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問之道 , 必由淺入深 , 從未有淺近不知而專求怪僻者 。 況醫法一誤 , 必至傷生害命 , 尤不可不慎也 ! 夫所謂淺近者 , 如傷風則防風 、 荊芥 , 感寒則蘇葉 、 蔥頭 , 咳嗽則蘇子 、 杏仁 , 傷食則山楂 、 神麯 , 傷暑則香薷 、 廣藿 , 瘧疾則柴胡湯加減 , 痢疾則黃芩湯加減 , 婦人則四物湯加減 , 小兒則異功散加減 。 此皆歷聖相傳之定法 , 千古不能易也 。 至於危險疑難之症 , 則非此等藥所能愈 , 必博考群方 , 深明經絡 , 實指此病何名 , 古人以何方主治而隨症加減 。 今則以古聖之法為卑鄙不足道 , 又不能指出病名 , 惟以陽虛 、 陰虛 、 肝氣 、 腎弱等套語概之 , 專用溫補 , 以致外邪入里 。 馴至不救 ; 間有稍馴謹之人 , 起病時仍用切近之藥一二劑 , 未即有效 , 即轉而改為溫補 。 不思病之中人 , 愈必有漸 , 不可因無速效而即換方也 。 況所服之方 , 或未盡善 , 不思即於前方損益萬妥 , 而遽求變法 , 又不肯先用輕淡之劑探測病情 , 專取性雄力厚之品 , 大反前轍 , 必至害不旋踵 。 總由胸無定見之故 。 當思人之有病 , 不外風 、 寒 、 暑 、 濕 、 燥 、 火為外因 , 喜 、 怒 、 憂 、 思 、 悲 、 驚 、 恐為內因 , 此十三因 , 試問何因是當補者 ?!
학문의 도는 반드시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들어가야 하니, 얕고 가까운 것을 모르면서 괴이하고 편벽된 것만 구하는 경우는 없었다. 하물며 의법을 한 번 잘못하면 반드시 생명을 해치므로 더욱 삼가지 않을 수 없다. 얕고 가까운 것이란 상풍에는 방풍·형개, 한에 감하면 소엽·파의 머리, 기침에는 소자·행인, 식상에는 산사·신곡, 상서에는 향유·광곽, 학질에는 시호탕 가감, 이질에는 황금탕 가감, 부인에는 사물탕 가감, 소아에는 이공산 가감 같은 것이다. 이는 여러 성인이 전한 정해진 법으로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위태롭고 의심스러우며 어려운 증은 이러한 약으로 낫게 할 수 없으므로 여러 처방을 널리 상고하고 경락을 깊이 알아 이 병의 이름이 무엇이고 옛사람이 어떤 처방으로 주치하였는지 실제로 지적한 뒤 증에 따라 가감해야 한다. 지금은 옛 성인의 법을 비루하여 말할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 병명도 지적하지 못하고 양허·음허·간기·신약 같은 상투어로 뭉뚱그려 온보만 써서 외사가 속으로 들어가 점차 구하지 못하게 한다. 간혹 조금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은 발병 때 가까이 맞는 약을 한두 첩 쓰다가 곧 효과가 없으면 온보로 바꾼다. 병이 사람에게 들어오면 낫는 데 반드시 과정이 있으므로 속효가 없다고 바로 처방을 바꾸어서는 안 됨을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복용한 처방이 완전히 좋지 않았다면 앞 처방을 증감하여 만전을 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갑자기 다른 법을 구한다. 또 가볍고 담담한 약제로 병정을 살피려 하지 않고 성질이 강하고 힘이 두터운 약만 취해 앞의 길과 크게 반대로 가니 반드시 발꿈치를 돌리기도 전에 해를 끼친다. 모두 가슴속에 정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병은 풍·한·서·습·조·화가 외인이고 희·노·우·사·비·경·공이 내인인 데서 벗어나지 않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 열세 원인 중 어느 원인을 보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大凡人非老死即病死 , 其無病而虛死者 , 千不得一 , 況病去則虛者亦生 , 病留則實者亦死 。 若果元氣欲脫 , 雖浸其身於參 、 附之中 , 亦何所用 ? 乃謬舉 《 內經 》 曰 :「 邪之所湊 , 其氣必虛 。」 氣虛固當補矣 , 所湊之邪不當去耶 ? 蓋邪氣補住則永不復出 , 重則即死 , 輕則遷延變病 ; 或有幸而愈者 , 乃病輕而元氣漸復 , 非藥之功也 。
대체로 사람은 늙어서 죽지 않으면 병으로 죽으며 병 없이 허하여 죽는 사람은 천에 하나도 없다. 더구나 병이 없어지면 허한 사람도 살고 병이 남으면 실한 사람도 죽는다. 참으로 원기가 이탈하려 하면 몸을 인삼·부자 속에 담가도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데 《내경》의 “사기가 모이는 곳은 그 기가 반드시 허하다.”라는 말을 잘못 끌어온다. 기허는 물론 보해야 하지만 모인 사기도 제거해야 하지 않는가? 보하여 사기를 붙들어 두면 끝내 다시 나오지 못하므로 심하면 곧 죽고 가벼우면 오래 끌며 다른 병으로 변한다. 혹 다행히 낫는 것은 병이 가볍고 원기가 점차 회복된 것이지 약의 공효가 아니다.
余少時見問疾者 , 聞醫家已用補藥則相慶病者已愈 , 今則病勢方張 , 正群然議進參 、 附 、 熟地 , 豈不可駭 ! 其始也 , 醫者先以虛脫嚇人 , 而後以補藥媚人 。 浙江則六味 、 八味湯加人參 、 麥冬等藥 ; 江南則理中湯加附 、 桂 、 熟地 、 鹿茸 、 臍帶等藥 。 於是人人習聞 , 以為我等不怕病死 , 只怕虛死 。 所以補藥而死 , 猶恨補之不早 、 補之不重 , 並自恨服人參無力 , 以致不救 。 醫者虛脫之言 , 真有先見之明 , 毫無疑悔 。 若服他藥而死 , 則親戚朋友 , 群詬病家之重財不重命 , 死者亦目不能瞑 。 醫者之罪 , 竟不勝誅矣 ! 所以病人向醫者述病 , 必自謂極虛 , 而傍人代為述病 , 亦共指為極虛 , 惟恐醫者稍用攻削之劑 , 以致不起 , 或有稍識病之醫 , 即欲對症擬方 , 迫於此等危言 , 亦戰戰兢兢 , 擇至補之藥 , 以順其意 , 既可取容 , 更可免謗 , 勢使然也 。 此風之起 , 不過三十餘年 , 今則更甚 , 不知何時而可挽回也 ?!
내가 젊을 때 문병하는 사람들은 의사가 이미 보약을 썼다는 말을 들으면 환자가 나았다고 서로 기뻐하였다. 지금은 병세가 막 왕성한데 무리 지어 인삼·부자·숙지황을 투여하자고 논하니 놀랍지 않은가? 처음에 의사는 허탈이라는 말로 사람을 겁주고 뒤에는 보약으로 비위를 맞춘다. 절강에서는 육미·팔미탕에 인삼·맥문동 등을 더하고 강남에서는 이중탕에 부자·계·숙지황·녹용·제대 등을 더한다. 이에 사람들이 익숙하게 들어 우리는 병사할까 두렵지 않고 허하여 죽을까 두려울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보약을 먹고 죽어도 오히려 일찍 보하지 못하고 무겁게 보하지 못함을 한탄하며, 인삼을 복용할 형편이 없어 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한탄하기까지 한다. 의사의 허탈이라는 말이 참으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여 조금도 의심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약을 복용하고 죽으면 친척과 친구가 무리 지어 환자 집이 재물만 중히 하고 생명을 중히 하지 않았다고 꾸짖으며 죽은 사람도 눈을 감지 못한다. 의사의 죄는 다 벌할 수 없다! 그러므로 환자가 의사에게 병을 말할 때 반드시 자신이 몹시 허하다고 하고, 곁에서 대신 병을 설명하는 사람도 모두 매우 허하다고 하여 의사가 조금이라도 공삭제를 써서 일어나지 못하게 할까 두려워한다. 병을 조금 아는 의사가 증에 맞게 처방하려 해도 이런 위협적인 말에 눌려 벌벌 떨며 가장 보하는 약을 골라 뜻을 따른다. 환심도 얻고 비방도 면할 수 있으니 형세가 그렇게 한다. 이 풍조가 생긴 지 30여 년에 지나지 않는데 지금은 더욱 심하니 언제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