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師者 , 指引之功也 。 必須學者隨事精察 , 真積力久 ; 而於師之引而不發者 , 始得見其躍如者焉 。 苟或不然 , 師者未必能引進 , 學者未必能起予 。 二者須先之也 , 夫何益之有哉 ? 故曰 : 不憤不啟 , 不悱不發 , 舉一偶不以三隅 , 反則不復也 , 其斯之謂歟 ! 予於斂之名家 , 獲睹是編 , 觀其中之所語 , 皆本丹溪先生之意 , 門人弟子惟求其意 , 而發其所未發者 , 此所謂引而不發 , 而得其躍如者焉 ! 予深喜之 , 遂錄以歸 , 後休之 。 率口項君恬以疚 , 來就予治 。 予邑石墅陳子桷 , 以醫而至予館 , 因出以示之 。 二人者心意相得 , 一則曰 : 是可以益於吾疚也 ; 一則曰 : 是可以補於吾醫也 。 乃相告於予曰 : 吾二人共梓之 , 以垂不朽 , 何如 ? 予曰 : 醫乃仁術也 , 筆之於書 , 欲天下同歸於仁也 。 今若刻布以廣其傳 , 則天下病者有所益 , 而天下醫者有所補 , 其仁惠及於天下大矣 ! 豈特二子然哉 ? 此予之所深嘉也 , 又能善推予之所欲推矣 , 因題之曰 :《 推求師意 》。 故僭序之 , 以誌喜焉 。
스승이란 이끌어 주는 공을 가진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일마다 정밀하게 살피고 참되게 쌓아 오래 힘써야, 스승이 활시위를 당기되 쏘지는 않은 곳에서 비로소 생생히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스승은 반드시 이끌어 나아가게 할 수 없고 배우는 사람도 반드시 스승을 일깨울 수 없다. 이 두 가지를 먼저 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표현하려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세 모퉁이로써 되돌려 오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염지의 이름난 집안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 안의 말을 보니 모두 단계 선생의 뜻에 근본을 두고, 문인과 제자들이 오직 그 뜻을 구하여 아직 밝히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당기되 쏘지 않은 데서 생생히 드러나는 것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는 깊이 기뻐하여 마침내 베껴 돌아왔다. 뒤에 휴지의 솔구에 사는 항념 군이 병이 있어 내게 치료받으러 왔다. 우리 고을 석서의 진각도 의술 때문에 내 집에 왔으므로, 이에 꺼내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마음과 뜻이 서로 맞아, 한 사람은 ‘이것은 내 병에 도움이 되겠다’고 하고, 한 사람은 ‘이것은 내 의술을 보충하겠다’고 하였다. 마침내 함께 내게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판각하여 길이 전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의술은 인술이다. 이를 책에 적은 것은 천하가 함께 인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새겨 펴내어 널리 전한다면 천하의 병든 사람은 도움을 얻고 천하의 의사는 보충할 바를 얻을 것이니, 그 인애로운 은혜가 천하에 미침이 클 것이다! 어찌 그대 두 사람만 그러하겠는가? 이는 내가 깊이 가상히 여기는 일이며, 또 내가 미루어 넓히고자 한 바를 잘 미루어 넓힌 것이다’라고 하고, 이에 《추구사의》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므로 외람되게 서문을 써서 기쁨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