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昔在申江診陶石卿先生 , 時值歲暮 , 小有寒熱 , 投疏散之劑 , 至一候而解 。 繼因恣食米糕 , 復增身熱 , 神情憒憒 , 中脘按之似痛非痛 , 目赤 , 口不渴飲 , 脈濡數 , 進疏導 , 繼以清泄之劑 , 神識愈糊 , 復投珠粉 , 竹瀝 , 牛黃丸 , 神識乃稍清而病仍不退 。 一醫云 : 是陰症內陷 , 不治 。 余構思終夜 , 忽得其法 , 病人曾食熯糕 , 大便從未得行 , 因舌苔白 , 不拒按 , 矢氣不多 , 未敢峻攻 。 昔王肯堂 《 筆麈 》 載俞云衢太史案 , 與此症相符 , 宗其意 , 用涼膈散下之 , 得燥屎三五枚 , 再進 , 再下燥屎數十枚 , 身反大熱 , 咽口腐爛 , 斑疹疊布 , 一月始痊 。 蓋邪熱未清 , 覆被新食阻遏 , 以致熱反不揚 , 一下之後 , 邪食上通下達 , 熱勢反壯 , 乃外泄之佳兆 , 後學知此理否 ?
전에 신강에서 도석경 선생을 진찰하였다. 세밑에 약간의 한열이 있어 소산약을 주니 한 후가 지나 풀렸다. 뒤에 쌀떡을 마음껏 먹어 다시 신열이 더하고 정신이 흐릿하며 중완을 누르면 아픈 듯 아닌 듯하고 눈이 붉되 갈증으로 물을 찾지는 않으며 맥이 유삭하였다. 소도약에 이어 청설약을 주자 정신이 더욱 흐려져 진주 가루·죽력·우황환을 다시 주니 정신은 조금 맑아졌으나 병은 물러나지 않았다. 한 의사는 음증이 안으로 함몰하여 불치라 하였다. 나는 밤새 생각하다 문득 법을 얻었다. 환자는 구운 떡을 먹었고 대변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설태가 희고 누르기를 거부하지 않으며 방귀도 많지 않아 강하게 공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옛날 왕긍당의 《필주》에 실린 유운구 태사 의안이 이 증과 맞아 그 뜻을 본떠 양격산으로 사하하였더니 마른 대변 세 개에서 다섯 개가 나왔다. 다시 주자 수십 개가 더 나왔고 몸은 도리어 크게 열하며 입과 목이 헐고 반진이 거듭 퍼져 한 달에야 나았다. 사열이 아직 맑아지지 않았는데 새 음식이 거듭 막아 열이 도리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번 사하한 뒤 사기와 음식이 위아래로 통하여 열세가 도리어 장성해진 것은 밖으로 빠져나오는 좋은 징조이니 후학은 이 이치를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