江陰縣誌》:林(忄胥),少業醫,治法主丹溪,邑中子弟學醫者,多出其門,人稱中庵先生,再致賓筵。
《江陰縣誌》에 따르면: 林(忄胥)은 어려서 의업을 익혔으며, 치료법은 丹溪를 주로 하였다. 고을의 젊은이 중 의학을 배우는 자들이 대개 그의 문하에서 나왔으므로, 사람들이 中庵先生이라 불렀고, 여러 번 빈객의 자리에 초청되었다.
呂夔 【 呂應鐘】
여기(呂夔) 【 여응종(呂應鐘)】
按《江陰縣誌》:呂夔,字大章。本姓承,因依舅氏呂,遂仍其姓。易儒而醫,精研博訪,其術遂神,人以呂仙呼之。
《江陰縣誌》에 따르면: 여기(呂夔)는 자가 대장(大章)이다. 본래 성은 승(承)이나, 외가인 여씨(呂氏)에 의지하여 그 성을 그대로 따랐다. 유학에서 의학으로 바꾸어 정밀히 연구하고 널리 방문하여 그 기술이 신묘해져 사람들이 여선생(呂仙)이라 불렀다.
吳中大疫,裹藥囊,日治百家,全活無算。
오중(吳中)에 큰 역병이 돌자 약 주머니를 싸매고 하루에 백여 가구를 치료하여 살린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撫按給章服不受。嘉靖時,隸籍太醫院,着《運氣發揮》、《經絡詳據》、《脈理明辨》、《治法捷要》等書十卷,邑侯劉守泰序行之。
순무와 어사가 관복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가정 연간에 태의원에 소속되어 《운기발휘》, 《경락상거》, 《맥리명변》, 《치법첩요》 등 책 10권을 저술하였고, 읍후 유수태가 서문을 써서 발행하였다.
子講,字明學;讀,字明經,醫名俱如其父。
아들 여강(呂講)은 자가 명학(明學)이고, 여독(呂讀)은 자가 명경(明經)이며, 의술 명성이 모두 그 아버지와 같았다.
讀子應鐘,字符聲,太醫吏目,傳禁方而變化之,能望氣決人死生,或談笑間療人痼瘍,着《葆元行覽》、《世效單方》兩書,邑令湖士鰲爲序;又有《長春堂詩稿》。
여독의 아들 여응종(呂應鐘)은 자가 원성(元聲)이며, 태의원 이목(吏目)으로서 금방(禁方)을 전수받아 변화시켰고, 기운을 바라보고 사람의 죽고 삶을 판단할 수 있었으며, 혹은 담소하는 사이에 사람의 고질적인 종기를 치료하였다. 《보원행람》, 《세효단방》 두 책을 저술하였고, 읍령 호사오(湖士鰲)가 서문을 썼으며, 또 《장춘당시고》가 있다.
弟應陽,字符復,醫名亦如其兄。子夢徵,字孟盛,亦世其傳。
아우 여응양(呂應陽)은 자가 원복(元復)이며, 의술 명성이 또한 그 형과 같았다. 아들 여몽징(呂夢徵)은 자가 맹성(孟盛)이며, 또한 그 가업을 계승하였다.
袁東
원동
按《金壇縣誌》:袁東,字春庵,善醫。爲人治病,十常療九,病家歡悅。飲之酒,輒陶然醉,無復計謝,人鹹高之,又奇其術。
《金壇縣誌》에 따르면:원동(袁東)은 자(字)가 춘암(春庵)이며, 의술을 잘했다.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면 열에 아홉은 낫게 하여, 병가(病家)가 기뻐하였다. 그에게 술을 대접하면 곧 흡족하게 취하여, 다시 사례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또한 그의 술법(術法)을 기이하게 여겼다.
東嘗雲:醫胡可易?予視人病患,在人痛楚,若在吾身,返觀五內,洞然有見,而後治人五內,即弗效,病亦弗劇。其畏慎如此。
원동이 일찍이 말하기를:의술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내가 사람의 병환을 보면, 그 고통이 내 몸에 있는 듯하여, 오장(五內)을 되돌아보며 환히 보게 된 뒤에 남의 오장을 치료하니, 비록 효험이 없더라도 병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그의 두려워하고 삼가는 태도가 이와 같았다.
嘉靖辛酉歲澇飢,至明年疫大行,巡按陳某令壇選良醫,開局施藥。病者之他醫,弗效,之東即效,御史嘉之,薦授太醫院醫士,翰林院編修曹大章有贈序。
가정(嘉靖) 신유년(辛酉年)에 장마와 기근이 들어, 이듬해에 역병(疫病)이 크게 유행하자, 순안(巡按) 진모(陳某)가 금단(金壇)에서 좋은 의사를 선발하여 진료소를 열고 약을 베풀게 하였다. 병자들이 다른 의사에게 가면 효험이 없었으나, 원동에게 가면 곧 효험이 있었다. 어사(御史)가 이를 칭찬하여 천거함으로써 태의원(太醫院) 의사(醫士)에 임명되었고, 한림원 편수(翰林院編修) 조대장(曹大章)이 증여하는 서문(序文)이 있었다.
焦蘊穩
조금씩 뭉쳐서 안정되게 하다
按《海州志》:焦蘊穩,海州生員,深得鍼灸之法。
《해주지》에 따르면: 초온온은 해주 생원으로 침술을 깊이 터득했다.
嘉靖癸亥年間,漕撫吳夫人臨產而心痛,將危,衆醫茫然。
가정 계해년(1563)에, 조운 총독 오 부인이 해산을 앞두고 심통이 나서 위태로워졌는데, 여러 의사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獨穩診其脈曰:此胎手抓母之心也。一針而胎下。
오직 온온이 그 맥을 진찰하고 말하기를: 이것은 태아의 손이 어머니의 심장을 움켜쥔 것입니다. 한 번 침을 놓으니 태아가 내려왔다.
觀其胎手大指,尚有針痕出血。
그 태아의 손 엄지손가락을 보니, 아직 침 자국과 출혈이 있었다.
母子雙全。
어머니와 아이가 모두 무사했다.
王金
왕금
按《開封府志》:王金,字芝山,陝西西安人。
《개봉부지》에 따르면, 왕금은 자가 지산이며 섬서성 서안 사람이다.
年十七,遇道人墮水,救歸,敬事之。
열일곱 살에 도인이 물에 빠진 것을 만나 구해 돌아와서 공경하며 모셨다.
已,道人攜入終南,授以祕術,試輒驗。
얼마 뒤 도인이 그를 데리고 종남산에 들어가 비술을 가르쳐 주었는데, 시험할 때마다 효험이 있었다.
時屬世廟好方伎,金以白衣召見,爲言三元大丹,稱旨,與陶仲文、邵元節並膺榮寵,歷官太常,出入禁闥二十年。
당시 세묘(가정제)가 방술을 좋아하여, 왕금이 백의(平民) 신분으로 불려가 삼원대단에 대해 말씀드려 임금의 뜻에 맞았으며, 도중문, 소원절과 함께 총애를 받아 태상시 벼슬을 지내며 궁궐을 출입한 지 20년이 되었다.
世廟賓天,廷議金等進藥不謹,論刑,新鄭高文襄公再疏申雪,得減戍閩海。
세묘가 승하하자 조정에서 왕금 등이 약을 신중히 올리지 않았다고 논의하여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신정의 고문양공이 두 번 상소하여 억울함을 풀어주어 형벌이 줄어들어 민해로 유배되는 것으로 그쳤다.
後數年歸,依文襄以居,遂爲鄭人。
몇 년 뒤 돌아와 문양공에게 의지하여 살았으므로 정주 사람이 되었다.
李空同與交厚,贈以芝山子詞雲。
이공동과 교분이 두터워 지산자(芝山子)라는 글을 지어 주었다.
其子繼懷亦精醫藥。
그의 아들 계회 또한 의약에 정통하였다.
沈惠
침술의 혜택
按《松江府志》:沈惠,字民濟,華亭人。幼得異傳,爲小兒醫,能起死者。
《송강부지》에 따르면:심혜는 자가 민제이며 화정 사람이다. 어려서 비전을 얻어 소아의가 되어 죽은 이를 살릴 수 있었다.
嘗從浦南歸,聞岸上哭聲甚悲,問知某氏盛僅一子,自塾中歸,暴絕。
일찍이 포남에서 돌아오다가 언덕 위에서 매우 슬픈 곡성을 듣고 물어보니 어떤 성씨 집에 외아들이 글방에서 돌아오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했다.
惠走視,其胷次尚溫,作湯劑灌之,遂蘇。
심혜가 달려가 보니 그의 가슴 부위가 아직 따뜻하여 탕제를 만들어 부어주니 곧 소생했다.
有富家子患痘危劇,已治木矣,藥之而愈,取其棺以施貧兒。
부자 집 자식이 천연두가 위중하여 이미 관을 준비했는데, 약을 써서 낫게 하고 그 관을 가져다 가난한 아이에게 베풀었다.
惠以小兒醫多祕其書不傳,乃覃思博考,著書九種行世,詳見《藝文志》,學者以爲津樑。
심혜는 소아의들이 그 서적을 비밀로 하여 전하지 않음을 안타까이 여겨 깊이 생각하고 널리 고증하여 저서 아홉 가지를 세상에 펴냈으니, 자세한 것은 《예문지》에 보이며 학자들이 나침반으로 삼았다.
有老媼善治疳,惠拜受其方,媼亡,爲治後事。
어떤 할머니가 감병을 잘 치료하였는데, 심혜가 절하며 그 처방을 받고 할머니가 죽자 장례를 치러주었다.
惠爲人謹厚謙下,無貴賤貧富,必盡其心力,立身有繩檢。
심혜는 사람됨이 신중하고 후하며 겸손하여 귀천 빈부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그 마음과 힘을 다했으며, 몸가짐에 법도가 있었다.
郡守子疾,惠入視,夫人從屏後告以病所由,惠若不聞,守訝之,對曰:夫人自嚮明府言耳。
군수 아들이 병들자 심혜가 들어가 보았는데, 부인이 병풍 뒤에서 병의 원인을 알려주었으나 심혜는 듣지 못한 체했다. 군수가 이상히 여기자 대답하기를: 부인께서 스스로 명부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其以禮自處如此。晚自號虛明山人,徐文貞階有詩贈之。
그가 예절로 자신을 처함이 이와 같았다. 말년에 스스로 허명산인이라 호하고, 서문정 계가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
臨終賦詩而逝。同時有王節之,與惠並稱,兩人相得甚歡,遇有疑疾,必相質正。
임종 시에 시를 짓고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에 왕절지가 있어 심혜와 함께 이름이 나서, 두 사람이 매우 뜻이 맞아 의심스러운 병을 만나면 반드시 서로 질정했다.
節之子一鳳、二鵬,皆名醫。一鵬自有傳。
절지의 아들 일봉과 이붕은 모두 명의였다. 일붕은 별도로 전이 있다.
張鶴溪
장학계
按《松江府志》:張鶴溪,忘其名,嘉靖中以醫名,善療奇疾。御史包節母,年六十七,暴中氣絕,積日不蘇,羣醫畢集,皆曰:風中臟腑不可治。鶴溪獨曰,此氣虛挾痰,可下人蔘劑,七日當蘇,蘇能言鬼神事。衆皆笑之。既而和劑以進,如期乃寤,道鬼神事甚詳。衆醫始口噤走。
《송강부지》에 따르면, 장학계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가정 연간에 의술로 이름났으며, 기이한 병을 잘 치료했다. 어사 포절의 어머니가 나이 67세에 갑자기 중풍으로 기가 끊어져 여러 날 깨어나지 못하자, 많은 의사들이 모두 모여 말하기를, "풍이 장부에 들어서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학계만이 홀로 말하기를, "이는 기허에 담이 겹친 것이니, 인삼을 넣은 약을 써서 7일 안에 깨어날 것이며, 깨어나면 귀신 일을 말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여러 의사들이 모두 비웃었다. 이내 화합시킨 약을 올려 예정대로 깨어났는데, 귀신 일을 매우 자세히 말했다. 여러 의사들이 비로소 입을 다물고 도망갔다.
龔信 【 龔廷賢】
공신 (공정현)
按《金溪縣誌》,龔信,十一都下澌里人,任太醫院,着《古今醫鑑》,並《雲林醫彀》。子廷賢,着《萬病回春》。
《금계현지》에 따르면, 공신은 십일도 하시리 사람이며, 태의원을 지냈고, 《고금의감》과 《운림의구》를 저술했다. 아들 공정현은 《만병회춘》을 저술했다.
王溥
왕부
按《觀城縣誌》:王溥,邑之名醫,偉貌修髯,望之若仙,通異人授脈訣,用藥隨證輒效,不取酬,救濟甚衆。
《관성현지》에 따르면: 왕보는 고을의 명의로, 체구가 크고 수염이 길어 바라보면 신선 같았으며, 이상한 사람에게 맥결을 전해받아 통달하였고, 약을 씀에 증후를 따라 곧 효험이 있었으며, 보수를 받지 않고 구제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
嘉靖間,御史熊按東郡有疾,召問,對曰:安神定志,不藥而癒。
가정 연간에, 어사 웅이 동쪽 군을 시찰할 때 병이 있었는데, 부르니 대답하기를: 신을 편안하게 하고 뜻을 안정시키면 약 없이도 낫습니다. 하였다.
熊深器重焉。年踰八十,健行如飛,至九十七而卒。
웅이 심히 중히 여겼다.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걸음이 날쌔 나는 듯하였고, 구십칠세에 이르러 죽었다.
李秋
늦가을
按《南昌府志》:李秋,字思杏,南昌人,精岐黃之術。
《南昌府志》에 따르면: 이추, 자는 사행이며, 남창 사람으로, 기황(의술)의 기술에 정통했다.
時寧獻王有《庚辛玉冊》,宗人李時珍有《本草綱目》,皆鏤板江右,秋購得其書,晨夕研究,用藥恆出意表,遂以醫名當代。
당시 영헌왕이 《경신옥책》을 가지고 있었고, 종인 이시진이 《본초강목》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강우에서 목판으로 새겼다. 이추가 그 책을 구하여, 아침저녁으로 연구하였으며, 약을 쓰는 것이 항상 뜻밖의 경지에 이르렀고, 마침내 의술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爲人坦直樂易,藝愈高而接物愈謙,卑以自牧,兩與鄉飲,知府給以篤行善士之扁,年九十卒。
사람됨이 너그럽고 정직하며 즐겁고 편안하였으며, 기술이 높아질수록 사물을 대함에 더욱 겸손하였고, 스스로를 낮추어 수양하였다. 두 차례 향음에 참석하였고, 지부가 독실하게 행하는 선비라는 편액을 내렸으며, 나이 구십에 졸하였다.
親朋至今誦說不替。
친구들과 친척들이 지금까지 칭송하며 이야기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李守欽
이수흠
按《泛水縣誌》:李守欽,號肅庵。聰明善悟,讀書損神,病將危,得蜀醫醫而愈之,即北面受其業。
《泛水縣誌》에 따르면, 이수흠은 호가 숙암이다. 총명하고 깨달음이 빨랐으며, 글 읽느라 정신을 소모하여 병이 위태로워졌는데, 촉 땅 의원에게 치료를 받아 나았다. 곧 북쪽을 향하여 그의 업을 전수받았다.
走峨眉,邂逅異人,授岐伯要旨。歸從黃冠遊,尤精太素脈理,又能預知人事遠近,活者不可勝數。
아미산에 가서 뜻밖에 기이한 사람을 만나 기백의 요지를 전수받았다. 돌아와서 황관 수행자들과 교유하며 더욱 태소맥리에 정통했고, 또 사람 일의 멀고 가까움을 미리 알았으며, 살린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諸王臺省,鹹敬禮之。徙居榮澤觀中,有客自河北來,星冠羽扇,守欽識其非常人,即謹遇之。
여러 왕과 대신들이 모두 공경히 예우하였다. 영택관으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하북에서 온 손님이 별모자와 깃부채를 가지고 왔다. 수흠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보고 곧 정성껏 대접하였다.
數日談論,皆世外事。守欽善對,客甚敬之,曰:先生我師也。又曰:三日後,羅主事過此,我當去也。因題詩於壁而別。
며칠 동안 이야기한 것이 모두 세상 밖 일이었다. 수흠이 잘 응대하니, 손님이 매우 공경하며 말하기를 '선생님은 나의 스승이십니다.' 또 말하길 '사흘 뒤에 나주사가 이곳을 지나갈 터이니, 나는 가야 합니다.' 하고 드디어 벽에 시를 쓰고 헤어졌다.
越三日,果羅主事自南而北,經於榮澤,爲黃河泛漲所阻,棲遲觀中,偶見所題,驚曰:此吾世父之筆,緣何題此哉?始知客爲羅念庵也。人由是謂守欽能識仙客,號爲洞元真人。
사흘이 지나자 과연 나주사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영택에 이르러 황강이 넘실거려 막혀서 관에 머물다가, 우연히 써진 시를 보고 놀라 말하길 '이는 나의 숙부 필체인데, 어찌 여기에 써졌는가?' 하고서야 비로소 그 손님이 나염암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이로써 수흠이 신선과 같은 손님을 알아볼 수 있다고 여겨 동원진인이라 불렀다.
壽九十有八。所著有《方書一得》、《太素精要》諸書行於世。
나이 98세를 누렸다. 저술한 책으로 《방서일득》, 《태소정요》 등 여러 책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鄭文賢
정문현
按《雲夢縣志》:鄭文賢,不知何許人,第從李於鱗游。於鱗有送文賢遊大梁序,稱許文賢。於鱗不輕許可,其言必信。其序雲:鄭生者,名文賢,楚之雲夢人也。少慕伯陽之術,往往談長生。自雲夢來關中三千里,持一囊藥耳。所至逆旅,醫小兒即食其嫗,醫老即食其子弟,醫女即食其夫,度三千里如在里巷中矣。然不爲糈也,其來關中,庶幾望見能爲長生者焉。餘蓋苦病三十年於茲,言醫也,即未嘗見醫視脈如生者焉,豈其診書異,有他禁方耶?生又自言醫且五十年於此,手指之附人脈,多於握匕箸,咀片如丘陵,即未嘗不精神與病者通,長桑君豈實視見垣一方人哉?不察見脈而治病,其礙豈啻垣一方?關中故多賢豪人,即如大中丞何某博物君子,亦言生矣。餘又言秦越人來長安遊時事,生未嘗不輒苦其術而隱之不得。屬餘在告將歸,生亦欲遊大梁,關中自大中丞許大司徒劉以下,皆賦詩贈之,而餘序其右方雲。
《雲夢縣志》에 따르면: 정문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만 이반린을 따라 배웠다. 이반린이 정문현을 대량으로 보내며 서문을 지어 그를 칭찬했다. 이반린은 경솔히 칭찬하지 않았으니, 그 말은 반드시 믿을 만했다. 그 서문에 이르기를: 정생이라는 자는 이름이 문현이니, 초나라 운몽 사람이다. 어려서 백양의 술법을 사모하여 항상 장생을 이야기했다. 운몽에서 관중으로 삼천 리를 왔는데, 오직 한 주머니 약만 가지고 왔다. 이르는 여관마다 아이를 치료하면 그 어미가 먹여주고, 노인을 치료하면 그 자제가 먹여주고, 여자를 치료하면 그 남편이 먹여주어, 삼천 리를 마치 마을 안에 있는 것처럼 지냈다. 그러나 술값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가 관중에 온 까닭은 간절히 장생할 수 있는 이를 만나고자 해서였다. 나는 삼십 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며 의술을 말해왔지만, 아직 맥을 보는 의원이 산 사람과 같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찌 그 진맥하는 책이 다르거나 다른 비방이 있기 때문이겠는가? 정생은 또 스스로 오십 년 가까이 의술을 행하여, 손가락이 사람의 맥을 짚은 것이 숟가락을 쥔 것보다 많고, 약재를 씹은 것이 언덕처럼 쌓였으며, 정신이 병자와 통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상군이 어찌 실로 담 너머 사람을 보았겠는가? 맥을 보지 않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 그 장애가 어찌 담 너머에만 그치겠는가? 관중은 본래 현명하고 호걸인 사람이 많아, 대중승 하某와 같은 박학군자도 정생을 말했다. 내가 또 진월인이 장안에 와서 놀던 때의 일을 말하자, 정생은 항상 그 술법을 괴로워하면서도 숨기지 못했다. 마침 내가 휴가를 얻어 돌아가려 할 때, 정생도 대량으로 유람하려 했다. 관중에서는 대중승 허某와 대사도 유某 이하가 모두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고, 내가 그 오른편에 서문을 썼다.
麻東輝
마동휘
按《東昌府志》:麻東輝,高唐人。嘉靖間以醫遊郡城,洞究古方書,善脈,士大夫爭迎致爲上客。
《동창부지》에 따르면, 마동휘는 고당 사람이다. 가정 연간에 의술로 군성을 떠돌며 옛 의서를 깊이 연구하고 맥을 잘 보아, 사대부들이 다투어 맞아 상객으로 삼았다.
堂邑李通政久病,衆醫以爲不治。東輝診曰:病得之心火鬱積,勿藥,第屏念三十日而愈。後如所言。
당읍의 이유정이 오래 병들어 많은 의사가 불치라 했다. 동휘가 진맥하길: '병은 심화가 울적한 데서 얻었으니, 약을 쓰지 말고 잡념을 없애고 30일을 지내면 낫는다.' 하였는데, 뒤에 말한 대로 되었다.
臨清副使某病,召東輝診脈曰:大人無恙,將惟其子之憂。是時子在裏中,急遣人歸視,危就牀褥數日矣,竟不起。
임청부사 모가 병들어 동휘를 불러 진맥하니, 말하길: '대인은 병이 없으나, 자제분의 일이 걱정되겠습니다.' 이때 아들이 고향에 있었는데, 급히 사람을 보내 돌아보니 위독하여 자리에 누운 지 며칠이 되어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
郡有貴介公子壯而負氣,以無病,故試東輝,呼曰:而善脈,其脈我!東輝診而驚曰:子病矣,奈何不治?公手嘻曰:甚矣,醫之利於以不疾爲功也。我日兼數人之食而病乎?笑而揮之。後月餘,竟以痰卒。
군에 귀공자가 있었는데 젊고 기개가 세어 병이 없으면서 일부러 동휘를 시험하려 부르며 말하길: '네가 맥을 잘 본다 하니, 나를 진맥해 보아라!' 동휘가 진맥하고 놀라 말하길: '자네가 병들었으니, 어찌 낫지 못하겠는가?' 공자가 손을 흔들며 웃으며 말하길: '심하다, 의사가 병 없는 것을 공으로 삼는 이익이여! 내가 날마다 여러 사람의 음식을 겸하여 먹는데 병들겠는가?' 하며 웃으며 손을 저었다. 한 달여 후에 결국 담으로 죽었다.
高唐諸生某,試於提學,偕儕輩數人諧東輝問脈,東輝次第診已,徐曰:生且食廩,無奈剝膚之災,以憂目前。生喜而懼。甫出門,會所讎擲瓦擊之中眉額幾死,試果第一。
고당의 여러 생원 중 모가 제학의 시험을 앞두고 동료 몇 명과 함께 동휘에게 가서 맥을 물었다. 동휘가 차례로 진맥한 후, 천천히 말하길: '그대는 장차 녹을 먹겠으나, 가까운 시일에 피부가 벗겨지는 재앙을 면치 못해 근심하겠구나.' 생원이 기쁘면서도 두려워했다. 막 문을 나서자, 마침 원한을 가진 자가 기와를 던져 이마를 맞아 거의 죽을 뻔했는데, 시험에서 과연 첫째가 되었다.
東輝好飲,不治生產,所得金帛,輒給酒家,老而彌甚。里人有奇證,趨請東輝,雖在酪酊中,所醫無不立愈者,里人以爲神。
동휘는 술을 좋아하고 생업을 돌보지 않았으며, 얻은 돈과 비단은 곧바로 술집에 주었고 나이 들어 더욱 심해졌다. 마을 사람들이 기이한 병이 있으면 달려가 동휘를 청했는데, 비록 만취 상태에 있어도 치료한 사람이 곧바로 낫지 않는 이가 없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신처럼 여겼다.
李中梓
이중재
按《江南通志》:李中梓,字士材,華亭人。少博學,習岐黃術,凡奇證遇無不立愈。所著有《士材三書》、《頤生微論》、《醫統》若干卷。
《江南通志》에 따르면: 이중재는 자가 사재이며 화정 사람이다. 젊어서 박학하고 기황의 술을 익혀, 무릇 기이한 증상을 만나면 낫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저술한 것으로 《사재삼서》, 《이생미론》, 《의통》 약간 권이 있다.
李瞻
이첨
按《儀真縣誌》:李瞻,號小塘,以眼科著名。有七十二問,按七十二候,以明內外障之得失。
《의진현지》에 따르면: 이첨은 호가 소당이며, 안과로 유명했다. 《칠십이문》을 지었는데, 칠십이후에 맞추어 내외장의 득실을 밝혔다.
嘗一人目腫火炎,而性最卞,愈躁而疾愈熾,非藥可下。
일찍이 한 사람이 눈이 붓고 불이 붙은 듯하였는데, 성품이 매우 까다로워 더욱 성급해질수록 병이 더욱 치성해져 약으로는 내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瞻謂曰:子目易愈,此客火將流毒於股,不十日,必暴發。
이첨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눈은 쉽게 나을 것이나, 이 객화가 장차 다리로 독이 흘러 들어, 열흘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갑자기 발병할 것입니다.
其人習瞻名,遂日以股爲憂。至三日,以一藥而癒,股亦無恙。
그 사람은 이첨의 명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날마다 다리를 근심하였다. 사흘째에 한 약으로 눈이 나았고, 다리도 탈이 없었다.
又一人目以氣虛暗,如行霧中,受苓、朮即眩。
또 한 사람은 기허로 인해 눈이 어두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하였으며, 복령과 백출을 받으면 곧 현기증이 났다.
瞻不藥,但曰子以沸水浴兩足,亦三日,一藥而瘳。
이첨은 약을 쓰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당신이 끓는 물로 두 발을 씻으십시오, 또한 사흘 만에 한 약으로 나았습니다.
或問其故,瞻曰:性暴人患疾,每欲急愈,火上攻於目,移其意以憂下,即易療。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이첨이 말하기를: 성격이 포악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항상 빨리 낫기를 바라는데, 불이 위로 눈을 공격하니, 그의 뜻을 아래의 근심으로 옮기면 곧 치료하기 쉽습니다.
氣虛人榮衛不和,湧泉穴位足底,熱之則上可達於泥丸,必血活而藥始效。
기허한 사람은 영위가 조화롭지 못한데, 용천혈은 발바닥에 있으니, 뜨겁게 하면 위로는 니환에까지 이를 수 있어, 반드시 피가 활발해진 뒤에 약이 비로소 효험이 있습니다.
有節鉞李公妾病目。瞻曰:二目須膿出方愈。李慮損貌。瞻曰:以虎睛調藥,則膿偕液鼻下,無傷也。
절월 이공의 첩이 눈병이 들었다. 이첨이 말하기를: 두 눈에서 반드시 고름이 나와야 낫습니다. 이공이 용모가 손상될까 걱정하였다. 이첨이 말하기를: 호랑이 눈알로 약을 조화하면, 고름이 액체와 함께 코 아래로 나와서 상함이 없습니다.
李果捕虎取睛治之,如所言。
이공이 과연 호랑이를 잡아 눈알을 취하여 치료하였더니, 말한 바와 같았다.
王荊石兩瞳反背,瞻令端坐,置書於幾,用金針從腦頰刺之。
왕형석이 두 눈동자가 뒤로 돌아갔는데, 이첨이 단정히 앉게 하고, 책을 책상 위에 놓고, 금침을 사용하여 뇌협에서 찔렀다.
初撥,曰見黑影矣;次撥,曰見行款矣;三撥則筆畫朗然。
처음에 찔렀을 때, 검은 그림자가 보인다고 하였고; 다음에 찔렀을 때, 줄과 칸이 보인다고 하였으며; 세 번째 찌르자 획이 또렷하였다.
曰:君果神授耶?將千金謝。瞻卻不受,惟取園中一綠磁瓶蓋。
왕형석이 말하기를: 당신은 과연 신이 준 것입니까? 천 냥을 드리려 합니다. 이첨이 사양하며 받지 않고, 다만 뜰 안의 녹색 자기 병뚜껑 하나를 취하였다.
王曰:賤物何貴?瞻曰:餘久得瓶失蓋,此其匹也。
왕형석이 말하기를: 천한 물건인데 무엇이 귀합니까? 이첨이 말하기를: 내가 오래전에 병은 얻었으나 뚜껑을 잃었는데, 이것이 그 짝입니다.
王以爲誕,使人驗之,果然。
왕형석이 허황된 말로 여겨,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大抵以學濟其術多若此。更着有《育神夜光丸方》、《蓮子金針鼠尾金針說》,言目內障必藥病者滿百日,醫者齋戒亦滿百日,正心誠意而後可施。
대체로 학문으로써 그 기술을 도운 것이 이와 같은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육신야광환방》과 《연자금침서미금침설》을 저술하였는데, 눈의 내장(백내장)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환자가 백 일을 채워 약을 복용하고, 의사도 재계하기를 백 일을 채워,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한 뒤에야 시술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非天霽日朗,絕無雲翳,及時日遊神合吉,卒不輕用。
하늘이 개이고 날이 맑으며 구름이 전혀 없고, 또 시일 유신이 길함에 합하지 않으면, 끝내 가벼이 쓰지 않았다.
今其書盛傳。
지금 그 책이 널리 전해진다.
宋銓
송전
按《潞安府志》:宋銓,潞州人,嘗遇異人傳祕方。
《潞安부지》에 따르면: 송전은 로주 사람인데, 일찍이 이인을 만나 비방을 전수받았다.
嘉靖八年,郡判傅必用與寮友夜宴德風亭,醉墮臺,折左股,衆醫不能治,謂必殞。
가정 8년, 군판 부필용이 동료와 덕풍정에서 밤에 연회를 열다가 취해서 대에서 떨어져 왼쪽 넓적다리가 부러졌는데, 여러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하고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銓出藥如白扁豆三粒,啖之,骨續有聲,更以手熨,遂應手愈,起行如常,且無痕,真仙餌也。
송전이 약을 내어 흰 편두 세 알을 먹이니, 뼈가 이어지는 소리가 나고 다시 손으로 찜질하자 곧 손에 따라 나아서 일어나 걷기가 평상시와 같았으며 흔적도 없었으니, 참으로 신선의 약이었다.
尤仲仁
尤仲仁은 사람 이름입니다.
按《無錫縣誌》:尤仲仁,字依之,以喉科名。
《무석현지》에 따르면, 우중인은 자가 의지이며 후두과로 이름을 떨쳤다.
初御史周清白一中官於大獄,得祕方十有七。
처음에 어사 주청이 대옥에 갇힌 한 명의 내관을 변호해 주어, 열일곱 가지 비방을 얻었다.
周死而甥得其方,即仲仁之袓也。
주청이 죽자 조카가 그 비방을 얻었는데, 그가 곧 우중인의 할아버지이다.
嘗起嚴文靖於屬纊,活範屏麓、孫雪窻於危劇,三人共出貲爲仲仁補授太醫院吏目,遂世其家。
일찍이 엄문정이 임종 직전에 이를 소생시켰고, 범병록과 손설창을 위급한 병에서 살려냈는데, 세 사람이 함께 돈을 내어 우중인을 태의원이목에 보충 임명하게 하였고, 이로써 그 가업을 세습하였다.
繆坤
무릇 땅이란 (음양의) 이치를 따라야 한다. 만약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여 땅이 거칠고 메마르면, 오곡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按《江陰縣誌》:繆坤,字子厚。七世以醫傳,坤名更着。
《江陰縣誌》에 따르면, 繆坤은 자가 子厚이다. 7대째 의술로 전해졌는데, 繆坤의 명성이 더욱 드러났다.
性行淳篤,自審脈辨方之外,端居讀書,不交塵事。
성품과 행실이 순수하고 돈독하여, 맥을 살피고 처방을 변별하는 일 외에는 단정히 앉아 글을 읽으며 세상 일에 교류하지 않았다.
嘉靖間,帥府檄至行間療疫,全活甚多,榮以冠帶,非其好也。
가정 연간에 장수 관청에서 격문을 보내 군중에서 역병을 치료하게 하여,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으나, 관복을 하사 받은 영광을 좋아하지 않았다.
着《方脈統宗》行世。鄉飲十七次,壽九十,自爲文志其墓。
저서로 《방맥통종》을 세상에 펴냈다. 향음(고을의 잔치)에 17번 참석하였고, 나이 90세에 스스로 글을 지어 자신의 묘비명을 기록하였다.
丁瓚
정찬
按《休寧縣誌》:丁瓚,字汝器,西門人。
살펴보건대 《휴녕현지》에 이르기를, 정찬은 자가 여기이며 서문 사람이다.
丁氏自宋世業醫。
정씨는 송나라 때부터 대대로 의업을 하였다.
嘉靖初,丁繩以醫名。
가정 초에 정승이 의술로 이름을 떨쳤다.
子畜瓚,授其業,已藉數百緡,欲與子,瓚謝歸。
정승이 정찬을 아들처럼 기르며 그 업을 전수하였는데, 이미 수백 민의 재물을 모아 자기 아들에게 주려 하자 정찬이 사양하고 돌아갔다.
醫則奇中,人以仙目之。
정찬이 의술에 있어서는 기이하게 적중하므로 사람들이 신선처럼 여겼다.
性好客,客嘗滿。
성품이 손님을 좋아하여 손님이 항상 가득하였다.
嚐出五十緡,脫人於厄。
일찍이 오십 민을 내어 사람을 위난에서 구해주었다.
書畫有米倪風。
서화에 미불과 예찬의 풍격이 있었다.
年六十卒。
나이 육십에 세상을 떠났다.
薛己
설기
按《蘇州府志》:薛己,字新甫,號立齋。
《蘇州府志》에 따르면:薛己는 字는 新甫이고 號는 立齋이다.
性穎異,過目輒成誦,尤殫精方書。
성품이 총명하고 비범하여 한 번 보면 바로 외웠으며, 특히 方書에 정성을 다하였다.
於醫術無所不通。
의술에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正德時,選爲御醫,擢南京院判。
正德 연간에 御醫로 선발되었고, 南京醫院 判官으로 승진하였다.
嘉靖間進院使,所著有《家居醫錄》十六種,醫家多遵守之。
嘉靖 연간에 院使로 승진하였으며, 저서로는 《家居醫錄》 16종이 있어 의가들이 많이 준수하였다.
王沐
왕목
按《蘇州府志》:王沐,號春泉,常熟人。
《蘇州府志》에 따르면:王沐, 號는 春泉, 常熟人이다.
天性孝友,壯年妻死不再娶。
天性이 孝友하여, 장년에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않았다.
精於醫術,相國嚴文靖公幼時,病痢垂危,沐診視良久,嘆曰:是當籍玉堂,寧籍鬼錄也。
의술에 정통하여, 상국 嚴文靖公이 어렸을 때 이질로 위독하자, 沐이 오래 진찰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는 마땅히 玉堂에 등록될 사람이지, 어찌 鬼錄에 등록되겠는가'라고 하였다.
投劑立起。
약을 투여하자 곧 나았다.
嘉靖間,兵荒疾疫,捐貲施藥,全活甚衆。
가정年間에, 병란과 흉년과 질역이 있어, 재물을 내고 약을 베풀어 살린 자가 매우 많았다.
部使者上其事,投太醫院吏目,旌其門曰義醫。
부사자가 그 일을 상주하자, 太醫院 吏目을 제수하고, 그 문에 '義醫'라고 정문하였다.
申相
신상
按《潞安府志》:申相,長治人。
《潞안부지》에 따르면: 신상은 장치 사람이다.
通方脈研究,脈理尤精,傷寒一科,着《診家祕要》、《傷寒捷法歌》、《治人多應》。
방맥에 통달하고 연구하여 맥리를 특히 정밀히 하였으며, 상한과 한 과목에 저서로 《진가비요》, 《상한첩법가》, 《치인다응》을 남겼다.
陳景魁
진경괴
按《句容縣誌》:陳景魁,字叔旦,別號鬥巖。世居句容。
《구용현지》에 따르면: 진경괴는 자는 숙단이고, 호는 두암이다. 대대로 구용에 살았다.
宋端拱間,其高祖公理以醫任玉臺祕書,明洪武初,有從善者任元戎幕,嗣後以儒醫顯魁。
송나라 단공 연간에 그의 고조 공리가 의술로 옥대비서를 지냈고, 명나라 홍무 초기에 종선이라는 이가 원융막을 맡았으며, 이후 유의로서 진괴가 드러났다.
幼敏慧善記誦,既長,從鄉先生樊懿齋習舉子業,又授易於毘陵陸秋崖。
어려서 민첩하고 슬기로우며 기억과 암송을 잘했고, 자라서 동향의 선생 번의재에게 과거 공부를 배웠으며, 또 비릉의 육추애에게 역을 배웠다.
聞湛甘泉講道南畿,魁往謁學日充裕。
담감천이 남기에서 도를 강의한다는 말을 듣고, 진괴가 찾아가 배움으로 날마다 충실해졌다.
因父夢椿病疫,諸醫罔效。魁精誠禱天,一夕,夢老人書授蚖蟺水可愈汝父。
아버지 몽춘이 역병에 걸려 여러 의원이 효과가 없었다. 진괴가 정성으로 하늘에 기도하니, 어느 날 밤 노인이 글을 주어 '구더기 물이 네 아버지를 낫게 할 수 있다'고 꿈에 보였다.
既覺不辨其物,博訪之,始知爲蚯蚓搗水飲,父疾立愈。人鹹以爲孝感雲。
깨어나서 그 물건을 분별하지 못해 널리 물은 끝에 지렁이를 찧어 물을 만든 것임을 알고 아버지께 마시게 하니 병이 곧 나았다. 사람들이 모두 효성이 감응한 것이라고 여겼다.
後精心醫學,投劑輒愈。着有《醫案》皆奇疾奇方也。
후에 정성껏 의학을 공부하여 약을 쓰면 곧 나았다. 저서《의안》은 모두 기이한 병과 기이한 처방들이다.
按《醫學入門》陳景魁因父病習醫,精鍼灸。
《의학입문》에 따르면 진경괴는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의학을 배우고 침구에 정통했다.
着《五診集》治素無病,忽吐血半鬥,脈弦急薄,厥證也。得於大怒氣逆陰陽奔,並服六鬱湯而愈。
저서《오진집》에 평소 병이 없던 자가 갑자기 반 말의 피를 토하고 맥이 현급하고 박하며 궐증이었다. 큰 화로 인해 기가 역상하여 음양이 어지러운 데서 얻었으며, 육울탕을 함께 복용하여 나았다.
治通體生疣,久罔效,乃太陰風邪化爲蟲也。以百部蛇牀子草烏楝樹葉煎湯浴洗,越月遍身如白癜風狀而愈。
온몸에 사마귀가 생겨 오래도록 효과가 없던 것을 치료했는데, 이는 태음의 풍사가 벌레로 변한 것이다. 백부, 사상자, 초오, 련수엽을 달인 물로 목욕하고 씻어서 한 달 만에 온몸이 백전풍 모양이 되었다가 나았다.
始孕婦墮下逾旬,腹腥發熱,氣喘脈促,面赤舌青,口臭。公曰:胎未墮也,面赤心盛而血幹也,舌青口臭肝氣竭胎已死矣。
처음에 임산부가 열흘 넘게 유산 증상이 있었는데, 배에서 비린내가 나고 열이 나며, 기천하고 맥이 촉하며, 얼굴이 붉고 혀가 푸르며 입 냄새가 났다. 공이 말하기: '태아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붉은 것은 심기가 성하여 피가 마른 것이고, 혀가 푸르고 입 냄새가 나는 것은 간기가 다하여 태아가 이미 죽은 것이다.'
用蛇退煎湯調平胃散加歸尾芒硝一倍服之,須臾胎下,痛亦復安。
사퇴를 달인 물로 평위산에 당귀미와 망초를 한 배 더 넣어 조복시켰더니, 잠시 후 태아가 내려오고 통증도 가라앉았다.
汪機
왕기
按《祁門縣誌》:汪機幼嘗爲邑諸生,母病嘔,遂究心醫學。
《祁門縣誌》에 따르면: 汪機가 어려서 일찍이 고을의 諸生이 되었는데, 어머니가 구토로 병들자 드디어 의학에 마음을 기울였다.
凡岐黃倉扁諸遺旨靡,不探其肯綮,殊證奇疾,發無不中,名高難致,病者有聆謦欬頓喜,遂瘳。
무릇 岐黃·倉公·扁鵲 등의 남긴 뜻을 빠짐없이 그 핵심을 탐구하여, 특이한 증상과 기이한 병에 발병하면 맞추지 않는 것이 없었고, 명성이 높아 초빙하기 어려웠으며, 병자들 중에는 기침 소리를 듣고 곧 기뻐하여 병이 나은 사람이 있었다.
所全活甚衆。着有《石山醫案》、《醫學原理》、《本草會編》、《素問》、《抄脈訣刊誤》、《外科理例》、《痘治理辨》、《鍼灸問對》、《傷寒選錄》、《運氣易覽》等書 。
살린 사람이 매우 많았다. 저서로는 《석산의안》, 《의학원리》, 《본초회편》, 《소문》, 《초맥결간오》, 《외과이례》, 《두치이변》, 《침구문대》, 《상한선록》, 《운기역람》 등의 책이 있다.
李可大
이 가대
按《杞縣誌》:李可大,字汝,化邑人。
《杞县志》记载:李可大,字汝化,杞县人。
業儒爲諸生,因母病,逐遍覽醫書,久之大悟,遂爲醫,無不奏效。
他学习儒学成为生员,因为母亲生病,于是广泛阅读医书,久而久之豁然贯通,便成为医生,治病没有不见效的。
可大用藥多奇勝,會新鄭相公家居,聘可大至,診其脈曰:公心脈如蝶鼓翼,越五月當大拜。抵期果應。
李可大用药大多奇特有效。恰逢新郑的相公在家闲居,聘请李可大来看病,诊脉后说:您的脉象像蝴蝶鼓动翅膀,过了五月应当升任高官。到了日期果然应验。
於是可大名振兩河矣。
于是李可大的名声震动了河南、河北地区。
因勸可大入太醫院授修職郎,時朱錦衣子甫一歲,晝夜啼不止,請可大醫之,戒勿見兒,恐成客忤。
于是劝李可大进入太医院,授予修职郎的官职。当时锦衣卫朱某的儿子刚满一岁,昼夜啼哭不止,请李可大医治,告诫他不要见孩子,恐怕变成客忤。
可大曰:但隔壁聞聲足矣。朱許之,可大曰:啼而不哭爲痛,用桔梗湯調乳香灌之即愈。
李可大说:只要在隔壁听到声音就够了。朱某答应了他。李可大说:啼哭而不流泪是疼痛,用桔梗汤调乳香灌下去就好了。
有族母七十餘,中酒昏迷無氣,諸兒以爲已死,將入殮。
有一个同族老妇人七十多岁,饮酒过量昏迷没有气息,儿女们以为已经死了,准备入殓。
可大至,見目未陷心尚溫,曰:此母不死,吾能起之。
李可大赶到,见她眼睛没有下陷,心口还温热,说:这位老妇人没有死,我能让她苏醒。
諸兒涕泣求,可大取井底泥塗母心上,用黃連葛根湯灌之,已而果蘇。
儿女们哭着请求,李可大取来井底泥涂在老妇人心口上,用黄连葛根汤灌下去,不久果然苏醒了。
於是邑中相傳可大能起死回生。
于是县里都传说李可大能起死回生。
李進士病虛損痢疾,腹痛異常,用人蔘五靈脂治之。
李进士患虚损痢疾,腹痛异常,李可大用人参和五灵脂来治疗。
衆醫皆訝曰:二物相畏,奈何同用?可大曰:不聞相畏而後能相使乎?藥下果愈。
众医都惊讶地说:这两味药相畏,怎么能一起用?李可大说:没听说过相畏之后才能相使吗?服药后果然痊愈了。
鄢陵陳令病傷寒,昏沉將屬纊。
鄢陵的陈县令患伤寒,昏迷不醒即将断气。
可大診視曰:此可救也。用竹茹犀角灌之而愈。
李可大诊视后说:这还可以救。用竹茹和犀角灌下去就好了。
寗縣尉亦病傷寒,身皆冷,口出清水。
宁县的县尉也患伤寒,全身冰冷,口吐清水。
可大診之曰:陰毒已極。用附子一味,醫之亦愈。
李可大诊视后说:阴毒已经极重。只用附子一味药,治疗也痊愈了。
邑諸生董養性發熱,口乾久而咳嗽吐血,醫皆謂虛證。
县里的生员董养性发热,口干时间长了咳嗽吐血,医生们都说是虚证。
可大診之曰:汝脈結,結爲鬱證,非虛也。用蘇子香附益智等藥數服而愈。
李可大诊脉后说:你的脉象结,结是郁证,不是虚证。用苏子、香附、益智等药几服就好了。
董大奇之,因乞爲弟子,以學醫焉。
董养性非常惊奇,于是请求做他的弟子,跟随他学医。
一梓人母年四十餘,手大指忽腫,因偃仆不知人事,可大診之曰:此必月信至而適爲冷水所傷也。問之信然,用當歸甘荽湯而愈。
한 목수의 어머니가 나이 40여 세에 엄지손가락이 갑자기 붓고, 이로 인해 넘어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가대가 진찰하여 말하길: 이것은 반드시 월경이 왔는데 마침 냉수에 상한 것이다. 물어보니 과연 그러하여, 당귀감초탕을 써서 낫게 하였다.
一婦人產後大喘,醫戒用參,可大診之曰:此孤陽絕陰也,正宜用參。遂加蘇木爲湯,飲之喘立止。
한 부인이 산후에 크게 헐떡거리는데, 의원이 인삼 사용을 금지하였다. 가대가 진찰하여 말하길: 이것은 고독한 양이 음이 끊긴 것이니, 바로 마땅히 인삼을 써야 한다. 이에 소목을 더하여 탕을 만들어 마시게 하니 헐떡거림이 곧 멈추었다.
李時珍
이시진
按《明外史 · 本傳》:李時珍,字東璧,蘄州人。
《明外史·本傳》에 이르길: 이시진은 자가 동벽이고 기주 사람이다.
讀書不治經生業,獨好醫書。
글을 읽으면서 과거 공부를 하지 않고 오직 의학 서적을 좋아했다.
醫家本草自神農所傳止三百六十五種,梁陶弘景所增數亦如之,唐蘇恭增一百一十四種,宋劉翰又增一百二十種,至掌禹錫唐慎微輩先後增補合一千五百五十八種,時稱大備然,品數既煩,名稱多雜,或一物而析爲二三或二物而混爲一品,時珍病之,乃窮搜搏採芟煩補,闕歷時三十年,閱書八百餘家,藁三易而成《本草綱目》一書。
의가 본초는 신농이 전한 것부터 365종에 그쳤고, 양나라 도홍경이 증가한 수도 또한 그와 같으며, 당나라 소공이 114종을 증가하고, 송나라 유한이 또 120종을 증가하였으며, 장우석·당신미 등이 앞뒤로 증보하여 합쳐 1,558종에 이르러 당시에 크게 갖추어졌다고 칭하였으나, 품목 수가 이미 번잡하고 명칭이 많아 섞여서 혹은 한 물건을 둘 셋으로 나누거나 혹은 두 물건을 혼동하여 한 품목으로 삼았으므로, 시진이 이를 병통으로 여겨 끝까지 찾아 널리 채집하고 번거로움을 덜고 부족함을 보충하여 30년을 지나고 800여 집의 책을 열람하고 초고를 세 번 고쳐 《본초강목》 한 책을 이루었다.
增藥三百七十四種,釐爲一十六部,合成五十二卷,首標正名爲綱,餘各附釋,爲目正始也。
약을 374종 늘리고 16부로 정리하고 합쳐 52권을 만들었으며, 먼저 정명을 표시하여 강(綱)으로 삼고 나머지는 각각 해석을 붙여 목(目)으로 삼아 시작을 바르게 하였다.
次以集解辨疑正誤,詳其出產形色也。
다음으로 집해(集解)로 의심을 변별하고 오류를 바로잡으며 그 산지와 형태·색을 상세히 하였다.
又次以氣味主治附方,着其體用也。
또 다음으로 기미(氣味)와 주치(主治) 및 부방(附方)을 붙여 그 체용(體用)을 밝혔다.
書成將上之朝,而時珍遽卒。
책이 완성되어 조정에 올리려 하였으나 이시진이 갑자기 죽었다.
未幾,神宗詔修國史,購四方文籍,其子建元以父遺表及是書來獻。
얼마 지나지 않아 신종이 국사 편찬을 명하여 사방의 문적을 구매하자, 그의 아들 건원이 아버지의 유표(遺表)와 이 책을 바쳤다.
天子嘉之,命刊行天下,自是士大夫家有其書。
천자가 이를 가상히 여겨 천하에 간행하도록 명하였고, 이로부터 사대부의 집에 그 책이 있게 되었다.
本草之學始稱集大成。
본초의 학문이 비로소 집대성되었다고 일컬어졌다.
時珍官楚王府奉祠正子建中四川蓬溪知縣,又吳縣張頤,祁門汪機,杞縣李可大,常熟繆希雍皆通,醫術治病多奇中,而希雍常謂上古醫經朱遭秦火,獨內經本草耳。
이시진은 초왕부(楚王府)의 봉사정(奉祠正)을 지냈고, 아들 건중은 사천성 봉계현 지현이 되었으며, 또 오현의 장이, 기문의 왕기, 기현의 이가대, 상숙의 묘희옹이 모두 의술에 통달하여 병을 치료함에 기이하게 맞는 경우가 많았고, 묘희옹은 항상 말하기를 '상고의 의경(醫經)은 진나라 불에 타지 않고 오직 《내경》과 《본초》뿐이다. 《본초》는 신농에서 나왔으며 붉은 글자는 오경에 비유되고, 후에 또 증보별록(增補別錄)을 더한 것은 주소(註疏)에 비유되니, 면치 못하게 주묵(朱墨)이 섞이고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本草出於神農,朱字譬之五經後又增補別錄,譬之註疏,未免朱墨錯互,乃沈研剖析本經,以經之別錄,以緯之着,本草單方一書盛傳於世。
《본초》는 신농에서 나왔으며 붉은 글자는 오경에 비유되고 후에 또 증보별록을 더한 것은 주소에 비유되니, 주묵이 섞이고 잘못됨을 면치 못하여, 이에 깊이 연구하여 본경(本經)을 분석하고 본경으로 경(經)을 삼고 별록으로 위(緯)를 삼아 저술한 《본초단방(本草單方)》 한 책이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繆希雍
묘희옹
按《金壇縣誌》:繆希雍,字仲淳,由常熟遷居金壇。
《金壇縣誌》에 따르면:무희옹(繆希雍)은 자(字)가 중순(仲淳)이며, 상숙(常熟)에서 금단(金壇)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與東林諸先達相友善,工岐黃術,有殊解,一折衷於理推本神農圖經辨其性味之所以然,屢有奇驗。
동림(東林)의 여러 선배들과 서로 친하게 지냈으며, 기황(岐黃)의 술법에 능통하였고, 특별한 해석이 있어, 모두 이치에 절충하여 신농도경(神農圖經)을 근본으로 그 성미(性味)의 까닭을 변별하였으며, 여러 차례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
着《廣筆記》、《本草單方》、《江陰司訓》,莊繼光刻之以行。
저서로《광필기(廣筆記)》、《본초단방(本草單方)》、《강음사훈(江陰司訓)》이 있으며, 장계광(莊繼光)이 이를 새겨서 펴냈다.
卒時翰林學士。錢謙益經紀其家。
졸(卒)할 때는 한림학사(翰林學士)였으며, 전겸익(錢謙益)이 그 집안의 일을 맡아 보았다.
按《蘇州府志》:繆希雍,字仲醇,常熟人。
《蘇州府志》에 따르면: 繆希雍은 자가 仲醇이며 常熟人이다.
精醫術醫經方書,靡不討論,尤精本草之學。
醫術과 醫經方書에 정통하여 토론하지 않은 것이 없고, 특히 本草之學에 정통하였다.
謂古三墳之書未經秦火者獨此而已,《神農本經》朱字譬之六經也,名醫增刪別錄,朱墨錯互譬之註疏也。
옛 三墳의 책이 秦의 불에 타지 않은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말하며, 《神農本經》의 붉은 글자를 六經에 비유하고, 名醫가 증감한 別錄의 붉은 글과 검은 글을 섞어 놓은 것을 註疏에 비유하였다.
本經以經之別錄,以緯之作《本草經疏》,《本草單方》等書。
本經으로 經을 삼고 別錄으로 緯를 삼아 《本草經疏》 《本草單方》 등의 책을 지었다.
抉摘軒岐未發之祕,爲人電目戟髯。
軒岐가 발하지 못한 비밀을 파헤쳤으며, 사람됨은 번개 같은 눈과 창 같은 수염을 가졌다.
如遇羽人劍客,好談今古事成敗,誠奇士也。
마치 羽人이나 劍客를 만난 듯이古今의 일과 成敗를 말하기 좋아하였으니, 참으로 奇士이다.
龐鹿門
방록문
按《湖廣通志》:龐鹿門,幼從李平湖作《本草綱目》,視神農多三千品,視唐本草多一千五百品,視陳希彝着多五百品,凡蟲魚、鳥獸、草木、天地、內外無所不包。又復考覈詳究盡生生變變之妙。鹿門得平湖之學,不肯輕出以試人,至老乃出。
《湖廣通志》에 따르면: 방록문은 어려서 이평호를 따라 《본초강목》을 지었는데, 신농본초보다 3000품이 많고, 당본초보다 1500품이 많으며, 진희이의 저서보다 500품이 많아, 무릇 충어·조수·초목·천지·내외를 두루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다. 또 다시 상세히 고찰하여 생생변변의 묘리를 다하였다. 방록문이 이평호의 학문을 얻었으나, 가벼이 내어 사람을 시험하지 않고 늙어서야 내놓았다.
有客寓者,耳聾數十日,以補藥投之,不效。就鹿門理脈曰:此胃家火也。客曰:耳屬腎與胃何涉?鹿門曰:公未知《素問靈樞》耳胃經絡起某處,過於耳旁,或於食時則聾。更甚一刀匕而愈。
객사에 머무는 손님이 있어, 귀가 먹은 지 수십 일인데 보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방록문에게 가서 진맥을 보니 말하기를: 이는 위(胃)의 화(火)입니다. 손님이 말하길: 귀는 신(腎)에 속하는데 위(胃)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방록문이 말하길: 공은 《소문·영추》를 모르십니다. 위경(胃經)의 경락이 어떤 곳에서 시작하여 귀 옆을 지나는데, 혹은 식사할 때 더욱 심해져 귀가 먹습니다. 한 번 침(匕)을 놓아 낫게 하였습니다.
州守夫人病瘧,診之曰:此瘧勿藥,有喜,但過十日當下血。夫人不悅,遂不請其方,越十日而夫人血下,邀鹿門,亦一匕而愈好。說《素問靈樞》醫家罕有知者。
주수(州守)의 부인이 학질을 앓자, 진찰하고 말하기를: 이 학질은 약을 쓰지 않아도 좋아질 조짐이 있으나, 다만 열흘이 지나면 하혈(下血)할 것입니다. 부인이 기뻐하지 않고 드디어 그 처방을 구하지 않았는데, 열흘 후에 부인이 하혈하자 방록문을 초청하니 또한 한 번 침(匕)으로 낫게 하였다. 그가 설한 《소문·영추》를 의가 가운데 아는 자가 드물었다.
楊守吉
양수길
按《江寧府志》:南都正嘉間,醫多名家,乃各顓一門無相奪者。
《강녕부지》에 따르면, 남경의 정덕·가정 연간에 의원 중 이름난 사람이 많았는데, 각자 한 분야를 전공하여 서로 빼앗지 않았다.
如楊守吉之爲傷寒醫;李氏姚氏之爲產醫;周氏之爲婦人醫;曾氏之爲雜證醫;白騾李氏刁氏範氏之爲瘍醫;孟氏之爲小兒醫;樊氏之爲接骨醫;鍾氏之爲口齒醫;袁氏之爲眼醫,自名其家,其人多篤實純謹。
예를 들어 양수길은 상한의를, 이씨와 요씨는 산과 의사를, 주씨는 부인과 의사를, 증씨는 잡증 의사를, 백라 이씨·초씨·범씨는 외과 의사를, 맹씨는 소아과 의사를, 번씨는 접골 의사를, 종씨는 구강과 의사를, 원씨는 안과 의사를 하여 스스로 그 가문을 알렸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독실하고 순수하며 신중했다.
有士君子之行,而守吉醫尤着。
선비와 군자의 행실이 있었으며, 양수길의 의술이 특히 뛰어났다.
有謝五老者,夫婦病感冐月餘矣,飲食纔屬口輒嘔噦,衆醫皆以不治棄去。
사오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부가 감기에 걸린 지 한 달이 넘었고, 음식이 겨우 입에 닿으면 곧 구토가 났다. 여러 의원들이 모두 치료할 수 없다며 버리고 떠났다.
一日,守吉過其門,邀入診之曰:無傷也,病久已去,但小進食,蚘蟲爭上噉,胸次攪擾作惡耳。
하루는 양수길이 그 집을 지나가다가 초청되어 들어가 진찰하고 말하기를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병은 오래되어 이미 사라졌으나, 조금 음식을 들면 회충이 다투어 올라와 먹어서 가슴이 어지럽고 메스꺼울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試頓食之,當勿藥而愈。
시험 삼아 한꺼번에 많이 먹이면, 약 없이도 나을 것입니다.
家人羣駭其說,度無可奈何姑從之。
가족들이 모두 그 말에 놀랐으나, 어쩔 도리가 없어 우선 따르기로 했다.
遂以冷茶投粥中頓人與二大盂,初尚作嘔已,漸喜食,食已沉睡,覺而霍然。
그래서 찬 차를 죽에 넣어 한꺼번에 두 큰 그릇을 주었더니, 처음에는 구역질을 하다가 점차 즐겨 먹고, 먹은 후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면서 갑자기 나았다.
又一人病羸,瘦委頓甚,百方不效,求楊診之,楊曰:若病非藥所能愈,第於五更向煮牛肉肆中,候其初啓釜時,以口鼻向鍋旁吸取其氣,然後取汁一碗飲之,數日可愈矣。
또 어떤 사람이 병들어 여위고 쇠약해져서 온갖 방법을 써도 효험이 없자, 양수를 찾아가 진찰을 청했다. 양수가 말하기를 "그대의 병은 약으로 낫지 않습니다. 오경(5경)에 소고기 삶는 가게로 가서 가마를 처음 열 때 입과 코를 솥 옆에 대고 그 기운을 들이마신 다음, 국물 한 그릇을 떠서 마시면 며칠 안에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從之,果然。
그 말을 따랐더니, 과연 그렇게 되었다.
他治多類此。
그 밖의 치료도 대부분 이와 같았다.
陸厚
육후
按《青浦縣誌》:陸厚,自號東園散人。博洽經史,精於孫吳兵書,嘗遇異人,授子午按摩法,療人疾不施針焫而愈。有詩集曰《古漁唱》。
《청포현지》에 따르면: 육후는 스스로 호를 동원산인이라 하였다. 경사에 널리 통달하였고, 손무와 오기의 병서에 정통하였다. 일찍이 이인을 만나 자오안마법을 전수받아, 사람의 병을 치료할 때 침이나 뜸을 쓰지 않고도 낫게 하였다. 시집이 있으니 《고어창》이라 하였다.
高武
고무
按《鄞縣誌》:高武,號梅孤。負奇好讀書,凡天文律呂兵法騎射無不閒習。
《鄞縣誌》에 따르면: 고무는 호가 매고이다. 기이한 재주를 지니고 글 읽기를 좋아하여, 무릇 천문·율려·병법·기사에 이르기까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嘉靖時,中武舉北上,因歷覽塞垣以策幹,當路不用,遂棄歸。
가정 연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변방의 성을 두루 살피며 계책을 바쳤으나, 당로자(권력자)가 채택하지 않자 곧 버리고 돌아왔다.
所言乾象無不驗,晚乃專精於醫,治人無不立起,嘗慨近時針灸多誤,手鑄銅人三,男婦童子各一,以試其穴,推之人身所驗,不爽毫髮。
말한 하늘의 상(천문)이 맞지 않음이 없었고, 늦게는 의술에 전념하여 사람을 치료하면 곧 낫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일찍이 근래의 침구가 잘못됨을 개탄하여, 손수 세 개의 동인(銅人)을 주조하였는데, 남자·여자·아이 각각 하나씩이었고, 그 혈을 시험하여 인체에 미루어 보니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았다.
所著《射學指南》、《律呂辨痘疹》、《正宗鍼灸》、《聚英發揮直指》各三十卷行於世。
저술한 《사학지남》, 《율려변두진》, 《정종침구》, 《취영발휘직지》 각 30권이 세상에 유행하였다.
趙獻可
조헌가
按《鄞縣誌》:趙獻可,字養葵,自號醫巫。
《鄞縣誌》에 따르면: 조헌가는 자가 양규이고, 스스로 호를 의무라 하였다.
閭子好學淹貫,尤善於易,而精於醫,其醫以養火爲主,
여자는 학문을 좋아하여 널리 통달하였고, 특히 역학에 능하였으며, 의술에 정밀하였는데, 그의 의술은 화를 기르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嘗論命門乃人身之君,
일찍이 명문이 인신의 군주라고 논하였다.
養身者既不知撙節,致戕此火,以至於病,
양생하는 자가 이미 절약함을 알지 못하여 이 화를 해치게 하여 병에 이르게 하고,
治病者復不知培養此火,反用寒涼以賊之安望。
병을 치료하는 자가 다시 이 화를 배양함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한량한 약을 써서 해치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其生着《醫貫》一書,論議甚精,俱前人未發,爲醫家指南,盛行於世。
그가 살아서 《의관》 한 책을 지었는데, 논의가 매우 정밀하여 모두 전인이 발하지 못한 것이며, 의가의 지침이 되어 세상에 성행하였다.
後遊秦晉,著述甚多,有《內經抄素問注》及《經絡考正脈論》二本,一例諸書。
후에 진과 진 땅을 유람하며 저술이 매우 많았는데, 《내경초소문주》와 《경락고정맥론》 두 본과 같은 여러 책들이 있다.
子貞觀字如葵,亦精於醫,敦厚有古風,治病不論貴賤,未嘗計利。
아들 정관은 자가 여규인데, 또한 의술에 정밀하였고, 돈후하여 고풍이 있었으며, 병을 치료함에 귀천을 따지지 않고 일찍이 이익을 계산하지 않았다.
嘗治人病,夜半自往叩門,候其脈證,以用藥,其篤厚如此,
일찍이 사람의 병을 치료할 때, 한밤중에 스스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그 맥과 증상을 살펴 약을 사용하였으니, 그 돈후함이 이와 같았다.
亦有《絳雪丹書》、《痘疹論》行世。
또한 《강설단서》와 《두진론》이 세상에 행해졌다.
鍾大延
종대연
按《鄞縣誌》:鍾大延,字恆國,本江右仕族,後爲鄞人。
《영현지》에 따르면: 종대연은 자가 항국이며, 본래 강우 지방의 관리 집안 출신이었으나, 후에 영현 사람이 되었다.
精於醫,聰穎絕人,治病不執恆方,嘗言今人但知醫,豈知醫人,病固有淺深,人自有強弱,豈得因病執方?
의술에 정통하고 총명하여 남보다 뛰어났으며, 병을 치료할 때 늘 쓰는 처방에 집착하지 않았다. 일찍이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의술만 알 뿐, 사람을 치료함을 어찌 알겠는가? 병은 본래 깊고 얕음이 있고, 사람에게는 저마다 강약이 있으니, 어찌 병에 따라 처방에 집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有二人同時病痢,其一用補劑,一用攻劑,或問之曰:此稟弱須補其正氣,而後攻之,彼強須攻,故用攻耳。
두 사람이 동시에 이질에 걸렸는데, 한 사람에게는 보하는 약을 쓰고, 한 사람에게는 공격하는 약을 썼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말하기를 '이는 체질이 약해서 먼저 정기를 보하고 나서 공격해야 하고, 저 사람은 강해서 바로 공격해야 하므로 공격하는 약을 쓴 것이다.'라고 하였다.
徐廷尉病,小便祕,腫脹,面赤發喘,衆醫皆以爲熱證治之,病癒甚。
서정위가 병에 걸려 소변이 막히고, 몸이 붓고, 얼굴이 붉어지고, 헐떡거렸다. 여러 의사들이 모두 열증으로 여겨 치료하였으나 병이 더욱 심해졌다.
大延視之曰:是無火也,急煮附子湯,一服而愈。
대연이 진찰하고 말하기를 '이는 화(火)가 없는 것이다.'라 하고, 급히 부자탕을 달여 한 번 복용하게 하니 나았다.
後有一貴家孕婦病亦如之,衆醫莫效,大延視之曰:是可弗藥也,乃胎壓膀胱耳。令其周身轉運而瘳。
후에 어떤 귀한 집의 임산부가 또한 그와 같은 병을 앓았는데, 여러 의사들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 대연이 진찰하고 말하기를 '이는 약을 쓰지 않아도 되니, 태아가 방광을 누르고 있을 뿐이다.'라 하고, 그 온몸을 움직이게 하여 나았다.
一僧嗜鹽,每食必斤許,衆醫雖知其爲蟲,然服藥輒痛悶欲絕,大延曰:是蟲不受藥也,當有以餌之。
한 스님이 소금을 즐겨 먹어, 매 끼니마다 반드시 한 근 가량을 먹었다. 여러 의사들이 비록 그것이 충(蟲) 때문임을 알았으나, 약을 먹이면 곧 아파서 숨이 막힐 듯하였다. 대연이 말하기를 '이는 충이 약을 받지 않는 것이니, 유인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以鹽筍用藥煮之,仍加以鹽,令服。越數日,果嘔蟲數升許而愈。
소금 죽순을 약으로 달여서, 다시 소금을 더하여 복용하게 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과연 수 되 가량의 벌레를 토해내고 나았다.
又一人酷暑歷萬山中,或時飲溪水,至秋患泄痢,諸藥不效,但思食西瓜,而醫家戒不使進。
또 한 사람이 혹서기에 험한 산을 지나면서 더러 시냇물을 마셨는데, 가을이 되어 설사와 이질을 앓았다. 여러 약이 효험이 없었고 오직 수박을 먹고 싶어 하였으나, 의가(醫家)에서 먹지 못하게 하였다.
大延曰:但食無妨。稍進覺安,加進益快爽,遂用藥數劑而愈。
대연이 말하기를 '그냥 먹어도 해롭지 않다.'라고 하였다. 조금 먹고 나서 편안함을 느끼고, 더 먹으니 더욱 상쾌해져서 드디어 약 몇 첩을 쓰고 나았다.
蓋前因山中暑熱所中也,其能自出新意多奇效,皆如此。
이는 앞서 산중의 더위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의 스스로 새로운 의견을 내어 기이한 효험이 많았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嚴仁泉
엄인천
嚴蘇泉
엄소천
吳少垣
오소원
吳繼軒
오계헌
僧心齋
승심재
周僧
주승
李僧
이승
李氏
이씨
楊氏
양씨
馮遯齋
풍둔재
張東
장동
何心仁
하심인
按《金溪縣誌》:金溪先時名醫不可考,世廟時有嚴氏兄弟,兄號仁泉,弟號蘇泉者,真誠靜重,脈理精徹,百無一失,若小兒以吳氏家傳爲主代有精者,今少垣繼軒兄弟皆有聲,足繼祖父之業焉。苦竹入外科,有龍興寺老僧心齋者,宿瘤如杯,毒癰滿背皆能療治。
《金溪縣誌》에 따르면: 금계현의 옛 명의는 상고할 수 없고, 세묘 때 엄씨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인천이라 불리고 동생은 소천이라 불렸으며, 진실하고 조용하며 중후하였고, 맥리를 정밀하게 꿰뚫어 백에 하나도 실수가 없었으며, 소아과는 오씨 가전을 위주로 대대로 정밀한 이가 있었는데, 지금 소원과 계헌 형제가 모두 명성이 있어 족히 조부의 업을 이었다. 고죽은 외과에 들어갔는데, 용흥사의 늙은 스님 심재라는 이는 오랜 혹이 잔만 하고, 독옹이 등에 가득해도 모두 치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