友人岩生 。 受刀圭之術于吉益翁 。 其肆業之餘 。 銳意操觚 。 又就余而正焉 。 可謂篤志也已 。 一日手冊子請余序曰 。 此編雖小也 。 錄我先生所治 。 其疾若固若奇 。 皆世醫所不能下手也 。 其佗謂病在膏肓者而起之 。 不可勝數也 。 乃別錄之 。 不在此數 。 王充曰微病恆醫皆巧 。 篤劇扁鵲乃良 。 若我先生者 。 可不謂良也乎 。 先生常謂 。 曰何病不可愈 。 其不愈也 。 亦惟醫之所為之 。 然而不能生死人 。 起自當生者耳 。 所謂死病無良醫者 。 非不可愈焉 。 命之盡也 。 死生天也 。 非人也 。 命之未盡也 。 何病不可愈矣 。 果信乎 。 先生華於枯肉於骨 。 亦惟古方之用 。 其所用也運用應變 。 卓然自為一家 。 所謂藥不必出扁鵲之方 。 合之者善 。 可以為法者乎 。 非妄言古方之倫也 。 蓋不能用古方也 。 唐而後邪 。 即有用之 。 亦晨星耳 。 不然則畫蛇添足也 。 金張元素曰 。 運氣不齊 。 古今異軌 。 古方新病不相能也 。 其說浸洽後世醫流之肺腑 。 至乃不懼病懼藥 。 使輕病而漸療勿論 。 已所不能愈 。 輒命為廢痼 。 滔滔皆是也 。 此乃先生所為發憤有慨也 。 噫 。 後之醫 。 胡不思也 。 今之天地 。 古之天地 。 陰寒陽溫 。 日居月諸 。 東方自出 。 人字育其中 。 奚古與今異之有 。 而古今異之論 。 猶言卵有毛 。 蛇長於龜 。 公孫白馬之說乎 。 不然則據佛氏之說乎 。 勃窣理窟 。 論愈鑿術愈拙 。 不徒飾言亂實 。 乃為害不鮮矣 。 故此舉也 。 錄經實得驗 。 以為同好之弦韋已 。 余聞其言讀其書 。 欣然而謂曰 。 善哉是舉也 。 余自交東洞翁 。 後先耳目其術奏效也 。 以語人 。 則不信者 。 謂阿其所好 。 或為侜張其事溢美其言 。 不然則愕然吐舌以為不近人情也 。 此編出則疑余言者 。 瞭然如觀火 。 知非無稽之言矣 。 其猶為世醫投良藥矣乎 。 除泄其固習之舊毒乎 。 其唯於今乎 。 天下後世蓋聞風焉興者 。 亦或有之 。 亦惟東洞翁之賜 。 而岩生受而施之者乎 。 非邪 。 為岩生請其序 。 書其所論 。 以贈之云爾 。
벗 암생은 길익옹에게 도규의 의술을 배웠다. 학업을 닦는 틈에 힘써 글을 쓰고 또 나에게 와 바로잡으니 뜻이 독실하다고 할 만하다. 어느 날 작은 책을 들고 와 서문을 청하며 말하였다. “이 책은 비록 작지만 우리 선생이 치료한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고질이거나 기이한 병이거나 모두 세상 의사들이 손을 대지 못한 것입니다. 그 밖에 병이 고황에 들었다고 하는 이를 일으킨 것은 이루 셀 수 없어 따로 기록하였으므로 이 수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왕충은 ‘가벼운 병에는 보통 의사도 모두 솜씨가 있지만 위중하고 극심한 병에는 편작이라야 훌륭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선생 같은 분을 훌륭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은 늘 ‘어떤 병인들 낫지 못하겠는가? 낫지 않는 것은 또한 의사가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고 본래 살아야 할 사람을 일으킬 뿐이다. 죽을 병에는 좋은 의사가 없다고 하는 것은 낫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명이 다한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지 사람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어떤 병인들 낫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믿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선생이 마른 것을 꽃피우고 뼈에 살이 붙게 하는 것도 오직 고방을 쓰는 것입니다. 운용하여 변화에 대응함에 우뚝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으니, 이른바 약이 반드시 편작의 처방에서 나올 필요는 없고 알맞게 하는 것이 훌륭하다는 것으로 법 삼을 만하지 않겠습니까? 고방을 망령되이 말하는 무리와는 다릅니다. 고방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 당나라 이후부터가 아니겠습니까? 쓰는 이가 있어도 새벽별과 같으며 그렇지 않으면 뱀을 그리고 발을 붙이는 격입니다. 금나라 장원소는 ‘운기가 같지 않고 고금의 궤도가 달라 고방과 새 병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이 후세 의사들의 폐부에 깊이 스며들어 병은 두려워하지 않고 약을 두려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벼운 병을 차츰 치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낫게 할 수 없는 병은 곧 폐고라 이름 붙이는 이가 도도히 모두 그러합니다. 이것이 선생께서 분발하고 개탄하시는 까닭입니다. 아, 후세 의사들은 어찌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금의 천지는 옛날의 천지이며 음은 차고 양은 따뜻하며 해와 달은 동쪽에서 나고 사람이 그 가운데 자라는데, 어찌 옛날과 지금이 다르겠습니까? 고금이 다르다는 논의는 오히려 알에 털이 있다거나 뱀이 거북보다 길다는 말, 공손의 백마설과 같지 않습니까? 아니면 불씨의 설에 근거한 것입니까? 이치의 굴속에서 분주히 움직이며 논의가 천착할수록 의술은 더욱 졸렬해집니다. 말을 꾸며 사실을 어지럽힐 뿐 아니라 해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실제로 겪고 효험을 얻은 것을 기록하여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현위로 삼으려 할 뿐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책을 읽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이번 일이여. 내가 동동옹과 사귄 이래 앞뒤로 그 의술이 효과를 내는 것을 보고 들어 남에게 말하면, 믿지 않는 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거나 일을 과장하고 지나치게 칭찬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놀라 혀를 내두르며 인정에 가깝지 않다고 여겼다. 이 책이 나오면 내 말을 의심하는 이도 불을 보듯 환히 알아 근거 없는 말이 아님을 알 것이다. 또한 세상 의사들에게 좋은 약을 주어 고착된 습관의 묵은 독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지금이 그때가 아니겠는가? 천하 후세에 풍문을 듣고 일어나는 이도 혹 있을 것이다. 이 역시 동동옹이 베풀고 암생이 받아 펼친 것이 아니겠는가?” 암생의 서문 청을 위해 논한 바를 적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