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人精神充足 , 氣血和平 , 是謂無病 。 焉用服藥 ? 至於服藥 , 必有偏勝不舉之處 。 醫者便當視其所偏之處而補救之 , 使之適得其平 。 溫涼攻補 , 隨病而施 , 無所成見 , 期於中病而已 。 豈容狐疑首鼠哉 ? 譬如劇盜 , 當剿不剿 , 盜將不可制矣 ; 譬如饑民 , 當撫不撫 , 民且亦從亂矣 。 今之治病者 , 無乃類是 。 更有一種醫中之鄉愿 , 專使藥中之奴婢 , 不溫不涼 , 不攻不補 , 以為趨避逢迎之術 , 病家每樂與之周旋 。 豈知藥不能殺人者 , 必不能起人於死而生之 。 遷延貽誤 , 何獨非殺人哉 ? 且夫世所謂能殺人者 , 石膏 、 大黃 、 麻黃 、 肉桂 、 附子 、 人參之屬也 。 今皆屏不敢用 , 即有引用古方者 , 但取其一二不關緊要之味 , 謂師某法 , 用某方 , 其實未嘗師其法 , 用其方也 。 並有不知其全方者 。 如旋覆代赭 、 竹葉石膏 、 小柴胡等湯之不知其人參 。 黑膏湯之但知有生地 、 豆豉二味 , 不知又有豬膚 、 雄黃 、 麝香三味也 。 (載在 《 外臺秘要 》 以治陽毒發斑 。 )他若溫而兼補 , 則如理中湯之以姜附合人參也 。 清而兼補 , 則如白虎湯之以石膏加人參也 。 散而兼補 , 則如清暑益氣湯之以升 、 葛合參 、 耆也 。 寒溫並用 , 則如瀉心湯之芩 、 連薑 、 附 , 左金丸之黃連 、 吳萸是也 。 表裡兩解 , 則如大青龍湯之麻 、 桂 、 石膏 , 白虎湯之加桂枝 、 柴胡是也 。 汗下並行 , 則如大胡柴湯之柴胡 、 大黃 , 又如柴胡加芒硝湯 、 桂枝加大黃湯是也 。 更有如清熱燥濕之用蒼朮白虎湯 , 攻下和中之用調胃承氣湯之類 , 不勝枚舉 。 要在方中乎病耳 。 何一不可用之藥 , 而故為疑忌乎 ? 今之醫者 , 論藥不論病 , 用方不用藥 。 但云某藥太補 , 某藥太瀉 , 某藥太溫 , 某藥太涼 , 某藥太熱 , 某藥太表 , 某藥太散 , 某藥太燥 , 某藥太膩 , 某藥太攻 , 某藥太消 。 去其偏勝 , 得其中和 , 誠無愈於粥飯矣!何必服藥哉 ? 此皆不知藥為病設 , 專為補偏救弊之用故也 。
사람의 정신이 충족하고 기혈이 화평한 것을 병이 없다고 한다. 어찌 약을 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약을 먹어야 한다면 반드시 한쪽이 치우치게 우세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이다. 의사는 그 치우친 곳을 살펴 보완하고 구제하여 알맞게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따뜻하게 하거나 서늘하게 하거나 공격하거나 보하는 것을 병에 따라 시행하되, 선입견 없이 병에 들어맞기를 바랄 뿐이다. 어찌 의심하며 이쪽저쪽 망설일 수 있겠는가? 사나운 도적에 비유하면 토벌해야 할 때 토벌하지 않으면 장차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굶주린 백성에 비유하면 보살펴야 할 때 보살피지 않으면 백성도 난리에 가담하게 된다. 지금 병을 치료하는 이들은 이와 같지 않은가? 더구나 의사 가운데 향원 같은 부류가 있어, 오직 약 가운데 노비 같은 것만 부려 따뜻하게도 서늘하게도 하지 않고 공격하지도 보하지도 않으며, 이해를 좇고 피하면서 비위를 맞추는 술책으로 삼는다. 환자 집안은 흔히 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약은 반드시 죽어 가는 사람을 일으켜 살릴 수도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지체하여 그르치게 하는 것이 어찌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하는 약은 석고·대황·마황·육계·부자·인삼 같은 것들이다. 지금은 모두 물리쳐 감히 쓰지 않으며, 옛 처방을 인용하더라도 그중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 약만 취하여 누구의 법을 본받고 무슨 처방을 쓴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법을 본받지도 않고 그 처방을 쓰지도 않은 것이다. 전체 처방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선복대자탕·죽엽석고탕·소시호탕 등에 인삼이 있는 줄 모르고, 흑고탕에는 생지황과 두시 두 약만 있는 줄 알면서 저부·웅황·사향 세 약도 있는 줄 모르는 것이 그 예이다. 흑고탕은 《외대비요》에 실려 있으며 양독으로 반이 돋는 것을 치료한다. 그 밖에 따뜻하게 하면서 보하는 것은 이중탕에서 건강·부자에 인삼을 배합하는 것과 같고, 맑히면서 보하는 것은 백호탕에서 석고에 인삼을 더하는 것과 같다. 발산하면서 보하는 것은 청서익기탕에서 승마·갈근에 인삼·황기를 배합하는 것과 같다. 찬 약과 따뜻한 약을 함께 쓰는 것은 사심탕의 황금·황련·건강·부자와 좌금환의 황련·오수유 같은 것이다. 표리를 함께 푸는 것은 대청룡탕의 마황·계지·석고와 백호탕에 계지·시호를 더하는 것 같은 것이다. 발한과 하법을 함께 행하는 것은 대호시탕의 시호·대황과 같고, 또한 시호가망초탕과 계지가대황탕 같은 것이다. 이 밖에 열을 맑히고 습을 말리는 데 창출백호탕을 쓰며, 공격하여 내리고 중초를 조화시키는 데 조위승기탕을 쓰는 등의 예는 다 들 수 없다. 요점은 처방이 병에 들어맞는 데 있을 뿐이다. 어느 약인들 쓸 수 없기에 일부러 의심하고 꺼리는가?
지금의 의사들은 약을 논하고 병은 논하지 않으며, 처방을 쓴다면서 그 약은 쓰지 않는다. 그저 어떤 약은 너무 보하고, 어떤 약은 너무 사하며, 어떤 약은 너무 따뜻하고, 어떤 약은 너무 서늘하고, 어떤 약은 너무 뜨겁고, 어떤 약은 너무 표를 풀고, 어떤 약은 너무 발산하고, 어떤 약은 너무 건조하고, 어떤 약은 너무 눅진하고, 어떤 약은 너무 공격하고, 어떤 약은 너무 소도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 치우친 성질을 없애 중화를 얻으려 한다면 참으로 죽과 밥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어찌 굳이 약을 먹겠는가? 이는 모두 약이 병 때문에 마련되었으며 오로지 치우침을 보완하고 잘못된 상태를 구제하기 위한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