按《太平縣誌》:王朝請,字疇九,十七都雙瑞人。世習岐黃業,尤攻於痘疹。至朝請以儒習醫,其術益神,論生死無踰時日,授太醫院吏目。每出隨而延者塞途,無貴賤悉爲之診,人以是益頌其德。郡伯傅因醫女驗其神,令同時醫者羣拜師之。子允昌能世其術,亦爲遠邇推服。
《太平縣誌》에 따르면, 왕조청(王朝請)은 자(字)가 주구(疇九)이며, 십칠도(十七都) 쌍서(雙瑞) 사람이다. 대대로 기황(岐黃)의 업을 익혔고, 특히 두진(痘疹)에 정통했다. 조청(朝請)에 이르러서는 유학(儒學)으로 의술을 익혀 그 기술이 더욱 신묘해져, 죽고 사는 것을 시일을 넘기지 않고 판단하였으며, 태의원(太醫院) 이목(吏目)에 임명되었다. 나갈 때마다 따라다니며 청하는 자들이 길을 막았고,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진찰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이로 인해 더욱 그 덕을 칭송했다. 군백(郡伯) 부(傅)가 의녀(醫女)를 통해 그 신묘함을 시험하고, 당시 의사들을 시켜 모두 스승으로 섬기게 했다. 아들 윤창(允昌)이 그 기술을 잘 계승하여, 역시 멀고 가까운 곳에서 추복(推服)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