余岳丈陳貞甫太守 。 乃閩中修園先生後裔 。 素以醫名 。 自幼受其指教 。 粗得皮毛 。 但醫書汗牛充棟 。 惟擇其最善者而從之 。 嘗考岐黃 。 治病專精針灸 。 伊尹始傳湯液 。 漢自仲景後 。 初分門類 。 而婦幼乃有專科 。 然皆醫國壽民 。 存心利濟 。 非如近世射利之徒 。 私秘良方 。 行同市儈 。 所以人多輕視而醫學埽地矣 。 光緒乙酉冬 。 吳君幼筠 。 以家藏竹林寺婦科秘本 。 擬將鋟板 。 以廣流傳 。 由翁君式如見示 。 屬為校訂 。 詳細讀之 。 胎產諸症 。 備舉無遺 。 其方亦屬王道 。 並非離奇 。 但非一手所著 。 不敢斷鶴續鳧 。 強為連貫 。 況抄本訛誤 。 句讀難明 。 湯丸顛倒 。 分兩參差 。 所關非細 。 千里毫釐 。 因稍加修飾 。 補短截長 。 酌添分兩 。 配合君臣 。 庶秘方可稱全璧 。 苟居家者 。 既獲此書 。 再益以達生福幼等編 。 則窮僻之鄉 。 審症用藥 。 較以性命付諸庸醫之手 。 得失奚如 。 吾知書成後 。 胎前諳治法 。 產後多良方 。 久秘之本 。 竟得廣傳 。 豈非生民之慶幸也哉 。 校竣 。 序其緣起而歸之 。
나의 장인인 진정부 태수는 민중의 수원 선생 후예로 평소 의술로 이름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아 대략 겉만 알게 되었다. 다만 의서는 소가 짐을 지면 땀을 흘리고 집에 쌓으면 들보까지 찰 만큼 많으므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따를 뿐이다. 일찍이 기백과 황제를 살피니 병 치료에 침구를 전문으로 정밀히 하였고, 이윤이 처음 탕액을 전하였다. 한나라 중경 이후 처음 문류를 나누어 부인과 소아에 전문 분야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 나라를 치료하고 백성을 오래 살게 하며 사람을 이롭게 하고 구제하는 데 마음을 두었으니, 근세에 이익을 노리는 무리가 좋은 처방을 사사로이 숨기고 행동을 거간꾼처럼 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경시하여 의학이 땅에 떨어졌다. 광서 을유년 겨울, 오유균 군이 집에 간직한 죽림사 부과 비본을 판각하여 널리 전하려고 옹식여 군을 통해 나에게 보여 주며 교정을 부탁하였다. 자세히 읽어 보니 임신과 출산의 여러 증을 빠짐없이 갖추었고 처방도 정도에 속하여 기이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므로 감히 학의 다리를 자르고 오리의 다리를 이어 붙이듯 억지로 연결하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필사본에 오류가 있고 구두가 분명하지 않으며 탕과 환이 뒤바뀌고 분량이 들쭉날쭉하니 관계되는 바가 작지 않고 털끝 차이가 천 리가 된다. 이에 조금 다듬어 짧은 것은 보충하고 긴 것은 잘라 내며, 분량을 헤아려 더하고 군신을 배합하여 거의 비방이 완전한 옥이라 할 수 있게 하였다. 집에 사는 사람이 이 책을 얻고 다시 『달생』·『복유』 등의 편을 더한다면 궁벽한 마을에서 증을 살피고 약을 쓰는 것이 목숨을 용렬한 의사의 손에 맡기는 것에 비해 득실이 어떻겠는가? 나는 책이 이루어진 뒤 태전에는 치료법을 알고 산후에는 좋은 처방이 많아, 오래 숨겨진 책이 마침내 널리 전해지리라 생각하니 어찌 백성의 경사가 아니겠는가! 교정을 마치고 그 연유를 서술하여 돌려보낸다.
光緒丙戌年 。 春正月 。 仁和禮堂曹秉綱 。 序於鄂匏齋 。
광서 병술년 봄 정월, 인화의 예당 조병강이 악포재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