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𥃎齡時肄業南泉 , 吾師談及馬君渭齡先生學問淵博 , 丰度端凝 , 且精於醫 , 有治十起九手段 , 余心儀久之 。 越翼日 , 先生來齊 , 與吾師縱談今古 , 理析微茫 。 席間誦其春柳句云 : 煙雨半林居士宅 , 鶯花三月酒家門 , 重陽對雨雲北雁 , 信沉千嶂雨江楓 。 秋老半天云 , 其豪邁之氣可想 。 後余宦遊黔中 , 遂不復通音問矣 。 光緒己卯 , 余以黔撫降調先生 。 嗣君敏森見余於南泉 , 草堂呈詩八律 , 清新雅切 , 不落前人窠臼 , 詩人有後益信 , 別後寄其先人遺集求刊 。 余維先生著作等身 , 望隆梓里 , 其醫書可以傳世 , 而咽喉一科尤為醫之首重 , 先生旁搜博採 , 集為大成 , 誠為醫家所必不可少之書 。 及捐廉付梓 , 以廣其傳 , 書成聊綴數語 , 記其巔末於此 。
내가 ‘𥃎齡’의 나이였을 때 남천에서 공부하였는데, 스승께서 마위령 선생은 학문이 깊고 넓으며 풍채가 단정하고 침착하고 또한 의술에 정통하여 열에 아홉을 일으켜 살리는 솜씨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오래도록 마음으로 흠모하였다. 그 이튿날 선생이 서재에 와서 스승과 고금을 자유롭게 논하며 미묘한 이치를 분석하였다. 자리에서 그의 봄 버들 시구를 읊으니 ‘안개비 내리는 반 숲은 거사의 집, 꾀꼬리와 꽃의 삼월은 술집 문’이라 하였다. 중양날 비를 마주한 시에는 ‘북쪽 기러기 소식은 천 겹 산의 비에 잠기고, 강가 단풍은 깊은 가을 반 하늘의 구름’이라 하였으니 그 호매한 기상을 상상할 수 있다. 뒤에 내가 검중으로 벼슬살이를 떠나 마침내 다시 소식을 주고받지 못하였다. 광서 기묘년에 내가 귀주 순무에서 강등되어 전임될 때 선생의 아들 민삼이 남천의 초당에서 나를 만나 율시 여덟 수를 올렸다. 맑고 새로우며 고아하고 절실하여 옛사람의 틀에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시인에게 후계자가 있음을 더욱 믿었다. 헤어진 뒤 그 선친의 유집을 보내 간행을 구하였다. 내가 생각하건대 선생의 저술은 몸의 높이만큼 쌓이고 명망은 고향에서 높았으며, 그 의서는 세상에 전할 만하고 인후 한 과는 의학에서 더욱 첫째로 중요하다. 선생이 널리 찾고 두루 모아 대성하였으니 참으로 의가에게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이에 봉록을 내어 간행하여 널리 전하게 하고 책이 이루어지자 몇 마디를 엮어 그 전말을 여기에 기록한다.
光緒七年辛巳歲仲秋月黎培敬序於漕河節署
광서 7년 신사년 중추월에 여배경이 조하의 절서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