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曰 。 皇建其有極 。 不建有極 。 民何乎遵守 。 醫亦然 。 漢張仲景著傷寒論 。 於是乎極建 。 然二千載尚矣 。 其書雖存 。 文之闕也 。 簡之錯也 。 非仲景之古 。 於是錯綜諸篇 。 夕考而朝試 。 如有得焉 。 於是友人云門曾先生曰 。 夫醫之掌疾病者 。 治之也方已 。 今諸家之處方也 。 師弟子不必同 。 何故耶 。 曰無定極也 。 夫仲景之為方也有法 。 方證相對也 。 不論因也 。 建而正於毒之中 。 此之謂極也 。 賢愚無違 。 可違非法 。 治乎在茲 。 不乎在茲 。 習乎在茲 。 教乎在茲 。 此法之不可以忽也 。 猶兵之有法 。 如先後之與取捨 。 則存於其人 。 此之謂略也 。 略不可傳也 。 法可傳矣 。 曾先生曰 。 法之可傳也方已 。 何不記以傳焉 。 曰未盡也 。 曰記其所得焉 。 於是使品玄左記方之所之也 。 名曰方極 。
『서경』에 “임금은 그 극을 세운다”라고 하였다. 극을 세우지 않으면 백성이 무엇을 준수하겠는가. 의술도 그러하다. 한나라 장중경이 『상한론』을 지으면서 이에 극이 세워졌다. 그러나 2천 년이 오래 지났으므로 책이 남아 있어도 글이 빠지고 죽간의 차례가 뒤섞여 중경의 옛 모습이 아니다. 이에 여러 편을 엮어 저녁에 상고하고 아침에 시험하니 얻은 것이 있는 듯하였다. 벗 운문 증선생이 “의사가 질병을 맡아 치료하는 것은 처방일 뿐인데 지금 여러 의가의 처방은 스승과 제자도 반드시 같지 않으니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정해진 극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경이 처방을 만든 데에는 법이 있으니 처방과 증이 서로 대응하고 원인을 논하지 않습니다. 독의 한가운데에 세워 바로잡는 것, 이를 극이라 합니다.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어기지 않아야 하며, 어겨도 된다면 법이 아닙니다. 치료가 되는 것도 여기에, 안 되는 것도 여기에, 익히는 것도 여기에, 가르치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법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병법과 같습니다. 선후와 취사 같은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렸으니 이를 방략이라 합니다. 방략은 전할 수 없지만 법은 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증선생은 “전할 수 있는 법은 처방일 뿐이니 어찌 기록하여 전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얻은 것만 기록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품현좌에게 처방이 향하는 바를 기록하게 하고 『방극』이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