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之所愛 。 莫有過愛子者也 。 而受之至 。 不能無所憂 。 憂之至 。 莫有過憂其疾者也 。 唯其疾是憂 。 不知所以除之之道而可乎 。 傳云 。 有疾不擇醫 。 為不慈不孝 。 夫苟飲免不慈不孝之譏 。 且莫如擇醫之良矣 。 夫醫之為技 。 不專其科 。 則不能得也 。 志分道岐 。 盼一生技亦不能精也 。 如甘繩之射 。 甯越之學 。 輪扁之劉輪 。 佝僂丈人之承蜩 。 可以觀也已 。 自非神完守固 。 外物不膠考 。 何能有慧解哉 。 是以醫之為技 。 專門之士而往往有良言 。 平安廣川子 。 專業啞科 。 來遊於吾崎 。 留二歲 。 術日大行 。 即越人之通咸陽也 。 予頞好方脈之書 。 廣川子清與予交 。 每或相會 。 輒及脈家之說 。 一日攜清人周士稱嬰兒論 。 告曰 。 某曩購此書 。 實為獲異寶 。 玩而驗之嚴驚疳癖諸症 。 率皆無不奇中 。 周氏之於小方脈 。 可謂精矣 。 予欲附之剞劂 。 以公於天下 。 子幸賜弁一言 。 可以行遠也 。 予受卒業 。 乃欲曰 。 周氏之精啞科 。 猶業生鑑病於鏡 。 臟腑癥結 。 瞭然可知也 。 蓋神完守固 。 外物不膠 。 而後得者也 。 廣川子之獲之 。 亦不異越人之遇長桑君 。 斯筆之行也 。 天下之受其子 。 而憂其疾者 。 必延熟斯書之醫 。 則亦可不謂知所擇哉 。 支然後庶哉免不慈之飢矣乎 。
사람이 사랑하는 것 가운데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그런데 받음(受)이 지극하면 걱정하는 바가 없을 수 없다. 걱정이 지극한 것 가운데 그 병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오직 그 병을 걱정하면서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알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전에서 병이 있는데 의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자애롭지 못하고 효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진실로 불자·불효라는 비난을 음면(飲免)하려면 또한 좋은 의사를 가리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의술이라는 기술은 그 분야에 전념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뜻이 나뉘고 길이 갈리면 평생을 바라보아도 기술이 정밀해지지 못한다. 감승의 활쏘기, 영월의 학문, 윤편의 유륜(劉輪), 곱사등이 노인의 매미 잡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스스로 신이 온전하고 지킴이 굳으며 외물이 교고(膠考)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슬기로운 깨달음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의술이라는 기술에는 전문으로 하는 선비에게서 흔히 좋은 말이 나온다. 평안의 광천자는 아과를 전문으로 하여 우리 기에 와서 유람하며 두 해 머물렀는데 의술이 날로 크게 행해지니 곧 월인이 함양에 통한 것과 같았다. 나는 방맥의 책을 알호(頞好)하였고 광천자는 청(清)하게 나와 교유하였다. 서로 만날 때마다 곧 맥가의 학설에 미쳤다. 하루는 청나라 사람 주사칭의 『영아론』을 가지고 와서 말하였다. “저는 지난날 이 책을 구입하여 참으로 기이한 보배를 얻었습니다. 완미하고 엄경·감·벽의 여러 증에 시험하니 대개 모두 기묘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주씨는 소방맥에 정밀하다고 할 만합니다. 저는 이를 판각하여 천하에 공개하고자 합니다. 그대가 다행히 한마디 서문을 내려 주면 멀리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받아 끝까지 읽고 이에 말하고자 하였다. “주씨가 아과에 정밀한 것은 업생(業生)이 거울에서 병을 살펴 장부의 징결을 분명히 아는 것과 같다. 신이 온전하고 지킴이 굳으며 외물에 얽매이지 않은 뒤에 얻은 것이다. 광천자가 이를 얻은 것도 월인이 장상군을 만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글이 행해지면 천하에서 자식을 받고(受) 그 병을 걱정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책에 익숙한 의사를 맞이할 것이니, 또한 가릴 바를 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연후(支然後)에야 아마 불자의 굶주림(飢)을 면하리라.”
寬政丁己孟陬望日長崎吉村正隆士興題
관정 정기(丁己)년 맹추(孟陬) 보름날, 장기 길촌정륭 사흥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