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時權量甚輕 : 古一兩 , 今二錢零 ; 古一升 , 今二合 , 古一劑 , 今之三服 。 又古之醫者 , 皆自採鮮藥 , 如生地 、 半夏之類 , 其重比干者數倍 , 故古方雖重 , 其實無過今之一兩左右者 。 惟 《 千金 》、《 外臺 》 間有重劑 , 此乃治強實大症 , 亦不輕用也 。 若宋 、 元以來 , 每總制一劑 , 方下必注云 : 每服或三錢 , 或五錢 。 亦無過一兩外者 , 此煎劑之法也 。 末藥則用一錢匕 ; 丸藥則如桐子大者十丸 , 加至二三十丸 。 試將古方細細考之 , 有如今日之二三兩至七八兩之煎劑乎 ? 皆由醫者不明古制 , 以為權量與今無異 , 又自疑為太重 , 為之說曰 : 今人氣薄 , 當略為減輕 。 不知已重於古方數倍矣 , 所以藥價日貴而受害愈速也 。 又有方中熟地用三四兩 , 余藥只用一二錢者 , 亦從無此輕重懸殊之法 。 要知藥氣入胃 , 不過藉此調和氣血 , 非藥入口即變為氣血 , 所以不在多也 。 又有病人粒米不入 , 反用膩隔酸苦腥臭之藥 , 大碗濃煎灌之 , 即使中病 , 尚難運化 , 況與相反之藥 , 填塞胃中 , 即不藥死 , 亦必灌死 , 小兒尤甚 。 又不論人之貧富 , 人參總為不祧之品 。 人情無不貪生 , 必竭蹶措處 , 孰知反以此而喪其身 , 其貧者送終無具 , 妻子飄零 , 是殺其身而並破其家也 。 我少時見前輩老醫 , 必審貧富而後用藥 , 尤見居心長厚 , 況是時參價猶賤於今日二十倍 , 尚如此謹慎 , 即此等存心 , 今人已不逮昔人遠矣 !
옛날의 도량형은 매우 작았다. 옛 1냥은 지금의 2돈 남짓이고 옛 1되는 지금의 2홉이며 옛 1제는 지금의 세 번 복용량이다. 또 옛 의사는 모두 신선한 약을 직접 채취하여 생지황·반하 같은 것은 무게가 마른 것의 몇 배이므로 고방은 무거워 보여도 실제로는 오늘날 1냥 안팎을 넘지 않는다. 《천금》·《외대》에는 간혹 중제가 있으나 이는 강실한 중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역시 가볍게 쓰지 않았다. 송·원 이후에는 매번 한 제를 통틀어 만들면 처방 아래에 반드시 매번 3돈 또는 5돈을 복용한다고 주석하여 역시 1냥을 넘지 않았으니 이것이 전제의 법이다. 가루약은 일전비를 쓰고 환약은 오동나무 씨 크기라면 10환에서 20~30환까지 더한다. 고방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처럼 2~3냥에서 7~8냥의 전제가 있는가? 모두 의사가 옛 제도를 모르고 도량형이 지금과 같다고 여기면서도 스스로 너무 무겁다고 의심하여 ‘지금 사람은 기가 약하므로 조금 줄여야 한다’고 설명한 탓이다. 이미 고방의 몇 배나 무거움을 모르므로 약값은 날마다 비싸지고 해는 더 빨라진다. 또 숙지황을 3~4냥 쓰고 나머지 약은 1~2돈만 쓰는 처방도 있는데 이처럼 경중이 현격한 법은 없었다. 약기가 위에 들어가면 이를 빌려 기혈을 조화롭게 할 뿐 약이 입에 들어가 곧 기혈로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므로 양이 많음에 있지 않다. 환자가 쌀 한 톨도 먹지 못하는데도 도리어 끈끈하고 막히며 시고 쓰고 비리고 악취 나는 약을 큰 사발에 진하게 달여 먹이기도 한다. 병에 맞아도 운화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반대되는 약으로 위를 채워 막으면 약 때문에 죽지 않더라도 억지로 먹여 죽일 것이며 소아는 더욱 심하다. 또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인삼을 늘 버릴 수 없는 약으로 삼는다. 사람은 모두 살기를 탐하므로 있는 힘을 다하여 마련하지만 도리어 이로써 몸을 잃음을 누가 아는가? 가난한 사람은 장례 치를 물품도 없어 아내와 자식이 떠도니 몸을 죽이고 집안까지 망치는 것이다. 내가 젊을 때 본 선배 노의들은 반드시 빈부를 살핀 뒤 약을 써서 마음 씀씀이가 후덕하였다. 그때 인삼 값은 오늘날의 20분의 1인데도 그처럼 조심하였으니 이런 마음만 보아도 지금 사람은 옛사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