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華素稱禮教之邦 , 男女分別甚嚴 。 婦人寂處深閨 , 罔知交際 , 故於生殖器諱莫如深 。 而自生殖器發生之疾患亦秘而不宣 , 對家人然 , 對醫生亦然 。 醫者欲於三指盈寸之地斷明其為何病 , 殊戛戛乎難矣 。 是以昔人有 「 寧治十男子 , 莫治一婦人 」 之諺也 。 而稽考古籍 , 如 《 內 》《 難 》《 金匱 》, 對於女性生殖器之解剖 、 生理 、 病理 , 大都語焉不詳 , 學者既莫能於載籍瞭解生殖器之生理病理 , 復無由取屍體解剖而實地驗查 , 徒以個人之管窺妄測身內之臟器 , 於是諸說紛起 , 莫衷一是 , 使讀者如墮五里霧中矣 。 邇者歐風東漸 , 社交公開 , 頑固之空氣為之一變 , 而診治女子亦不若曩之困難矣 。 特是吾國婦科諸書除由氣化上推闡 , 尚覺精鑿外 , 其涉及形質者類系憑空臆測 , 難於取信 。 苟有人焉取西人之生理病理以印證中土古籍 , 俾數千年來矇混之說昭然若揭 , 而治療一道亦有正規可循 , 斯非特有大功於醫學且造大福於女界也 。 本書博採約取 , 折衷至當 , 復經摺肱老人(曉五公晚年自號折肱老人)鑑定於前 , 永言先生參注於後 , 愈覺盡善盡美 , 嘆謂觀止 。 雖於形質上間有襲謬仍誤之處 , 要亦時世為之 , 訂正之責端賴後人 , 豈得苛求作者歟 。
중화는 본래 예교의 나라라 일컬어졌고 남녀의 구별이 매우 엄격하였다. 부인은 깊은 규방에 조용히 거처하며 교제를 알지 못하므로 생식기를 매우 깊이 꺼려 말하지 않았다. 생식기에서 생기는 질환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으니 집안사람에게도 그러하고 의사에게도 그러하였다. 의사가 세 손가락을 댄 한 치 남짓한 자리에서 무슨 병인지 분명히 판단하려 하니 참으로 매우 어려웠다. 이에 옛사람에게 차라리 열 남자를 치료할지언정 한 부인을 치료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었다. 옛 책인 『내경』·『난경』·『금궤』 등을 살펴보면 여성 생식기의 해부·생리·병리를 대부분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 배우는 이는 책에서 생식기의 생리와 병리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시체를 해부하여 실제로 검사할 길도 없어, 그저 개인의 좁은 견해로 몸속 장기를 함부로 헤아렸다. 이에 여러 설이 어지럽게 일어나 하나로 절충하지 못하여 읽는 이를 오 리 안개 속에 떨어진 듯하게 하였다.
근래 서양 풍속이 동쪽으로 퍼지고 사교가 공개되면서 완고한 분위기가 일변하여, 여자를 진찰하고 치료하는 것도 예전처럼 어렵지는 않다. 다만 우리나라 부인과의 여러 책은 기화에서 추론하여 밝힌 것은 정밀하고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형질에 관한 것은 대개 근거 없이 억측한 것이어서 믿기 어렵다. 서양인의 생리·병리로 중국 옛 책을 대조하고 증명하여 수천 년 동안 어두이 뒤섞인 설을 환히 드러내고 치료의 길에도 따를 올바른 규범을 마련할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의학에 큰 공이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큰 복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널리 모아 요점을 취하고 지극히 알맞게 절충하였으며, 절굉노인 곧 효오공이 만년에 스스로 절굉노인이라 부른 이의 감정을 앞서 거치고 영언 선생이 뒤에 참여하여 주를 달았으므로 더욱 진선진미하여 더 볼 것이 없다고 감탄하였다. 형질에 관하여 간혹 그릇된 것을 이어받고 오류를 그대로 둔 곳이 있지만, 이 또한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니 바로잡을 책임은 오로지 후인에게 달렸다. 어찌 저자에게 가혹하게 요구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