意穩見夫子診證濟世 , 嘗懷未足 , 慮醫之正學久湮 , 紕繆日多 , 是以弗憚苦心 , 取仲景書於應酬之暇 , 乘皓月以參詳 , 或簧燈以殘漏 , 提海蕙等 , 而兼閱注述 。 撰有 《 溫熱病論 》、《 虛勞內傷 》、《 天元樞法 》、《 傷寒辭潔 》、《 坤儀髓要 》、《 客窗偶談 》、《 治證神機雜病 》 等書一百餘卷 , 統曰 《 醫徵 》, 誠軒歧之正學 , 濟世之津梁也 。 茲先以仲景傷寒 、 金匱 、 溫熱 、 內傷四書屬蕙等校讎付梓 , 蕙弗獲以無能辭 , 受而讀其所注 , 蓋非頓明心地 , 深透軒歧之理者莫能及也 , 即如注 《 金匱 》 之治未病 , 發明時今之虛實陽病陰病之十八 , 即以六淫 、 營衛而分之 , 陰毒辨非虛寒百合 、 邪流臟腑 、 婦人諸病 , 皆為血海受邪 , 一源而出 , 傷寒之病機流伏 , 以厥陰之木邪臨土而厥 , 互明六經之生克 , 與夫創發 《 內經 》 之 《 溫熱病論 》, 此皆仲景以後諸賢未能道者矣 。 夫子悉啟其秘 , 真為造物以生人 , 其有益於後世不淺 , 豈僅為軒歧 、 仲景之功臣而已哉 ? 孔子 《 春秋 》 成 , 遊 、 夏不能贊一辭 , 吾師注成 , 蕙亦奚敢贅言 ? 但以身任錄正 , 故述梗概 , 以冀同志者黽勉而深造焉 。
생각해 보면, 선생께서 증상을 진찰하고 세상을 구제하시면서도 늘 부족하게 여기시며 의학의 바른 학문이 오래 묻히고 오류가 날로 많아지는 것을 염려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고심을 꺼리지 않고 응접하는 틈에 중경의 책을 꺼내 밝은 달 아래서 자세히 참구하고, 혹 등불 아래서 밤이 다하도록 이혜 등에게 가르침을 주시며 주석과 저술을 함께 살피셨다. 《온열병론》·《허로내상》·《천원추법》·《상한사결》·《곤의수요》·《객창우담》·《치증신기잡병》 등 백여 권을 지어 통틀어 《의징》이라 하셨으니 참으로 황제·기백의 바른 학문이며 세상을 구제하는 나루와 다리이다. 이번에 먼저 중경의 상한과 금궤, 온열, 내상의 네 책을 이혜 등에게 맡겨 교감하여 판각하도록 하셨다. 나는 무능을 이유로 사양할 수 없어 받아 주석하신 것을 읽어 보니 마음의 바탕을 문득 밝히고 황제·기백의 이치를 깊이 꿰뚫은 사람이 아니면 미칠 수 없는 것이었다. 《금궤》의 치미병을 주석하면서 시령의 허실과 양병·음병 각각 열여덟 가지를 밝힌 것은 곧 육음과 영위로 나눈 것이다. 음독이 허한이 아님을 분별하고, 백합병에서 사기가 장부로 흐르는 것과 부인의 여러 병은 모두 혈해가 사기를 받아 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임을 밝혔다. 상한의 병기가 흐르고 잠복하는 것에서는 궐음의 목사가 토에 임하여 궐하는 것으로 육경의 생극을 서로 밝혔으며, 아울러 《내경》에서 《온열병론》을 새롭게 밝혀내셨다. 이는 모두 중경 이후 여러 현인이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생께서 그 비밀을 모두 열어 주셨으니 참으로 조물주를 대신하여 사람을 살리신 것이다. 후세에 끼칠 이익이 얕지 않으니 어찌 단지 황제·기백과 중경의 공신일 뿐이겠는가? 공자의 《춘추》가 완성되자 자유와 자하도 한마디 보태지 못하였다. 우리 스승의 주석이 완성되었는데 나 이혜가 또 어찌 감히 군말을 보태겠는가? 다만 직접 기록하고 바로잡는 일을 맡았으므로 대강을 서술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힘써 깊은 경지에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廣陵門生李蕙拜跋
광릉의 문생 이혜가 삼가 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