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不三世不服其藥又曰九折肱方能為活人之術醫學自前情季年由不工商者 厠 身其問荒落益不堪言華洋交通東西醫輸入文秀之士始留心科學本格致而旁及醫術搜古籍研新術雖他族有一日千里之勢我岐黃家學亦群競發明以與相抗衡往往內症經他族告絕不理者經我醫對症進方立起沉疴同社裘君吉生有搜刊醫書之舉不佞於無錫孫君文修處見推蓬寤語一書系前明松江率豫亨字元薦所著此書原版已毀先生自幼性耽博覽始從師好志輒學詩兒祈禱有驗輒學祈禱嘉靖丙申從其父海樓憲副收大溈寇多集兵書輒喜談兵兼習韜鈐星遁射弩諸法自楚歸吳即捐夙好專習舉業遊膠庠間有聲時文衡山諸公以書畫嗚輒學書旁及古□名繪善鑑賞繼而有以養生說進者輒喜談養生蒐緝玄家梵蒐數百種更及於醫卜星相莫不窺其奧妙顧數奇迄不如志隆慶庚午始捐舉業以鴻臚謁選自蘇赴京舟行多暇捕夙昔所知能表見者匯為描篷寤語計九卷內分測微原教本術還真訂疑毗政諸篇該洽古今貫穿百家蘧蘧焉足起人意末附以往來論學函牘一卷共十卷隆慶辛末秋梓行不佞因原教本術二篇有關醫術摘抄以貢同仁可見先生當日談醫之一斑何今之以醫名世者墨守一家言靈素諸書既少涉獵欲其旁通格致學究天人不益戛戛乎且難之哉詎知百凡學術不進即退勢無中立將來地軸遷移空氣變換寒溫帶冷熱長縮有違舊序萬匯在交氣之中呼吸醞釀病日出而日多則術亦宜日進而日精現在西醫黴菌血清電氣療治諸法較之古人已上一層再經數十年精益求精後之視今亦猶今之視昔此亦進化之公理也先生不以醫名世而能博學周知若此否儕在醫那通當學術競爭潮流而不融洽中外之書以拯斯人疾苦讀先生遺篇當亦廢然自返矣是為序中華民國七年十月下浣新安古點王壽芝蘭遠序於江村遊六軒
의술이 삼대에 걸쳐 전해진 것이 아니면 그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하였고, 팔이 아홉 번 부러져 보아야 사람을 살리는 술법을 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의학은 전청 말년에 농공상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황폐함이 더욱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과 서양이 교통하고 동서의 의학이 들어오자 문채와 재능이 있는 선비들이 비로소 과학에 마음을 두어 격치를 근본으로 의술에까지 미쳤다. 옛 책을 찾고 새 술법을 연구하니 비록 다른 민족의 진전이 일취월장하더라도 우리 기황의 가학도 서로 다투어 밝혀내어 맞섰다. 흔히 내과의 병으로 다른 민족의 의사가 가망 없다고 버린 것을 우리 의사가 증에 맞는 처방을 주어 곧 고질에서 일어나게 하기도 한다. 같은 모임의 구길생 군이 의서를 찾아 간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무석의 손문수 군에게서 『추봉오어』 한 책을 보았는데 전명 송강의 이예형, 자 원천이 지은 것이다. 이 책의 원판은 이미 없어졌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널리 읽기를 좋아하였다. 처음 스승을 따르며 시에 뜻을 두면 곧 시를 배웠고, 기도에 효험이 있는 것을 보면 곧 기도를 배웠다. 가정 병신년에 아버지 해루 헌부를 따라 대위의 도적을 토벌하면서 병서를 많이 모으자 곧 병법을 말하기 좋아하고 병략인 도검(韜鈐)·성둔·활과 쇠뇌를 쏘는 여러 법을 함께 익혔다. 초에서 오로 돌아와서는 옛 취미를 버리고 과거 공부에 전념하여 학교에서 명성이 있었다. 당시 문형산 등 여러 공이 서화로 이름을 떨치자 곧 글씨를 배우고 옛 □와 이름난 그림까지 두루 감상하였다. 이어 양생설을 권하는 사람이 있자 곧 양생을 논하기 좋아하여 도가와 불가의 책 수백 종을 모았으며, 의술·점복·성명·관상에 이르기까지 그 오묘함을 엿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운명이 기구하여 끝내 뜻대로 되지 않아 융경 경오년에야 과거 공부를 버리고 홍려의 관직 선발을 청하였다. 소주에서 서울로 가는 배에 한가한 시간이 많아 평소 알던 것 가운데 드러내어 말할 만한 것을 모아 『추봉오어』 아홉 권을 만들었다. 안에는 측미·원교·본술·환진·정의·비정 등의 편을 나누었다. 고금을 두루 포괄하고 백가를 관통하여 읽는 이의 뜻을 깨워 일으킬 만하다. 끝에 학문을 논하며 왕래한 편지 한 권을 붙여 모두 열 권으로 하고 융경 신미년 가을에 판각하여 간행하였다. 나는 원교와 본술 두 편이 의술에 관계되므로 베껴 동인들에게 바친다. 이로써 당시 선생이 의학을 말한 한 면을 볼 수 있다. 어찌 지금 의사로 이름난 사람들은 한 집안의 말만 지키고 『영추』·『소문』도 조금밖에 읽지 않는가. 그들이 격치에 널리 통하고 천인에 학문을 다하기를 바라면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모든 학술은 진전하지 않으면 물러서며 중간에 설 수 없음을 어찌 모르는가. 장차 지축이 옮겨지고 공기가 바뀌며 한온대의 냉열과 길고 짧음이 옛 질서와 어긋나고, 온갖 생물이 교차하는 기운 속에서 숨 쉬고 빚어져 병이 날마다 생겨 많아지면 술법도 날마다 진전하여 정밀해져야 한다. 지금 서의의 미생물·혈청·전기 치료 여러 법은 옛사람보다 이미 한 단계 높다. 다시 수십 년 동안 더욱 정밀해지면 뒤에서 지금을 보는 것도 지금 옛날을 보는 것과 같으리니 이것 역시 진화의 공리이다. 선생은 의사로 세상에 이름난 것이 아니면서도 이처럼 널리 배우고 두루 알았다. 우리 의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학술 경쟁의 조류를 만나면서 중외의 책을 융합하여 사람들의 질고를 구하지 않는다면, 선생의 유편을 읽고 스스로 낙담하여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서문을 쓴다. 중화민국 7년 10월 하순, 신안 고점의 왕수지 난원이 강촌 유륙헌에서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