敘曰 : 世言方技略者 , 類以非經闢之固也 。 然經以止道 , 道以息邪 , 故有殊途同歸而大義不詭 , 於聖人則固弗可詘也已 。 今觀河濱丈人所纂 《 攝生要義 》, 其存想篇則務專精氣 , 洞與神參 , 要不可以邪汨之一耳 。 至云守寸及諸景象所見 , 皆假設之義 , 則與所謂蕩入仙筌者 , 又大不侔 。 其諸篇亦皆制外 、 養中 、 順生 、 節適之道 , 何償喪肝膽 , 遺耳目嗒 ? 然忘其形而與世為罔 , 兩者倫也 。 噫 ! 達生者 , 類出於是 , 其去夭昏札瘥而極蕃祉耆耋者 , 固其所已 , 又安知不為經之佐使也哉 ! 河濱丈人為誰 ? 大司馬浚川公也 。 公固志存天下 , 而思躋之仁壽之域以廣熙和之化者 , 則於是乎 ! 端有賴也 。 敬序 。 上蔡 , 後學張惟恕書 。
서문에서 말한다. 세상에서 방기의 학문을 말하는 자들은 대개 경전이 아니라 하여 배척하니 고루하다. 그러나 경은 도에 머무르게 하고 도는 사악함을 그치게 하므로, 길이 달라도 돌아가는 곳은 같아 큰 뜻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성인에게서도 참으로 배척할 수 없을 뿐이다. 지금 하빈장인이 편찬한 《섭생요의》를 보니, 존상편은 정기를 전일하게 하여 깊이 신과 참여하는 데 힘쓰니 요컨대 사악한 것에 흐려지지 않는 하나의 일일 뿐이다. 수촌과 여러 형상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가설한 뜻이라고 한 데 이르러서는 이른바 신선의 방술에 빠져드는 것과도 크게 다르다. 다른 편들도 모두 밖을 제어하고 안을 기르며 생명을 따르고 알맞게 절제하는 도이니, 어찌 간담을 잃고 귀와 눈을 버리며 멍하니 형체를 잊고 세상과 더불어 망량이 되는 부류이겠는가? 아! 생명에 통달하는 이는 대개 여기에서 나오니, 요절과 혼미와 역병을 멀리하고 큰 복과 장수에 이르는 것은 본래 그 당연한 바이며, 또 경의 보좌가 되지 않는다고 어찌 알겠는가! 하빈장인은 누구인가? 대사마 준천공이다. 공은 본래 뜻을 천하에 두어 사람들을 인과 장수의 경지로 오르게 하고 태평하고 조화로운 교화를 넓히려는 분이니, 이에 참으로 의지할 바가 있다. 삼가 서문을 쓴다. 상채의 후학 장유서가 쓰다.