便血痔血論辨

便血一症 ,《 金匱 》 分遠近 , 總由大腸而下 , 至於痔血 , 每下如滴 , 愈罨愈多 。 褚氏云 : 腸有竅 , 便血殺人 , 包括二症也 。 凡便血每於藜藿之人居多 , 以其勞役傷脾 , 脾失統御之權 , 而血為之不守者也 。 痔血每生於膏粱者 , 曲糵厚味 , 積濕積熱 , 留頓大腸廣腸之處 , 每逢便後 , 其痔或內或外 , 從肛門墜下 , 血隨滴滴淋下 , 是為痔血 , 與便血兩途 , 醫者不可不辨 。 余每以臟連丸或加苦參 、 萆薢 , 或參補中益氣法投之輒效 。 然須丸料 , 非煎劑所能治 。 此症最忌房事 , 若不絕欲 , 總要反復 。
변혈은 《금궤》에서 원근으로 나누었으나 모두 대장을 통해 내려온다. 치혈은 늘 방울져 나오며 덮어 누를수록 더 많아진다. 저씨가 “장에 구멍이 있으면 변혈이 사람을 죽인다”고 한 것은 두 증을 포괄한다. 변혈은 대개 거친 나물로 끼니를 잇는 사람에게 많으니 노역으로 비를 상하여 비가 통어하는 권한을 잃고 혈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치혈은 대개 기름진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생기며 술과 진한 맛의 음식으로 습열이 쌓여 대장·광장에 머무른다. 배변 뒤 치핵이 안이나 밖에서 항문으로 내려오고 피가 방울방울 따라 흐르니 치혈로 변혈과는 두 갈래이므로 의사가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늘 장련환에 고삼·비해를 더하거나 보중익기법을 참합하여 투여하면 효과가 있었다. 다만 환약으로 해야 하며 탕제로 치료할 수는 없다. 이 증은 성교를 가장 금하며 성욕을 끊지 않으면 언제나 재발한다.
肛癰 、 懸癰 , 禁忌同上 , 然非盡由虛 。 余幼時患肛間生癰 , 大為所苦 , 自十五歲至二十七歲 , 竄生六枚 , 皆成漏管 , 滋膿淋瀝 , 脹楚難堪 , 是時又患三瘧吐血 , 人皆以為成癆矣 。 後至吳門 , 心境稍舒 , 復又酒醴不禁 , 肛門內痛如刀刺 , 大便欲行不暢 。 醫謂陰虛濕熱 , 非補納不可 , 遂進熟地 、 龜板 , 參 、 耆之類 , 其痛更劇 , 延至經月 , 余意必得大便方快 , 乃自投更衣丸一二錢 , 大便始通 , 痛亦稍緩 , 再一服 , 便暢痛止矣 。 後數月 , 每逢大便必帶血 , 血如注 , 肛旁之漏不覺痛楚 , 竟暗自收疤矣 。 想所伏之熱搏聚於大腸 , 而痔血為出路 , 故肛漏得以痊愈也 。 余任其出路 , 未服一劑湯藥 。 今年屆七旬 , 幸未成癆 , 可見症有虛實 , 不可不察 , 有虛證似實 , 實證類虛 , 截瘧成脹 , 西昌戒以推蕩 , 學者於此揣摩 , 功夫日進矣 。
항옹·현옹의 금기도 위와 같지만 모두 허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릴 때 항문 사이에 옹이 생겨 매우 고생하였다. 열다섯 살부터 스물일곱 살까지 여섯 개가 잇달아 생겨 모두 누관이 되었으며 고름이 계속 흐르고 부풀어 아파 견디기 어려웠다. 그때 삼학과 토혈도 앓아 사람들은 모두 노병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뒤에 오문에 이르러 마음이 조금 펴지고 다시 술을 금하지 않았더니 항문 안이 칼로 찌르듯 아프고 대변을 보려 해도 시원하지 않았다. 의사는 음허습열이므로 보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숙지황·귀판·인삼·황기 등을 주었으나 통증이 더 심해져 한 달을 넘겼다. 나는 반드시 대변을 보아야 시원하리라 생각하여 스스로 경의환 한두 돈을 먹었다. 비로소 대변이 통하고 통증도 조금 줄었으며 다시 한 번 먹자 변이 시원하고 통증이 멎었다. 그 뒤 수개월 동안 대변을 볼 때마다 피가 쏟아지듯 나왔으나 항문 옆 누공은 아프지 않고 뜻밖에도 모르는 사이 아물었다. 잠복한 열이 대장에 모이고 치혈이 출구가 되어 항루가 완쾌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출구대로 두고 탕약 한 첩도 먹지 않았다. 이제 칠십에 가까워 다행히 노병이 되지 않았으니 증에는 허실이 있어 살피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허증이 실과 같거나 실증이 허와 비슷하기도 하며 학질을 끊어 창만이 된 경우에는 서창이 밀어 내리는 것을 경계하였다. 배우는 이가 이를 헤아리면 공부가 날로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