暑病有宜用參者論

盛夏酷熱 , 爍石流金 , 汗出過多 , 未有不傷氣者 。 內經云 : 熱傷氣 。 又云 : 壯火食氣 。 故治之必顧氣分 , 補氣之藥 , 孰有過於參哉 ? 孫真人生脈散 , 東垣清暑益氣湯 , 丹溪十味香薷飲 , 皆人人共見之方 , 未有不用參者 。 至人參白虎湯 , 乃 《 金匱 》 中暍門專主之方 ,《 金匱 》 乃醫聖仲景之書 , 是不足法 , 更何法也 ? 今人見中暑之症 , 往往疑為時邪而不敢用 , 不知四時不正之氣 , 如春當暖反涼 , 夏當熱反寒 , 秋當涼反熱 , 冬當寒反溫 , 感而病者 , 謂之時邪 。 暑乃六氣中之一氣 , 本天地之正熱 , 應時而至 , 人或不慎 , 感之而病 , 是直中暑而已 。 不得混謂之時邪也 。 竟有霍然撩亂 , 上吐下瀉 , 汗出如油 , 陽微欲絕 , 非重用參 、 附 , 不能挽救者 。 猶記亡友劉南士云 : 其兄文星 , 精堪輿之學 , 七月初 , 為人相地 , 在羅店地方 , 中暑霍亂 , 吐瀉交作 , 十指螺紋盡癟 , 危在頃刻 , 醫盡束手 。 適有友人周介儒 , 在其地處館 , 視之 , 以為氣虛欲脫也 。 重用一味高麗參 , 煎湯服之 , 吐瀉頓止 , 螺紋盡綻 。 及南士聞信趕至 , 已愈矣 。 皆驚以為奇 , 而不知非奇也 , 人特不細思耳 。 蓋文星體素肥胖 , 外有餘者 , 中氣必不足 ; 又當秋暑方張之日 , 履地勞苦之事 , 氣之傷也決矣 。 既經大吐 、 大瀉 、 大汗 , 舍參無別法矣 。 其效之神速 , 不亦宜乎 ? 或曰 ; 暑天豈無穢濁之氣 , 何可用參以補住之 ? 余曰 : 此病之所以貴乎看也 , 果有穢濁 , 原不可補 。 不知當大吐瀉之後 , 即有穢濁 , 亦必盡去 , 此時不補其氣 , 更有何法可用 ? 況亦有本無穢濁 , 而僅感暑氣 , 體虛不克支持者乎 ? 奈何執暑天不可用補之說 , 坐令有可治之法 , 而聽其不治也 。
한여름의 혹독한 더위가 돌을 녹이고 쇠를 흐르게 하며 땀을 지나치게 많이 흘리면 기를 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경》은 ‘열은 기를 상한다’고 하였고, 또 ‘장화는 기를 먹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치료할 때 반드시 기분을 살펴야 한다. 기를 보하는 약으로 인삼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손진인의 생맥산, 동원의 청서익기탕, 단계의 십미향유음은 모두 누구나 보는 처방이며 인삼을 쓰지 않은 것이 없다. 인삼백호탕에 이르면 《금궤》의 중갈문에서 전문적으로 주치하는 처방이다. 《금궤》는 의성 중경의 책인데 이것을 본받을 만하지 않다고 하면 다시 무엇을 본받겠는가? 지금 사람들은 중서 증상을 보면 흔히 시사로 의심하여 감히 인삼을 쓰지 않는다. 사시의 바르지 않은 기, 예컨대 봄에 따뜻해야 하는데 도리어 서늘하고 여름에 더워야 하는데 도리어 추우며 가을에 서늘해야 하는데 도리어 덥고 겨울에 추워야 하는데 도리어 따뜻한 기에 감촉되어 병드는 것을 시사라 한다는 것을 모른다. 서는 육기 가운데 하나로 본래 천지의 정상적인 더위이며 때에 맞추어 이른다. 사람이 혹 삼가지 못하여 이를 받아 병들면 바로 서에 적중한 것일 뿐이므로 시사와 뒤섞어 말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어지럽게 뒤틀리며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하고 땀이 기름처럼 나며 양이 미약하여 끊어지려 해서, 인삼·부자를 많이 쓰지 않으면 돌이켜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죽은 벗 유남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의 형 문성은 감여학에 정통하였는데, 칠월 초에 남을 위해 땅을 보러 나갔다가 나점 지방에서 더위에 상해 곽란을 앓았다. 구토와 설사가 함께 일어나고 열 손가락의 지문이 모두 쭈그러들어 위태로움이 경각에 달했지만 의사들은 모두 손을 놓았다. 마침 벗 주개유가 그곳 서당에 있었는데, 보고 기허로 탈하려는 것이라 여겼다. 고려삼 한 가지를 많은 양으로 달여 먹이니 구토와 설사가 갑자기 그치고 지문이 모두 펴졌다. 남사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는 이미 나았다. 모두 놀라 기이하게 여겼지만, 기이한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세히 생각하지 않았을 뿐임을 몰랐다. 문성은 몸이 본래 뚱뚱했으니 겉이 넉넉한 사람은 중기가 반드시 부족하다. 또 가을 더위가 한창인 때에 땅을 밟아 다니는 고된 일을 했으므로 기가 상한 것이 확실하다. 이미 크게 토하고 크게 설사하고 땀을 많이 흘렸으니 인삼을 버리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 효과가 신속한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이가 ‘더운 날에 어찌 더럽고 탁한 기가 없겠는가? 어떻게 인삼으로 보하여 붙들어 둘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나는 ‘바로 이 때문에 병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예탁이 있으면 본래 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크게 토하고 설사한 뒤에는 예탁이 있더라도 반드시 모두 나갔을 것임을 모른다. 이때 기를 보하지 않으면 다시 무슨 방법을 쓸 수 있겠는가? 하물며 본래 예탁은 없고 다만 서기를 받아 몸이 허해서 버티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찌 더운 날에는 보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고집하여, 치료할 방법이 있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치료하지 못하게 내버려 두는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